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 회: 4장. 스노우 화이트 -- >
4장. 스노우 화이트 (3)
“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시야엔 강현이 장착한 너클무기 [원터치쓰리강냉이]. 강철 돌기로 뒤덮인 주먹이 가득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는 남자의 이빨 3개가 뒹굴고 있었다.
“아청형인간. 너 같은 변태 로리콘 새끼를 말하는 거다.”
거기에는 얼굴을 붉힌 채로 강현이 식식거리며 서 있었다.
여동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하겠지만. 강현은 성범죄자를 특히나 증오했다. 거기다가 미성년자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강현의 기준에서는 사형이었다.
강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를 세차게 걷어차서 스노우화이트에게서 좀 더 떨어지게 만들었다.
“괜찮아?”
“...아..네.”
스노우화이트는 정신이 나간 듯 강현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 못 하고 그저 찢어진 옷을 끌어안고 움츠리고 있었다.
“이 c8 새끼가 정말 죽으려고.”
남자는 금세 일어나서 전투태세를 취했다.
체감형 게임이라서 고통은 있었지만. 강도는 실제보다 약하고 즉각 회복되었다. 아까의 스노우화이트 앞에서 엄살 부렸던 것도 남자의 연기였던 거였다.
“또 덤비려고? 능력치 차이가 뻔한데 애당초 상대가 안될 거라는 거 몰라?”
강현은 남자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남자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입꼬리를 징그럽게 올리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크큭. 니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다굴에 장사 있겠어?”
“뭐?!”
“내 친구들 불렀으니까 너도 이제 끝장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절대 도망 못 치게 하겠다는 듯. 양팔을 짝 펼쳤다. 강현은 주먹을 치켜들고 혹시나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잠시 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친구라는 건 언제 부른 거야?”
“그야 당연히...네가 나타났을 때부터...”
강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부른 상대가 온라인상태가 아니라면 호출을 하더라도 휴대폰이나 단말기로 접속요청 호출이 갈 뿐이다. 호출에 응한다 해도 해도. 컴퓨터를 켜고 컨트롤 헬멧을 쓰고, 게임에 접속할 때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접속해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초보자 마을까지 와서 이곳까지 뛰어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넉넉잡아도 강현이 남자의 이빨을 다 털어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른 판타지 게임과 달리 겉보기에는 도퍼들의 능력을 중심설정으로 삼고 있는 게임이라서 아직 개인 간의 워프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은 들은 적은 없었다. 마을 간의 이동은 비행기, 기차등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설정이었으니까.
강현은 말없이 주먹을 고쳐 쥐었다. 금방이라고 공격할 기세로 쏘아보는 강현을 보고 남자는 당황했다.
“자, 잠깐. 남자라면 10분만. 아니, 5분만 기다려줘.”
“됐거든.”
대답과 함께 주먹이 날아갔다. 이번에도 얼굴을 얻어맞은 남자는 피와 함께 이빨을 3개 뱉었다. 처음의 잘생긴 얼굴은 더는 찾아보게 힘들게 됐다.
“큭, 두고 보자.”
“어딜 도망치려고.”
도망치려는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누가 그렇게 쉽게 도망치게 한데?”
퍼억. 으악. 픽.
주먹을 휘두른 소리. 남자의 신음. 그리고 이어서 날아가는 이빨 3개.
“너 같은 놈이랑 같이 게임 플레이한다고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이놈아. 이참에 반 죽여놓고. 앞으로 게임에 접속도 못 하게 운영자한테 신고도 해줄 테니까.”
퍽.
“사, 살려줘.”
“이 무기 이름이 뭔지 알아? 원터치쓰리강냉이야. 그럼 앞으로 몇 대 더 때리면 네 이빨이 다 털릴까? 맞추면 그만 끝내주지.”
남자는 두려운 눈빛으로 강현을 쳐다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대답했다.
“두, 두 번?”
“여섯 번 남았다. 이 자식아. 너는 이빨이 21개뿐이야?”
퍽퍽
이번에는 좌우 연타로 때렸다.
“큭. 로, 로그아웃.”
“[ A MODE ]일 때 접촉하고 있으면 로그아웃 안 되지? 아마?”
강현은 이번에는 힘을 모아 [ 스매시 ]로 결정타를 날렸다. 이 정도 데미지면 사망 아니면 기절판정을 받을 터였다. 쓰러진 남자는 생기를 잃고 무채색으로 변했다.
