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회: 3장. 붉은 하마 함수지 -- >
3장. 붉은 하마 함수지(3)
<유강현> 구라라니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인터넷상이라고 해도 상호 존중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소의 인성이 의심됩니다.
<수지짱> 인성? 임신공격하지 말고 분위기 파악 못 하면 닥눈삼이나 하고 오삼. 님이랑 레이드 안함.ㅉㅉㅉ
<유강현> 워워~ 흥분하지 마세요. 흥분하시니 오타나잖아요. 임신공격이라니.
<수지짱> 흥분 안했거든^^ 그러니까 꺼져줄래?^^
<유강현> 저기 말투가 바뀌셨는데요? 혹시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뇌수까지 떨리고 계시는 거 아니세요? 그리고 말끝마다 ^^이거 붙인다고 안 세 보거든요?^^
<수지짱> 너도 ^^쓰잖아. 네가 써도 안 세 보이거든?
<유강현> 그렇죠? 제 말이 맞죠?^^
여기까지 순식간에 키보드 배틀을 벌였다. 게시물의 조회 수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는 걸 보니까. 팝콘 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듯했다.
강현의 댓글 이후로 10분가량 수지짱의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수지짱이 도망쳤나 생각할 때쯤.
수지짱의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수지짱> 이 씹새같은. 좁밥새끼가 어디서 아가리 털어?
그 댓글은 보면서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 수지짱이란 이용자는 멘붕 상태가 됐다고 확실했다. 이제 욕설을 했다고 신고하면 자신의 깔끔한 승리였다.
애당초 게임 폐인으로 잔뼈가 굵었던 자기한테 겁 없이 덤비다니 가소로웠다. 기본적으로 게임 폐인이면 서브직업으로 키보드 워리어가 있고 대부분 고렙이다.
강현은 신고버튼을 눌러 욕설로 신고하려다가 멈칫했다. 한가지 간과한 게 떠올랐다. 키보드 배틀이라고 하면 어차피 손익을 떠나서 단순히 정신승리를 위한 거지만. 이 게시판은 달랐다.
괜히 여기에서 분란 종자나, 전투민족으로 찍히게 되면 앞으로 활동하기 불편해질 터였다. 어쩔 수 없이 강현은 신고 대신 좀 더 전투태세를 낮춘 상태에서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유강현> 욕설까지 하시는데, 제가 직접 레이드에 참여해서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보여드리면 어떨까요? 도퍼니까 능력으로 증면하면 되잖아요.
<수지짱> 오케이. 그러니까 현피 뜨자는 거지? 바라던 바다. 내일 꼭 나와봐 웃음거리로 만들어줄 테니까. ?
‘이 녀석 왜 이렇게 호전적이야?’
현피 뜨자는 말에 질린 강현이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봤다.
‘이런 녀석이 프로필 평점은 왜 이렇게 높은 거지? 혹시 불리한 건 삭제할 수 있는 거 아냐? 아니면 어울리는 패거리들이 있던가’
꺼림칙했지만 여기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약한 모습 보였다간 도퍼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술안주 소재로 회자할 터였다.
그리고 레이드에는 담당자도 동석하니까 문제를 크게 일으킬 수 없을 거였다. 게다가 이런 녀석은 현피 뜨자고 해놓고 막상 만나면 찍소리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돌파다.”
<유강현> 현피 뜨자는 건 아닙니다. 내일 만나면 오해가 풀리겠죠. 모임장소 알려주세요.
<수지짱> 내일 와서 빌어도 안 봐줄 테니까.ㅋ
강현은 다시 댓글에다 말끝마다 ^^대신 ㅋ 붙여도 안 세 보인다고 적으려 다가 간신히 참았다.
‘차라리 힐러 능력 익혀서 힐러로 참여하는 게 나았을까?’
게시판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한가하게 게임을 하기보다는 당장에 빚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바로 힐러능력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일단 1억이나 하는 비싼 [ 예거 ]를 소모하는 만큼 게임상에서 힐러 능력을 얻더라도 확인하는 건 레이드 후에 약효가 남아 있을 때 하는 게 좋았다.
댓글 다는 걸 멈추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지짱으로부터 쪽지가 왔다. 거기에는 장소와 일시가 간단하게 적혀있었다. 강현은 쪽지의 마지막 줄에 적혀있는 글을 보고 피식 웃었다.
“도망치지 마삼.”
‘조금 멘탈 회복은 한 모양이네...’
***
도퍼 사이트를 끈 다음. 강현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컨트롤 헬멧을 쓰고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 접속했다.
접속 후에 제일 처음 보이는 캐릭터 선택 창에는 강현이 만든 3개의 캐릭터가 있었다.
