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 회: 2장. 도퍼 연수 -- >
2장. 도퍼 연수(3)
“이게 3천만 원짜리 무기라니...”
강현은 캐시템을 지르느라 비어있는 자신의 잔고와 자신의 손에 들여있는 [ 새총 ]을 보면서 허탈감을 느꼈다.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게임 안의 아이템이었기에 외형과 달리 아이템의 능력치는 확실히 높았다.
현재 강현의 캐릭터인 외유내강의 근력이 55인데 착용하고 있는 강철 검의 공격력 10을 더해도 몬스터에게 가할 수 있는 공격력은 겨우 65였다.
거기와 비교하면 이 3천만 원짜리 [ 새총 ]의 능력은.
[ 아이템 이름 : 새총 ]
[ 아이템 등급 : 레어 ]
[ 사용직업 : 슈터 ]
[ 무기레벨 : 30 ]
[ 착용가능 레벨 : X ]
[ 효능 : 공격력 +500 ( 무속성 데미지 ) ]
[ 기타 : 비행형 몬스터 공격시 명중 +30
본 아이템은 계정귀속 아이템으로
다른 계정에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근력을 더하면 무려 공격력이 555으로. 강철 검을 들었을 때보다 거의 8~9배 가까이 더 셌다.
하지만.
‘사용직업이 슈터라니... 거기다가 다른 계정에 거래불가. ’
강현의 게임 속 캐릭터 직업은 어태커. 결제 때문에 만들어본 다른 캐릭터의 직업도 디펜더였다.
원딜러는 안전하게 뒤에서 거들먹거린다는 인상이 강해서 꺼렸었다. 거기다 최근 들어 사사건건 악연으로 엮이는 성제만 생각해도. 같은 직업군을 선택하기는 싫었다.
“아니. 이것도 기회일 수도 있지.”
잘 생각해보면. 간신히 포지션을 갖춰서 진행하는 소규모 레이드에서는 오히려 포지션을 겹치면 자주 안 마주칠 수도 있을 터였다.
인터페이스 창의 시계를 보니 마지막 배의 출항시간까지는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강현의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슈터 캐릭터부터 만들자.”
새롭게 슈터 캐릭터 [ 원샷원킬 ]을 생성했다.
로딩이 끝나고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본 계정에서 미리 우편으로 보내놓은 [ 새총 ] 을 꺼내 장착했다.
“옳지. 바로 쓸 수 있는 건 좋네.”
강현은 퀘스트도 패스하고 얼른 마을 밖으로 뛰었다. 마을 외곽에 한가롭게 바글대고 있는 미니 크랩을 향해 새총을 쐈다.
당연하게도 새총에 날아온 조약돌 한 방에 미니 크랩이 폭사했다.
“오케이. 이정도면 최대한 빨리 레벨업 할 수 있겠어.”
그 뒤로 미니 크랩이 쓰러지고 난 다음의 돈을 주울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새총을 쐈다. 순식간에 외곽의 미니 크랩이 깡그리 사라졌다. 심지어는 몬스터의 리스폰 되자마자 쏴 죽여버려서 다른 초보유저들이 항의했다.
강현은 한 시간만 사냥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신 떨어진 아이템이랑 골드는 알아서 드시라고 했다. 투덜거리던 초보유저들은 몬스터를 퇴치한 유저의 우선권이 사라지기를 기다려서 빠짐없이 챙겨갔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만에 13레벨까지 올렸다.
저번에 밤새도록 해서 5레벨에서 10레벨까지밖에 못 올린 것에 비하면 정말로 폭풍 레벨업을 한 셈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양감이었다. 남들이 보면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지만. 강현 같은 골수 게이머에게는 이 수치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이 맛에 현질해서 게임 하지.’
한계까지 게임을 한 강현은 로그아웃한 뒤에 컨트롤 헬멧을 벗었다.
‘기껏 이렇게 고생했는데, 장비아이템의 효과가 게임 밖에서도 적용됐으면 좋겠네.’
어태커의 레벨을 올리고 근접딜러의 능력을 얻고,
디펜더의 레벨을 올리고 탱커의 능력을 얻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자신이 도퍼 능력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더는 다른 능력을 얻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제3의 능력을 얻고. 아이템의 능력까지 도퍼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바라는 건 과욕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왠지 안될 거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까지도 충분히 이상한 일 투성이었으니까.’
