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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11화 (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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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붉은 하마 함수지(1)

스르륵-

유일하게 채영의 몸을 가리고 있던 하얀 천이 바닥에 떨어졌다. 순백의 나신이 드러났음에도 채영은 조금의 부끄럼도 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하나의 예술품 같은 그녀의 모습을 흩트려드린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채영은 그녀답지 않게 가볍게 숨을 들이쉰 다음.

이중삼중으로 굳게 닫혀있는 문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권채영입니다. 입실을 요청합니다.”

그녀의 음성에 반응했는지 음성패턴 일치라는 텍스트가 문에 새겨졌다. 이어서 문 위쪽에서 빛이 나와 그녀의 얼굴을 훑은 다음 망막패턴을 스캔했다. 그녀의 나신까지 스캔하는 이중 삼중의 보안을 거친 다음에야.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새하얀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입구와 출구가 가려져 있어서 멸균실을 연상케 했다. 거기 중앙에 서자 소독액이 채연에게 뿌려지기 시작됐다. 그런 다음 세척과 건조가 이어졌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채영은 그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방에는 수십 개의 화면이 떠 있고, 그 중앙에는 각종 의료기기가 연결된 캡슐이 놓여있다.

캡슐 안에 있는 건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시큰둥하게 누워서 여러 개의 화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으로 다가간 채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대인. 존안을 뵙습니다.”

“존안은 무슨...”

남자아이는 몸을 일으켜 앉은 다음. 채영을 힐끗 보면서 손을 내저은 다음 귀를 파는 시늉을 했다. 채영이 알몸으로 있는 게 익숙한 듯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래.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특이체가 발생했다고?”

“네.”

채영이 대답함과 동시에 강현의 정보가 화면에 떠올렸다. 남자아이가 실없게 생긴 녀석이라고 자신의 감상을 중얼거릴 때 채영의 보고가 이어졌다.

“최근에 측정된 바로는 8급 탱커와 7급 근딜, 5급 원딜의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복합 능력자들이 두 가지 능력. 그것도 9에서 10급 능력으로 확인되는 바와 달리. 이례적입니다. 또한.”

큭.

채영의 보고를 어둠의 저편에서 비웃는 소리가 끼어들어 끊었다.

“겨우 복합 능력가지고 이 수선을 떤 거야? 그런 건 해외에도 잔뜩 있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중년의 여인이었다. 가슴을 강조한 딱 달라붙는 붉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몸매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대부인.”

채영은 여전히 꿇어앉은 채로 여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거 말 끊지 말고. 어서 계속해.”

남자아이가 답답한 듯 재촉하자. 채영이 허락을 구하듯 여인을 쳐다봤다. 할 수 없다는 듯이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채영이 말을 이어갔다.

“유강현은 처음부터 복합 능력자가 아니었습니다. 1차 테스트 때는 무능력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일 외부에서 접촉했을 당시엔 도퍼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2차 테스트를 실시. 측정결과 에너지 부여능력과 체내 에너지 활성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어렵게 말하지 말구. 근접딜러 능력이랑 탱커능력인거지?”

“네. 그리고 최근 도퍼 연수 중에서는 원딜 능력까지 확인되었습니다.”

남자아이는 채연에게 손을 내밀어 잠깐 기다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어 한참을 생각하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 채영에게 물었다.

“즉, 성장형이다?”

“네. 레이드를 반복한 능력자가 해당 능력이 강화되는 건 보고 된 바 있습니다만. 다른 능력이 계속해서 생기는 능력자. 그것도 후에 생기는 능력이 더욱 강해진 경우는 제가 알기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그래그래. 성장형이란 말이지.”

채영의 보고보다. 자신이 맞췄다는데 기쁜지. 남자아이는 연신 중얼거렸다.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여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신 채영에게 이야기했다.

“어쨌든. 좀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구나.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지. 원인을 파악하고,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까. 그 도퍼도 우리 손아귀에 넣어둘 수 있도록”

“네.”

“하긴 그 정도 몸으로는 무리일까?”

여인이 노골적인 시선으로 채영의 몸을 훑었다가 빙긋 웃었다. 자신의 풍만한 몸에 비한다면 이런 건 여자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구스럽습니다.”

채영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용건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흙 덩어리 사체에 대해서입니다만. 아직 용도가 성분분석이 끝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전부 구매하겠다고 압력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조율을 하려고 해도 워낙에 강압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몬스터의 사체의 처분 같은 것도 일일이 신경 써줘야 해? 지금 미국의 심기를 거슬릴 필요는 없잖아.”

