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 회: 3장. 붉은 하마 함수지 -- >
3장. 붉은 하마 함수지(5)
뱀은 순식간에 수지를 집어삼켰다.
자신들의 리더가 손쉽게 잡아먹혀 버리자 모두 공포에 얼어붙었다. 금방까지 상대하던 개구리 몬스터와는 급이 다른 사악함에 모두 창백해진 얼굴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인간의 DNA엔 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하물며 자연영역과는 다른 차원의 뱀 몬스터에겐 개구리 몬스터나 자신들이나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암시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마비되었다.
먹잇감들이 얌전한 게 마음에 들었는지 뱀은 가늘게 쪼개진 혀를 연신 입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양쪽 머리를 도퍼들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잠시 뒤 몬스터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꼬리 없이 양쪽에 머리만 달린 뱀이었다. 한쪽 머리는 전체적으로 선명한 노란색 비늘로 뒤덮여 있다. 다른 한쪽에는 검정과 보라색의 기다란 줄이 서로 꼬여있다. 어느 머리도 하나같이 위험한 독을 품고 있어 보였다.
함수지를 삼킨 쪽은 노란색 비늘의 뱀 머리였는데 몸통이 꿀렁꿀렁거렸다. 역시 만만찮은 여자답게 잡아먹혔지만, 안에서 용력을 다해 날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도퍼쪽에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누님!”
통곡 소리에 강현도 굳어있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쉬는 시간에 자기와 이야기를 나눴던 근딜 도퍼가 울상 짓고 주저앉아있었다.
강현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때 이미 뱀 몬스터는 근접해 도퍼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좌우로 나뉜 머리가 하나씩 먹이를 품평하듯 왔다 갔다 했다.
퍼질러 앉아있는 도퍼를 힐끗 쳐다보고 강현은 한숨 쉬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랑 이 녀석뿐인데 어쩐다.’
저 녀석과 자신이 사소한 계기로 뱀이 주는 공포의 암시를 벗어난 만큼. 다른 이들도 조금의 충격만 주면 충분히 암시에서 벗어나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은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수 있었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그걸 시도하는 수밖에 없나.’
결심한 강현은 노란색 비늘의 뱀 머리가 가까이 왔을 때 재빨리 근딜이 바닥에 떨어트린 창을 집어 뱀의 얼굴을 찔렀다.
“이거나 먹어랏!”
뱀은 고통의 신음 대신 삐이이익-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질렀다. 강현은 뒤로 도망치는 뱀을 쫓아갔다. 뱀은 강현을 쫓아내기 위해 입을 최대한 벌려 위협했다. 추악하게 비대해진 입안에는 닿기만 해도 그대로 찢겨버릴 듯한 커다란 송곳니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를 악문 강현은 그대로 창을 세워서 뱀의 입 사이에 끼웠다. 당황한 뱀은 창을 빼기 위해서 머리를 꼿꼿이 세워 전후좌우로 마구 흔들어댔다.
“크윽. 멀미나잖아. 그보다 수지짱은?”
창을 붙잡은 채로 뱀의 입속을 살펴봤지만, 수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안쪽 깊숙이 소화된 걸지도 몰랐다.
그때
키이이이이우에에엑-
뱀이 입을 벌린 채로 토악질하려는 듯이 머리끝을 지면으로 향하면서 길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시체 썩은 내가 강현에게 쏟아졌다. 그때 소화되다가 역류해 올라왔는지 수지의 붉은 머리카락 끝이 보였다.
“수지짱! 수지짱! 함수지! 이 하마야 좀 일어나!!”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이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현이 계속 붙잡고 에너지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손을 창을 놓고 수지 쪽으로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천천히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결심한 강현은 [ 치유 ] 능력을 썼다. 순간적으로 창에 에너지가 빠지면서 부러졌지만. 다행히도 힐이 수지에게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으윽... 넌?”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수지가 고개를 들어서 강현을 쳐다봤다. 그때 강현은 반쯤 부러진 창을 들고 다시 뱀이 입을 완전히 닫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정신 차렸으면 얼른 손 뻗어 여기서 나가야지.”
“으응.”
수지가 뻗은 손을 잡은 강현은 창을 붙잡고 죽을 힘을 써서 수지를 끌어냈다. 거대한 수지의 몸을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위액 때문에 끈적끈적해져서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크윽.”