외유내강 ( Lv 10 / 직업 : 어태커 )
외유내강2 ( Lv 5 / 직업: 디펜더 )
백발백중 ( Lv 13 / 직업 : 슈터) )
순서대로-
레벨10의 어태커의 경우 근접딜러 7급의 도퍼 능력을.
레벨5의 디펜터의 경우 탱커 8급 도퍼 능력을.
레벨13의 슈터의 경우 원거리 딜러 5급 도퍼 능력을.
-가지게 해줬다.
슈터의 경우에는 다른 직업에 비해 레벨이 조금밖에 높지 않지만 높은 도퍼 능력을 가지게 해주는 건 게임상에서 슈터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레어 캐시아이템 [ 새총 ] 덕분이다. 즉.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의 효능이 실제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강현이 해야 하는 건 캐릭터 능력의 강화와 더불어서 좋은 능력을 갖춘 아이템을 확보하는 것이다.
추가로 확인해봐야 하는 건 기본적인 공격력과 방어력 증가 같은 능력 외에 특수한 능력의 아이템 효과도 실제로 적용되는가 하는 거였다.
그리고.
게시판에서 확인한 인기 포지션인 힐러의 능력을 얻는 거였다.
‘아마도 서포터 일까?’
어차피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중 남은 하나는 서포터 였다. 그 외에 테이머 라는 직업도 있었는데 아직 준비 중이라며 비활성화 되어 있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니까. 또 결제창이 떴다.
“에휴. 그래 다 뜯어가라 뜯어가. 대신 나도 이걸로 돈을 팍팍 벌 테니까.”
강현이 카드번호를 입력하면서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서포터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름은 한참 고민하다가 지었는데 [ 허준화타 ] 였다.
‘캐릭터 이름 짓는 게 제일 힘들어. 하긴 겜상에서만 쓰이면 되는 이름이니 아무거면 어때?’
기본적인 천 옷만 입고 있는 서포터 캐릭터를 선택해 이제는 지겹도록 익숙한 초기마을에 들어갔다.
마을 외곽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존으로 지급되는 막대기를 들고 미니 크랩을 쓰러트렸다. 간단하게 레벨2로 올린 다음에 [ 치유 ] 스킬을 배웠다.
몇 마리를 더 사냥해서 데미지를 입은 다음. 자신에게 힐을 써봤다. 치유되는 느낌이 현실에서 힐러에게 힐을 받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런 다음 주변에 사냥하고 있는 초보자 캐릭터에게도 힐을 해줬다. 그러자 강현의 서포터 캐릭 레벨이 3으로 올랐다.
‘힐을 해줘도 경험치가 오르나 보네.’
체력이 올라 어리둥절하고 있던 초보자는 강현의 캐릭터를 보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문제는... MP 소모가 너무 심해.’
치유 스킬을 썼을 경우 HP는 10 정도밖에 회복시켜주지 않는 반면에 MP 소모는 30이나 됐다. 이는 전체 MP의 1/3 정도. 반면에 회복포션외에 자연치유로 회복되는 MP 수치는 매우 낮았다.
‘쉴드 스킬의 경직도 그렇고. 게임에서 얻은 능력 중에 적어도 몇몇 스킬은 일반적인 도퍼의 능력에 비교해봤을 때 효율이 떨어지는 거 같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 화타허준 ] 캐릭터를 로그아웃했다. 이렇게 답답하게 플레이하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았다. 캐릭터 선택화면으로 돌아간 강현은 슈터 캐릭터를 선택했다.
아직 첫 번째 마을 퀘스트를 마치지 않았지만. 좀 더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 두 번째 마을로 향했다. 두 번째 마을에서 주로 보이는 몬스터들은 두 종류로 빅래빗(Big Rabbit) 과 빅터틀(Big Turtle) 이였다.
빅래빗는 그 이름 그대로 토끼처럼 생겼는데 그 덩치가 대형 개만 했다. 먼저 멀리서 플레이어를 관찰하고 있다가 이쪽이 공격을 가하면 빠른 몸놀림으로 회피하고 재빨리 다가와서 뒷발차기를 하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빅터틀도 마찬가지. 등껍질의 지름이 성인남성의 키만 했는데, 게임상에서 만나는 첫 번째 선공몹으로 플레이어를 보면 살글살금 다가와서 깨문다. 그전에 눈치채서 공격하면 등껍질에 숨어버린다.
몇 번의 사냥 후에 몬스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한 강현은 빅래빗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빅터틀 위주로 찾아서 사냥을 시작했다.
“이제 너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다.”
빅터틀이 향해 강현이 새총으로 공격하면. 깜짝 놀라서 등껍질에 숨어버리는데, 이어서 두세 번 공격을 가하면 그대로 등껍질에 깨어져 버리면서 죽어버렸다.
