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35화 (35/113)

< -- 35 회: 8장. 그레이 도퍼 -- >

8장. 그레이 도퍼(1)

건너편 회의실에선 몬스터 레이드 정산으로 시끌벅적하지만, 그와 대비되게 이쪽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 움직이는 건 채영의 눈동자와 태블릿 피시를 조작하는 채영의 손가락이 전부였다.

채영은 정석이 사라지면서 강현에게 남기고 간 과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 과제란 범죄자 도퍼 클레임을 체포하는 것.

정석의 발언과는 별개로 그 뒤에 미국도퍼 관리국에서 관련 데이터들이 쉴새 없이 날아왔다. 그 데이터를 본 정부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특별대책팀을 꾸리는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의 총 관리자를 맡은 채영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는 중이었다.

머릿속으로 채영이 정리한 클레임의 정보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름 : 클레임 그레이

성별 : 남.

나이 : 21세.

도퍼 능력 : 2급 슈터. 전격계.

주요 사용 무기 : 권총 ( 베레타 99R )

인상착의 : 신장 160cm 작은 체격. 모자와 야구점퍼. 청바지. 운동화. 백팩착용.

사건 개요 : 미 몬스터 방위청에서 극비리에 보관 중인 S급 몬스터 코어를 리치 사쪽으로 차량 이동 중에 탈취. 일본을 경유 현재 대한민국 서브웨이 스트리트 제 1라인에 숨어지내는 걸로 파악 중. 목적불명. 반미세력에 판매 루트를 알아보는 걸로 추정됨.

주의 사항 : S급 몬스터 코어를 폭탄으로 사용 가능한 특수한 케이스에 넣어서 들고 다는 소문이 들림. 추정 폭발력은 14Kt.

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보고서를 보면 핵폭탄급 위력을 가진 몬스터 코어 폭탄이 서울 시내에 돌아다닌다는 말이었다.

거기다가 S급 몬스터 코어라니. 미국에서 그걸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걸 도둑맞았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탑 급 능력자인 노정석과 엠마가 동시에 나타난 이유가 충분히 짐작됐다. 그전까지는 국내에서는 조용히 잡아들여야 하는 정부요원을 암살한 도망자나 정치범을 잡기 위해서나 아니면 관광차 온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추측만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클레임의 라스트네임인 그레이. 이건 일반적인 성이 아니라 특정 도퍼단체가 자신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소속단원들이 통일해서 쓰고 있는 성이었다. 이른바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공인된 범죄자 집단들. 그들을 그레이 도퍼라고 불렀다.

채영은 이 클레임 그레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미국의 요청대로 체포하지는 못하더라도 국내의 안전을 위해서도 우선적으로 추방해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상부에서는 S급 몬스터 코어를 손에 넣을 기회라며 어떻게든 생포하라며 벌써부터 압박이 들어오지만. 어불성설이었다.

“어쨌든. 먼저 서브웨이 스트리트에서 끄집어낼 필요가 있겠죠.”

채영은 클레임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그날 밤. 강현은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일찍 돌아간다고 미리 연락해둬서인지. 문을 열었을 때는 돼지고기를 굽는 구수한 기름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나왔어~”

“오빠 어서 와.”

부엌 쪽으로 가니까 다현이 프라이팬에 부지런히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프라이팬엔 신문지를 얹은 채였다. 자글자글 맛있게 구워지는 소리가 귀가를 간지럽혔다.

왠지 정감 가고 평온해 보이는 그 광경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짐짓 참으면서 은근히 다현이에게 핀잔을 줬다.

“에이. 오늘 대박 났으니까 비싼 거 준비하랬더니 만. 소 어딨어? 소?”

“소는 무슨 소야. 돼지라도 먹으면 감지먹지지.”

“아이코 잘못했습니다.”

삼겹살을 굽다가 강현을 힐끔 쏘아보는 눈빛에 자지러지며 강현은 식탁에 앉았다. 강현이 배고프다면서 배를 두드리자. 다현은 삼겹살을 굽는 와중에 빠른 손놀림으로 상을 차렸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달인이 따로 없네.’

그렇게 상을 차리고 겨우 자리에 앉은 다현이 숟가락을 들려고 할 때. 강현이 도퍼 자격증을 꺼내서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거기에 찍힌 숫자는 이제까지와는 자릿수가 달랐다.

“짜잔. 오늘은 100억을 벌어왔습니다.”

“우와. 그걸로 이제 정말 아파트대출도 다 갚아버릴 수 있겠네.”

다현은 그걸 보고 눈을 반짝였지만. 강현은 생각보다 약한 반응에 투덜거렸다.