바닥에 떨어진 수지는 토악질부터 했다. 시커먼 덩어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 이내 어느 정도 회복했는지 위로 올려다봤다. 강현도 뱀의 입 밖으로 탈출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서 뛰어내리삼.”
수지는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강철같은 양팔을 짜악 펼쳤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창을 놓고 뛰어내리는 순간.
재빠르게 다가온 보라색의 뱀 머리가 자신의 반대쪽 머리와 함께 통째로 강현을 삼켜버렸다.
“으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보고 수지가 괴성을 질렀다.
덕분에 다른 도퍼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극한의 공포에 시달린 덕분인지 대부분의 도퍼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모두 정신 차리삼. 소화되기 전에 얼른 이놈 공격하셈”
수지가 일행들에게 다가가 격려하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다들 제 몸 하나 가누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답답했던 수지는 근처에 보이는 거대한 돌을 들어서 뱀의 머리를 몇 번이고 쳐봐도 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자기 몸을 삼켜나가는 기묘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 뱀에게서 강현이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뱀의 뱃속에 갇힌 강현은 필사적으로 손발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뱀이 실수로 삼킨 것인지 중앙에 있던 시커먼 바위가 손에 잡혔다. 필사적으로 그 위에 올라탔다.
겨우 한숨을 돌리자 이번에는 지독한 유황냄새에 정신이 나갈 뻔했다.
‘이건 계획 밖인데.’
원래 계획은 함수지를 먼저 구한 다음 뱀의 암시를 풀어 레이드 파티원들을 통솔해 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아까 그 자리에서 암시에 풀렸다고 자신만 도망쳤다면 뱀이 자신을 먼저 공격했으리라
구조한다고 나섰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밖으로 나갈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그 타이밍에 스스로를 집어삼킬 줄은 전혀 짐작 못 했다.
‘아무리 열 받았다고 해도 그렇지. 무식한 몬스터들.’
주 무기였던 BB탄 권총도 혼란 속에 잊어버리고, 물총은 한참 전에 개구리를 상대할 때 써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어서 어딘가에 버려버린 상태였다.
전혀 손을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렸다가는 그 전에 매캐한 가스에 정신을 잃고 소화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젠장.”
화를 이기지 못하고, 버티고 있던 바위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바위가 쩌억 하고 갈라져 버렸다.
“아, 이거 왜 이래.”
강현은 깜짝 놀랐다. 어디까지나 화풀이 기분만 낸 거라 강한 힘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갈라져 버리다니. 거기다 갈라진 틈새로 뭔가 꾸역꾸역 새어나오려고 했다. 시커먼 기름 덩어리의 공장폐수처럼 딱 봐도 악성물질처럼 보였다.
양손으로 어떻게든 새어나오는 검은 물질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틈은 더욱 벌어지고 검은 물질이 돌의 부피가 무색할 정도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검은 물질은 순식간에 뱀의 뱃속에 가득 찼다.
그 사악한 물질은 자기에게 닿은 모든 걸 검은 물질로 변환시켜 버렸다. 이내 뱃속이. 아니 두 머리 뱀 몬스터의 전신이 삽시간에 검은 물질로 변했다. 그 속에서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강현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뱃속 천장도 검은 물질화 되어 강현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입이며 귀며 노출된 구멍이란 구멍에는 검은 물질이 삽시간에 파고들었다.
‘이...이건.’
*****
함수지의 어렸을 때 별명은 돼지였다.
딱히 많이 먹어 뚱뚱해서 그런 별명을 얻은 건 아니었다. 뼈가 두껍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땅딸막하게.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 덕분에 비만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돼지라고 불렀다.
특히 남자애들의 주요 놀림감이었다. 덕분에 어렸을 때는 남자애들이라면 질색했다. 여자애들은 그런 놀림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짓궂은 남자애들이 자신들을 놀리면 쫓아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학창시절에는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했다. 경기에만 나가면 이겼지만. 몬스터가 발생한 다음 사람들의 관심은 도퍼들에게 쏠렸고 스포츠는 상대적으로 시들해졌다.
그때 유일한 동성인 여자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변태들이 하도 노려서 매일매일 집까지 바래다줬다. 덕분에 뒷담화 하기 좋아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레즈라는 소문까지 났었다.
성인이 돼서는 도퍼 테스트를 받았다. 탱커 판정을 받았는데 능력은 쓸만해서 여기저기에 불려다녔다. 그때도 탱커로서 누군가의 앞에 서서 지켜주는 역할이었다.
