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2 회: 7장. 퍼스트 도퍼 -- >
7장. 퍼스트 도퍼(3)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서 사용했던 핵프로그램 [ 몬스터 서치 ] 때문일까? 강현은 예거를 먹은 직후부터 새로운 감각이 활성화 되는 게 느껴졌다. 이 일대에 있는 몬스터의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중에서 특히 강렬한 것은 이번 레이드의 목표인 B급 몬스터 웜이었다. 그 외의 몬스터들은 자잘하게 느껴졌지만. 미약했다. 아직 익숙한 능력이 아니라서 급수를 명확히 나눌 수는 없었지만. 높게 잡아도 D급 이하로 인 거 같았다.
‘이렇게 적용이 잘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이런 기능이 추가된다는 걸 확인한 이상.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강현은 마음속으로 서비스 종료된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게임을 인수한다는 계획의 순위를 높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열심히 모아야겠지만.
“멍하니 뭐 하고 있어? 이제 출발한다.”
강현에게 핀잔을 준 광수는 팀원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 신호에 맞춰 레이드 팀원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기다란 창과 도끼를 가진 어태커 두 명이 선두에 서서 나무들을 베어 넘겼다. 그렇게 널찍한 길을 만들면서 올라갔다.
그 길을 따라 리더인 오광수 탱커와 딜러들이 따라 올라갔다. 이어서 강현을 포함해 힐러 세 명이. 맨 후미에는 서브 탱커 경계했다.
“이제 슬슬 멈춰야겠는데요.”
“네?”
강현의 말에 맨 후미에서 경계하던 서브 탱커가 되물었다. 그때. 크르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에 반쯤 파묻혀있던 웜이 몸을 일으켰다.
“우~ 징그러.”
비위가 약한 딜러들 몇몇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질색하며 물러났다. 앞부분의 지름만 5~6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웜은. 뭉툭한 머리가 그대로 입이었고 주위로 수많은 이빨이 끔찍하게 돋아있었다.
이 이빨은 불규칙적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어서 조금만 가까이 가도 갈려 들어갈 거 같았다.
거기다 그 길이는 지면 위로 드러난 부분만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나머지 부분은 아직 땅에 박혀있어서 총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어태커들 뒤로 빠져. 내가 나선다.”
“오!”
웜의 모습에 질려있던 어태커들은 오광수의 말에 반색하며 재빨리 물러섰다. 오광수가 소리 지르자. 그 진동에 반응했는지 웜이 천천히 달려들었다. 커진 만큼 둔한 움직임이라 어느 정도 피할 수도 있어 보였는데. 오광수는 달랐다.
광수는 강현을 한번 돌아보며 한껏 비대해진 근육에 힘을 준 다음 박치기하듯 머리를 들이미는 웜을 그대로 받아냈다. 몇몇 이빨이 광수의 머리를 노렸지만. 그대로 튕겨 나갔다.
“와아!!!”
리더의 멋진 모습을 보고 레이드 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사기충천했다.
“자 보고 있지만 말고 원딜들 딜 시작해.”
“네.”
원딜들이 각자 다양한 무기를 꺼내 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현은 빈손이었다. 어제 광수가 포지션이 바뀌어버리면 통제하기 곤란하다면서 원딜로 나서지 말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팀의 리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눈에 띄는 무기는 준비하지 않았고. 지금도 뒤쪽에 물러나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대로는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니까 직접 레이드 팀이나 만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에서도 거의 혼자 다니고 그런 일을 처리해주고 있던 건 불똥이었기에 갑자기 팀을 꾸려나갈 자신은 강현에게 없었다.
“뭐해 힐러들. 정신들 차리고 힐 보내.”
광수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탓인지 그제야 강현을 제외한 힐러들이 허겁지겁 힐을 보냈다.
힐을 받고 회복해 한결 여유로워진 광수는. 강현이 힐을 보내지 않고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 버럭 화냈다.
“저거 봐라. 야. 유강현. 너 왜 힐 안 써? 역시 힐러아니지? 야 부탱. 김윤재. 저 녀석 방해 안 되게 끌어내.”
