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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38화 (38/113)

< -- 38 회: 8장. 그레이 도퍼 -- >

8장. 그레이 도퍼 (4)

“아휴. 아가씨 고마우이.”

수지네들과 헤어진 후 지하 대피소로 돌아간 강현은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얌전히 앉아있을 거로 생각한 소유가 대피소 곳곳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어깨에는 담요를 두르고 치마는 움직이기 편하게 질끈 묶은 채였는데, 여기저기 모여있는 사람들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불편한 사람들에게 담요나 수건. 마실 것 등을 옮겨주고 있었다.

아이들 몇몇은 어느새 새끼 병아리처럼 소유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런. 누가 보면 여기 관리하는 직원인 줄 알겠네.’

강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작은 페트평을 양손 가득 안고 가고 있는 소유에게 다가갔다. 강현이 다가오는 걸 본 소유는 싱긋 웃으며 맞아 주었다.

“다행이에요. 무사하셨네요.”

“그보다 뭐하고 계세요? 놀라셨을 텐데 좀 쉬고 계시지.”

강현의 말에 소유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친구도 밖에서 몬스터 퇴치하러 왔다고 연락이 왔고, 강현 씨도 바쁘게 움직이시는데. 저 혼자 멍하니 있기 지루해서요.”

“친구분이요? 어쩌나! 이미 몬스터 퇴치했는데 허탕 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나. 강현씨가 퇴치하신 거예요?”

“물론입니다”

강현이 가슴을 내밀며 자신감 있게 말하자. 소유가 주위의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너희들. 이 오빠 덕분에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겠네.”

“와아.”

그 말에 아이들이 강현에게 두 팔을 들어서 달려들었다. 아이들이 어색한 강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영 운이 없었네요. 저녁 먹는데 이 난리를 겪다니.”

“뭘요. 이렇게 무사한 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럼 아직 밖이 어수선하니까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강현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위장의 울음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꼬르륵-

꼬륵-

소리를 들은 강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요리가 미처 나오기 전에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터였다. 덕분에 저녁도 못 먹고 이렇게 돌아다닌 탓에 소리가 날수도 있지만. 분명 귀에 도달한 소리는 한 개가 아니었다. 분명 소유의 배에서 나는 소리도 들었다.

강현이 소유를 돌아보니 창피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현이 머리를 긁으면서 주위에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쿠 한바탕 하고 왔더니. 배가 난리네요. 괜찮으시다면 뭐라도 같이 먹고 들어갈까요?”

“네. 그래요.”

소유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뒤로 대피소를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을 데려다 준 후에 소유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수지들은 없지만, 소방서와 각종 중장비차량. 헬기까지 동원되어 아직 차량도 통제되고 혼잡했다.

강현은 소유의 어깨가 그대로 드러난 걸 보고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대피소에서 두르고 있던 담요는 그대로 두고 온 모양이었다.

“이거 입으세요.”

“앗 감사합니다.”

소유가 자신의 재킷을 두르고 양손으로 옷깃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기분이 들뜨는 거 같았다.

“그럼. 잠깐 실례.”

“꺅.”

그렇게 말한 강현이 소유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소유가 품 안에 맞춘 듯이 쏙 들어왔다. 강현은 순간 움찔했다.

“웃.”

“무, 무겁나요.”

“아 아닙니다.”

분위기에 취해 호기롭게 안았지만. 소유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융기가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에 눌러져 버리는. 그 정신적인 충격을 미처 생각 못 했던 탓이었다.

예거를 먹은 탓일까? 소유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소유를 안은 강현은 도로와 도로 사이를 성큼성큼 날 듯이 뛰어서 올랐다. 소란스러운 도심 속을 한몸이 되어 가로질렀다.

품속에 있던 소유는 강현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절 몇 번이나 구해주셨네요. 고마워요.”

“네?”

소유의 중얼거림이 바람결에 흘러갔다. 그 때문에 미쳐 못 들었는지 강현이 무슨 말인지 되물었지만. 소유는 고개를 저으며 강현의 품에 더욱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다가 소유가 멀리서 보이는 노란색과 다홍색이 섞인 간판을 보고 가리켰다.