덩치가 크다고.
강하다고.
탱커라고.
누군가를 지켜줬지만. 진심으로 고맙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외모 때문에 놀림 받기 일쑤였다.
‘어차피 놀림 받을 거 질릴 정도로 놀리게 해주지.’
처음에는 그런 치기로 시작했다. 이상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다녔다.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깎았다. 투박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도퍼들 사이에서 괴짜라고 소문이 금세 소문났다.
그렇게 멋대로 레이드나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레이드에 참가 못 하는 떨이들을 하나둘씩 추슬러서 함께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새 패거리가 생겼다. 모두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누님누님하면서 따라다니는 바람에 모두 동생같이만 느껴졌다.
오늘도 수지는 자기 패거리들을 이끌고 레이드를 했다. 그러던 중 뱀 몬스터에게 잡혀먹힌 뒤. 탈출하기 위해서 발광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하지만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괴로웠다. 그때 따뜻한 빛을 자신을 감싸면서 힘과 용기를 줬다. 그제야 겨우 눈을 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수지는 깜짝 놀랐다.
도퍼 유강현.
어제 인터넷 사이트에서부터 시비 걸었던 풋내기가 이 추악한 몬스터의 입안으로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
강현은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수지는 그 구원의 손길을 잡았다. 그러자 자신을 사지에서 구해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수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왜 이러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너한텐 이런 건 어울리지 않아!” 라고 소리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싶었다.
뱀에게서 겨우 탈출해서 숨을 돌리자마자 강현을 찾았다. 자신을 용감하게 구한 강현도 금방 탈출하려 하고 있었다. 수지는 부끄러움 반 기쁨 반으로 팔을 벌렸다.
‘그래. 여기서 저 사람을 구해주면 서로 빚진 건 없는 거야.’
그러면 자신도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하고 평정을 찾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현은 몬스터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른 뱀의 머리가 나타나 강현을 자신의 머리와 함께 삼켜 버린 거였다.
수지는 태양을 잃은 것 마냥 눈앞이 캄캄해졌다.
“으아아아아아!”
수지가 비명을 질렀다. 이미 자신이 경험한 지옥이었다. 레이드의 메인 탱커인 자신이 얼마 못 버티고 기절했다. 강현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어버렸을 터였다.
지금 강현은 노란 뱀 머리에 자신 대신 먹힌 채로 보라 뱀머리가 다시 먹어버려서 이중으로 먹혀버린 셈이었다.
“모두 정신 차리삼. 소화되기 전에 얼른 이놈 공격하셈”
수지는 주위를 독려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띄는 바위를 들고 뱀을 공격해보았지만. 끄덕하지 않았다.
‘제발...무사하기를...’
강현을 구하려다가 지쳐나가 떨어진 수지가 넋 놓은 표정으로 뱀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이 몬스터는 자기 자신을 이미 거의 반쯤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지는 자신의 무력함에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느님 제발 그를 구해주세요.’
수지 자신은 자신의 기사님이 악마와 싸워 이겨내기를 기도하는 레이디가 된 것만 같았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몬스터에게 무언가 변화가 느껴졌다. 이내 몬스터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한 걸까? 그 질문에 해답을 찾기도 전에 수지는 몬스터를 향해 다가갔다.
“괜찮으삼?”
다들 시커멓게 변한 몬스터에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수지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강현을 찾기 위해 몬스터를 한참 헤집었다. 다행히 몬스터의 중앙에 시커먼 물질을 뒤집어쓴 강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현은 정신을 잃은 채였지만 숨은 붙어있었다.
“여기 살아있삼! 힐러들 얼른 오셈!”
수지가 외쳤다. 그러자 힐러들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지는 강현을 들쳐 엎고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수지는 태어나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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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를 올리기위해 아침에 접속하자마자 깜짝 놀랬습니다.
추천과 소중한 원고료 쿠폰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이 많이 계시는데요.
이중에는 한번에 27장이나 주신분도 계시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거기다가 후원쿠폰이라는것도 처음 받아봤는데
넬렐레님께 10장이나 투척해주셨습니다.
선작,추천과 더불어 조회수도 예상치 못하게 급격하게 늘어나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앞으로도 지금처럼 성실하게 연재하는걸 목표로 열심히하겠습니다__)
ps. 코멘트나 쪽지로 조언해주시는 거는 빠짐없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바로 반영은 못하더라도 앞으로 집필하는데 참고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