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7 회: 8장. 그레이 도퍼 -- >
8장. 그레이 도퍼(3)
강현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함수지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수지는 온몸이 펌프질하듯 세차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었다. 전신에는 땀과 먼지가 뒤섞여 엉망이어서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담당자 김지훈을 포함해 익숙한 얼굴의 수지네 팀의 도퍼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저 위에 있다가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저 위에 몬스터가 있다고요?”
수지는 빌딩의 꼭대기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이내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런 수지의 모습을 보고 짐작되는 게 있어서 지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해다.
“몇 시간 전에 우면산 인근에 몬스터가 발생한 정황이 파악되어 퇴치하기 위해서 주위의 도퍼들을 소집했습니다만...”
이어지는 지훈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수지를 중심으로 급하게 모을 수 있는 팀을 모아서 몬스터를 퇴치하러 나갔는데, 그게 드물게 나타나는 비행형 몬스터였다는 것이다.
C급이라서 그렇게 센 편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 도망 다니는 바람에 몇 시간 동안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심으로 날아가 버려서. 여기까지 허겁지겁 쫓아와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때 빌딩 꼭대기에서 펑하는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우르르하는 건물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꼭대기에서 잔해가 팍팍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찰과 안전관리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위험하다며 통제함에도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흩어졌다.
떨어진 잔해에 정통으로 맞은 사람은 다행히 없었지만, 땅에 부딪힌 다음 틘 파편에 중상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 고통소리와 앰블런스 사이렌 소리가 얽혀서 어지러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네네. 알겠습니다. 위층으로 진입하겠습니다.”
강현에게 설명한 뒤 지훈은 어딘가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수지는 구석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와서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빌딩을 방어하고 있던 도퍼가 당했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지훈의 첫마디를 듣고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강현이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도퍼들은 티브이 쇼에서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쉬고 있는 게 대부분으로. 능력자로서는 하나같이 3급 이상의 뛰어난 능력자들이라는 것이다.
“중상이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 없이 아래 후송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측에서 빌딩에 진입해서 퇴치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도퍼들이 웅성거렸다. 대부분 저위에서 어떻게 싸우라고 하는 불평이었다
“조용히들 하셈!”
수지가 발을 구르면서 외쳤다. 다들 바로 입을 다물었다. 강현은 오랜만에 보는 수지의 카리스마를 보고 역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쪽으로는 나랑 근딜 둘. 원딜, 힐러는 하나만 올라가셈. 나머지 부탱과 원딜, 힐러는 헬기를 기다렸다가 지원이 더 도착하면 후속팀으로 올라오삼. 혹시나 또다시 몬스터가 도망쳐버리면 바로 쫓으셈.”
“오!”
수지의 말에 팀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에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수지는 지훈을 돌아봤다.
“담당자는 어서 응원 더 부르셈. 이대로라면 피해가 더 늘어날 뿐이삼.”
“알겠습니다.”
지훈도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디론가 다시 전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나도 도와줄게.”
“정말이삼?”
강현의 제안에 수지가 반색했다. 강현의 입장에서도 마침 예거도 먹은 참이니까 약값을 벌충할 겸 해서 직접 움직여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소유를 데려다 주려고 해도 주변이 완전히 통제되어도 쉽게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물론 상황을 봐서 위험하면 바로 철수할 생각이었다.
예거를 먹고 활성화된 몬스터 서치로 파악한 몬스터는 하늘을 나는 이점만 제외하고는 쓰러트리기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도와주신다면 정말 안심입니다.”
저번 레이드에서 퍼스트 도퍼와 맞먹는 능력을 강현이 발휘하는 걸 봤던 지훈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최근 인력부족으로 보고서가 정리가 안 되어서 아직 위로 보고가 안 들어갔지만. 제대로 다시 측정하면 국내 탑 능력자라고 지훈은 예상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출발하는 거셈.”
그렇게 말하면서 수지가 당당하게 앞장섰다.
*****
강현과 수지네 도퍼 팀들은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는 최고층인 66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위층에서 울리는 소음과 악을 쓰면서 내뱉는 육두문자가 섞여서 플로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씨. 하필이면 내가 당번일 때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어서 힐러 안 와? 넌 왜 힐러가 아니라 근딜이야? 앙?”