“앗 저기 가요.”

그곳은 김밥헤븐이었다.

*****

“어휴 몬스터 나왔다길래 구경하러 왔더니만. 벌써 끝났데요. 몬스터가 얼마나 설쳤는지 현장이 엉망진창이라던데. 그거라도 구경하러 가실 랍니까?”

으슥한 골목길에서 나온 사내가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자신의 앞쪽에 가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금방까지 술집에서 한참을 퍼마시고 77빌딩에 사고가 났다고 해서 근처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중이었다.

앞쪽에 가던 남자는 자신의 자랑인 금발을 쓸어올리며 잘난척했다.

“훗. 내가 나섰으면 좀 더 쉽게 잡았을 텐데. 안 그래?”

“그야. 성제 형님이 한번 나섰으면 다 불바다로 만들어버리신다면서요.”

“당연하지.”

그 말에 맞장구치던 사내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조심스럽게 성제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형님은. 요즘 레이드 잘 안 가시던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냥 좀 쉰 거야. 한탕 하면 몇억인데 왜 바보같이 열심히 일해?”

성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맛이 썼다. 도퍼 연수를 마치고 레이드를 몇 번 가긴 갔다. 하지만 갈 때마다 문제를 일으킨 탓에 레이드 팀 리더끼리 소문이 퍼져서 팀을 구하기 힘들게 됐었다.

그러고 나서 잘 안 나가게 되었는데 어차피 수중에 몇억을 들고 있는 탓에 돈이 딱히 궁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렇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걸로 만족했다.

“와 그거 대단하네요. 나도 도퍼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개새끼 따라다니면서 푼돈 뜯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내는 맞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사채업자인 자신의 보스를 떠올렸다. 사채업자라고 해도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여서 여기저기 찔러서 하나라도 회수하면 대박인 걸로 먹고살았는데. 사내가 보기에는 쪼잔하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일전에도 도퍼한놈 엮인 건이 있어서 사내는 그 와중에 얻어터져서 열 받아 하고 있었다. 반면에 보스는 제대로 돈 뜯어냈다고 좋아했지만. 보너스 몇 푼 받은 걸로는 그 원한을 풀 수 없었다.

“앗 저 새끼!”

갑자기 사내가 멈춰 서서 소리를 질렀다. 그쪽에는 강현과 소유가 택시를 잡고 있었다.

*****

김밥헤븐에서 나온 두 사람은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잘 먹었어요.”

“여긴 떡볶이가 맛있네요. 그쵸.”

소유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랑 같이 먹는데 뭔들 맛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꽤 맛있어서 77빌딩에서의 아쉬움도 많이 덜었다.

그때 발걸음을 멈춘 소유가 강현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단단히 일렀다.

“아 참 이건 저녁 대접한 건 아니에요.”

“네? 그래도. 그건 몬스터도 갑자기 나타났고 불가항력이었는데...”

“그래도 대접한 건 아니라니까요.”

투정부리듯 말하는 소유를 보고는 강현은 뒤늦게 소유가 말하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저녁을 대접한 걸로 안친다면 다음에 다시 저녁을 산다는 이야기. 즉 애프터 신청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네 다음에 또.”

강현이 뒤늦게 깨달은 표정으로 소유를 쳐다보자 소유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그 미소를 본 강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우왓 이런 자연스럽게 애프터신청을 받다니. 나도 좀 하는데? 아니 아니지 내가 해야 했었는데.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그렇게 강현의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가고 있을 때. 멀리서 강현을 살펴보고 있던 사내가 두 사람을 보고 혀를 찬다.

“완전 지랄한다 정말.”

“누구야?”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린 탓인지 엉뚱한 데를 보고 있던 성제가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사내는 성제의 몸을 돌려 강현쪽으로 향하고는 강현에게 삿대질해서 알려줬다.

“전에 말한 도퍼말이에요. 와아 딴에 도퍼라고 여자끼고 다니는 꼬락서니 봐라.”

“자식이 나도 도퍼거든?”

“헤헤 형님은 별개죠.”

