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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붉은 하마 함수지(4)
붉은 악마.
유강현이 함수지를 처음 본 감상이었다. 붉게 염색한 투 블록 컷 머리. 새빨간 라이더 재킷. 그리고 그 재킷이 터질 듯 보여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육신.
타고 온 할리 데이비슨에서 내렸을 때 땅에 닿는 다리는 코끼리와 같았고, 얇은 티셔츠 안에 담겨 있는 역삼각형의 굴강한 상반신은 그 자체로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갑옷과 같았다.
그 생김새는 한 마리로 요약하자면 하마를 닮은 악마 베히모스같았다고 할까? 이 최강의 생물을 한낱 여자라는 틀 안에 가둬버리는 건 모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현피 하자며 자신감이 넘쳤는지 강현은 알 수 있었다. 이 시뻘건하마를 건드리면 아주 그냥 X되는 거다.
“함수지님. 이제 오시면 어떻게 해요? 다들 기다리시고 계시잖아요.”
“아아, 똥 싸느라 늦었삼.”
창백한 안색의 담당자가 부드럽게 나무랐지만, 수지는 태연하게 변이야기로 받아쳐다. 듣고 있던 모두 그 말에 온몸에 힘이 빠져 휘청했다. 특히 강현은 거의 쓰러질뻔했다.
‘거기다가 온라인상에서 쓰던 말투 그대로 쓰다니...’
썩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런데. 어제 자기가 쓰리잡한다는 놈은 안 왔삼?”
1시간이 넘게 늦은 주제에 모여있는 도퍼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본 함수지는 익숙한 얼굴밖에 없자.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은 순간 몸을 움츠렸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앞으로 나갔다.
‘잠깐. 내가 꿀릴게. 뭐 있어. 괜히 숨었다가 웃음거리만 될 텐데 당당히 나가자.’
“넌 머삼?”
무리에서 튀어나온 강현을 보고 수지가 인상을 썼다. 굵고 짙은 눈썹이 가운데로 모였다. 강현은 최대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유강현입니다. 그 원딜, 근딜, 탱커. 다중능력자입니다.”
“다중능력자라는 말은 첨들어보는뎀. 다중인격도 아니고.”
‘그야 지금 내가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하다 지어낸 거니.’
잠시 멍하니 강현을 바라보던 수지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강현의 어꺠를 툭 쳤다. 갑자기 맞은 강현은 몸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진짜 오다니 놀랐삼. 배짱은 인정해드림.”
“...네에.”
“그럼 현피 오케이인거임?”
“아뇨. 그냥 레이드하면 안될까요? 레이드 마친 후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안됨. 그동안 궁금해서 뒤짐. 약이 필요하면 드리겠삼.”
그렇게 말하며 수지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예거를 한 움큼 지어서 내밀었다. 얼핏 봐도 열 개는 넘어 보였다.
“어? 분명 아무리 돈을 내도 약을 한 알씩만 판다고 했는데. 1인당 한 알 이상 못 가지고 있는 게 규정이라고 ”
눈앞에 내밀어 진 십수 억을 보면서 중얼거리다가 옆에 있는 담당자를 쳐다봤다. 강현과 눈을 마주친 담당자를 고개를 휙 돌렸다.
‘어휴 담당자가 이 여자한테 완전히 휘둘리나 보네.’
강현은 일 처리를 칼같이 하는 전 담당자 채영이 새삼스레 그리웠다.
“자 너도 얼른 하나 먹으삼.”
약을 우걱우걱 씹어 삼키면서 수지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누님. 이런 녀석 신경 꺼요. 아깝잖아요.”
수지와 비슷한 라이더 재킷을 입은 녀석이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 보니 모여있는 인원 중의 대부분이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누가 끼어들라고 했삼?”
수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바닥을 휙 휘둘렀다. 그러자 말리러 나온 녀석이 찌그러진 종이처럼 날아갔다.
‘이 녀석 진심인가?’
쿨럭쿨럭 대고 있는 남자와 약을 내밀고 있는 손의 반대편 손을 휘휘 돌리고 있는 걸 보고 피할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약을 먹고 좀 어울려주면 1억이 굳는 셈이니까.’
강현은 결국 수지가 내미는 [ 예거 ]를 받아 삼켰다.
그와 동시에 쿵 하는 발을 굴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풍압이 느껴졌다. 수지가 그대로 몸을 날려 숄더 어택을 걸어온 것이다. 강현은 눈을 의심했다.
