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28화 (28/113)

< -- 28 회: 6장. 다크 게이머 -- >

6장. 다크게이머(4)

사이버 게임 범죄 특수본(특별수사본부) 지하 1층.

“휴아.”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 로그아웃한 박준식은 컨트롤 헬멧을 벗자마자 긴 한숨을 쉬었다. 금방까지 장시간 게임에 접속한 탓인지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다.

“여기 배속받기 전에 게임을 할 때는 휴가 때마다 며칠밤 낮을 새어도 끄떡없었는데. 취미로 즐길 때랑 일 때문에 할 때랑은 피로감이 확실히 다르단 말야.”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지만. 주위의 다른 데스크에 앉아있는 수사관들은 다들 게임에 접속해있는 상태라 준식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아 그나저나 계정하나 날려 먹은 거 혼나려나.”

여전히 대꾸없는 혼잣말을 하면서 준식은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는 컨트롤헬멧의 케이블을 분리한 다음에. 그걸 들고 뒤쪽의 테이블에 올려뒀다. 그리고 옆에 상자를 열어서 새로운 컨트롤 헬멧을 꺼냈다.

그걸 다시 자신의 자리에 들고 가려고 할 때. 밖에서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을 내다보니까 지저분한 수염에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에 준식을 죽일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야 역시 개코야 빨리도 알고 오시네.”

준식은 그렇게 말하면서 느긋한 얼굴로 새로 꺼낸 컨트롤 헬멧을 자신의 자리에 올려두고 나서야 문을 열고 수사실을 나섰다. 씩씩거리며 준식을 노려보고 있던 사내는 준식이 나오자마자 멱살을 잡고 한 대 칠 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야이 개자식아 누가 멋대로 계정 쪼개래?”

“워워~ 반장님. 진정하세요. 쪼갤만하니까 쪼갰지요. 민간인이 당하고 있는데 그래 어떻게 그냥 둡니까?”

“흥. 게임상에서 그거 좀 당했다고 뭐가 대수라고.”

반장의 말에 준식이 반장이 잡은 멱살을 뿌리쳤다.

“반장님이 아직 이쪽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그냥 내버려뒀다가 일 커집니다. 지금 터트리는 건 상부에서 무조건 막으라고 했잖아요. 이거 터트리면. 모가지 날아간다고 엄포놓았다고 반장님이 그러셔 놓곤.”

“그건...”

할 말이 없어진 반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준식이 쐐기를 박듯 몰아붙였다.

“지금 제가 쫓고 있던 건도 애들이잖아요. 그럼 얼마나 민감하신 건인지 잘 아실 분이 왜 이러세요.”

“어쨌든. 말세다 말세야.”

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준식이 씽긋 웃었다.

“그래도 말세는 지나갔지 않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도 감소추세라면서요.”

“쯧쯧. 오늘 티비 못 봤어? 한국에도 드디어 A급 몬스터가 떴데.”

“마지막 발악 정도겠죠. 때마침 그 사람도 와서 잡는 덴 문제 없다 하던데요?. 퍼스트 도퍼라고 하죠? 그 사람 한국인이라면서요.”

“그 새끼는 한국인은 무슨.”

준식은 반장의 얼굴이 벌게지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자신이 뭘 잘못 건드렸다는걸. 깨닫고는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말세가 온다면 반장님이 아직 술담배 끊으실 때겠죠. 그렇게 비싸져도 끊질 않으니. 건강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세요. 좀. 전에 제가 사드린 영양제도 안 챙겨 드시죠?”

“이 꼴통 새끼가.”

반장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의 건강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가자 할 말이 없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그 일은 알았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일해. 나는 위에다 보고 해둘 테니까.”

“네네.”

반장이 돌아가는 걸 보고 준식이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번 사건은 준식이 이곳에 배치받고 맡은 사건 중에 제일 큰 건이었다. 현재 정체불명의 크래커를 중심으로 일부 유저들과 게임 마스터까지 가세에 여러 게임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 크래커는 유저들. 그중에서도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이버 게임상에서의 범죄를 종용했다. 그리고 GM들의 사이버상에서의 약점을 이용해 그런 범죄사실이 즉각적으로 신고되지 않도록 하고 있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현재까지 수사본부에서는 파악하고 있던 거라고는 컨트롤헬멧와 게임상에서의 안전장치를 해제해버리는 위험한 아이템이나 프로그램들은 다 크래커가 제작한 거 정도라는 것뿐이었다.