레벨에 맞지 않게 공격력이 뛰어난 아이템을 가진 강현에게 빅터틀 사냥은 말 그대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
‘흐흐흐. 이대로 광렙이다. 광렙업!’
강현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못하고 열심히 사냥했다. 몇 마리를 더 사냥했을까? 레벨업 직전에. 게임 안의 세계가 울리는 천둥 같은 소리가 강현의 머리통을 뒤흔들었다.
“오빠!”
황급히 컨트롤 헬멧을 벗으니까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현이가 있었다. 한 손에는 사과를 예쁘게 깎아온 접시가 들려있었다.
“아, 다현아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그걸 쓰고 뭐, 뭘 하길래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헤벌레 하고 있는 거야?“
강현은 다현이 말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 못 했다.
‘얼굴 붉히고 있는 건 자기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역시 그 성인 피시방에서 했던 걸 그런 야한걸... 하고 있었던 거야?”
‘엥? 야한 거라고?!’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 다현이 어떤 부분에서 착각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됐다.
“오해야 아까 말했듯이 거기서도 지금도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이라는 게임만 했을 뿐이야.”
“아...”
“알겠지?”
“으응... 하긴 오빠도 나한테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테니까. 나도 아직 남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오빠 나이도 나이고, 성욕도 있을 테니까.”
다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방을 나갔다.
이건 이해는 했으나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았다. 강현은 오빠로서 다현이 아직 남자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성욕이라는 말을 다 큰 여자애가 입에 담다니!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
다현이 나간 뒤의 방문에 그렇게 소리친 강현은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
다음 날 아침.
강현은 수지짱이 쪽지에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인천의 한 생태호수공원으로. 몬스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탓에 정부에서는 외벽을 쳐서 폐쇄했지만. 도퍼들에게는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원딜용 무기로 어떤 걸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근처 문구점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권총 모양의 BB탄 총을 하나 샀다가 도착지가 호수공원이라는 말이 기억나 소총 모양의 물총도 하나 더 사서 물을 채웠다.
연수 때 썼던 스피드건은 몬스터를 밀어내는 효과까지 있어서 유용했지만. 그 뒤에 채영이 가져가 버렸다. 그 스피드건의 가격과 함께 공격력은 직접 투사체가 발사되는 무기가 훨씬 월등할 거란 말에 강현은 그 무기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버스를 타고 호수에 도착하자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도퍼 유강현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서 “유강현이 누구야? 들어본 적 없는데?” 라든가 “아 그때 사이트에서 키배했던 그 녀석?” 이라든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나와서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레이드를 담당하게 된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아직 레이드 리더인 함수지님은 도착 전이세요. 5분 안에 도착하신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시각은 10시 5분 전으로 강현이 약속시각을 어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드 리더의 경우 담당자와 함께 집합시간 한 시간 전에는 미리 나와 있는 편이라고 강현은 들었다. 집합장소의 안전을 확인함과 동시에 도퍼들이 한곳에 뭉쳐있도록 통솔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까지와 놓고 화내면서 돌아가기도 그렇고. 당사자가 없는데 왜 늦었냐고 화풀이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 강현에겐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함수지님이라 하셨는데 혹시 이번 레이드 리더분이 여자인가요? 아무래도 이름이...”
강현의 물음에 담당자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그래도 레이드 리더를 하시는 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으신 분이니까요!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당자의 말에 그럭저럭 납득한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 무리의 맨 끝에 섰다.
결국, 수지짱은 인터넷상에서 입이 좀 험한 여자라는 걸로 생각하면 될듯했다. 그런 점이 매력 포인트가 되어서 실제로 레이드 했던 사람들이 매긴 프로필 평점도 높은 거겠지. 라며 추측했다.
‘아니면 연수 때 탱커 능력을 발휘하기 꺼렸던 은영처럼 탱커 능력을 발휘하면서 옷이 찢어져 버린다든가 하는 노출이 추가점을 준거일지도 모르지.’
며칠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금방 5분이 지나갔다.
그러나 10시가 되어서도 수지짱은 나타나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압박에 수지짱에게 연락을 취한 담당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뒤에 10분만 더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10분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10분 연장. 그다음에 20분 연장. 마지막으로 다시 30분을 한 다음.
11시 10분이 되서야. 새빨갛게 커스텀한 할리 데이비슨 한 대가 요란한 머플러 소리를 내면서 도착했다.
그러자 내내 죽을상이었던 담당자가 겨우 얼굴을 피고 맞이했다.
“함수지님!”
거기에서 내린 것은 여자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붉은 하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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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원고료 쿠폰을 한번에 10장을 투척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외에 2장씩 1장씩 주신 독자분들도 계셨는데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