“에이. 겨우 그것뿐이야?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다고?”

“흥. 둘이서 이 이상 큰집으로 옮겨서 뭣하게.”

그 말에 강현은 슬쩍 거실을 둘러보았다. 휑한 거실이 눈에 띄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부모님이 쓰시던 큰 방은 그대로 둔 채였다.

‘내가 말실수했구나.’

강현이 입안이 썼다. 다현이는 굳은 강현의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손에 든 걸 강현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이거나 먹어.”

“우왓. 너무 크잖아.”

강현의 입안에 들어온 건 다현의 특제 쌈이었다.

다현의 특제 쌈이란. 싱싱한 상추 위에 깻잎을 뒤집어 얹고. 양념이 잘 밴 파무침을 얼기설기 뭉쳐서 얹고. 기름기가 살살 흘러서 형광등 아래에 먹음직스럽게 번들거리는 삼겹살을 살포시 얹고. 마늘조각을 양념장에 양껏 찍어서 얹고. 마무리로 다현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오므린 것이다.

이 평범하게 맛있어 보이는 쌈의 특징은 무지하게 크다는 것이다.

다현은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이 특제 쌈을 강현의 입속에 쑤셔놓고 여봐라라는 듯이 구박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것도 못 먹어? 어이구 한심해라. 그러니까 여자 하나 없지.”

그리고 이 특제 쌈의 무시무시한 점은 어떤 구박을 듣더라도 입안에 가득한 쌈 덕분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으후으음. 머무움.”

“안 들리는데. 뭐라고?”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던 건 이게 다현이 기분 좋지만 칭찬하기 무안할 때 하는 행동이라는 걸 강현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의자에 앉은 채로 온갖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간신히 삼켰다. 그걸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다현이 밥알을 오물오물 거리면서 이야기했다.

“나 오늘 알바 그만뒀어.”

“그래? 잘했어. 그럼 축하의 의미로 뭐 사줄까? 내일 같이 백화점 가자. 가는 김에 나 옷 좀 골라줘.”

다현은 강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일로 오빠가 옷을 다 골라달래. 혹시. 데이트? 혹시 채영 언니랑 데이트 하는 거야?”

“채영이? 아냐. 데이트라고 하긴 좀 그럴까? 전에 그 편의점 사건 때문에 사례하고 싶다고 해서 저녁 먹는 거뿐인데. 뭘. 단둘이서 먹는 것도 아니고 친구도 한 명 데려온다던데.”

“친구? 여자?‘

“으응. 꽤 유명한 도퍼라서 소개해주고 싶다나 봐.”

“흐으음.”

다현이 눈을 내리깔면서 무언가 깊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가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면서 강현의 눈을 쳐다봤다.

“그래서 오빠는? 관심 있지?”

“어? ...응. 그래도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강현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다현의 눈을 피했다.

“좋은 사람이야?”

“응. 거기다가 왠지 끌리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

“앗. 생각보다 진지하잖아.”

의자에 앉아서 펄떡 뛴 다현은. 검지를 들어 자신의 보드라운 턱을 꾹꾹 눌러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라면 혹시라도 가슴이 크다던가 그런 이유로 사귀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분명히 오빠가 쓰는 컴에 그런 여자들이 잔뜩 있었는걸. 뭐.”

“분명히 폴더 숨김하고 비밀번호까지 걸어뒀는데. 언제 본 거야.”

낭패라는 표정으로 풀이 죽은 강현을 보고 다현이 한숨을 내쉰 다음 중얼거렸다.

“그보다 채영 언니랑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걸.”

강현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이야기하다가. 문득 퍼스트 도퍼 노정석이 정신병자처럼 날뛰는 게 생각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신과 채영이 뭔가 썸씽이 있는 줄 오해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고. 남매도 아닐 텐데. 집안에 하나씩 딸려있는 바보 삼촌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채영이랑 엮이게 되면 귀찮은 혹도 달려 있는 거 같고”

“혹?”

다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강현은 어차피 미국으로 떠나버린 정신병자를 생각해봤자. 무엇하는 생각에 고개를 세차게 내저은 다음.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아, 아냐. 어쨌든. 내일 시간 내서 같이 백화점 가는 거다. 알았지?”

“응.”

*****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현은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러다가 한쪽 편에 놓여있는 컨트롤헬멧이 눈에 띄었다. 이제까지 해왔던 여러 가지 온라인 게임을 비교하면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은 꽤 짧은 시간 즐겼지만. 그만큼 강현의 게임인생. 아니 인생에 강렬한 인상을 줬다. 게임으로 강해지는 걸 떠나서 막상 못하게 됐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했다.

