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17화 (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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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스노우 화이트 (1)

그 날 저녁.

정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수지네팀의 원딜이 같이 뒤풀이 가자고 제안했다. 왜 팀리더인 수지가 이야기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건지 의아해했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들어가겠다고 거절했다.

동생에게도 오늘 번 돈을 보고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져도 괜찮도록 좀 더 자신을 강화하고 싶었다. 물론 게임을 해서겠지만.

강현이 거절하는 걸 멀리서 들었는지 수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왠지 강현도 그런 수지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건가?’

강현은 수지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피곤하기도 하고 집에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서 말이야. 다음에 날 잡아서 모두 모여서 한 번 더 뒤풀이하자.”

“응... 그냥 정말 피곤했던 것 뿐이었삼?.”

“그래그래. 담에는 내가 쏠 테니까.”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렇죠 누님?”

옆에 있던 원딜이 설날에 세뱃돈을 받은 아이처럼 밝은 얼굴을 했다. 옆에 있던 수지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만간 날 잡자고.”

강현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면서 수지네 팀과 멀어졌다. 그러다가 뭔가 잊은 걸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지도 이쪽을 다시 총총걸음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핸드폰 번호 교환을 않았네. 번호 좀 찍어 줄래?”

강현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연락처도 서로 모르면서 약속했으니 얼마나 싱거운 녀석으로 보였을까? 급한 일 때문에 사이트에서 쪽지를 주고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적인 만남을 갖는데 뒤늦게 쪽지 보내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였다.

수지는 피곤해서였는지 떨리는 손으로 강현의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저러다 휴대폰 떨어트리겠다고 걱정했지만. 수지는 번호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누른 다음 강현에게 돌려줬다. 강현은 통화버튼을 누르고 신호가 가는지 확인한 다음에 통화종료를 눌렀다.

“이제 됐지?”

강현은 싱긋 웃으면서 핸드폰을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 강현은 듣지 못했지만. 수진이네 팀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님! 정신 차리십쇼 누님!!

수지가 강현과 번호를 주고받은 뒤 기절해버린 것이었다.

*****

“선배가 저한테 궁금한 게 있다고요?”

안전 관리국에서 야근 중이었던 도퍼 담당자 김지훈은 깜짝 놀랐다. 채영 선배가 자신 따위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한 것이다.

채영은 항상 태블릿 피시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걸로 찾아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냥 보는 시늉만 하는 거지 무엇을 물어봐도 즉답할 수 있었다.

덕분에 동기들 사이에서는 채영의 머릿속에 컴퓨터 칩이 박혀있을 거라는 농담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담당자 교육 중에는 번번이 교관이 틀린 것을 지적해 교관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교육진행에 차질을 빚었던 건 꽤나 유명한 일화였다.

반대로 요령이 없어서 아마 한직에 좌천될 거라는 이야기가 무성했었는데. 중앙에서 일하고 있는 거 보면 아직 이 세계도 실력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높으신 분의 이쁨(?)을 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있었지만, 채영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연상이 안 됐다.

‘그런 선배가 자기한테 물어볼 게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너도 내가 성적매력이 없다고 생각해?”

풋.

지훈은 커피를 마시다가 뿜었다. 커피가 식어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닦았다. 채영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배...”

늦은 밤.

둘밖에 없는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한창때의 남녀.

이 시츄에이션은 지훈이 자주 보던 동영상에서 종종 나오는 것과 비슷했다.

평소에는 엄한 여자 선배가 오늘따라 감상적이 되어 무장해제를 하고 젊은 남자 후배에게 손을 뻗어 정욕을 해소 하는...

‘설마...?!’

지훈은 말도 안 된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현실과는 다르다. 현실과는.

“나 별로 매력이 없는 게 가슴이 작아서 그런 걸까?

지훈의 모습에 채영은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다시 물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곳의 존재감은 성인여성의 그것이라고 주정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모델을 못지않은 슬렌더한 몸매에 단정한 이목구비. 정장 아래에서도 숨길 수 있는 매끈한 라인을 생각하면 어떤 남자도 채영을 매력이 없다고 할 수 없으리라.

“아니요. 서,선배도 매력 있어요...”

“그래도 보통 남자들은 가슴 큰 걸 좋아하잖아? 이해가 안 돼. 어차피 수유 기관일 뿐인데.”

“그, 그건...”