그러자 옆에서 있던 부탱 김윤재가 난처한 표정으로 강현에게 다가왔다. 레이드 경험이 적은 강현이 강력한 몬스터의 등장에 겁을 집어먹고 굳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됐었다.
리더인 오광수는 애당초 강현을 믿지 않았던 듯. 자신이 개인적으로 연락하던 힐러 한 명을 추가로 데려왔다. 강현을 굳이 필요로 해서 부른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흠을 잡아서 망신을 줄 생각이었다.
“강현씨 정신 차리세요. 모두 힘을 합치면 이 정도 몬스터는 잡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리더가 더 시비 걸기 전에 어서요.”
윤재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골린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윤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강현의 표정이 여유로운 걸 보고 의외였다.
“그건 됐구요. 그보다 부탱님이 나셔야겠는데요?”
“네? 아직. 리더님은 멀쩡하신데.”
강현의 말에 다시 리더를 쳐다보려니까 옆에서 우르르르하는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소리를 따라 작은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순식간에 지척까지 온 소리의 정체는 진형의 옆구리를 노리듯이 좌측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으악. 뭐야.”
딜러를 보호하기 위해 서 있던 어태커 한 명이 그대로 공격을 받았다. 간신히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러서 치명상은 피했지만. 가슴팍에 톱니바퀴가 헤집어 놓은 듯 살점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 정체는 광수가 상대하고 있던 웜보다 몇 배나 작은 소형 웜이었다.
강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리더가 마음에 안 들어도 몬스터가 사람을 다치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건 성질에 맞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감각 상으로는 이 미니 웜 몬스터가 수백 미터는 더 멀리 있었는데. 웜이 몸을 일으키는 게 신호였는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거기다가 코앞에서 그 정도로 가속해서 공격해 들어올진 미처 눈치채진 못했다.
“뭐야. 이쪽도 나타났어.”
거기다가. 방금 나타난 땅속에 있는 녀석은 제대로 감지조차 되지 않았다. 광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육두문자를 계속해서 날리면서 다른 팀원에게 계속해서 지시했다.
“아 젠장. 부탱 왼쪽은 네가 막아. 최대한 시간 끌고 있어.”
“네.”
윤재가 긴장한 표정으로 미니 웜에 다가가자. 고개를 획 돌린 다음 우측의 미니 웜을 보고 소리쳤다.
“이 녀석은 어태커들이 막고. 힐러 한 명이 도와줘. 나머지는 집중에서 내가 막고 있는 웜부터 먼저 처리한다. 어서.”
다들 신속한 지시에 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뒤쪽에 힐러들과 같이 있던 김지훈에게 소리쳤다.
“야. 이 녀석들 몇 급이야?”
“D급으로 추정됩니다.”
“오케이. 그 정도면 조금 힘들어도 우리끼리 충분해.”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훈에 광수가 눈을 부라리면서 몰아붙였다.
“잘 들어! 내가 말할 때까지 절대 응원 부르지 마. 우리 선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알아 들어먹었어?”
“....알았습니다.”
광수가 그렇게 담당자에게 다짐받아두고 있을 때. 좌측에 나타난 미니 웜을 막기 시작한 윤재가 소리쳤다.
“리더! 어태커들이 잡고 있는 미니 웜부터 잡으면 안 될까요? 아니면 제가 막고 있는 녀석부터 라도요. ”
“안돼.”
“...”
광수는 단박에 거절했다. 그 말에 윤재는 입을 다문 채 방어에 집중에서 리더가 결정했는데 가타부타 논하다가는 모두가 위험해 질 수도 있어서였다.
강현은 광수가 왜 이러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광수가 B급을 틀어막고 있으면서 다른 팀원들이 D급 두 마리를 잡아버리면 자기는 그만큼의 배당을 못 받게 될까 봐 그런 거였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원 딜러를 배치하지 않았다.
보통은 사냥할 타겟인 몬스터를 명확히 정한 다음 한 마리를 팀을 짜서 잡기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런 돌발사태에 대비해서 앞으로는 조금 규정을 유연하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윤재는 미니 웜의 맹공을 몇 번은 성공리에 막았으나. 마지막에 온 힘을 다한 박치기에 뒤로 주르르륵 밀려났다. 그 상태에서 기다가 머리를 한번 털어버리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던져서 근처의 나무 기둥에 맞고 떨어졌다.
