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30화 (30/113)

< -- 30 회: 7장. 퍼스트 도퍼 -- >

7장. 퍼스트 도퍼(1)

평생을 새장에 갇혀 사는 새는

자신의 삶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른다.

고아원에서 살았던 권채영도 그러했다.

그 시절 채영은 [ C0 ]이라고 불렸다. 자신의 좌측에 있는 열의 아이는 [ B0 ]. 우측에 위치한 아이는 [ D0 ].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하는 아이의 이름 [ C1 ]이었다.

이들은 고아라는 점에서 동등했다. 그래서 서로 누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몰랐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교육을 받았다.

고아들을 돌봐주던 교관님들은 항상 따뜻한 옷과 음식.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국가에서 자신들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고아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동화책. 티비.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로맨스소설.

그런 것들 대신 고아들에겐 총과 검.

그리고 전투교본이 전부였지만.

그들의 삶 안에서만큼은 그들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삶을 뒤흔든 변화가 찾아왔다.

******

5시 55분.

5분만 지나면 여느 때와 같은 하루가 시작될 터였다. C0(채영)은 그렇게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 시간을 계산해 가며 별생각 없이 자신의 뒷번호인 C1과 함께 생활관을 거닐고 있었다.

불침번을 서고 있어서인지 항상 시끄러운 C1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 한지도 어느새 6년째.

딱히 다음에 뭘 할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수업은 총기분해였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게 지겹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복도 끝까지 도착했다. 이제 4분 남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꽉 동여매 신은 군화 밑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찰리영(C0). 이거 이거 지진아냐?”

찰리하나(C1)도 같은 진동을 느꼈는지 눈을 크게 뜨며 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 가벼운 입을 2시간 넘게 다물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단 보고하러 가자.”

채영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그때 다시 한 번 진동이 왔다. 이번엔 좀 더 컸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뒤 중앙계단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계단에 거의 다 왔을 때는 굉음도 커져서 생활관 복도의 창문들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찰리하나는 불안한 듯 연신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어서 와!”

벌써 계단을 반쯤 내려온 채영이 찰리하나를 보면서 소리쳤다. 특이사항 발생 시 불침번의 제1일 임무는 중앙통제실에 보고하는 거였다. 그 뒤는 교관들이 알아서 뭘 해야 할지 지시해줄 터였다.

그런데 찰리하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채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평소 교관이 하는 모습만 봤는데. 상황에 맞춰서 따라 하게 되는 게 순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찰리하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만큼 예민하기도 했는데. 웃으면서 일기예보나 그날의 운세를 맞추는 건 예사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장난기 많은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 위를 두껍게 덮고 있는 건 단 하나.

공포였다.

“위험해!”

찰리하나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와 동시에 쾅하는 굉음과 진동이 머리를 잡아 흔드는 거 같았다. 웅웅웅. 이명이 들리며 머리가 울렸다. 채영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찰리하나가 무사한지 올려다봤을 때 눈을 크게 떴다.

금방까지 자신이 거닐던 복도가. 아니 복도를 포함해 3층 전부가. 계단 위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서 있던 건.

사람 모양의 시커멓고 커다란 덩어리였다.

그 검은 거인은 5 미터 가량 되었을까? 사람처럼 기다랗게 팔다리를 뻗고 있었지만. 형태를 고정하진 못하는 듯. 끔찍한 모양새로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 검은 거인이 가지고 있던 건 단 하나.

악의.

그거 하나만을 전신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찰리하나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찰리하나는 벌써 실성한 듯 흰자를 보인 채 기절해 있었다.

그 검은 거인은 손으로 짐작되는 부위를 천천히 찰리하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조금씩 손이 움직일 때마다 기기기기기- 하는 들어본 적 없는 끔찍한 소리가 심장을 긁어댔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이제까지 채영이 교육받았던 전투 방향 중에 지금 상황에서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채영이 처음으로 안절부절못해 하며 다시 찰리하나를 쳐다보자 뭔가 가슴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것보다 몇 배나 빨리 몸이 먼저 움직였다.

