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 회: 6장. 다크 게이머 -- >
6장. 다크게이머(3)
“젠장. 뭐야!”
강현은 황급히 컨트롤 헬멧을 벗었다.
‘일격에 기절할 데미지라니. 아니 상태 이상 효과인가?’
기습당했다고 해도 게임상에서는 공격력과 방어력을 계산해서 데미지를 받는다. 그런데 일격에 기절할 만큼의 데미지라니 이건 보스 몬스터나 아득히 고렙 몬스터가 주는 특수공격. 아니면 특수한 무기의 상태효과 정도밖에 없었다.
그것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강현으로서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다시 접속해볼까.”
만약 일격에 사망할 정도의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고 하면. 지정된 마을에서 경험치 페널티를 받고 부활할 터였다. 그쪽이 차라리 속이 편했다. 무언가 강현이 미쳐 못 본 강력한 몬스터한테 일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되니.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더니.‘
재접속한 강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는 낙담했다. 자신이 의자에 굵은 밧줄로 묶여있었다. 그리고 강현의 앞에는 본디지룩의 여성이 채찍을 들고 서 있었다.
“오. 생각보다 강단 있는 걸? 바로 재접속하다니. 하지만 너무 멍청한 거 아냐?”
“이런 짓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당장 풀지 못해? 아니면 GM한테 신고해버릴 테다.”
“어머. 우리 아가가 재밌는 소릴 하네. 이 샤론 님이 그 정도도 생각 못 하고 잡아들였을 것 같아?”
“신고당하고도 그런 소리하는가 보자.”
강현은 그렇게 말하고 바로 다시 로그아웃하려고 했다. 하지만.
“쿠쿡. 안돼 안돼 도망치려고 하면. 그래서 내가 멍청하다고 그랬잖아.”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우리 로즈 길드의 아지트거든. 이곳이라면 멋대로 로그아웃 못 해. 내가 제한을 걸어두고 있는 한 말이야.”
“큭.”
원래 길드마스터의 권한으로 길드의 출입 권한을 설정할 수는 있다. 길드원 외의 불청객이 멋대로 들어오거나 아니면 들어왔다가 갑자기 도둑으로 돌변해서 길드 내의 아이템이라도 들고 먹고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로그아웃까지 막는다? 강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게다가.
“로즈 길드라면 여기 보스 몬스터 독식하는 곳이잖아. 왜 날 잡아온 거야?”
“그냥 심심해서~ 요즘 남자가 고팠는데 파릇파릇한 먹잇감이 보여서 잡아온 거지.”
“....”
“푸핫. 농담이야.”
강현이 질렸다는 표정을 짓자. 샤론이 정말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어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다리를 들어 의자의 팔걸이에 턱 하니 올렸다.
“아니면 농담이 아닐까? 어때~ 날 만족시켜주면 풀어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재밌다는 표정으로 지껄이는 샤론을 보면서 강현이 입을 열었다.
“좋아.”
“뭐?”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샤론이 움찔했다.
“네 그 구두라도 핥으면 돼? 아니면 네 채찍에 맞으면서 교생이라도 질러줄까?”
“그.그런...”
“휴우. 그런 어설픈 컨셉질은 그만두지 이 넷카마야.”
“뭐? 뭐?”
강현은 샤론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거다. 라는 생각에 쉴 새 없이 밀어붙였다.
“간혹 있지 그런 여왕님 컨셉으로 남자들이 당황해서 움찔하는 거 즐기는 타입. 진짜로 할 용기도 없으면서 말야.”
“....”
“어때? 정곡을 찔렀나?”
강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번 세게 질러본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이건 순전히 운이었다. 원래부터 강현은 온라인 게임상에서 성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여자 캐릭터들을 볼 때마다 전부 넷카마라고 여기고 상대했다.
이것이 강현이 오랜 온라인 게임생활 동안 여자 캐릭터에게 뜯기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노하우였다. 정말 여자 캐릭터가 예뻐서 플레이하고 있는 여성 유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차피 현실의 여자와는 접점이 없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챠악-
“크윽.”