강현이 여전히 불쾌하단 눈초리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뒤에서 스노우화이트가 말을 걸어왔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강현이 인사를 받기 위해 돌아섰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에게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무서웠다면 그대로 도망쳤으면 됐을 텐데...’
“근데 여기는 어떻게...”
스노우화이트를 봤다가 옷 찢어진 모습에 눈이 갔다. 강현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보다 [ A MODE ]부터 얼른 비활성화하세요. 그리고 이거”
“아. 네에. 감사합니다.”
인벤토리에서 캐시템으로 얻은 아이템 중에서 저렙템이지만 계정귀속 제한이 없는 망토를 하나 찾아서 건넸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건네받은 스노우화이트는 망토를 두르고 앞섬을 여몄다. 이제 좀 눈 돌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아까 던지고 간 아이템이 계정귀속이라는 걸 깜박했었거든요. 그래서 왔는데...”
“아, 그거...”
스노우화이트가 기억났다는 듯. 저쪽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총을 발견해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장착은커녕 주워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되는 거죠.”
이 게임의 계정귀속 아이템은 동일 계정에서 생성한 다른 캐릭터 간에는 옮겨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유저에게는 양도할 수 없었다. 손에서 잠시 떨어트려서 우편으로 다른 계정에 보낸다면 괜찮지만.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려 둔다면 24시간 뒤면 사라진다. 그 외에는 해당 아이템을 든 상태로 파괴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남한테 주지도 못하는 걸로 생색냈다고 생각하니까 우스워서. 실수한 거였지만. 천만다행이네요.”
“네에...”
“어쨌든. 오늘 일은 잊지 말고 꼭 신고하세요. 전 갑니다.”
“아뇨. 이제 이 게임 그만두려고요. 저한테는 안 맞는 거 같아요.”
스노우화이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걸 들은 강현은 입맛이 썼다. 피해자가 신고도 않고 게임을 접어버리니까 저 나쁜 놈이 계속해서 날뛸 수 있던 거였다. 피해자 입장에서야 어차피 게임 내의 일일 뿐이니까. 다시 기억하기 싫은 것도 있겠지만.
“당신 같은 아니. 당신처럼 운 좋게 도움도 못 받을지 모르는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겨나도 괜찮다면 도망치셔도 됩니다.”
강현의 말에 스노우화이트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시 스노우화이트의 대답을 기다렸던 강현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디까지나 제삼자인 자신이 어떻게 하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스노우화이트는 금방 일어났던 사건을 되새기고 있었던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도망치지 않겠어요.”
그 모습에 강현은 살짝 굳은 표정을 풀었다. 이렇게 발자국만 내딛어도 도와준 강현으로서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초보자기도 하시니까 제가 목격자로서 신고하겠습니다. 접수되면 그때 잠시 게임에 들어와서 운영자에게 증언해주세요.”
“네. 전화해 주세요. 제 휴대폰 전화번호가...”
강현은 스노우화이트의 조심성 없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답답해 한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쪽 휴대폰 번호는 관심 없으니까. 메신저 아이디나 불러주세요.”
“아, 네에...”
스노우화이트가 불러준 메신저 아이디를 프로필 한쪽 구석의 메모장에 적어둔 강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이 여자(?) 때문에 오늘 하루에 몇 번이나 한숨을 쉬는지 몰랐다.
메신저 아이디도 영어로 snowwhite 였다.
“그럼 이만 로그아웃합니다.”
“저기 잠시만요...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여기 적혀있잖아요. [ 외유내강 ]입니다.”
강현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캐릭터 명을 가르키며 말했다. 하지만 스노우화이트는 고개를 떨구면서 중얼거렸다. 강현은 스노우화이트가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건지 알았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명확히 구분하며 게임하는 강현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었다.
“그게 아니라...”
“오프이름은 밝히기 싫어서요. 괜찮죠?”
“네에.”
스노우화이트의 대답을 들으며 강현은 자신의 시야 구석에 띄운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시야가 페이드아웃 되고 있을 때 자신의 앞에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스노우화이트의 모습이 마지막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외유내강님.”
*****
“푸하. 힘들었다.”
강현은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자마자. 컨트롤 헬멧을 거칠게 벗었다. 그다음 침대에 몸을 던져 대짜로 뻗었다.