“저런.”
상황을 살피고 있던 강현은 윤재에게 힐을 보냈다. 다행히도 이 두 마리 외에 다른 몬스터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역시 힐러 능력 가지고 계셨군요.”
저쪽에 날아간 윤재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미니 웜을 마크하기 위해 뛰어왔다. 뛰어오면서도 왠지 자신의 몸이 이상해진 걸 느꼈다.
‘왠지 아까보다 몸이 더 가벼운데? 그보다 속에서부터 뜨겁게 차오르는 이 느낌은? 아니 지금은 이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윤재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지웠다. 그러고 나서 웜의 모습을 봤다가 얼굴에 시커먼 사선이 그어졌다.
“안돼! 안 피하고 뭐 하세요!”
윤재를 날려버린 미니 웜은 이번에는 가만히 있는 강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거기다 강현은 미니 웜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않고 안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에잇.”
하는 수 없이 윤재는 발을 크게 굴러서 강현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강현의 앞에 도착한 다음 간신히 팔을 들어 막을 수 있었다. 방어태세를 갖추지 못해서 다시 큰 데미지를 입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어어? 이거 왜 이래!”
처음 일격보다 훨씬 가볍게 막을 수 있었다. 강현이 그런 윤재의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
“훨씬 할만하죠? 치유스킬 Lv3 부가옵션이 회복 직후에 일시적으로 HP와 방어력 20%를 증가시켜 주는 거거든요.”
“네? 치유? Hp? 방어력?”
윤재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미니 웜의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윤재는 버텨내면서 강현에게 외쳤다.
“저쪽도 힐 좀 해주세요.”
“네. 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간단하게 힐을 보냈다. 보낸 다음 확인도 않고 다시 주머니를 뒤진 다음에 뭔가 쏙하고 꺼냈다.
“아, 찾았다. 그보다 이제 좋은 거 보여드리죠.”
강현의 말에 윤재가 힐끗 쳐다봤지만. 그저 손가락 두세 마디만 한 막대기였을 뿐이었다.
“그게 뭐예요?”
“오늘 무기 들고오지 말래서 몰래 챙겨온 건데 얼마나 쓸만할지 모르겠네요.”
강현이 들고 있는 건 회의실이나 고양이를 농락할 때 쓰는 장난감 레이저포인터였다.
‘저걸로 뭘 어쩌려고. 에잇. 일단 난 방어에만 집중하자.’
낭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윤재는 자신의 머리통을 갈아 마셔버리려는 미니 웜의 공격을 어렵사리 피해다. 하지만 이어서 톱니 같은 이빨이 자신의 손가락을 분쇄할 생각으로 거칠 때 훑고 지나가려는 건 피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조금이라도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좀 더 힘을 모았다.
그때 미니 웜의 입속을 파고드는 초록색이 있었다. 순식간에 쏘아진 빛에 닫자마자 미니 웜이 몸속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린라이트?”
윤재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자. 빛은 이내 꺼졌고, 뒤에서 강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외로 쓸만한데요. 안 그래요?”
“...네에.”
윤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강현을 쳐다봤다. 총기규제 때문에 대부분 원딜들이 우스꽝스러운 무기를 쓸데가 많았는데 설마 레이저포인터를 무기로 쓸 줄을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저쪽도 도와줘야겠어요. 윤재씨 다들 좀 피하라고 하세요.”
“아, 네네. 거기 미니 웜 쪽에 다 피해. 이쪽으로 도망쳐”
윤재가 소리치자. 오른쪽에서 미니 웜을 상대하고 있던 세 사람이 뒤쪽으로 빨리 물러났다. 탱커 대신 어태커가 방어하고 있었던 탓인지 셋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저분은 부상당한 거 아니셨나?’
윤재는 물러난 세 사람을 지나쳐 미니 웜을 막으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예상외의 기습 때문에 크게 다쳤을 터였다.
“자, 그럼 갑니다.”
미니 웜을 윤재가 막아서기 시작하자. 대충 시야에 사라지자 강현은 다시 레이저포인터를 미니 웜한테 향하고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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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씬이 좀 길어져버렸...항상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