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9 회: 6장. 다크 게이머 -- >
6장. 다크게이머(5)
“아니다. 내가 맞춰 볼게요.”
불똥은 재밌는 퀴즈게임이라도 하는 양.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로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은 불똥이 원래 이런 녀석이라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그래그래 맞춰봐.”
“만렙 캐릭터 계정을 구해달라는 거죠?”
“그게 되면 내가 처음부터 이 고생 안 했지. 그보다 너 이 게임이랑 컨트롤 헬멧, 작업장에 안 쓰인다고 알아보지도 않았지?”
“헤헤.”
컨트롤 헬멧에는 모든 서비스에 동일하게 사용되는 계정이 등록되어 있다. 이는 최초에 등록한 사용자가 설정하게 되는데. 한번 설정하면 제조사에서 팩토리 리셋을 진행하지 않으면 타인이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계정이 삭제되는데 계정 내의 정보. 즉 게임 캐릭터도 삭제되어버려서. 타인이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단, 유저가 계정별로 다른 컨트롤 헬멧을 써서 여러 계정을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럼. 고렙유저 알아봐서 버스 태워드릴까요?”
“그것도 안 돼.”
버스는 다른 말로 쩔이라고도 하는데 고렙 플레이어가 저렙 플레이어와 파티를 맺어 같이 사냥하거나 몬스터를 잡아주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레벨차이가 크게 나면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최신게임들은 대부분 그런 게 안되게 만들어지는데 이 녀석 정말 모르네.’
물론, 비슷한 레벨 대의 사람을 고용하면 편하게 사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강현은 사실 채영을 이용해서 이미 편하게 사냥하고 있기도 했다. 뒤에서 힐만 하고 있으니까.
“좋아. 그럼. 장비라도 사드려요?”
“이 게임에서 돈으로 장비 살 수 있으면 벌써 샀겠다.”
이 게임의 아이템은 대부분 레벨제한 있어서 비싼 돈 주고 산다고 해도 장착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 간의 벨런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캐시템에서는 좋은 장비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이 게임제작사의 상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레벨제한이 없는 캐시템에서 나온 레어아이템의 경우에는 귀속템이라서 우편이나 창고. 혹은 바닥에 떨어트린다는 등. 잠깐. 몸에서 뗄 순 있어도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없다. 아니 애당초 주울 수조차 없었다.
“에이. 몰라 몰라. 그럼 대체 뭘 도와드려야 되는 거예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람 답답하게 만들어서 속 터져 죽이려 고하시나.”
“네가 먼저 맞추겠다고 한 거잖아.”
불똥의 투덜거림에 강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슬슬 본론을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불똥에게 가까이 가져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중국 쪽에서 중계받아서 업장 돌리는 중이면. 핵 프로그램 만드는 애들도 알지?”
“핵이요? 그야 알긴 하지만. 걔들도 못한다고 그랬어요.”
“자동사냥이나 캐릭터의 능력에 간섭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아까 불법프로그램 쓰는 애 이미 봤다고 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한 거야. 그러니까 만들어줬으면 하는 게...”
이어지는 강현의 말을 들은 불똥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거라면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진 않겠네요. 기간은 좀 걸리지만. 그리고...”
“알았어. 걔들도 만들어둔 거 없을 테니 비용도 좀 들겠지? 그건 걱정하지 마. 그리고 한 가지 더.”
“더요?”
“그쪽 작업장에 중국 애들 좀 있지?”
*****
이틀이 지났는데도 채영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 있길래 연락도 없지?’
있다가 없어져서 그럴까? 강현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먼저 무슨일이냐고 연락이라도 해볼까 생각하고 있을 때.함수지 쪽 담당자였던 김지훈이 집으로 찾아왔다. 강현이 몸에 붙이고 있던 기계장치를 회수하러 온가였다.
“안녕하세요. 유강현님.”
“네에. 근데 무슨 일이 있어요? 되게 피곤해 보이시네요. 채영 씨도 그 뒤로 연락도 없고.”
강현의 말 그대로 지훈의 안색은 평소보다 더 파리해 보였다.
“아니. 별일은... 없습니다.”
지훈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는 듯이 뭔가 석연찮은 대답을 남기고는 가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강현은 그 사이에 조심하면서 다른 캐릭터의 레벨을 부지런히 올렸다. 캐시템 때문에 손쉽게 레벨을 올려서 금세 모든 캐릭터들이 30레벨을 만들어 승급 퀘스트만을 앞두고 있었다.
때마침 부탁한 프로그램이 도착했다.