지훈은 “빈유도 수요가 있어요.” 라고 말하려다가 성희롱이라고 생각될까 봐 다시 삼켰다.

“혹시 참고될 게 있나 싶어서 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동영상을 봤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유방이 비상정상적으로 크더라고 저러면 어깨가 아플 텐데. 남자들은 이런 취향인 건가?”

채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태블릿 피시를 요리조리 클릭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훈은 등골이 서늘했다.

‘거, 거기는...’

분명히 외부에 노출이 안 되도록 풀다 자체를 숨겨놓고 추가로 암호화까지 걸어뒀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보안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채영은 해당 폴더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제일 첫 번째 파일을 선택했다.

그러자 살색이 태블릿 피시의 화면이 가득 채웠다. 스피커에서는 여자의 교성이 들려왔다.

“안돼에에에에에에”

지훈은 안전관리국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

“이게 다 얼마야?!”

집으로 돌아온 강현이 다현에게 카드를 건네줬다. 다현은 웬일로 저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잔액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늘만 8억을 번 거야?”

씨익 웃으면서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돈 걱정하지 말랬지? 매번 이렇게 대박 터지진 않겠지만.”

“으응... 대단해 오빠.”

“혹시 모르니까 3억 정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이체해서 네가 알아서 써. 어제 말한 데로 돈 관리는 전적으로 맡길 테니까.”

“응!”

거액의 용도를 생각하느라 완전 넋이 나간 다현을 두고 강현은 일어났다. 자신의 방앞까지 강현은 어제 일을 생각해내고는 다현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아참. 오늘은 어제처럼 방해하지 마.”

“아. 응?”

다시 정신줄을 잡은 다현이 강현을 쳐다봤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이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으흥~ 혹시 어제처럼 게임 하는 거야? 오빠두 남자니까 어쩔 수 없네. 알았어. 방해 안 할게.”

분명 제대로 오해가 안 풀린 게 틀림없었다.

‘이대로라면 오빠의 위엄이 안 서는 데...’

강현은 방문을 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컴퓨터 책상에 앉은 강현은 금방 기분 전환을 했다. 컴퓨터 부팅을 하고 컨트롤 헬멧을 쓰고,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 접속했다.

큰돈도 벌었고. 당분간 강해지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특히나 앞으로 몬스터 레이드를 생각하면 자신의 생존에 직결되는 만큼 최우선 과제였다.

일단 현재로서는 제일 손쉽게 강해지는 방법은 바로 장비아이템의 강화였다.

연수 때 강한 원거리 딜러의 무기를 캐릭터가 장착했을 때. 레벨의 증가와 별개로 몇 등급이나 더 세지는 걸 확인했던 터였다.

게임 속에서도 고성능의 장비를 미리 얻어서 장착한다면 사냥도 훨씬 편할 테니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게임에 접속하니. 다행히 연수 때 3천만 원을 들여 깠었던 [ 몬스터 코어 ] 아이템을 아직 팔고 있었다. 개당 만 원이나 하지만. 레어 무기와 방어구까지 나온다. 현재 원딜이 장착하고 있는 30레벨급 레어 무기 아이템 [ 새총 ]도 여기서 얻은 거였다.

게임 내에 플레이어 간의 밸런스를 깨트리는 사행성 아이템이라. 일반 유저라면 치를 떨겠지만. 지금의 강현에게는 꽤나 유용했다.

강현은 과감하게 1억만 지르기로 했다.

결제해서 만개의 몬스터 코어를 산 다음. 몬스터도 나오지 않고 유저들도 잘 안 지나가는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강현은 몬스터 코어를 꺼내서 하나씩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이건 게임도 아니고 완전 노가다네.”

인벤토리에서 몬스터 코어를 몇 개 꺼내서 바닥에 떨어트려 놓고 하나씩 부셔서 아이템을 꺼낸다. 이것도 한두 개면 모를 일이지만 만 개 정도를 부순다고 생각하면 여간 지겨운 일이 아니었다.

저번에는 3천 개를 까는데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 만 개라면 단순히 계산해도 3배 이상이다.

“돈까지 쓰는데 좀 이런 건 편하게 해달란 말이야...”

라고 구시렁거리면서 몬스터 코어를 깨고 있으려니까. 이번에 깬 몬스터 코어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오예. 이번 건 레어 아이템이다.”

