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회: 6장. 다크 게이머 -- >
6장. 다크 게이머(2)
“조심하세요! 뒤쪽에도 한 마리 더 있어요!”
허준화타-강현이 외쳤다. 새롭게 나타난 울프 한 마리가 채영의 발목을 노렸다. 전열에서 울프 두 마리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채영은 겨우 발을 뺐지만.
결국, 왼쪽 정면에서 할퀴고 지나간 늑대의 발톱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아무리 게임상이라서 프로그래밍이 된 통각이 실제보다 약하다고 해도 채영은 전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뒤로 빠져서 후방에 있던 늑대까지 자신의 전면에 있게 만들었다.
‘저 모습은 볼 때마다 대단하단 말이야.’
강현은 채영의 몸놀림을 보면서 감탄했다. 결국은 게임이라서 전투가 벌어지면 보통은 서로 한두 대씩 주고받고 능력치 판정에 따라서 회피되는 정도다. 이렇게 삼면에서 포위 공격당할 때는 정면에서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그냥 맞아가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부탁합니다!”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채영이 소리쳤다. 이건 두 사람만의 신호였다. 선공 몬스터인 울프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뒷줄의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치유만 날리고 있었던 강현이 앞으로 뛰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스플래쉬 스매쉬!”
채영이 검을 거꾸로 쥐고, 자세를 낮췄다가. 롱소드를 큰 동작으로 휘둘렸다. 부채꼴의 푸른빛 잔영이 생기면서 세 마리 울프 모두에게 강력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아우우우- 하는 비명을 지르며 울프 두 마리가 그대로 사라졌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났던 한 마리는 데미지를 받고도 살아남아서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덤벼들었다.
노리는 곳은 채영은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 채영은 스플래쉬 스매쉬 스킬 사용 후 생긴 경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이!”
때마침 나타난 강현이 들고 있던 보주를 휘둘러서 울프의 코를 깨버렸다. 깨갱 하면서 내팽개쳐진 울프는 금세 그 모습이 사라졌다.
어느새 전투 때 둘의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채영의 생명력 수치를 보고 강현이 스킬 [ 치유 ]를 사용하자 채영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겨우 게임인데 회복시켜줄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채영을 때문에 무안해서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채영은 도통 고쳐지질 않았다.
결국, 강현은 그럴 때마다 무시하고 화제를 전환하는 걸로 상황을 넘겼다.
“울프는 이걸로 끝이죠? 이 앞에는 건호넷(GunHornet)과 문베어(MoonBear)가 있다는데 일단 울프사냥 퀘스트 완료하고 그쪽 관련 퀘스트 받아서 다시 오죠.”
“네.”
드라이 마을로 돌아와 늑대가 죽을 도구상인한테 갖다 주고 퀘스트를 완료하자. 각자 레벨이 또 하나씩 올랐다. 이제는 28레벨로 둘의 레벨이 똑같아졌다. 계속 같이 사냥하면서 초반의 레벨차이는 완전히 좁혀졌다.
‘이제 슬슬 승급 퀘스트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네.’
도구상점을 나온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다음에 어떤 퀘스트가 남아있나! 항상 두리번거리던 채영이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본부에서 긴급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가봐야겠습니다.”
“긴급이요? 혹시 몬스터라도 출현한 겁니까?”
“글쎄요. 일단 나가서 확인하겠습니다. 먼저 로그아웃할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채영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무슨 일인가요?”
채영을 따라 로그아웃을 한 강현이 물었다. 채영은 순식간에 평소 입고 다니던 정장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인천항에 A급 몬스터 출현입니다.”
“A급이요?!”
강현은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 랭크에 놀랐다. 최근에는 B급 이하의 몬스터만 나타나서 몬스터 커뮤니티에서는 점점 몬스터들이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호출받은 거예요?”
“그것 때문은 아니고.. 그분 때문이 긴합니다만.”
채영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을 일신하고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님도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이미 레이드 포지션이 완성되고 전투 중이라서 레이드에는 참가하실 순 없으십니다만.”
“아뇨. 괜찮아요.”
