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회: 2장. 도퍼 연수 -- >
2장. 도퍼 연수(2)
“뭐라고?”
강현이 눈썹을 치켜떴다.
“왜?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저런 근육질 여자를 누가 좋아한다고 아무리 도퍼라고 그렇지. 누가 좋아하겠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성제가 들으라며 떠드는 소리에 은영이 고개를 숙였다. 다들 성제의 어이없는 소리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교관인 태훈과 담당자인 채영은 둘이서 회의할 게 있다고 멀리 떨어있던 참이었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자 더욱 의기양양해진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어제 손 안 댄 게 다행이지 뭐야?”
“그만하시죠.”
참다못한 정수가 성제의 어깨를 잡았다. 즉각 뿌리친 성제는 찰칵하며 지포 라이터를 켰다. 거기서 작은 불길이 일어나서 성제의 손바닥에 옮겨왔다.
“네가 무슨 그 여자 애인이야 뭐야? 덤비게 응?”
“그건...”
쉽게 대답 못 하는 정수에게 강현이 가세했다.
“됐으니까 그만해. 성제 네가 말이 심했잖아.”
“이야 시다바리들이 편먹고 덤비려고? 그런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알아?”
막 나가는 성제를 보고 모두 기가 막혔다. 그래도 눈앞의 세 사람 모두 도퍼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할까?
다른 사람이 이제 어리둥절해 있을 때 결국 성제는 선을 넘고 말았다.
“역시 전에 편의점 알바가 죽여줬는데 그에 비해 네 동생은 완전 진흙 범벅이 돼서 꼴사납더라. 질질 짜면서 구해달라. 어휴 여자가 그게 뭐야. 크크.”
“이 새끼가 죽으려고.”
성제가 자신의 동생까지 끌어들여서 모욕하는 말을 하자 강현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성제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성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염을 내뿜었다. 그때 태훈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막았다. 어느새 약을 먹었는지 몸이 부풀어 있었다.
“느그 그만 몬하나? 누가 도퍼끼리 싸우라고 했노? 이번 연수받는 애들 왜 다 이 모양이고 엉?”
노도 같은 꾸지람에 강현이 고개를 숙였다. 억울했지만, 이곳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게 바로 도퍼가 다른 도퍼를 공격하지 말라는 거였다. 도퍼 자격을 몰수당할 뻔 아니라. 정부에서 해당 도퍼에게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 예거 ] 판매를 금지한다고 들었다.
“담당자가 몬봐서 다행이지. 채영씨한테 걸리면 얄짤없데이.”
“어디 가셨나요?”
잠자코 있던 은영이 물었다. 혹시라도 이 무인도에 자기 혼자 남게 된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뭐 가지러 간다고 잠깐 육지로 들어간다카더라.”
“그런...”
은영이 고개를 떨궜다.
“우짰든 내일 레이드 한 번만 더 측정하면 해산하니까. 그때까지 문제 일으키지 마라이. 그때는 내 진짜 가만 안 둘 테니까.”
그렇게 으름장을 놓은 태훈은 성제와 강현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번 약값은 느그 둘한테 청구할끼다 그렇게 알아라.”
그 말에 강현과 성제는 서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
다음 날. 오전.
곧 채영이 돌아온다기에 장벽으로 출발하기 전에 모두 숙소 앞에서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어제 일 이후로 다들 서먹해져서 은영이 더러워진 트레이닝복을 세탁해서 정수에게 돌려준 것 빼고는 서로 방에 틀어박혀서 개인행동만 했었다.
“이기야원. 연수하는 아~들끼리는 보통 친해지는 구만 느그들은 와이리 말이 없노?”
이렇게 태훈이 투덜거렸지만, 다들 말수가 없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채영이 헬기를 타고 왔다. 도착하자마자 채영이 어제 소비한 [ 예거 ]를 보충해줬다. 그런 다음 다들 장벽 쪽으로 이동했다.
‘저건 뭐지?’
강현은 채영이 헬기에서 내릴 때부터 손에 들려있는 박스가 신경 쓰였다. 그 박스안 물건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장벽 안쪽으로 이동하니 어제처럼 미니 크라켄이 있었다. 그걸 보고 태훈이 연수생들을 준비시켰다.
“조기 몬스터 나왔네. 다들 [ 예거 ] 묵고 준비하그라.”
“잠시만요.”
태훈의 지시로 다들 예거를 꺼내고 있을 때, 채영이 막았다. 황급히 들고온 박스에서 스피드 건 같은 걸 꺼냈다. 그리고 미니 크라켄에게 겨누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지루했는지 성제가 다시 은영에게 접근해서 농을 치기 시작했다.