“이러려고 게임을 하는 건 아닌데 말야.”
이불 위에서 강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호쾌하게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업하고 득템하고 그것만으로도 게임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게임을 오래 했지만. 의식적으로 여성 캐릭터와의 접촉을 피했기에 이런 트러블에 휘말린 건 처음이었다.
“오지랖에 훈계에. 으아아아앗.”
게임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한 강현은 베개로 얼굴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몇 번은 오그라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지. 남자였더라도 그런 경험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했을 테니까.”
강현은 스노우화이트를 떠올렸다.
“그치만...아무리 생각해도. 닮았단 말이야. 소유씨랑.”
이런 게임을 여자가 한다고 전혀 생각 못 하는 강현으로서는 스노우화이트가 자신이 아는 소유의 이미지가 겹치는 게 혼란스러웠다. 외모야 워낙 보편적인 미모라서 게임상에서 최대한 예쁜 외모를 꾸며낸다면 딱 소유 씨의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었다. 그렇지만.
‘저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소유 씨를 닮은 거 같단 말야. 뭐 한 번밖에 본 적 없는데 내가 착각한 걸 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점점 소유가 보고 싶어졌다.
‘소유씨는 그 뒤로 잘 지내고 있을까?’
강현은 있다가 기분전환이나 할 겸 소유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창밖에서는 새벽 어스름이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
“뭐삼? 아직 안자고 있었삼?”
수지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붉게 염색한 머리카락과 얼굴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술에 취한 수지는 자신의 동거인이 아직 깨어있는 걸 보고 놀랐다.
“아휴 술 냄새. 또 얼마나 마신 거야? 그러다가 몸 상하겠어.”
침대에 앉아있던 소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지를 쳐다봤다. 일어나서 책상 위의 물병에서 물을 따라 수지에게 건넸다.
“도퍼한테 이 정돈 껌이셈. 오늘 한탕 했으니까 애들이랑 한잔 안 할 순 없잖음.”
소유가 건네준 물컵을 단숨에 비운 수지가 기분 좋은 듯 낄낄댔다.
“근데 정말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하고있었삼?”
“응...잠깐 게임 좀 하고 있었어.”
“응? 무슨 게임했삼?”
수지의 질문에 소유가 일어나 모니터를 켜서 보여줬다.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아 이거 나도 들어본 적 있음. 실제 레이드 생각하면 엉터리에다가 애들 장난이라고 들었삼. 근데 소유 너랑 너무 안 어울리는 겜을 하다니 웬일이셈?”
“응. 정말 나랑은 안 맞는 거 같아.”
소유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수지에게 오늘 게임 안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남자 캐릭터의 플레이어를 어떻게든 찾아서 죽여버리려고 할 테니까. 비밀로 해두기로 했다.
다행히 수지는 게임이야기에서 금방 자신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있지있지. 들어보셈. 나 오늘 완전 왕자님 많났삼!”
“왕자님?! 정말?!”
소유는 수지가 이런 이야기하는 걸 처음 들어봤다. 호기심이 몸을 바짝 내밀었다.
“그게 오늘 레이드 하다가 몬스터한테 잡아먹혀 버린거 였삼.”
“뭐?! 괜찮은거야?”
태연하게 말하는 수지와 달리 소유는 그 자리에 펄쩍 뛸 듯 놀랐다. 하지만 수지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아무리 나라도 조금 위험하다 싶었삼. 근데. 용감하게 나를 구해주러 온 도퍼가 있었삼. 오늘 처음 본 신입이었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몬스터에게 혼자서 뛰어들었삼...”
“굉장해.”
“응응. 정말 대단했삼. 몬스터의 입을 열고 구해 낸거삼. 그때 모습이 뽕가도록 멋진 거였삼”
그렇게 말하는 수지의 붉은 뺨은 더욱 달아올랐다.
“어쨌든. 그 사람이랑 전화번호도 교환했삼.”
“너무 잘됐다. 축하해.”
“헤헷. 고마워.”
소유는 처음 보는 수지의 모습에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수지는 소유의 반응에 부끄러워하면서 짧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 작품 후기 ============================
주말이라 힘내서 연참했습니다.
그럼 재밌게 즐겨주세요;ㅁ;
ps.설정이나 오타등 수정사항에 대해서는 차후 1권분량별로 끊어서 진행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