그렇게 둘이서 주고받다가 성제가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이제 봐 보고는 왠지 익숙한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앗 저 새끼..”

“아 혹시 아는 분이세요?”

“아는 분은 무슨. 원래 도퍼도 못되고 빌빌거리다가 뭔가 착오로 좀 센 능력 얻어서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녀석이야. 내가 처음부터 봐서 알지.”

“형님보다 센가요?”

성제는 연수 때 강현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야 나보다 쬐끔 세긴 해. 그래 봤자 지가 병신인 게 달라지나? 저 여자한테 빠져서 헤벌레 하는 꼴 좀 봐.”

그런 다음 사내 쪽으로 돌아본 성제가 음흉한 웃음을 띠었다.

“우리가 저런 놈 다루는 방식 있잖아. 안 그래?”

“네에. 흐흐.”

거기에 호응하듯이 사내도 음흉한 미소로 답했다.

“그럼 애들 불러서 미행 붙일까요?”

“아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저 여자 어디 있는지 알거든.”

“여자도 아십니까?”

의외라는 듯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성제가 사내의 얼굴을 바짝 당겨다가 시선을 소유의 가슴 쪽으로 향하게 했다.

“저 가슴 봐봐. 여자도 옷이 달라서 인상은 다르지만. 그 가슴을 보면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지.

“히야. 정말 그렇겠네요.”

사내도 소유의 커다란 가슴을 보고 흐르는 침을 멈출 줄 몰랐다.

성제는 벌써 복수의 달콤한 맛을 본 듯 혀를 혀로 입술을 훑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저 쩔쩔매는 꼬락서니 보고 있자니. 아직 손도 못 잡아봤을 거 같은데. 내가 먼저 맛있게 먹어주지.”

*****

다음 날 저녁.

한산한 편의점 앞에 사내들의 그림자가 깔렸다. 하나같이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형님. 여깁니까?”

“그래. 여기에 긴 생머리 있으면 그대로 잡아오라던데.”

사내들이 눈을 마주치고 편의점 안을 쳐다봤다. 편의점 안에는 알바생이 마침 등을 돌리고 물건을 진열하고 있었다. 창가를 넘어온 저녁노을을 머금은 긴 생머리는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좋아. 가자.”

선두에 선 사내가 커다란 포댓자루를 흔들면서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 사내 둘이 따라들어갔다. 남은 사내는 담배를 꼬나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망을 보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몇 모금 빨기 전에 사내들이 포댓자루를 짊어지고 나왔다. 이제 편의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포댓자루를 짊어진 사내는 포댓자루의 무게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뭔가 의심스러운 듯 포댓자루를 몇 번 툭툭 쳤다. 자루 안의 사람은 기절한 듯 조용했다.

“정말 맞죠?”

“긴 생머리 맞다니까. 이거나 남기고 가자.”

사내는 부하들에게 먼저 가라며 손짓한 뒤에 쪽지 하나를 편의점 입구에 붙이고 사라졌다.

-유강현. 이쪽 지를 보면 뒷산 앞 공터로 와라. 단 혼자서. 약도 들고오지 말고.

*****

강현은 어제저녁에 소유를 데려다 주고 오면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오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저녁에는 더욱더 맹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전화벨 소리가 강현의 계획을 방해했다.

핸드폰을 확인한 강현은 다시 심장이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면에는 [ 설소유 ]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를 깨우기 위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겨우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강현의 귀를 찔러왔다.

“강현씨. 큰일이에요. 큰일! 납치당했어요!”

“네? 넹? 무슨 소리예요? 소유 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유였다.

소유는 강현의 목소리를 듣자 좀 안정이 된 것인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했다. 소유의 설명을 듣고 강현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납치됐다고요...”

편의점에 사람이 없다고 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확인해보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없어지고 강현을 찾는 쪽지만 하나 달랑 붙어있었다고 했다. CCTV를 확인해 봤는데, 강현도 본 적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웬 괴한들이 나타나서 납치해 갔다는 거였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예전에 강현도 소유랑 착각한 적 있는 긴 생머리가 예쁜 남자 알바생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일찍 올렸네요.

앞으로는 가능하면 정각에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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