“오늘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 보겠네. 동영상이라도 찍어둘까.”
“하지 마세요. 앗.”
갑자기 비명을 지른 은영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모래를 헤집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수가 다가왔다.
“왜...왜이렇게 안보이지.”
“왜 그래요?”
“떨어트렸어요....”
정수를 올려다보는 은영의 안색이 새파랬다. 은영의 말을 듣는 정수와 강현의 안색도 새파랗게 변했다.
“...예거를 잃어버린 거 같아요.”
정수와 강현도 쭈그려 앉아서 예거를 찾기 시작했다. 성제는 그 모습을 내려가 보고 비웃었다.
“어이쿠 병신들.”
“너 때문에 잃어버렸잖아.”
“내가 뭐했다고~”
어제답지 않게 악을 쓰는 은영이었지만, 성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가 미니 크라켄 쪽을 쳐다봤다.
‘왠지 어제보다 큰 거 같은데...기분 탓인가?’
그때 측정을 마쳤는지 미니 크라켄을 향하던 스피드건을 내린 채영이 말했다.
“이번에 소환된 크라켄은 D급입니다. 일단 물러나세요. 지원부대 불러서 처리합니다.”
그 말을 듣고 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있으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겠지만. 연수 중에는 레이드에 예정 외의 일이 벌어지면 무조건 철수하게 되어있었다. 귀한 도퍼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때 이쪽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크라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눈치챈 건 성제였다.
“저거 이쪽으로 오는데요.”
“뭐?”
무슨 소리 하느냐며 고개를 돌린 태훈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된 거야? 거리도 충분히 두고 먼저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은영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어서 가자! 거기서들 뭐해.”
“은영씨.”
“도망쳐요.”
강현은 벌떡 일어났다. 정수도 은영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하지만 은영은 예거를 찾느라 정신이 나간 듯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영부영할 때 코앞까지 다가온 크라켄이 제일 가까운 다리를 뻗어왔다. 목표는 앉아있는 은영. 재빨리 강현이 예거를 먹고 은영의 앞을 막아섰다.
“쉴드!”
겨우 공격을 막았지만. 금방 다른 다리가 강현의 옆구리를 휘갈겼다. 강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비키라!”
정수가 뒤늦게 힐을 주려고 할 때. 어느새 예거를 먹고 다가온 태훈이 정수의 옷깃을 잡아 뒤로 내팽개치고 은영도 번쩍 들어 뒤로 던졌다. 그리고 강현을 발로 세게 걷어차서 멀리 떨어트렸다. 강현은 한참을 모래사장에서 구르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뭐야 저 녀석 탱커 능력도 있다며 저것도 못 버텨?”
안전하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제가 기절한 강현을 비웃었다.
그와 별개로 크라켄의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한 태훈은 정수에게 자신에게 힐을 집중하도록 하고, 성제에게 공격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금세 레이드가 개시됐다.
레이드는 안정적이었다. 레이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태훈에게 힐을 보내던 정수와 오랫동안 불길을 내뿜어야 했던 성제가 힘들어하던 것 빼곤 말이다.
두 시간 가까이 레이드를 벌인 다음에 크라켄이 쓰러졌다.
***
강현이 정신을 차린 곳은 숙소의 휴게실이었다. 그곳에는 채영과 은영, 그리고 정수가 있었는데. 정수는 강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계속 힐을 주고 있던 터라 얼굴에 피로함이 가득했다.
강현이 몸을 일으켜 앉자. 채영은 늘 들고 다니는 태블릿 PC로 이것저것 터치해가면서 강현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연수 중 두 번의 레이드를 거친 후에 등급을 확정해드립니다. 이는 앞으로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다른 도퍼들과 팀을 짜게 될 때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정부 공인이니까요.”
하지만 하고 숨을 고른 채영은 옆에 있던 은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배은영 도퍼와 유강현 도퍼는 이번 레이드에는 참여하지 못한 걸로 처리되기 때문에. 한 번 더 연수 레이드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다른 분들도 도와주신다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런데 레이드에 참여하지 못한 걸로 한다면...정산은?”
“당연히 분배되는 것도 없습니다.
채영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푸욱 숙였다. 마이너스 2억이었던 빚을 어제 레이드로 겨우 1억 5천으로 줄였었다. 하지만 이번에 예거를 먹고도 정산을 받지 못한다면 빚이 2억 5천이 되는 셈이었다.
‘이거 도퍼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버리네...’
