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 회: 5장. 국가공인 스토커 -- >
5장. 국가공인 스토커 (1)
남매의 아침은 달랐다.
여동생 다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치와 세면을 하고 베란다의 작은 텃밭에 물을 준 다음.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된장찌개가 끓는 사이에는 오빠의 방으로 간다.
다현의 하나뿐인 오빠 강현은 게임 폐인이다. 그 말인즉 일반인의 시간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고 금방 잠이 들었을 수도 있고, 몇 날 며칠을 안잘 때도 있었다.
강현이 깨어있든 말든 다현은 매일 아침 오빠의 방으로 들어가서 강현을 깨운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를 따라 한 거기도 하고, 오빠가 조금이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꼬박꼬박 한 일이기도 했다. 별로 성과는 없었지만.
“오빠~ 오빠~ 일어나.”
다현이 강현의 이불을 잡고 흔들면서 깨웠다. 강현은 필사적으로 이불을 뺏기지 않으려고 꽉 붙잡고 버텼다.
이 상황에서 이불을 뺏긴다는 건 기상과 직결된다.
5분 아니. 1분이라도 좀 더 침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강현에게는 이는 중대한 전투였다.
“아흠. 10분만~”
“일단 일어나.”
“5분이라도 좋으니까.”
“안되 일어나.”
한참 실랑이 끝에 강현을 식탁 의자에 앉힌 다현은 마음속으로 승리의 V를 그렸다. 전승무패였다.
“나 한두 시간밖에 못 잤는데...”
“아침은 꼭 먹기로 했잖아. 자아. 아~”
“아~”
다현은 투덜거리는 강현의 입을 된장국에 적신 밥 한 숟가락으로 막았다. 강현은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킨 다음에 다현을 보고 미소 지었다.
“맛있어.”
“에헴. 누구 솜씨인데~”
다현은 자신의 작은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러워한 다음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학교에 가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아? 수업은 거의 다 오후로 미뤄뒀잖아.”
“알바가야지.”
“응? 이제 오빠가 생활비며 이것저것 다 벌어줄 텐데. 알바는 뭐 하려 해.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해. 학원도 다니고 싶은 데 있으면 다니구.”
“응. 그래도 되지만. 일단 사장님께 이야기하고 대타 구할 때까지는 열심히 일해야지.”
“네네.”
강현은 밥을 먹다 말고 다현을 쳐다봤다. 정말 자신과 같은 부모님께 태어난 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성실했다.
“오빠는 오늘 쉴 거지?”
“으응. 밥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는 옷이나 좀 사러 갈까 하는데...”
강현의 말에 다현이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오, 오빠가 웬일이야? 옷을 사러 간다니.”
“왜 그래 나는 뭐 옷 좀 사 입으면 안 되냐?”
“그래도 낡은 트레이닝복이나 몇 년이나 된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니던 오빠가.”
다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강현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혹시... 오빠 여자친구 생긴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강현은 은근히 부정했지만. 다현은 혼자서 기정사실로 한 듯 어느새 옆으로 다가 와 팔꿈치로 강현의 옆구리를 꾹꾹 찔러댔다.
“오빠가 연애질이라니. 도퍼도 돼서 돈도 많이 벌고, 요즘 너무 잘 나가는 거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강현은 부정하면서 다현을 밀어냈다. 부정은 했지만, 강현의 얼굴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어디까지나 소유를 보러 가는데 너무 추레하게 가는 게 싫어서 옷을 사려고 했던 거였다. 그런 미인이 여친이라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을 돌렸다.
“그보다 주말에 같이 백화점 가자. 너도 옷 사줄게.”
“응응.”
다현은 기대된다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오빠 어디 가도 안 꿀리도록 멋지게 꾸며 줘야지.’
*****
알바하러 나가는 다현을 마중한 다음에 소파에 퍼질러 누워있던 강현은 깜빡 잠들었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움직이자.’
샤워하고 먼저 향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최대한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 나왔지만. 미묘하게 유행이 지났기도 하고 후줄근해 보였다.