어쨌든. 모든 건 내일 레이드때 [ 예거 ]를 먹은 뒤에 밝혀질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서 금세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 안에는 성제가 미리 와서 앉아있었다.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고주망태가 되어있었다. 배가 출발해서 저녁 바닷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하자. 성제는 금세 토악질을 시작했다. 모른척하고 있으려니 험한 인상의 선원이 이쪽을 쳐다보고 안 그래도 깊게 팬 미간을 더욱 찌그러트렸다.
“아 제기랄. 배에 오바이트했네. 어이 거기 총각 일행이지? 좀 챙겨. 남자가 의리가 있어야지”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제를 선미 쪽으로 데려가서 등을 두들겼다.
‘이 자식은 끝까지 민폐네.’
연수 중에 태훈은 도퍼들은 가능한 술을 자제하라고 했다. 언제 호출되어 출동할지도 모르고, 과음하면 도퍼의 능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다.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다고 정수가 귀띔해줬지만. 굳이 귀한 능력을 얻었는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이 녀석은 도퍼인 걸로 그렇게 으스댄 주제에 왜 이렇게 막사는 걸까?’
성제가 연수 때 다른 도퍼 셋에게 덤벼들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어쨌거나 내일은 제대로 원딜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강현의 통장에는 오늘 지른 거까지 해서 마이너스 2억8천. 예거도 딱 한 알밖에 남지 않았다.
‘별일 없겠지?’
강현은 성제의 토사물을 집어삼키는 시커먼 바다를 물끄러미 보면서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여느 날처럼 숙소 앞에 집합했다. 태훈이 모두에게 며칠 전의 일도 있고 해서 오늘은 도퍼 한 명이 동행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지금 담당자인 채영이 데리러 갔으니까 조금만 더 대기하라고 한 다음에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확인한다며 숙소로 들어갔다.
“어제는 어디 다녀오셨어요?”
숙취 때문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성제가 투덜거리고 있었다가 정수가 강현에게 친근하게 말 거는 순간 끼어들었다.
“아아 이 자식 몰래 따라가 봤더니. 성인피시방 들어가던데? 하긴 며칠 동안 금딸했는지 물 빼고 싶었겠지.”
성제의 말에 움찔한 강현은 은영을 쳐다봤다. 여자 앞에서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은영은 정수 뒤로 몸을 숨기더니 쓰레기를 보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이런.. 아무리 관심이 없는 여자한테라도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면 상처받는다고.’
“강현씨가 그럴 분이 아니시죠.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겠죠.”
“아냐 이 녀석 얼마나 찾아다녔다고. 너도 봤어야 하는데. 크크. 안 그래?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거야?”
정수의 도움을 성제가 바로 걷어찬 다음에 강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강현은 이 녀석의 대갈통을 한 대 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걸. 간신히 참아넘겼다.
“가긴 갔는데... 잠깐 게임하려고 갔어.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하려면 컨트롤 헬멧이 필요한 데 그런데 밖에 없어서.”
“역시... 무슨 이유가 있으신 거였군요.”
“야.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도퍼가 그런 게임을 한다고? 트럭운전기사가 유로 트럭시뮬레이터 하는 소리 하고 있네.”
“그건...”
말문이 막힌 성제가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이 더 항변하려는 순간. 뒤에서 태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느그들은 모여있기만 하면 싸우노.”
태훈과 채영. 그리고 그 뒤로 편의점 사건 때 본 힐러가 있었다.
“힐러. 심지원이라고 합니다.”
***
지원이 간단하게 소개를 한 뒤. 모두는 장벽으로 향했다.
하지만 화제는 강현이 성인피시방 간 것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뀌질 않았다.
태훈은 성제의 고자질(?)을 듣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강현의 어깨를 탕탕 쳤다.
“도퍼도 남자아이가 그랄수도 있지. 그래도. 도퍼 체면이 있으니까. 담에는 물 좋은 곳으로 가라. 아니면 내가 데려가 줄까?”
“태훈형 저나 데려가 줘요. 저 녀석은 그런데 갈 돈도 없을걸요. 빚이 2억이 넘는데요.”
“아. 그랬나? 그런 거였다면 어쩔 수 없지.”
“저 녀석 이번 레이드 실패하면 큰일이겠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번 레이드 망치면 가만안둘끼다.”
“농담이에요. 형.”
강현은 태훈에게 알랑거리면서 계속해서 깐죽거리는 성제에게 질려버렸다. 상대할수록 나락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더러워서 피하지만. 언젠가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해주지.’
그렇게 노려보고는 자신이 삼류악당같이 느껴진 강현은 스스로 멋쩍어 쓴웃음을 지었다.