뭔가 석연찮은 투로 권하는 채영을 보고 찝찝함을 느낀 강현은 거절했다. 그 말에 채영은 다소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보다 얼른 다녀오세요. 전 게임상에서 승급 퀘스트 정보랑 같이 클리어할만한 사람들이 있나 찾아보죠.”
채영은 급하게 나가면서도 강현의 말에 살짝 미소 지었다.
*****
“솔플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다니니까 아쉽네.”
다시 게임에 접속한 강현은 혼자서 휘적휘적 드라이 마을 안을 거닐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채영 덕분에 이동이며 사냥이며 꽤 쉽게 쉽게 했었다.
현재 레벨은 28렙. 평소라면 1레벨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바로 사냥터로 달려갔을 테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당면한 과제는 30레벨의 퀘스트.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관련 게임 사이트를 찾아봤을 때는 실버울프라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문제는.
“꼭 파티를 짜게 만든단 말이야.”
두 명이 보스 몬스터를 잡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 고렙 플레이어에게 부탁하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친구창에 등록된 이름도 겨우 두 명인 강현에게 파티를 쉽게 짜는 건 무리였다.
강현은 드라이 마을 중앙의 광장으로 가서 커다란 게시판에 붙여놓은 파티 모집 글을 봤다. 희한하게도 한두 명 개개인이 올려둔 것 외에는 글이 너무 없어 횅했다.
“이상한데. 아직 신규 유저가 유입되는 편이라서 비슷한 레벨대 유저들이 없진 않을 텐데.”
게시판을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드문드문 마을에 보이는 캐릭터들은 20레벨대부터 30레벨대부터 다양했다.
‘이 사람들이 대부분 퀘스트에 관심 없다고?’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정보를 얻기 위해 주점에 들어갔다.
“어서옵셔~”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웨이트리스가 다가와서 메뉴판과 물잔을 내놓았다.
‘이 게임 안에서 이렇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네.’
게임 안에서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딱히 공복감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현실의 몸이 공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서 게임 안에서 음식물을 섭취해도 배가 부르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런 음식을 먹었다는 기분을 낼 뿐이었다.
게임사이트 어딘가에서 이걸 이용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이야기로 얼핏 들었지만. 강현과는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강현은 적당한 음료를 주문한 다음에 웨이트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게도 웨이트리스는 미리 준비되어있는 대사를 눈앞의 플레이어 맞게 조금 수정하여 폭풍같이 쏟아냈다.
“모험자님도 들으셨나요? 이 마을 뒤편에 있는 깊은 숲에 산다는 늑대이야기 말이에요. 그 늑대들의 우두머리는 다른 늑대들보다 몇 배는 크다고 해요.
보름달이 뜰 때나 가끔 볼 수 있다는데 달빛에 비친 늑대의 모습이 신비로운 은색이었다나요. 가끔은 금빛으로 봤다는 모험자분도 계시지만요.
어쨌든. 모험자분들이 앞으로 강해지시기 위해서는 그 늑대에게 인정받아야 한데요. 그 인정받는 증거로는...“
“은빛 늑대의 꼬리털을 가져와야 하지.”
어떤 사내가 웨이트리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어 왔다. 웨이트리스는 눈을 크게 뜨고 사내와 강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사내가 웨이트리스에게 그만 가보라며 손을 흔들자. 웨이트리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툴툴거리면서 사라졌다.
“미안하이. 내 저 웨이트리스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을 처음 봐서 그만 끼어들고 말았네.
사내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투로 자신의 술병을 들고와서 강현의 마주 편에 앉았다.
“어차피 30레벨에서 더 레벨업하려면 실버울프를 잡아야 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쭉 듣고 있나. 시간 낭비지. 안 그래?”
“그야 그렇죠.”
강현도 딱히 주의하여 듣고 있진 않았다. 듣는척하면서 주위에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테이블에는 왠지 모르지만 혼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아 보였다.
“그나저나 실버울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 보니 이제 30렙까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네.”
“네.”
“거참 경계할 거 없어. 그냥 친해지자는 것뿐인데. 허허”
사내는 강현이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아는지 모르지만. 그 퀘스트를 하려면 그냥 하는 게 아니야. 이게 있어야지. 돈.”