강현은 슈터 캐릭터인 일격필살로 게임에 접속해 컨트롤 헬멧의 외부입력장치를 통해서 핵프로그램을 구동했다. 그러자 왼쪽 시야 상단에 점과 선. 그리고 텍스트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니터화면이 하나 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점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 WOLF - LV24 ]
강현이 의뢰한 터라 이 핵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굳이 붙이자면 [ 몬스터 서치 ]
사용자가 있는 필드 내의 몬스터 데이터를 모두 읽어 들여서 몬스터를 지도에 표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작업장에서 쓰는 오토매틱프로그램의 기본기능 중의 하나였다. 일전에 채영이 썼던 몬스터 레벨측정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기도 했다.
강현이 [ 몬스터 서치 ]로 주의하여 보고 있던 점은 이름텍스트에 보스 몬스터답게 굵게 표시되어있는 SILVER WOLF ? LV30 의 HP 수치였다.
지금 한창 전투 중인지 은빛 늑대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조금씩 깎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강현 쪽으로 거의 헐벗은 듯한 섹시한 차림의 여성 캐릭터가 다가왔다.
“아크로드 형. 저쪽에서 실버울프 레이드 시작했어요. 거기에도 제대로 나오죠?”
그 여성캐릭터의 플레이어는 불똥이었다. 이 녀석은 항상 자신의 취향대로 이렇게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냥했다.
“그래. 그리고 아크로드라고 부르지 마라니까. 차라리 [ 원샷원킬 ]이라고 불러.”
“에이. 캐릭터 이름이 유치하게 그게 뭐예요.”
“너야말로 그런 캐릭터 이름으로 [ 불어터진똥돼지 ]는 너무한 거 아니냐?”
“이건 제 아이덴티티라구요. 아이덴티티.”
이렇게 둘이서 주고받고 있을 때. 로즈길드의 패거리들이 실버울프를 쓰러트린 듯. 화면에서 SIVERWOLF 의 텍스트가 사라졌다.
하지만 강현의 시야는 [ 몬스터 서치 ]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1분이 더 지났을까? 뒤쪽에 새로운 텍스트가 나타났다.
[ GOLDEN WOLF ? LV 50 ]
그 이름은 바로 골든울프.
분명 예전 주점에서 웨이트리스 NPC가 설명했을 때 잠시 언급된 금빛의 늑대에 관한 이야기 그대로였다.
요즘은 워낙에 게임 내의 정보를 플레이어끼리만 공유해서 비주류 NPC의 대화를 무시해서 아무도 몰랐던 거였다. 특히나 여기는 초반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쨌든 강현의 목표는 실버울프 대신에 골든울프를 잡아서 필수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거였다. 골든울프는 아직 출현조건이나 등장위치에 대한 정보가 퍼지질 않아서 지금 강현만 조용히만 하면 로즈길드에서 방해를 못 할 터였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실버울프보다 몇 배는 더 세다는 것. 텍스트로 표시된 수치상으로도 몬스터 레벨이 현재 만렙인 50 렙이었다.
아마 원래는 만렙을 달성한 캐릭터들이 초반 마을에 다시 와서 즐길 수 있게끔 게임 개발할 때 마련된 모양이었다. 만렙 플레이어가 이 골든울프를 잡기 위해서 지나가다가 초보자들이 초반의 레이드몬스터인 실버울프를 잡는 걸 도와준다는 흐름을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각 레이드 보스들을 악덕 길드들이 꽉 잡아놓고 게임의 흐름이 막힌 순간. 이런 숨겨진 이벤트들을 발견하기 더 힘들어지는 건 당연했다.
어쨌든. 이 골든울프를 쓰러트리기 위해 강현이 준비해둔 작전이 있었다.
그런 바로.
“이제 부르면 되겠다.”
강현이 메신저를 통해 신호를 보내자 불똥이 손에 부리나케 메신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현의 뒤로 캐릭터들이 하나둘씩 접속하기 시작했다. 그 인원은 수십 명에 이르렀다.
그 캐릭터들은 주로 슈터와 디펜더 였는데, 갓 만든 1레벨부터 10레벨까지 다양했다. 캐릭터의 외모도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걸 그대로 사용해서인지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그와 대비되게 캐릭터들은 모두 번쩍번쩍한 빛을 발하고 있는 레어장비를 하나이상 착용하고 있었다. 다 강현이 결제 해준 돈으로 [ 몬스터 코어 ]캐시 아이템을 까서 마련한 장비였다.
이들은 불똥이 준비한 중국 쪽 작업장에서 동원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강현이 준비한 작전이란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얼마나 세던지 계속해서 공격하면 언젠가는 쓰러질 터였다. 일단 강현은 슈터로 후방에서 죽지 않고 끝까지 딜을 하기로 했다.