범죄의 범위도 주로 유사성행위. 각종 특수 폭력행위. 특수 감금 가혹행위 등 수법이 다양했다. 마치 뭔가를 실험해보는 것처럼.

그것이 제일 문제였다. 범죄 목적이 불분명한 것. 돈이 목적이라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크래커는 그냥 아이템을 여기저기 일어나는 범죄를 즐기는듯했다. 그렇기에 국지적으로 혼란을 불러올 뿐이었다.

이 사건이 표면화되면 이 컨트롤 헬멧으로 하는 모든 컨텐츠 시장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없으면 나야 편하겠지만.”

어쨌든, 관련 업체 측에서는 그것만은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서 전방위 로비 중이었다. 지금 수사 중에도 그것 때문에 위에서의 압력이 장난 아니었다. 아마도 업체에서 뒷돈을 받는 정치가와 상층부에서는 수시로 사건에 보고하거나 개입하려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건 어차피 위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은 그저 일선에서 뛰는 평범한 수사관중에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큰 흐름에는 상관없이 열심히 조사해서 건수 잡으면 그걸로 승진하면 될 뿐인.

현재 준식은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이라는 곳에서 브레드셔틀이라는 캐릭터를 사용해서 그런 범죄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 수사 중이었다.

그 와중에 유강현이라는 플레이어를 도와준 뒤에 유강현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 자신도 강현이 도퍼라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 브레드셔틀이라는 캐릭터는 추적하고 있다는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계정을 삭제했지만. 딱히 수확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자리의 책상에 앉아 컨트롤 헬멧을 쓰려고 하고 있는 준식에게 제일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다음 캐릭터는 이름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

다음 날.

강현은 시내의 커피숍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강현을 알아보고 소리치는 사내가 있었다.

“아크로드형. 아크로드형. 여기에요 여기.”

사내는 혼자서 두 좌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뚱뚱한 몸으로 연신 손을 흔들며 강현을 반겼다. 강현은 모습을 보고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조용 다가 와 사내의 앞자리에 앉았다.

“야. 불똥. 내가 오프에서 만날 때는 닉네임으로 부르지 말랬지. 쪽팔리잖아.”

“뭐 어때요. 형. 형도 아직 저를 불똥이라고 부르시면서.”

“그거야 머...”

강현은 차마 본명이 생각이 안 나서 닉네임으로 부른다고 말할 순 없었다. 휴대폰에도 불똥으로 적혀있었다. 참고로 불똥은 불어터진 똥돼지의 약자다.

“그래도 아크로드 하면 옛날에 서버에 접속했다고 한번 떴다고 하면 다들 벌벌 겼잖아요. 그 시절이 좋았는데.”

“네가 좋을 게 뭐 있어? 아무리 좋게 포장해봤자 게임 폐인이지.”

강현은 옛날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는 정말 눈에 거슬리면 피케이 걸어서 죽여서 힘으로 눌렀었다. 거기다가 잠자는 시간도 거의 없이 집에 틀어박혀서 종일 게임만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다현에게 미안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됐어. 그나저나 넌 요즘 작업장은 잘되고 있어?”

불똥은 강현 패거리의 이인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미형의 엘프 캐릭터여서 설렜지만. 실제로 정모 해서 만났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주먹이 부르르 떨리곤 했다.

그때 일 트라우마가 되어서 강현은 게임상의 모든 여자 캐릭터들을 넷카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악연으로 친해진 이 녀석은 강현이 한창 날릴 때 조폭이 관여하고 있던 업장과 충돌해서 현실 결투 당할 위기에서. 뒤처리를 열심히 해줬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그때 강현이 게임을 접으면서 가지고 있던 각종 무기와 방어구 및 아이템들을 넘겨받았다. 그로 밑천 삼아 자기도 작업장을 차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마지막이었다.