‘이대로는 압살당해 버릴 거야.’
정신이 번쩍 든 강현은 양손을 교차시켜서 [ 쉴드 ]를 썼다. 철구가 부딪혀 오는 거 같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자. 수지가 예상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현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했다. 수지는 왜 반격을 하지 않나? 살짝 고민했고, 강연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경직을 풀었다. 그런 다음 [ 파워차지 ]를 써서 밀어냈다.
의외의 반격에 균형을 잃은 수지가 뒤로 넘어질 뻔하다가 공중제비를 한 바퀴 깔끔하게 돈 뒤. 바닥에 착지했다.
‘이야 저게 가능하단 말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품 안에 넣어둔 BB탄 권총을 꺼냈쐈다. 슈터의 두 번째 스킬인 [ 명중률 강화 ]를 사용해서 수지 옆의 소나무를 향해 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BB탄이 부딪친 곳의 나무줄기를 깔끔하게 날렸다. 워낙에 빠른 속도라서 그 부분만 사라지고 원래부터 붙어있었던 냥 위에 있던 나무줄기가 아래에 턱 하니 떨어졌다.
그걸 보고 강현도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런 시대임에도 아직 총기 소지가 제한되어있어 대부분의 원딜들이 BB탄 총을 쓴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일 줄 몰랐다. 확실히 스피드건을 썼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쩌, 쩐다.”
“님도 저거 가능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소. 내가 7급인데 어림도 없어.”
“금방도 누님의 공격을 막고 몸으로 반격했잖아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야 나도 봤는데 가능한 거야?”
“이 사람이 그걸 보고도 묻는 거야?”
갤러리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자신이 강해 보인다는 걸 인식한 강현은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는 수지에게 말했다.
“더 하실 거예요?”
“...”
수지는 대답 대신 굳은 표정으로 노려봤다.
자신을 꿰뚫는듯한 시선에 강현은 긴장해 침이 절로 삼켜졌다. 천천히 강현에게 가까이 다가온 수지는 굳은 얼굴을 풀고 강현에게 어깨동무했다.
“좋아. 좋아. 완전 마음에 들었삼. 님 말대로 님 세가지 능력을 다 발취했삼.”
“그럼 다른 분들도 기다리시니까 이제 레이드나 하러 가죠.”
벌써 지친 기분이 들어서 푹신한 소파에라도 몸을 눕히고 싶었지만. 약도 받아먹었고 레이드를 어떻게 진행해야 했다.
“그래그래 알겠삼.”
강현의 말에 수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두른 어깨를 풀기는커녕 바짝 당겨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님 이름이 뭐랬삼? 님 완전 마음에 드는데 우리 친구 먹는게 어떠셈?”
‘절대 사양이다. 다시 보기도 두려운 얼굴인데 친구는 무슨.’
강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최대한 수지가 기분 상해하지 않을 말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친구는 잘 사귀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제가 좀...”
“아! 역시 그런 가염?”
강현의 변명을 큰 소리로 끊은 수지가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님은 이성 간이니까 친구는 무리라는 쪽인가 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닌데.’
불길함을 느끼고 이을 때, 수지가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럼 사귀는 걸로도 좋삼.”
설마 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되자. 강현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고, 필사적일 수 없을 우정의 소중함을 호소했다.
“...그러니까 치,.친구로 좋아요. 아니 친구가 딱 좋을 거 같네요.”
강현의 말에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던 수지가 강현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그럼 우리 친구 하는 거삼!”
“네.”
“친구끼리 왜 그러삼. 편하게 반말하삼.”
“그, 그래. 친구야.”
대답에 만족했는지. 수지가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던 도퍼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좋아 아기들아 우리 오늘도 한바탕해보자!”
“오우!”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
이 레이드팀은 꽤나 베테랑이었다.
강현을 포함해 총 11명이었는데, 처음 온 강현과 원딜러 한 명 빼고는 이곳에서 몇 번이나 같이 레이드를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딱 봐도 나름 체계가 잡혀있었다.
원래 레이드 팀이 10명 가까이 되면 포지션별 비율이 탱커2명. 원딜4명, 힐러4명 정도로 채우게 된다.
몬스터를 주로 상대하는 탱커와 평소 보조를 하다가 그 탱커가 기습을 받거나 치명상을 입게 되면 대타를 하는 서브탱커.