말이 없던 샤론이 갑자기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강현의 오른손등에 강타했다. 강현은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아까 여기에 끌려오기 전 뒤통수를 맞았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통증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저 채찍은 통각제한이라도 풀 수 있는 거야 뭐야?’
“....흥. 어차피 난 딱히 여자라고 하고 다닌 적도 없거든.”
샤론이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도 창피했는지 얼굴은 시뻘겠다. 강현은 샤론이 또 흥분해서 채찍을 휘두를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로즈 길드라고 했지? 나 금방 브레드셔틀이라는 너희 길드 소개인 만났었거든. 그 사람 실버 울프 보스 몬스터 레이드 의뢰했어. 그러니까 너희 길드 손님이라고.”
“응?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데.”
“그야 이야기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딱히 길드 이득에 반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괜히 오해하지 말고 풀어줘. 지금이라면 그냥 넘어갈 테니까.”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샤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뭐 처음부터 너한테 관심이 있던 건 아니고. 혹시 스노우화이트 라는 애 알지?”
스노우화이트. 강현은 그 말에 단박에 눈치챘다.
“그 멍청한 녀석이 네 친구야? 여자 속여서 해코지하길래 잡아다 몇 대 팬 것뿐이야. 어차피 이제 계정정지 먹을 텐데. 그 녀석 편들어서 뭐하게?”
“그거야 알 거 없고. 그보다 그런 녀석이 내 친구라고 하다니 이거 섭섭한데. ”
강현이 그 사내를 생각하고 흥분하자. 샤론은 자신감을 되찾고 원래의 니글니글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그 녀석이 네 승급 퀘스트나 방해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미적지근한 방식은 내 타입이 아니라서 말이야. 애당초 레벨업 좀 못한다고 상대가 애원하겠어? 겨우 게임인데.”
‘...겨우 게임인데 이런 짓까지 하는 쪽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강현은 샤론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 그때와 지금 사용하는 캐릭터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이 캐릭터가 나라는 걸 어떻게 안 거야?”
“게임 내에서 든든한 빽이 있으면 뭘 못하겠어?”
“그러다가 너랑 그 게임 마스터랑 둘 다 형사 처벌받을 거야.”
“난 내 빽이 게임 마스터라고 한 적 없는데? 거기다가 딱히 처벌 같은 거 두렵지도 않고.”
“그럼?”
샤론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강현이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레이드 해주는데 겨우 문화 상품권을 요구하고 형사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막장이라면.
‘설마 미성년자야?’
원래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은 미성년자가 즐길 수 없는 게임이다.
‘하긴 GM이 관여하고 있다면 게임 플레이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샤론이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어쨌든. 그 아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불러줄 수 있어?”
“아니 그 사건 이후에 본 적 없어. 그러니까 날 족쳐봤자 소용없다니까.”
“메시지라도 보내봐. 자신을 구해준 왕자님이 부르는데 당연히 오겠지.”
“됐거든.”
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겨우 게임상에 캐릭터가 이렇게 묶여 있는 정도로 협박에 자신이 응하리라고 생각하는 발상이 너무 애 답다면 애 다웠다.
여차하면 게임 로그아웃이 아니라. 강제로 컨트롤 헬멧의 전원을 꺼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 캐릭터는 이 장소에 묶여있겠지만. GM에게 신고하고 꺼내달라고 하면 된다. 신고를 한두 번은 무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결국 어떻게든 신고는 될 터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형님. 아니 보스. 실버울프 떴어요. 좀 도와주세요.”
거구의 말에 샤론이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었다.
“맨날 내가 뒤치다꺼리 해야 해?”
“보스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잡아요~”
“뭐 그렇지? 어쩔 수 없지?”
“네네.”
샤론은 그렇게 띄워주는 게 익숙한지 거구가 치켜세우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듣고서나 도와준다며 먼저 레이드 장소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그럼 다시 올 때까지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려던 사론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윙크를 날렸다.