쉘터처럼 지하에 위치한 백화점의 지하1 층에는 명품 코너가 보란 듯이 길게 늘여서 있었다. 그 코너에는 씨넬. 고찌. 헤르메드. 수십 수백만 원짜리의 명품이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지나치면서도 반짝거리는 모습에 주눅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격표를 들여다봐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가격이 비싼 건 알겠는데. 예쁘다. 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혹시 다현이라면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봤다가 이내 포기했다.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지금에야 다음에 데리고 와서 직접 고르라고 하는 게 낫다 싶었다.
명품코너를 나오면서 강현은 멀리서 직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 문득 깨달았다. 이고에 한참 있었지만, 접객하러 오는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
“역시 이런 차림세로는 도저히 이곳에서 뭘 사러온 것처럼 보이진 않겠지.”
발걸음을 옮긴 강현은 지하 4층의 남성복 코너를 지나서 더욱 아래층의 캐쥬얼 코너로 갔다. 편의점에 찾아가는데 대뜸 정장을 입고 가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 정도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강현이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캐쥬얼이라고 해도 다양한 옷 중에서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강현에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코너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강현처럼 패선무경험자가 쓸 수 있는 최후의 기술을 썼다.
강현은 자신이 보기에 무난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마네킹을 골랐다. 그러고 나서 점원을 불렀다.
“네 손님. 어떤 거 찾으세요?”
여자 점원이 싹싹하게 웃으면서 강현을 아래위로 쳐다봤다. 강현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마네킹을 가리켰다.
“이거. 마네킹이 입고 있는 데로 사이즈만 맞춰서 주세요.”
최후의 기술이란 바로 마네킹에 코디해둔 옷을 통째로 사는 거였다. 점원은 강현에게 치수를 묻고는 바지런하게 하나둘씩 찾아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어울리는지는 둘째치고 그대로 입기에는 바지 기장이 길었다.
“요즘 애들은 다리가 길죽길죽해서 인지 옷이 너무 길게 나와요.”
할 수 없이 원래 바지로 입고 나온 강현이 수선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여자 점원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위로해줬다. 원래 아무 생각이 없던 강현은 여자 점원의 위로에 새삼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그런 위로 필요 없다고!’
바지 수선을 맡기기 전에 결제를 하기 위해 도퍼 카드를 꺼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점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손님이건...?”
“아, 그걸로 안되나요? 다른 카드는 없는데.”
“절대 아닙니다.”
갑자기 깍듯해진 점원이 카드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 조심스레 결제기 근처에 가져댔다. 그리고는 수선실에 안내하겠다면서 앞장섰다. 수선실에 가서는 강현의 바지부터 수선해달라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왜 그래?” 라고 하던 수선실 직원은 점원이 귓속말로 이야기하자. 금세 태도를 바꿔서 바로 수선할 테니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왜 저러는 거야?’
어쨌든. 덕분에 전신에 옷을 싹 맞춰 입은 강현은 백화점 내 위치한 미용실에 들렀다. 남자 미용사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여자 미용사에게 최대한 오늘 머리 깎은 티를 안 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자 미용사는 별놈 다 보겠다는 듯이 강현을 쳐다봤지만. 강현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괜히 소유를 만나러 가는데 새 옷에 머리까지 해서 신경 썼다는 느낌을 줘서 부담을 주기는 싫었다.
그렇게 머리를 맡기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미용실 문을 들어와서 미용사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있지 있지. 오늘 백화점에 도퍼가 떴데. 결제하는데 도퍼 카드 꺼냈나 봐.”
‘내 이야기인가? 그래도 그렇지 도퍼가 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의자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던 강현은 의아했다.
“이야~ 정말? 그래서 누가 봤다는데?”
“지하 7층에 주희가.”
“엥? 캐쥬얼 코너에 떴다고? 하긴 워낙 별의별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고 계집애 운도 좋아라. 그래서 번호 땄데?”
“걔가 무슨 요령이 있다고 번호는 무슨. 직접 수선실 안내해줬다지 뭐야. 그런 걸로 점수 딸 수 있었을 거 같애?”