“하오나...”

“네년이 주제를 모르고... 그만 나가 봐.”

채영은 수상한 미국의 동태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달라고 요청하려 했으나. 여인은 자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몸을 휙 돌렸다.

“그럼. 분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채영은 고개를 숙인 뒤 방에서 물러났다.

*****

“아가씨. 그러니까 우리 돈 언제 내놓을 거냐고!”

다현의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 소파. 냉장고 할 것 없이.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 스티커에는 하얀 글씨로 ‘압류’라고 적혀있었다.

그 안에서 덩치 좋고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들이 다현을 둘러싸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와서 독촉하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리고 압류딱지 붙은 거 보면 모르겠어요? 당장에 돈 없는 거 꼭 갚을 때니까 돌아가세요.”

윽박지르는 사내들에게 다현이는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그 모습에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키득거렸다.

“키야~ 형님. 요즘 아가씨 참 당돌하네요.”

“막내야. 요즘 세상이 다 그렇다. 빌려 갈 때는 굽실거리고, 받으러 오면 배 째라 한다. 법이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형님. 그러면 우리는 뭐 먹고 삽니까?”

“우리 애들 굶게 놔둘 수도 없고. 배 째라고 하면 배 째야지. 어쩔 수 없잖아. 착하고 예쁜 아가씨가 좀 이해해줘.”

“네?”

사내들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다현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자. 막내가 음흉한 웃음을 띠며 다현에게 다가왔다.

“이년이 말귀를 못 알아먹네. 돈 나올 구멍이 없으면. 네 구멍으로 갚으란 말이야.”

“꺅!”

막내가 다현의 손목을 잡아챘다. 놀란 다현이 비명을 지르면서 저항했지만. 우악스러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대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다현이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을 보고 반갑게 외쳤다. 도퍼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강현이었다. 다현이에게 주려고 사온 치킨을 한 손에 든 강현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금방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꼈다.

“이것들이. 다현이한테 안 비켜?!”

화가 머리끝까지 난 강현은 막무가내로 손에든 치킨을 막내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막내는 날아오는 치킨을 막기 위해서 다현을 놓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강현은 다현의 다른 쪽 팔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었다.

“제법이잖아. 막내가 당했네.”

“으악 젠장. 찝찝해.”

형님으로 보이는 사내가 재밌는 광경을 봤다는 듯이 낄낄 되며 웃었다. 그러고는 뒤쪽에 조용히 있던 사내 쪽으로 돌아봤다.

“둘째야 네가 손 좀 봐줘라.”

“네 형님.”

고개를 꾸벅 숙인 사내는 키가 2미터가 넘는 듯 강현보다 거의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다. 그뿐만 아니라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단단한 근육이 강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

“오빠...”

폭력적인 분위기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다현은 강현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반면에 강현은 크게 걱정 안 했다. 여차하면 [ 예거 ]를 먹어서 쓸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도퍼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곤란하지만. 자기방어로 사용하는 건 괜찮다고 연수 중에 들었다. 하지만 워낙에 고가여서 웬만하면 안 먹는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기도 했다.

‘그야. 이제 겨우 빚을 청산했으니.’

둘째는 왜소해 보이는 강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천천히 다가와서 주먹을 쥐었다.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면서 주먹을 내밀었다.

강현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주먹이 의외로 느리게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 보디블로가 강현의 복부에 정통으로 꽂혔다.

“웃.”

“오빠.”

순간 놀래서 몸을 움츠렸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현이 둘째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너무 솜 주먹 아냐?”

“이 자식이.”

둘째가 이번에는 강현의 턱을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강현은 끄덕하지 않았다. 되려 뻗은 주먹을 잡아 비틀었다. 둘째는 신음을 내며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크윽.”

“잠깐. 잠깐만!”

그때 형님이라는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 말에 강현이 손을 풀어줬다. 둘째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져다.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이라 불린 사내는 둘째는 쳐다보지도 않고, 강현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면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에이. 시발. 하필이면 이런데, 아니야. 우린 돈만 받으면 되지.”

혹시 미친 게 아닐까 걱정이 된 강현이 긴장을 풀지 않고 지켜보고 있으려니. 사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강현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휴우~ 거기 형씨. 도퍼요?”

강현은 깜짝 놀랐다.