어쨌든. 강현의 물음에 불똥은 냉수를 입에 털어놓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 요즘 게임머니 거래시장이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죽겠어요. 형이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안 해야 했는데. 요즘은 거의 중국 쪽 중계 해주는 걸로 푼돈 벌어 먹고살아요”

“지금이라도 관둬. 앓는 소리 말고.”

“에이~ 형도. 제가 이거 그만두면 뭐 먹고 살아요? 그래도 힘들어도 이래저래 굴러다니니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보다 형은 요즘 괜찮아요?”

불똥은 강현의 옷차림이 변변찮은 걸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그만두면서 이제 동생 속 그만 썩힐 거라고 하셨잖아요. 아직 일 못 구했어요? 잠깐 오늘 제가 얼마나 들고왔더라.”

뚱뚱한 몸에 비하면 짧은 팔로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려는 불똥을 강현이 제지했다.

“됐어.”

“에이. 우리 사이에 사양하지 말고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거지.”

“됐다니까. 나 이제 도퍼야.”

“엥 뭐라고요?”

강현의 말에 불똥이 주머니를 뒤지다 말고 강현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강현이 씩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도퍼라구.”

“우앗 맨날 신청한다 한다시더니 잘됐나 보네요.”

불똥은 정말 잘 됐다면서 손뼉 치며 좋아했다. 그런 뒤에 자신의 뱃살을 꼬집으면서 구시렁거렸다.

“저도 사실 테스트 받아봤는데. 꽝이었어요. 도퍼되면 이 살이 그냥 짝 빠진다던데... 제가 살만 빠지면 훈남이거든요. 훈남. 딱 안 긁은 복권이라 이거에요. 안 그래요? 형?”

“그래그래.”

강현은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면서 불현듯 수지가 떠올랐다. 군살 없고 단단한 체형으로 그 모습을 병기로서 보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지만. 꼭 긁는다고 해서 당첨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하나 좀 도와줄 게 있는데.”

“무슨 일인가요? 형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드려야죠”

시켜만 달라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불똥의 말에 강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이라는 게임 알지?”

강현의 말을 듣자마자 불똥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그것 때문에 저도 죽겠어요. 아직도 작업장에서는 리니지스, 소울&블레이드, 동굴전사, 메이플테일, 이런 거 잘만 굴리고 있는데. 그 게임 때문에 컨트롤헬멧인가 가지고 하는 게임들이 대유행이잖아요. 워낙에 이런저런 게임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

“그런 류 게임은 그런 건 어뷰징도 힘들고 오토매틱프로그램도 못 돌린다고 중국 애들이 그러던데요.”

“정말이야? 내가 요즘 그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하고 있거든.”

“네? 형이요? 이제 게임 안 한다고 접때 그만둔 거잖아요.”

강현은 그렇게 묻는 불똥의 얼굴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게이머가 게임을 잠깐 쉬는 거지 안 하는 게 어딨어?”

간신히 얼굴을 마주 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냥 소소하게 하는 거야. 아크로드라는 이름도 안 써 이젠.”

“네에 그렇다면야....”

“어쨌든. 네 말과 달리 불법 프로그램이 없진 않던데? 나도 그걸로 당했어.”

“정말이요?”

놀라는 불똥에 강현은 어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한참 이야기를 들었던 불똥은 잘됐다는 듯이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와 이거 심각한데요?”

“심각하다는 녀석 표정 좀 봐라.”

“저한테는 잘된 거죠. 뭐. 이렇게 된 이상. 그 게임 없애 버리죠. 여기저기에 제보해버리면 언론에서 벌떼같이 달려들걸요.”

“안돼. 없어지면.”

“네? 왜요?”

“그런 일이 있어. 그리고 어차피 얼마 안 가 터질 거야.”

“형 또 그런다. 혼자만 뭔가 알고 계신거죠?”

강현에게 뭔가 더 정보를 캐내려고 능글맞게 웃는 불똥을 보면서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브레드셔틀이 경찰까진 아니라도 그런 비슷한 류의 사람처럼 보였으니 이 일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하긴 망하면 게임자체를 저렴하게 인수하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그전에 강현에게는 해야 될 일이 있었다.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불똥이 답답했는지 그 덩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서 형.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 작품 후기 ============================

이어서 연참합니다.

새벽중에 올릴게요.;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