강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천 개가량 작업했을까? 그간의 지겨움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런 재미로 게임을 하는 거지. 득템과 광렙.’

흥얼거리면서 코어의 껍데기를 마저 제거해 나갔다. 그러자 더욱 찬찬한 빛을 발했다. 강현이 거기에 손을 뻗자 빛이 잦아들면서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템은 바로.

원거리 레어무기 [ 새총 ]이었다.

“젠장. 있는 게 또 나오다니...”

확실히 강력한 레어 무기였지만. 이미 저번에 3천만 원 치 깠을 때 나온 아이템이었다. 거기다가 계정귀속 아이템으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팔 수도 없었다.

강현은 땅바닥을 치면서 제작사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되려고 오기가 발동해서 밤새도록 미친 듯이 아이템을 깠다.

다행히 그 뒤로 중복해서 나온 레어아이템은 없었다.

만개를 다 깠을 때. 나온 레어아이템은 무기로는 새총을 빼고,

어태커용 너클 [ 원펀치쓰리강냉이 ]

디펜더용 단창과 방패 [ 실드스피어 ]

서포터용 보주 [ 다마공 ]

이렇게 직업별로 하나씩은 나왔다. 다 레벨30의 레어무기 아이템이었다.

‘그나저나 아이템 이름 센스하고는...’

강현이 아이템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유저에게 중요한 건 아이템의 이름이 아니라 아이템의 능력치였다.

이어서 무기보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지만 20~25레벨대의 직업별 각종 방어구도 획득했다.

저번보다는 확실히 레어아이템 등장률이 높아진 듯했다. 강현이 직업별로 아이템을 나눠서 보내고 있으려니까.

멀리서 다가오는 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서 사냥하나요?”

“아뇨아뇨. 스노우화이트님. 이곳은 몬스터도 플레이어도 거의 안 오는 곳이에요. 이 게임 처음이라고 하시니까 이것저것 설명해드리려면 조용한 곳이 좋거든요.”

“네에.”

“이것저것 아이템 건네주는데 보는 눈이 많으면 안 좋아서요. 혹시나 나쁜 사람들이 아이템 뺏어가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친절하시네요.”

여자 캐릭터가 빙긋 웃었다.

자신의 아이템을 챙긴 강현은 좀 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얼른 두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얼핏 여자캐릭터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한심할 정도로 전형적인 미형 캐릭터네...’

새하얀 피부가 무색할 만큼 긴 생머리의 은발에 푸른 눈. 가슴은 게임상에서 이 정도 커스텀이 가능했었나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초기무기로 들고 있는 활을 봐서는 갓 슈터 캐릭터를 생성해서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 여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남자는 초보자 마을에서 볼 수 없는 그럴싸한 중갑을 입고 있었는데. 헐리우드 스타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반짝이는 금발 머리는 어지간히도 외모캐시템을 투자한 듯 보였다.

남자는 스노우화이트라는 캐릭터에게 완전히 빠진 듯 간이며 쓸개며 내 내놓을 듯 보였다. 시선은 가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음흉한 표정의 금발을 보니 불현듯 성제가 떠올랐다. 물론 여자캐릭터는 설소유가 연상되긴 했는데 어디까지나 가슴 때문만은 아니다. 가슴 때문만은.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는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

‘저거 분명 넷카마야.’

넷카마.

인터넷+오카마의 합성어. 오카마는 일본어로 여장남자를 뜻한다. 거기에서 유래해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하는 남자를 뜻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외모뿐만 아니라 성별까지 현실과 다르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예쁜 여자 캐릭터를 만든 다음 여자가 플레이하는 것처럼 해서 혹한 남자들을 벗겨 먹는 게 다반사였다.

인터넷 게임상에는 남녀 성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걸 지침 삼아 게임을 즐기는 강현에게는 어느 쪽도 상관없었다. 그저 빨리 지나가 줬으면 했다.

‘그냥 잠깐 로그아웃하고 쉴까?’

그렇게 마음먹고 로그아웃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다가 손에 들고 있는 몬스터 코어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떨어진 몬스터 코어는 남녀가 있는 곳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그 소리에 남자가 즉각적으로 칼을 뽑아들고 외쳤다.

“누구야?!”

============================ 작품 후기 ============================

어제는 preten님과 bffree님께서 후원쿠폰을 투척해주셨습니다. ;ㅁ;

아직 초반이라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차후에 떡밥회수가 안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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