‘내 얼굴에 도퍼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사내는 강현의 표정을 보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는지. 한껏 저자세를 취했다.

“도퍼인지 미리 알았으면 우리도 이렇게 안 나왔을 겁니다.”

“근데 어떻게 안 거지?”

“도퍼 하신 지 얼마 안 되나 봅니다? 그 예거라는 약. 몇 번 먹으면 그놈의 비싼 약을 안 먹더라도. 신체의 기능향상은 따라온답디다. 나 참 형편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군.’

들은 적 있다. 도퍼능력자가 되면 자연스레 군살이 빠지고 근육질이 되어 간다든가 혹은 피부가 깨끗해진다는 말도 있었다. 덕분에 티비쇼에 나오는 도퍼들의 경우 하나같이 선남선녀들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괴력이 생겨나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 정도면 거의 초인 아냐?’

“어쨌든, 도퍼라면 돈도 많을 텐데 대신 빚 갚는 건 일도 아니실 테니. 해결 좀 해주시죠. 어디까지나 저희도 채무조정 상담차 들렸을 뿐이니까요.”

“아냐. 오빠 나 납치하려고 했단 말야.”

“저 c8년이.”

다현이의 항변에. 막내가 나섰다. 강현이 굳은 표정으로 가로막자 막내가 주춤하면서 형님 쪽을 돌아봤다.

짝.

그러자 사내가 막내의 뺨을 때렸다.

“이 자식 가만있지 못해?”

“읔. 형님.”

이어서 다리까지 걷어차 버리자. 막내가 신음을 흘리면서 주저앉았다.

“시발. 누가 말하는데 끼어들라고 했어. 뒤질라고.”

사내는 온갖 욕설을 퍼부어가면서 막내를 쉴새 없이 걷어찼다.

다현이 그 모습에 질렸는지 자신의 옷깃을 세게 움켜쥐는 게 느껴졌다. 강현도 태연한척하고 있지만, 무척 당황했다. 몬스터와 몇 번 마주쳤지만 그건 강대한 상대에 대해서 도망치지 않고 대항하는 거였다. 이렇게 인간이 인간을 겁박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사내는 강현을 돌아봤다.

“확실히 우리가 더러운 놈들이긴 합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장사꾼 빚만 해결해준다면 두 번 다시 안 나타난다고 약속하죠. 아니면 죽이지 않는 한 끈질기게 달라붙을지도 모릅니다.”

정중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도퍼 통장에서 대출도 되니까 그냥 줘버리고 다시는 안 마주치는 게 좋았다.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약속만 지키면 말이다

강현이 자신의 한 몸만 건사하려면 원한을 사든 말든 죽을 때까지 패버리고 밖에 내쫓으면 되지만.

자신이 없을 때. 다현이 걱정이었다.

결심한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빚이 얼마인데?”

사내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이어서 정확한 금액을 이야기했다.

“3천.”

“꼴랑?”

예상보다 적은 금액에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겨우 그 돈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운 거란 말이야?’

지난주만 해도 수중에 몇만 원밖에 없었던 주제에. 약이 한 알에 1억. 레이드 한 번에 약값 빼고 몇천만 원씩 벌어들인 걸 경험한 탓인지. 금세 돈의 단위가 크게 안 느껴졌다.

어쨌든. 강현의 반응에 사내가 슬며시 웃으면서 품에서 카드리더기를 꺼냈다.

“그럼 여기서 바로 결제해주시죠.”

“...”

“안심하세요. 도퍼 돈을 불법으로 뜯어냈다가는 저희 쪽이 큰일 납니다.”

강현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채영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내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했다. 잠시 뒤 전화를 끊은 다음. 도퍼 카드를 꺼내서 긁어줬다.

사내는 금액을 확인한 다음에 카드리더기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가식적인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아가씨. 실례 많았소이다. 앞으로 눈에 안 뛸 테니 오늘 일은 이걸로 잊어주소. 둘째야. 막내 챙겨라.”

그 말을 남기고 사내들은 아파트를 나갔다.

다현은 긴장이 풀려는지 주저앉았지만. 강현은 왠지 원망하는 막내의 원망하는 눈초리가 마음에 걸렸다.

============================ 작품 후기 ============================

조아라에 문의결과 과금전사로는

77페스티벌에는 참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공모전에 도전한다고 쓰고있는 작품을 내팽겨칠수는 없어서 연재재개 했습니다.

절대 연중없이 끝까지 갑니다.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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