채영은 날 듯이 계단 몇 개를 차고 올라가 찰리하나를 거칠게 끌어내렸다. 힘이 빠진 육신이 여기저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다시 쿠앙 하는 굉음이 들렸다. 채영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찰리하나를 안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얼른 몸을 일으켜 다시 위쪽을 쳐다보니까. 여전히 검은 거인이 노리고 있었다. 검은 거인의 뒤로 깔끔하게 사라진 건물을 생각하자. 소름 쫙 끼쳤다. 수백 명의 동료와 수십 명의 그대로 사라진 셈이었다. 비명 한번 못 지른 채로.

건물 채로 거칠게 찢겨나가 벽 안의 속살을 드러낸 잔해만이 이 위쪽으로 뭔가가 존재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1층에서는 비상 사이렌 소리와 그 사이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하지만 1층에는 대부분 교육실과 상황실 정도밖에 없어서 이 시간에는 당직 교관을 포함해서 몇 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일단 상황실로 가야.”

채영은 애써 검은 거인을 외면했다. 그저 실신한 찰리하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힘겨웠지만. 지금 채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기기기기기기긱-

끔찍한 소리를 내면서 검은 거인은 느릿느릿하게 몸을 숙였다. 이제 끝이다. 자신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검은 거인을 보면서 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어두운 녹색의 빛이 검은 거인을 노린다고 생각한 순간. 그 빛을 타고 내려온 한 사람이 검은 거인의 몸통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꽤 뚫린 검은 거인은 그대로 연기처럼 변해서 사라졌다. 연기가 가시자 채영의 시야에 구세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글러브처럼 커다란 너클을 끼고 있는 그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젊은 군인이었다.

“괜찮아?”

젊은 군인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주변을 경계한 다음에 자세를 풀고 채영에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채영의 모습을 보고 굵은 눈썹을 치켜떴다.

“어린애? 여기 군 기밀시설 아니었나? 너희 이름은 뭐지?”

“전 찰리영. 이쪽은 찰리하나입니다.”

“엥? 얘들 이름이 왜 이래?”

채영이 몸을 일으켜 차려자세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교관들과 비슷한 옷차림인 걸 보고 다소 안심을 했다.

그때 또 하늘 위에서 하얀빛이 내려와서 젊은 군인 옆에 섰다. 그 하얀빛의 정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었는데, 곱게 빛나는 금발에. 연한 푸른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저런 사람은 처음 봐.’

채영이 그렇게 생각할 때. 젊은 군인이 금발의 여성을 돌아보면서 영어로 말을 했다. 채영도 영어를 교육받았기에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 애들이 왜 있어?”

“미스터 노. 브리핑할 때 또 졸았나요? 이곳은 코리아에서 세계종말을 대비해서 비밀리에 군에서 운영하던 시설 중에 하나라고 했잖아요.”

“그, 그런가?”

금발이 쏟아 붙이자 미스터 노라고 불린 군인이 움찔했다. 채영은 그런 광경을 처음 봤기에 신기했지만. 점점 크게 들리는 불길한 소리에 하늘을 쳐다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하늘에서 예의 그 검은 거인이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수십 수백 개체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거의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금발은 그런 채영의 모습을 보고 하늘을 힐끗 올려다봤다.

“미스터 노. 저쪽에서 눈치채고 몰려오는데요?”

“그래? 어휴 많기도 해라.”

하지만 젊은 군인은 전혀 주눅이 든 표정이 아니었다.

“기다려 금방 해치우고 올 테니까.”

그 말을 하며 팔을 몇 번 휘휘 돌리고는 지면을 박차고 점프했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점프해서 검은 거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금발의 여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에 채영을 내려다보면서 씽긋 웃었다.

“그래도 오늘 그렇게 최악은 아닐 거예요. 공짜로 좋은 구경하게 됐으니까요.”

그 뒤로 채영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

‘그 젊은 군인이 최초의 도퍼였던 노정석 님이었지.’

채영은 옛날 기억을 머릿속으로 재생하면서 추억에 잠겼다.