“진정해. 밑에서 이 몬스터를 쫓던 팀들이 올라온다고 했으니까. 힐러도 있을 거야”
“시8 그 새끼들이 놓쳐서 우리가 이런 고생하는 거란 말이야?”
“그 사람들도 놓치고 싶어서 놓쳤겠어?”
플로어에는 남녀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자 쪽이 악을 쓰면서 비난하고. 남자 쪽이 주로 말리고 있었다.
수지네팀들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지만 다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인상을 찌푸린 채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
수지가 입을 꾹 다문 채로 한걸음 내디뎠다. 그제야 남자가 눈치챘다. 여자도 이어서 눈치채고는 톡 쏟아 붙였다.
“앗 왔다.”
“어휴 이제 기어오나.”
엘리베이터 밖으로 수지네팀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 쪽은 짙은 눈썹 밑에 부드러운 눈빛을 조각 같은 얼굴이 감싸 안고 있었다. 여자를 달래다가 수지네팀을 보고 난처한 표정으로 이쪽을 봤는데. 용서를 구하는 강아지마냥 쳐다보는 모습이 어느 여성이라도 그 눈빛에 스치면 여심이 흔들릴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긴 하지만. 웨이브 진 브라운 칼라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어도 그 아래에 수지네 팀을 들보는 또렷한 눈빛을 중심으로 그려놓은 듯한 이목구비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의 화보처럼 보였다.
“앗 저 사람. 알아요. 송원호이잖아요. 여자 쪽은 하지우!”
근 협상한 명이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힐러 계시면 이쪽 친구 좀 치료 좀 부탁합니다.”
원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부탁하자. 힐러가 황급히 튀어나와서 지우 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면서도 두 사람의 얼굴에 시선을 못 떼고 있던 힐러는 겨우 지우의 상처에 힐을 보내기 위해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아참 빨랑빨랑 좀 해.”
지우가 재촉하자. 힐러가 움찔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힐을 하기 시작했다. 뒤에 빠져있던 강현은 지우가 재촉하는 걸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 상처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거대 새 몬스터의 부리에 어떻게 당했는지 왼쪽 팔이 너덜너덜하고 아랫배가 움푹 패여서 내장이 드러나 보였다.
‘크오, 저 정도 상태면 아파서 욕할만하겠다.’
힐러가 전력으로 힐을 해줘서 지우는 기운을 차리는 거 같았지만. 조금씩 치유되는 게 되려 더 고통스러워 했다.
“크아아악. 아썅! 술이라도 없어? 술 가져와 술.”
지우가 난리 치는 걸 보고 다들 차마 보고 있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했다.
그때 위층에서 건물을 물어뜯고 있는지. 우르르하는 건물의 앓는 소리가 플로어에 울려 퍼졌다. 수지 옆에서 있던 근딜이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리더. 우리는 먼저 올라가죠. 이대로는 몬스터가 날뛰게 내버려두면 건물이 무너질 거 같아요.”
수지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우를 치료하고 있는 힐러에게 지시했다.
“그래야겠삼. 힐러는 좀 더 힐하고 올라오셈.”
“...네.”
힐러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강현이 보니까 지우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제 거의 실성할 모양처럼 보였다. 강현은 한숨을 쉬고는 지우를 치료하던 힐러를 물리고는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가려는 수지를 향해 이야기했다.
“수지야. 먼저 올라가 있어. 이쪽 치료해주고 갈게.”
“풋. 안 어울리게 이름이 수지야?”
힐이 안 들어가니 잠깐 살만했는지. 지우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강현이 말해서인지 잠깐 움찔하면서 멈췄던 수지는 이내 팀원들을 끌고 올라갔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강현은 수지들이 사라지자마자 아직 너덜너덜한 손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지우가 발광했다.
“으아아악 이 새끼가 너 죽인다 정말!”
“으이구 치료해주시는 분한테 왜 그래. 죄송합니다. 무례해도 용서해주세요. 지금 아파서 그러는 거니.”
원호의 간절한 부탁에 강현은 손을 떼고. 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벌어진 상처들은 제자리를 찾아서 빠르게 아물기 시작하고, 너덜너덜해진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깨 위쪽부터 시작해서 아래쪽까지 원상복구가 되기 시작했다.
상처가 복구되는 거 보고 원호와 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돼...”