“엥? 무슨 레이드하는 데도 결제해야 되나요? 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데.”
사내의 말에 강현이 테이블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사내는 저 진정하라는 듯이 얼른 앉으라 손짓했다.
“그게 아니야. 게임 결제하라는 소린 아니니 진정 좀 하게.”
“그럼?”
“이 근방은 로즈길드라는 곳이 다 장악하고 있거든. 게임 안에서 장악한다는 말이 웃기지만. 적어도 여기 레이드보스는 확실히 독식하고 있지.”
강현은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즉 사내의 말인 이랬다. 이제 갓 초보자를 벗어나는 유저들이 해야 하는 필수퀘스트를 못하게 틀어막고 돈을 받는다는 거였다. 그것도 실소가 나올 만큼 소액이라서 다들 더럽다고 하면서도 그냥 내고 만다는 것이다. 현금도 아니라. 문화상품권 한 장.
그리고 이 사내는 그 길드원의 말단으로서 이렇게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챙긴다고 했다.
‘이거야 원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니면 정말 애들인가?’
강현은 미심쩍은 듯 사내를 쳐다봤다. 그 정도 돈 주고 해결할 수 있으면야 딱히 귀찮게 파티를 모집할 필요도 없어서 강현에겐 이득이긴 했다. 지금 알게 된 것도 다행인 게 채영이 있으면 분명 부정이라면서 난리 피울 모습 눈에 선했다.
“뭐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내죠. 지금 28렙이니까 30렙 찍은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지금은 접속 안 하고 있지만, 같이 플레이하는 친구 한 명 더 같이 갑니다.”
“오케이.”
“아참, 그리고 그 친구한테는 비밀로 좀 해주세요. 이런 일을 별로 안 좋아해서.”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어차피 보스 앞에서 메신저로 문화상품권 보내고, 약속장소에 모여서 사냥하고 끝이니까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거야.”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후에 서로 메신저에 친구추가를 했다. 사내는 만족한 듯 다른 유저를 찾아보러 간다면서 주점을 나섰다. 친구 창에 뜨는 사내의 닉네임은 브레드셔틀이었다.
‘닉네임도 참... 어쩜 저렇게 딱 맞게 짓지?’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현의 뒤로 시비조로 말 거는 캐릭터가 있었다.
“흥. 뭔가 쓸만한 녀석이 들어왔나 싶더니. 너도 별수 없네.”
강현이 주점을 둘러봤을 때 유난히 눈에 띄던 캐릭터였다. 150cm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키에. 연한 하늘색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땋았다. 여기까지는 게임에서 보이는 흔한 로리타입의 캐릭터였는데 눈에 띄는 건 그 로리가 들고 있는 무기였다.
그 무기는 큰 철포였는데. 자신의 키보다 훨씬 커서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고 있었다. 금방도 강현에게 시비를 건 다음 강현의 앞까지 올 때 거대한 철포를 질질 끌고 왔었다.
‘거추장스러우면 그냥 인벤토리에 넣으면 될 건데, 이 얘도 캐릭터 컨셉을 잡고 노는 건가?’
강현은 눈앞의 로리를 보면서 앞으로 피곤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수 없다니 무슨 소리인가요?”
“흥. 불의에 맞서서 싸울 생각은 않고. 굴복해서 돈을 주고 봐달라고 하다니. 다리 사이에 있는 그게 아깝다 이거야.”
“게임 안에서 불의를 보면 할 일은 한가지지 않나요? 운영자한테 신고하는 거.”
강현의 말에 로리가 눈을 내리깔고 분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신고했지만. 괜찮대. 딱히 위반사유는 없다면서 말야. 그 녀석들 운영자들한테 뒷돈을 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
강현은 그 말을 듣고 로리를 보면서 절대로 채영이랑 만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전 상관 안 할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자, 잠깐.”
로리가 붙잡는 걸 뿌리치고 주점 밖을 나왔다.
결국, 다시 사냥하기로 마음먹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외곽에 울프가 한 마리씩 리스폰 되는 곳이 있었던 걸 기억한 강현이 그쪽으로 몇 걸음 옮기기 전에.
뒤통수에 묵직한 게 부딪히면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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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 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