그때 시설에 있던 채영은 몰랐지만. 세계 곳곳에 검은 거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서 커다란 괴물들이 나타났다. 괴물들은 모습과 크기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인간에게 적의를 가지고 공격해온다는 것.

반면에 인간이 만든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았다. 최초에 미국에서는 전술핵까지 사용했으나 괴물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아서 세계를 충격을 빠트렸다.

하지만 예거라는 신약이 만들어지고. 예거에 반응한 소수능력자들은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해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반응한 최초의 능력자가 희한하게도 바로 당시 한국군 하사인 노정석이었다. 그 사실이 국내에 전해지자 한국에서는 최초의 능력자. 퍼스트 도퍼라면서 대대적으로 언론에서 다뤘다.

정석은 그 뒤로 국내에 들어와서 여러 괴물을 뛰어난 능력으로 퇴치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 가버렸다. 그러면서 중요한 기밀들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언론사의 제보와 그를 둘러싼 각종 루머들 때문에 거의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어느 국민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든. 채영은 그때 구조된 이후로 정석의 배려로 다시 시설에 맡겨지지 않고 지인의 양녀로 들어가서 권채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다.

물론, 그 시설에 대한 일은 절대 비밀이었다. 찰리하나는 기밀유지 때문에 또 다른 가족에 맡겨졌다고 하는데 그 뒤로 본 적 없었다.

‘그때는 참 멋졌는데...’

채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굳게 닫혀있는 호텔 문을 노려봤다. 이 문 너머로 정석이 있었는데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정석의 루머에 한몫했다.

방음 잘되는 문 너머로 얼마나 큰 소리인지 여자의 교성이 간헐적으로 새어나왔다.

“어머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등 뒤에서 누군가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채영은 뒤로 돌아서 꾸벅 인사를 했다. 말을 건 상대는 하얀 가운을 걸친 금발의 미모의 여성이었다. 채영이 처음 노정석을 봤을 때 같이 왔던 여성이었는데, 그때와 외모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채영이 아무 대답이 없자 금발은 알만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호텔 문을 벌컥 열었다.

“미스터 노. 대낮부터 뭐 하는 거예요?”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소파와 바닥에 여자와 술병이 수없이 뒹굴고 있었다. 그걸 보고 한층 더 화난 금발은 침실 쪽까지 성큼성큼 들어가자마자 소리를 빽 질렀다.

노정석은 캐노피가 달린 호화로운 침대의 중앙에 알몸으로 양손을 머리 뒤로 괴고 편하게 누워 있었다. 그 위에서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허리를 돌리고 있던 여성은 금발이 들어온 걸 보곤 깜짝 놀랐다.

“꺅. 아큭. 허억. 헉. 누, 누구얏.”

“아아 내 동료니까 걱정하지 마.”

정석은 놀라서 비키려고 하는 여자의 허리를 꽉 잡은 채로 놓지 않았다. 여자가 갑자기 가해진 압력에 깊은 신음을 토해냈다. 정석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금발에게 손을 들었다.

“오오. 엠마. 3P 하러 온 거야?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시끄럽고 당장 빼요. 잘라버리기 전에.”

“오늘도 여전히 통통 튕기는 게 귀여운데?”

이어서 찢어지는 듯한 엠마의 고함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여자가 엉망이 된 얼굴로 옷가지 몇 개만 들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왔다. 여자는 문밖에 채영이 있는 걸 보자 고개를 숙이고 멀리 떨어진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호텔의 전 층을 다 빌리고 있어서 가능했다.

채영은 여자의 얼굴을 티비에서 본적이 있다는 것 정도는 얼핏 기억해냈지만. 자세히 보질 않아서 이름을 특정할 순 없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으려나.’

강현의 능력을 모니터하다가 이쪽으로 불려 온 지 벌써 한 달째. 매일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 작품 후기 ============================

30화입니다. 처음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언제 거기까지 쓰려나 걱정했었는데요.

독자님들의 응원 덕분에 힘내서 연참도 하고 예상했던 기간보다 빨리 당겨졌네요.

항상 즐겁게 봐주시는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__)

(그,그런의미로 추천 좀...)

PS.주인공은 다음화부터 나옵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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