“형. 그런데 겨우 이 보스 몬스터 한 마리 잡는데 돈을 그렇게나 써도 돼? 프로그램값이랑 얘네들 장비 맞추는 데만 해도 몇억은 쓴 거 같은데. 이거 장비 나중에 회수해서 팔 수도 없다고 했잖아.”
“괜찮아. 나중에 쓸데가 있으니까. 한동안 계속 도와주면 작업비는 확실히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강현은 미니맵에서 골든울프의 표시를 노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볼까?”
******
“오빠 정말 가야 하는 거야? 도퍼들은 능력이 더 강해지거나 그러진 않는다던데.”
다현이 정말 헤어지기 싫다는 표정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다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강해지면 덜 위험하겠지? 길어봤자 한 달 정도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시간 나면 집에 들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근데 짐이 왜 이렇게 많아?”
그렇게 말하면서 강현이 매고 있던 가득 찬 스포츠백을 툭툭 치던 다현이. 뭔가 딱딱한 감촉에 눈을 가늘게 뜨고 강현을 쳐다봤다.
“오빠. 게임기도 들고 가는 거야?”
“게임기가 아니라. 컨트롤헬멧인데. 가끔 심심할 때 해야지. 안 그래?”
“정말 못 말려.”
다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강현의 엉덩이를 팡하고 쳤다.
“야! 유다현. 무슨 짓이야.”
“이 귀여운 동생 내버려두는 벌이야.”
“정말 못 말린다니까.”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한 발짝 내디뎠을 때 다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사히 다녀와.”
*****
아파트를 벗어나 강현이 향한 곳은 시내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향긋한 짜장면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불똥이 낡은 소파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로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입에 짜장면 소스를 묻힌 채로 인사했다.
“형 왔어요?”
“어 그래. 있었구나. 너는 안 와도 되는데.”
“에이 참. 제가 다 수배해줬는데. 단기라서 쓸데없는 거 없고 당분간 조용히 집중해서 지내기 좋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말하며 불똥의 어깨를 툭툭 친 강현은 비어있는 책상에 컴퓨터를 세팅하고 컨트롤 헬멧 케이블을 연결했다.
“벌써 게임을 하시는 거예요? 누가 게임 폐인 아니랄까 봐. 금방 짜장 두 그릇 더 시킬 테니까 먹고 하세요. 먹고.”
“두 그릇? 너 또 먹을 생각이야?”
“혼자 먹으면 섭섭하잖아요”
“됐고. 밥은 나중에 배고플 때만 한시가 급해. 애들 준비시켜.”
그렇게 말하며 강현은 컨트롤 헬멧을 뒤집어썼다.
게임에 접속하자 금방 저번에 골든울프 레이드를 했던 캐릭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현의 예상대로 30레벨의 필수 퀘스트를 골든 울프를 잡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심지어 40레벨도.
그 뒤로 하루에 한 번은 꼬박꼬박 골든울프를 잡은 터라 다들 레벨도 어느 정도 올라서 레이드는 점점 수월해졌다. 특히 워낙 고렙 보스 몬스터라서 강현의 레벨업도 잘되는 편이고 더불어 드랍하는 아이템도 레벨제한 때문에 당장에는 쓸 수 없지만. 꽤나 쓸만한 아이템들이었다.
잠시 기다린 강현이 어느 정도 인원이 모였을 때.
어설픈 영어발음으로 “GO! GO!” 라고 외치자. 캐릭터들이 골든울프가 있는 장소로 익숙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 뒤.
강현이 정말 밤새도록 게임을 하고 있는데 불똥의 전화가 왔다.
“형. 티비 보셨어요?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곧 서비스 중단한대요.”
“생각보다 빠르네.”
“근데 형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저번에 게임 서비스 종료할 거라는 거 짐작하고 계셨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게임에 레벨업만 하신 거예요?”
“넌 몰라도 돼 인마.”
“흐흥. 저더러 맞춰보라는 거죠?”
“아니. 나 바빠서 끊는다.”
“혀어엉.”
강현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고 게임 캐릭터 창을 슬쩍 봤다. 현재 모든 캐릭터들이 50렙 만렙이 되어있는데다가 만렙 레이드보스인 골든울프가 뱉어낸 장비들도 도배되어있었다.
‘이 정도면 도퍼 몇 급 판정이 나올지 기대되는데?’
강현은 게임을 종료하려다가
“그러고 보니. 게임서비스 종료 전에 갚아줄 빚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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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 성공하고 자러갑니다[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럼 즐거운 주말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