금방 회복된 지우는 자신의 팔을 움직이면서 중얼거렸다. 원호는 턱이 빠지라 입을 벌린 다음 다물 줄을 몰랐다. 강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수지가 올라간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그럼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이만.”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원호는 몇 번이고 강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현이 사라지자 지우를 보고 다행이라는 듯 얼싸안았다.
“야. 이거 몇 개월을 치료받아도 제대로 치료받기 힘들잖아. 정말 다행이다 야.”
원호는 그렇게 좋아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왜 달라붙느냐고 쏟아 붙였을 지우가 조용한 것이다.
“야. 왜 말이 없어?”
그렇게 말하며 무슨 일일까 쳐다보니까. 지우가 넋이 나간 채로 강현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강현이 차근차근 자신에게 버프를 걸면서 재빠르게 올라갔다. 74층쯤 올라갔을 때 펼쳐진 풍경에 깜짝 놀랐다. 천장이 없었다. 이 건물은 원래 77층. 이 위쪽으로 3층가량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세찬 바람이 불고. 그 와중에 수지가 거조의 부리를 잡고 버티고 있었다. 그 옆으로 근딜들이 무기를 휘둘러서 공격했지만. 똑바로 자세를 잡기 힘든데다가 거조가 날개를 퍼득 거리고 있었기에 제대로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애당초 거조가 총안에 들어왔을 경우를 예상하고 데려온 인원이라 공격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원딜도 바람에 제대로 서지를 못하고 날리는 공격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이 상황에서 제일 걱정이 된 건. 수지였다. 다리를 거의 바닥에 박듯이 단단하게 굳힌 채로 거조를 틀어잡고 있었지만. 이대로는 잘못해서 밖으로 떨어져 나갈지도 몰랐다.
“그만 놓고 이쪽으로 와! 이 아래에서 잡자.”
그 말을 들었는지 바로 부리를 놓고 비상출입구 쪽으로 뛰어왔다. 이내 자신의 근처에 있던 근딜 두 명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유를 되찾은 거조는 날개를 푸드덕 흔들어대면서 주변에 닿는 집기들을 마구 부셔 됐다. 아이
한층 내려오니까 극장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일단 쉽게 못 나가게 막아야죠.”
강현은 품에서 레이저포인터를 꺼내서 천장을 향해 켰다. 레이저가 부딪힌 곳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강현이 커다란 원을 80퍼센트 가량 그렸을 때. 거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극장의 중앙으로 떨어졌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거조의 무게에 바닥이 살짝 패였다. 거조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재빠르게 일어나 하늘로 박차고 뛰어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달려든 함수지에게 다리를 붙들렸다. 거조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수지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되어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어서 해치우삼!”
강현은 그 말에 듣고, 근딜이 들고 있던 목검을 빌려서 그대로 거조에게 날 듯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스매시 스킬을 써서 목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부채꼴 검광에 거조의 목이 싹둑 잘렸다.
*****
몬스터를 처치한 뒤 빌딩 밖으로 나오면서 수지와 강현은 서로 공치사를 했다. 팀원들 대부분은 씻는다면서 먼저 가버렸고. 눈치 없는 지훈만 두 사람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수고했삼.”
“수지 너야말로 고생 많이 했어. 괜히 끼어든 거 아닌지 몰라.”
“아냐아냐. 오늘 그 녀석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강현님 때문에 살았삼.”
그렇게 말하다가 수지가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그보다 이번에야말로 정산 끝내고 뒤풀이 가는 게 어떠삼? 물론 깨끗이 씻고 나서 말이셈.”
그러면서 슬며시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옷이 엉망이었다. 강현은 그 제안에 정말 아쉽다는 듯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 나 데이트 중이었거든. 지금 대피소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른 데리러 가봐야겠어.”
“으응...”
그렇게 말한 강현은 지훈을 돌아봤다.
“그러니까 지훈씨 제 몫 알아서 챙겨주세요.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강현은 손을 흔들면서 대피소 쪽으로 사라졌다. 지훈은 강현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휴우. 강현님은 볼 때마다 대단한 거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도 어서 가죠. 저도 씻고 좀 쉬고 싶네요.”
그러다가 왠지 수지가 아무런 말도 없는 걸 보고 돌아봤다.
“수지님?”
수지는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방금 강현님이 데이트 있다고 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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