“죄송해요...저 때문에.”
“...아닙니다.”
은영의 사과를 쓴웃음을 지으며 받았다. 안색이 나쁜 정수가 무언가 생각난 듯 채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크라켄은 어떻게 된 건가요? 분명 D급이라고 하셨죠?”
“네에. 원래 이곳은 F에서 최대 E급 정도의 크라켄이 하루에 한 번씩 나타나는 곳이었습니다만. 그저께 왔을 때 E급치고는 조금 더 강력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몬스터 등급측정기를 본국에서 가지고 왔었는데. 갑자기 D급이 나타날 줄 몰랐습니다. 확실히 예상 밖이었어요.”
“아까 가지고 있었던 게 그거였군요.”
강현은 아까 채영이 들고 있던 스피드건 모양의 측정기를 떠올렸다.
“어쨌든 그것 때문에 내일은 국가 도퍼들이 섬에서 몇 가지 테스트하기로 했으니까. 여러분들은 하루 대기하시게 됩니다.”
“네? 종일 숙소에 있어야 되나요?”
은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내일 마침 인천으로 가는 배편도 있다고 하니까 잠깐 다녀오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갔다 오겠습니다.”
“강현씨는 숙소에서 쉬시는 게...”
강현이 배를 탄다고 하자 정수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강현이 보기에는 지금 여기서 제일 안정을 취해야 될 거 같은 사람은 정수였다. 파리한 얼굴에 입술까지 바짝 말라있었다.
채영을 보고 강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남자가 엄살떨면 안 되겠죠? 안 그래요 담당자님?”
“그건 그러네요.”
강현은 채영이 자신을 병원에서 끌고 나올 때의 상황에 빗대어 위트있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채영은 그 말 그대로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음날.
배를 타고 나온 강현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피시방이었다. 피시방은 많았지만, 강현이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을 하기 위해 컨트롤 헬멧을 갖추고 있는 피시방은 찾기가 힘들었다.
겨우 찾은 곳은 살 색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누나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어있는 지하의 성인 피시방이었다. 컨트롤 헬멧을 통해 성인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어있는 곳이었다. 강현은 찝찝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이 엿볼 수 없도록 폐쇄형 룸식으로 되어있었다. 카드를 한 장 받아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젠장.”
컴퓨터 안에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게임이 깔렸지 않았다. 초저녁에 마지막 배편이 있는 걸 생각하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게임다운로드를 건 다음에 심심했던 강현은 컴퓨터 하드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심심한데 뭐 재밌는 거라도 있나 볼까?”
***
“이것들 완전 돈독 올랐네.”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 접속한 강현은 혀를 찼다.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캐시 아이템 광고가 온통 화면을 뒤덮은 것이다.
‘무료게임이라고 해놓고서는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결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행성 캐시아이템까지 팔다니.’
사행성 캐시아이템의 이름은 몬스터 코어. 실제로 레이드시 몬스터가 주는 코어를 귀엽게 데포르메 해뒀는데, 이걸 사서 부수면 그 안에서 회복약부터 최대로는 레어무기와 방어구까지 쏟아낸다는 것이다. 코어는 개당 만 원이나 했다.
강현은 게임상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강해진 만큼. 예거 약을 먹었을 때 도퍼의 능력도 강화되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장비로 더해진 능력치도 외부에서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실험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몇 번이나 생각해다.
‘한번 까볼까?’
어차피 마지막 배편이 출발할 때까지 채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 일반적인 플레이를 해서 레벨업은 힘들어 보였기에 이번에 나온 캐시템이나 까보기로 했다.
몇 시간 뒤.
“드디어 떴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디지털 통장 겸 카드인 도퍼자격증으로 결제해 몬스터 코어를 몇백몇천개나 샀다. 지겹도록 깠지만 나오는 건 대부분 포션이나 조금 잘 나온다고 해봤자 가끔 게임상의 저렙 몬스터가 주는 장비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남자답게 포기하지 않고 질러대던 중에 드디어 레어 무기 아이템이 뜬 것이다. 이 무기 하나만 있으면 앞으로 30레벨까지 사냥은 무난할 것이었다. 30레벨 때의 보스몬스터가 굉장히 낮은 확률로 드랍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레어무기는 찬란한 빛을 발하며 강현의 캐릭터 어태커 [ 외유내강 ] 앞에 있었다. 거기에 손을 뻗자 빛이 잦아들면서 무기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원거리’ 무기 [ 새총 ]이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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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성 캐시템 지르는 건 통장의 건강에 해롭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