여자는 고소하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아아. 나도 어디 도퍼나 꼬셔서 팔자 펴보고 싶어~ 얼마나 좋아? 돈 많이 벌지. 신체능력 짱이지. 위험한 일하고 다니니까 언제 죽어서 상속받을지 모르지. 내 앞에 기회만 있다면 확 휘어잡을텐데”
“꿈도 크셔. 나 정도는 돼야지 한 번 꼬셔보지.”
한숨 쉬며 이야기하는 미용사의 말에 여자가 핀잔주며 보란 듯 가슴골을 만들어냈다.
“내가 어때서. 너보다는 내가 낫지.”
두 사람은 어느새 다투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는 씩씩거리며 나가버렸지만. 아까보다 미용사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느껴졌다.
‘이거 불안한데.’
강현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 강현이 도퍼 카드를 꺼내서 결제할 때 미용사의 얼굴이 더욱 새파랬다.
*****
백화점에서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강현은 버스를 타고 집 근처로 갔다가 소유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 쪽으로 적당히 걸어갔다. 시간도 적당히 예전에 소유를 만났을 때 시간대랑 비슷했다.
왠지 가슴이 뛰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냥 잘 지내고 있나 보러 가는 것 뿐인 걸 뭐”’
오늘 종일 강현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로 안 믿을 말을 중얼거렸다.
“그보다 오늘은 뭐 사러왔다고 할까? 여동생 감기약이라도 사러왔다고 하면 다정한 오빠처럼 보일까? 인사는 뭐라고 하지? 안녕하세요? 아니면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며 걷고 있자니 편의점이 보였다.
강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편의점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편의점 안에는 그때처럼 알바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바생은 컵라면을 진열하고 있느라 미쳐 종소리를 못 들었는지.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흑단같은 긴 생머리가 창가에 비친 저녁노을을 머금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강현은 그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저기...”
강현이 부르자. 알바생이 돌아봤다.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면서 흐트러졌다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강현은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맞으려고 했다.
하지만 알바생의 얼굴은 본 순간 놀라움에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누구세요?”
고개를 돌린 알바생은 소유가 아니었다. 지저분하게 기른 턱수염에 투박한 인상의 남자였다. 소유와 비슷한 곳이라고는 긴 생머리뿐이었다.
“전 이 편의점 알바생인데 그쪽이야말로 누구세유?”
남자 알바생이 자랑인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휙 넘기면서 강현의 질문이 불쾌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강현은 정신이 붕괴하는 걸 느꼈다. 혹시 예전에 본 소유는 원래 이런 모습이었는데 내가 환각을 본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기...혹시 소유씨....”
“아 역시 그쪽도 소유 찾으러 온 거유?
남자 알바생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 말에 강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오늘은 안 계신 가요?”
“없어유. 소유가 얼굴값을 하는 것인지 반했다면서 쫓아오는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장님이 일 그만두게 한지가 언젠데. 가끔 알바가 펑크내면 대타나 하러 오는데 그때 본 모양이구만유.”
“그렇군요.”
강현은 오늘 내내 무슨 짓이었느냐며 허탈해했다.
“저기 혹시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요?”
“답답하구먼유. 내가 기껏 저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해준 까닭이 뭐라고 생각하세유? 싸게싸게 포기하라고 하는 말이에유. 요기 잘 나오지도 않고 연락처도 안 가르켜줄테니까 말이에유. 물건 안 사실 거면 손님도 아니니까 얼른 나가세유”
남자 알바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강현을 밀어냈다. 힘없이 편의점 밖으로 밀려 나온 강현은 허탈하게 몇 걸음 걷다가 근처 벤치에 걸터앉았다.
붉은 노을이 건물 사이로 무너져 내려가는 게 자신의 가슴도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백화점에서 보니까 도퍼라는 것만 가지고도 좋다고 쫓아다닐 여자는 있어 보이지만. 그런 여자들에게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에잇. 내 주제에 여자는 무슨 여자야. 다음 레이드까지 겜이나 줄창해서 광렙이나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달콤한 여자의 목소리가 강현을 불렀다.
“강현씨?‘
============================ 작품 후기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번 주에는 베스트에 들고 추천과 쿠폰을 마구 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에 너무 행복한 한 주 였네요.
겸업하느라 지칠 때도 있지만.
덕분에 힘내서 써나가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에도 성실연재를 약속드리며...
그럼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