“아참. 그 밧줄. 해커가 만든 특수아이템이거든. 컨트롤헬멧을 누가 와서 벗겨주면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못 꺼. 그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뭐...그런. 이봐 잠깐.”
강현이 외쳤지만. 문은 그대로 닫혀버렸다.
“와 뭐 이런 미친 짓을.”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면서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강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미성년자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게임을 헤집고 다닐 수가 있는 거야? 무슨 지가 치외법권도 아니고 말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려니까.
샤론이 열고 나간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 주점에서 본 브레드셔틀이었다.
“앗 너는.”
“조용히.”
“....”
브레드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작은 나이프를 꺼내서 강현을 묶고 있는 밧줄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강현은 의외의 행동에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참. 이러면 안 되는데.”
브레드가 연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밧줄을 잘랐다. 강현은 금방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거 구해주면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합시다. 덕분에 이 캐릭터는 못 쓰게 됐구먼.”
“고, 고맙습니다.”
강현이 마지못해 고맙다고 하자. 브레드가 씩 웃었다.
“어쨌든. 미친놈들한테 잡혀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에.”
“많이 억울하시겠지만. 지금 조사하고 있는 사건이니 신고하지 말아 주시고요. 그럼 당분간은 조심하세요.”
“네?”
강현이 미처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브레드는 사라졌다. 뒤늦게 친구 창을 찾아봤지만, 거기에서도 이미 브레드의 이름은 사라져있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정신을 차린 강현은 황급히 길드아지트에서 빠져나왔다. 동굴은 비교적 단순하고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드라이 마을까지 가지 못하고 두 번째 마을인 쯔바이 마을로 돌아온 강현은 거기서 로그아웃했다.
현실로 돌아온 강현은 거칠게 컨트롤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로 몸을 던져 대자로 뻗었다.
“내가 이런 일을 다 겪다니.”
이렇게 얻어맞고 그대로 물러 날수는 없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이 게임이 강현의 도퍼능력을 높여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계정을 버리고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서 처음부터 플레이하자면 그냥 새 컨트롤 헬멧을 사서 기계어드레스를 변경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계정을 판다고 해서 다시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하아 게임만 하면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놈들이 많지? 결국, 예전처럼 다 쓸어버리는 게 속이 편할까?”
강현은 자신이 옛날에 했던 게임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
거실의 소파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고 있던 소유는 자신의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보고는 놀랐다.
“정말. 연락이 왔어.”
메시지는 자신이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서 치욕적인 일을 당할 뻔했을 때 구해준 플레이어분이 보낸 거였다. 게임이랑 연동된 메신저라서 그 사람의 이름은 [ 외유내강 ]이라고 밖에 적혀있지 않아서 따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메시지에는 시간 날 때 잠깐 게임에 접속해서 당시의 게임 로그 사용동의를 해달라는 거였다. 질답이나 사정청취 같은 번거로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차가우신 거 같지만 의외로 자상하신 분.”
그러면 [ 외유내강 ]이라는 닉네임과 반대인 거 아닌가? 라고 생각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외유내강님 말고 자신이 감사해야 할 분이 한 명 더 있다는 걸 기억했다.
유강현 씨.
다행히 그분과는 연락처도 교환하고 저녁 약속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딱히 약속시각도 안정한 채였다는걸 깨달은 소유는 자신의 얼빠짐에 작은 손을 말아쥐어 자신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바보 바보.”
그런 뒤에 소파 위에 있던 쿠션 하나를 끌어안고서는 중얼거리면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언제가 좋을까? 괜찮으시다면 같은 도퍼기도 하니까. 수지도 소개해주면 좋을 거 같은데.”
수지는 오늘 일찍부터 레이드하러 나가버렸다. 레이드에 참가하지는 못한다지만. 수지는 평소 팬이었던 도퍼가 온다고 들떠 있었다.
“수지가 돌아오면 저녁 약속 언제가 괜찮은지 물어봐야지. 같이 일할 동료를 소개해 준다고 미리 설명해두면 수지도 무례하게 굴지는 않겠지.”
소유는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책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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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참 성공!
26화도 잊지마시고. 추천부탁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