그리고 메인 탱커를 지원하는 힐러 3명과 서브 탱커 및 원딜이 다쳤을 때를 대비한 예비 힐러1명.
그 외의 인원을 원딜로 채우게 된다. 간혹 근접 딜러 한 명 정도가 파티에 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지네 팀은 포지션의 분배뿐만 아니라 진형도 갖추고 있었다. 중앙에 수지가 탱킹을 맡고 좌우에 절대적으로 방어에 전념하는 탱커 두 명. 그 사이사이에 근접딜러가 한 명씩 좌우 탱커에 붙어서 몬스터를 견제한다. 그렇게 최대한 방어적으로 데미지를 최소화해서 두 명뿐인 힐러의 부담을 덜었다.
그 탱커와 근딜이 이룬 방어벽 너머로 원딜이 안전하게 딜을 한다는 것이다.
이 진형은 일견 둔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곳에서의 레이드에는 너무나도 적합해 보였다.
이곳에는 각종 개구리 모습의 몬스터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비록 어떤 모습이든 대부분 F급이거나 F급에 못 미칠 정도의 몬스터였지만, 대량으로 모여있어서 조금씩 이동하면서 안전하게 사냥해 나갔다.
개구리들은 긴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두르면서 정면으로 쳐들어올 때는 탱커들에게 막혔다. 머리 위까지 높이 점프해서 오는 공격들은 근접딜러가 아래에서부터 공격해서 손쉽게 격퇴했다.
“레이드 처음이라고 하셨죠?”
한 두 시간쯤 레이드를 진행한 뒤에 중간 지점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지는 주변을 살피러 나갔다. 쉬고 있으려니 한 사내가 강현 쪽으로 말을 걸었다. 아까 수지의 현피를 막으려다가 날아간 녀석이 있었다.
“네에. 연수 때 했던 것 때고는 처음이네요.”
“저희 쪽에서 워낙에 레이드 하는 걸 독창적으로 하는 터라 다른 레이드 때에도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네요.”
사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보통 저 같은 근접딜러는 레이드에 참석하기 힘들 거든요. 그런데 그런 근접딜러가 2명이나 있다니. 부득이하게 이런 진형을 취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수지누님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레이드에 뛰고 하는 거지만요.”
“그래요?”
강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함수지 탱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정도로 따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곤 모르는 걸까?’
*****
“아무래도 이상함.”
밖을 정찰하고 온 수지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왜 그래?”
“오늘따라 유난히 몬스터가 안 나타나는 거임. 슬슬 이곳도 몬스터가 뜸해지기 시작하는 듯. 새로운 사냥터 알아보기 귀찮은뎀.”
수지는 꽤나 투덜거렸다. 하긴 이곳을 벗어나면 다른 곳에서 새 몬스터와 장소에 맞춰서 새로이 전술을 짜야 할 테니. 부담스러워 할법했다.
“자자. 어쨌든 이제 출발함.”
수지가 손바닥을 부딪치며 큰 소리로 이야기하자. 하나둘씩 일어나 다음 몬스터 사냥을 준비했다.
‘역시 몬스터가 적어졌어.’
레이들을 재개한 뒤 몬스터를 더 찾는다고 헤맸지만. 간혹 무리에 떨어져 있는 개구리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다.
“누님. 이대로 흩어져서 좀 더 찾아보는 게 어때요?”
“그래요. 그래.”
“...”
레이드 원들의 요청에 수지가 고민하고 있을 때. 수지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비쳤다. 그림자의 끝에서 창처럼 튀어나온 어금니가 햇빛이 반짝거렸다.
“수지짱!”
외치며 강현이 재빨리 그 그림자를 향해 비비탄을 발사했다. 그림자는 고통스러운 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림자의 정체가 겨우 드러났는데, 그 정체는 거대한 뱀 모양의 몬스터였다.
몬스터의 두께는 사람 키만 하고, 전체 길이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 난 괜찮심.”
겨우 몸을 추스른 수지가 탱킹을 위해서 몬스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때.
“위험해!”
수지의 뒤를 노리는 그림자를 본 강현이 외쳤다.
하지만.
수지가 대비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뱀머리가 나타나 수지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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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원고료쿠폰을 또 많은 분들디 보내주셨습니다.
2장 5장 13장 1장 12장 1장. 이렇게 보내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