겨우 장벽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까. 어제처럼 다시 소환된 크라켄이 중앙에 서 있었다. 채영이 예의 그 스피드건처럼 생긴 몬스터 측정기를 크라켄에게 겨눴다.
“역시 어제처럼 D급입니다.”
“고래? 그람 아까 이야기해놓은 것처럼. 일단 포지션은 처음 레이드했던대로 가삐자. 은영이가 탱커서고, 성제가 원딜, 강현이 근딜, 정수가 힐러. 이렇게 가고. 지원이가 탱커랑 근딜에게 그때그때 힐줘서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보조해주고.”
“알겠습니다.”
태훈의 지시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은영도 실수 없이 예거를 먹고, 탱커로서 준비했다. 성제가 그 모습을 보고 삐익 휘파람을 불어 자극했지만. 은영은 무시하고 크라켄쪽으로 향했다. 크라켄도 이쪽을 눈치챘는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거 오늘은 좀 둔해 보이는 게 쉽겠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크라켄을 보면서 태훈이 그렇게 말했다. 강현이 보기에도 며칠 전에 마주쳤을 때와 달리 확연히 느린 스피드였다.
천천히 접근하던 은영은 너무 팀에 멀어지는 것 같았는지 멈춰 섰다.
그때.
은영의 발밑 모래 안쪽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미처 대비 못 한 은영은 그대로 하늘로 날아간 다음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하늘로 솟구친 모래가 바닥에 닿을 때쯤 그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정체는 강현이 제일 처음 직접 봤던 몬스터. 좌우 집게발의 크기가 다른 게임 속의 미니 크랩과 비슷하게 생긴 갑각류계 몬스터였다.
다만. 그 크기가 몇 배나 컸다.
“두 마리라꼬?!”
태훈이 경악했다. 채영이 얼른 몬스터 측정기를 가동해서 미니 크랩을 스캔했다. 결과는 금방 떴다.
“D급....D급이 두 마리.”
“야야. 뒤로 빼!”
태훈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늦었습니다..”
지원의 말대로 은영을 날려버린 미니 크랩은 재빠르게 강현들에게 달려들었다. 채영이 빠르게 지시를 이어갔다.
“바로 도퍼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태훈씨는 크라켄을 상대해주세요. 지원씨가 붙어서 힐해주시구요.”
“저 끼(게)는 우짤라고.”
태훈이 예거를 먹으면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크라켄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채영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태블릿 PC로 지원을 부른 다음.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씨. 탱 되겠어요?”
“어떻게든 해야죠. 잠깐이라면.”
강현은 눈앞의 미니 크랩을 올려다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어제 게임 안에서의 작은 미니 크랩과는 박력이 천지 차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탱커 레벨업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해줄걸.’
때늦은 후회였다.
다가온 미니 크랩이 먼저 집게발을 쳐들었다.
저번보다 몇 배나 더 큰 집게발이었다.
“에잇. 쉴드.”
방어에 성공했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고 분명 경직이 더욱 길어진 거였다.
‘이 담에 후속타가 분명 날아올 텐데.’
경계하고 있던 탓인지 작은 집게발이 다가오기 직전에 경직이 풀려서 살짝 몸을 틀어서 데미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절할 만큼 심한 고통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바로 정수의 힐이 날아와 한결 나아졌다. 확실히 여덟 개의 다리로 파상공세를 펼치는 크라켄에 비해서 하나하나 무겁지만 틈을 주고 공격해오는 미니 크랩 쪽이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었다. 채영의 순간적인 판단을 속으로 칭찬하며 강현은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그 사이 정수의 힐이 한 번 더 들어왔다. 이정도라면 완치는 아니었지만. 추가로 힐이 조금만 더 들어온다면 작은 집게발의 공격을 한번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힐.”
채영의 손에서 힐이 나와서 저 멀리 모래사장 쪽으로 사라졌다.
“채영씨 힐러였나요? 강현씨한테 힐 좀 더 보내주세요.”
정수가 다급한 말투로 요청했지만. 채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밖에 못써요. 그보다 성제 원딜. 어서 공격해서 조금이라도 저지하세요.”
“나, 난. 저쪽에 도와주러 갈 테니까.”
공격도 안 하고 계속 눈치를 보던 성제는 이쪽의 상황이 아슬아슬해 보이자. 크라켄을 상대하고 있던 태훈들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젠장. 저 새끼...”
강현은 성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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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서버 문제로 다시 올리네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