‘아 그러고 보니. 불똥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으려나?’

온라인 게임 작업장을 하고 있던 불똥에게는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게임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킨 뒤에 서비스가 종료되고 추후 근황에 대해서 꾸준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둔 터였다.

제일 이상적인 건 게임회사가 완전히 망한 다음에 해당 게임에 대한 판권이나 서비스시설 일체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하는 거였다. 그럼 게임 자체를 프리서버처럼 개인이 돌려서 어느 정도로 캐릭터 에디터가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최대로 레벨을 설정하고 가장 강력한 장비를 갖추는 거였다.

하지만 서비스를 하던 게임회사도 이 게임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게임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고. 새로운 인터페이스 게임을 쉽사리 포기 못 하고 있는 차였다. 현재로는 해당 프로젝트만 분리해서 팔지도 않을뿐더러.

그 게임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려면 몇백억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비스 종료한 게임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다고 하는 것만큼 수상쩍은 사람도 없으리라.

두 번째로는 차라리 여러 이슈가 잠잠해지고 되도록 빨리 서비스를 재개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현재 50레벨인 만렙을 80렙 100렙. 아니면 200렙 이렇게 확장하는 업데이트를 했으면 금상첨화였다.

‘어느 쪽도 당장에 쉽지 않으려나?’

오늘 일을 생각해보면 당장에 그렇게 급하게 강해질 필요성을 못 느끼긴 했다. 정확한 능력 등급을 다시 측정해봐야겠지만. 현재 게임상에서 [ 서포터 ] 직업으로 얻은 각종 버프를 걸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등급보다 몇 배나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당장에 국내에서 희귀하다는 A급 몬스터를 혼자서 퇴치하지 않았는가. 현존 최강의 몬스터 등급이라는 S급 몬스터도 혼자서는 힘들더라도 적어도 허무하게 당해서 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은 확실했다. [ 몬스터 서치 ]로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와 없는 몬스터도 바로 파악해서 싸울 것인지 피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일단 돈은 부지런히 모아야겠어.”

강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인터넷 창을 켜서 도퍼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아까 정산을 하고 나오면서 불렀던 리더 오광수가 생각났다.

자신에게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굴었던 걸 사과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강현은 그 이유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헛기침이 나와버렸다.

그 이유인즉. 질투였다.

평소 호감을 느끼고 있던 함수지가 신참인 자신에 대해서 커뮤니티에 칭찬하고 다녔던 게 거슬렸던 모양이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서로 친구 먹고 반말하는 사이라는 말에 적대감을 느꼈다고.

그 말을 듣고 광수의 앞에 내뱉지는 않았지만. 강현이 생각한 건 딱 이거였다.

‘취향 참 특이하네...’

물론, 수지가 도퍼로서는 능력도 좋고 멋지다는 건 강현도 인정했다. 어쨌든 강현이 광수에게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수지랑 같이 레이드하게 되면 불러드릴게요. 같이 레이드하죠.”

“앗.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 소유양이 자기가 아는 도퍼를 데려온다고 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로그인을 하고 메인화면에 들어서니까 또 편지함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또 무슨 쪽지지? 수지가 보냈나?’

쪽지함을 클릭하니까.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수백 개의 쪽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수지가 보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배로 보낸 쪽지도 일부 있었지만. 그 하나하나의 발신인은 달랐다.

강현이 그 쪽지들 내용을 하나둘 살펴보다가 질리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게 다 뭐야.”

같이 레이드 하고 싶다는 내용은 양반이고. 큰돈을 벌게 해줄 테니. 같이 일하자는 내용. 돈 꿔달라는 내용. 자신의 누드 사진을 링크해놓고서는 스폰서 구한다는 내용 등 별의별 쪽지가 와 있었다.

============================ 작품 후기 ============================

업데이트가 늦었네요.ㅠ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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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0월1일에 처음으로 조아라에 연재를 시작하고 여기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폭주기관차처럼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는 분들도 계시는지만.

초보운전자 답게 조심조심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네요.^^;

어디까지나 제가 설정해 놓은 결승전까지 꾸준히 중단없이 달려갈까 합니다.

그럼 11월달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__)

ps.당분간은 댓글에서 조언해주신것대로 무리하게 연참하기보다는

한편 한편 좀더 신경쓰고, 설정도 정리해서 설정란에 추가해 볼까합니다.

ps.11월달에 이어질 각 장의 이름으로는 네타를 안하는 선에서 밝힐 수 있는 이름이.

펭귄vs하마, 또다른 과금전사 정도가 있겠네요.

어느 쪽도 작가인 저도 얼른 쓰기를 기대하는 에피소드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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