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 회: 2장. 도퍼 연수 -- >
2장. 도퍼 연수(1)
이틀 뒤.
강현이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채영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도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간단한 연수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강현님도 받으실 거죠?”
“받아야죠. 퇴원하면 바로 받을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채영이 병실을 나갔다.
강현은 다시 병원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며칠만 더 쉬었다가 퇴원 후에 얼른 연수를 받고 도퍼로 활동해 돈을 벌 생각이었다. 돈을 벌면 다현의 학자금 대출부터 싹 갚은 다음, 오토바이를 살까? 아니면 자동차를 먼저 뽑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채영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30분이 채 안 지났을까? 강현에게 퇴원 수속을 마쳤으니 나가자며 병원 밖으로 끌고 나왔다.
강현은 아직 전신이 쑤신다고 항변했다가 채영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도퍼가 되면 회복능력도 꽤 향상되니까 남자가 엄살떨지 마세요.”
엄살떨지 말란 여자의 말에 어떤 남자가 군소리할 수 있을까?
병원 앞에는 검은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인천 월미도 선착장으로 갔다가 거기서 배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무인도에 도착해다.
그 사이에 다현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퇴원했다고 스피커가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강현은 겨우 치킨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섬에는 익숙한 얼굴의 도퍼 두 명과 강현처럼 끌려온 듯 어리둥절한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도퍼 두 명 중 한 명은 편의점 사건 때 강현을 구해줬었던 탱커 길태훈이었다. 태훈은 가벼워 보이는 점퍼를 걸치고 있었는데, 얼핏 봐도 처음 봤을 때보다 왜소해 보였다.
“오. 니 많이 건강해졌네.”
“도와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현은 진심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때 강현의 머리 위로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얼마나 귀찮았는데, 너무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거 아냐? 안 그래요 태훈형?”
고개를 들으니까 금발 양아치 이성제가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현은 기분이 더러웠지만. 성제도 자기를 구조하는 데 힘을 보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성제를 향해서도 고개를 가볍게 꾸벅해서 인사를 했다.
“이번 연수 때 교관을 맡게 된 길태훈이다. 성제 니도 연수생이니까 저쪽으로 가라. 다들 인사 나누고.”
“네~ 형.”
성제가 가볍게 대답을 하면서 강현과 연수생들 두 명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일부러 제일 우측에 있던 한 명뿐인 여자연수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강현은 편의점에서 설소유한테 치근덕치근덕 되던 모습이 떠올라서 인상을 찌푸렸다.
연수생 중에 조용히 있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이어서 하나둘씩 소개를 이어갔다.
“김정수. 힐러입니다.”
“탱커... 배은영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난 원딜. 이성제님이라고 불러줘.”
김정수는 안경을 쓰고 머리를 6대4 가르마를 한 범생 스타일이었다. 아래위로 맞춰 입은 트레이닝복은 주름도 별로 안 보이는 게 딱 봐도 처음 입는 것처럼 보였다.
배은영은 머리를 뒤로 묶고 헐렁한 후드티에 달라붙는 7부 바지를 입었는데, 여대생이 아침 조깅 하러 나온 모습이었다.
성제는 늘 그렇든 화려한 무늬가 잔뜩있는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도 새로 했는지 지저분한 금발이 다시 염색해 깔끔하고 반짝이는 금발로 바뀌어있었다.
“유강현입니다. 포지션은 근접딜러와 탱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현의 말에 정수와 은영이 수군덕거렸다. 두 가지 능력을 갖췄을 때는 둘 다 수치가 낮은 경우가 많아서 도퍼로 활동하는 사람은 여태까진 없었다. 성제만 “그래 봤자” 라며 투덜거리면서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현까지 소개를 마치자. 태훈이 대화를 이어받았다.
“좋아. 다들 친하게 지내라. 앞으로 어떻게 팀을 짜서 활동하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숙소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몬스터 잡으러 출발한다.”
“숙소는 이쪽입니다.”
채영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바로 앞의 건물로 향했다.
***
숙소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연수에 자주 사용되는지 무인도에 있는 건물치고는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공짜였다.
온천탕까지 있어서 강현은 잠깐 들어갔다가 몸을 덥히고 나왔다. 휴게실 의자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홀짝이고 있으려니. 아까 힐러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김정수가 다가왔다.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 소개하실 때 근접딜러와 탱커의 라고 하셨는데 혹시 몇 가지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두가지...인데요.”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정수가 굳은 얼굴을 풀었다.
“두가지 이상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포지션에 설만큼 능력이 크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요. 워낙에 드문 도퍼 능력자시라서 혹시 원딜의 능력도 가지고 계신가 했습니다.”
강현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기가 게임을 통해서 다른 능력을 더 얻을 수 있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시간만 있었으면 연수 오기 전에 게임을 좀 더 해서 능력을 강화하거나 다른 직업을 선택해서 능력이 추가되는지 실험했을 터였다.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갑자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꺄아”
찢어지는 비명이었다.
놀라서 온천탕 쪽으로 뛰어가니 여탕 쪽에서 남자 말소리가 들렸다. 강현과 정수가 서로 쳐다보고 냅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 정말.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탈의실 입구에서 성제가 짜증 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은영이 주저앉아있었다. 은영은 옷을 벗는 중이었는지 수건 하나만 손에 든 채로 알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정수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 나도 씻을까 해서 들어왔는데, 질색하면서 소란피우잖아. 나 참.”
성제가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거 보고 열 받은 강현이 소리를 질렀다.
“여긴 여탕이잖아!”
“혼탕인 줄 알았지. 그래도 앞으로 같이 싸워나갈 전우인데. 그렇게 난리 칠 건 없잖아. 오히려 이런 우연 속에서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겠어? 뭐 보니까 볼 것도 별로 없구먼.”
“이 자식이.”
강현이 성제에게 덤벼들려고 할 때 뒤에서 여자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요?”
돌아보니 채영이 서 있었다. 생각해보니 여탕 안에 남자 셋이 떡하니 서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앞에 은영이 알몸으로 쭈그려 앉아서 무서워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성제랑 같이 엮여서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식은땀이 흘렀다.
“담당자님... 이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여성용이니까 나가주시죠.”
변명하려고 했지만, 채영은 신경 안 쓴다는 듯 나가달라고 했다.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성제한테도 눈치를 줘서 바로 나가려고 할 때.
채영은 바로 앞의 캐비닛 문을 열더니 옷을 훌러덩 벗기 시작했다. 뜨악. 강현과 정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 여자 남자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잖아.
항상 방어력 높은 정장을 갖춰 입고 있어서 미처 눈치 못 챘지만. 운동으로 단련하고 있는지 전신에 군산이 없고 늘씬했다. 형광등 아래에 비친 하얀 피부는 매끄럽게 빛났다. 압권이었던 건 맨살이었을 텐데 코르셋으로 죄어 놓은듯한 가느다란 허리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바짝 올라간 둔부였다.
“담당자 화끈한 게 내 취향인걸?”
“자자 나가죠.”
결국. 먼저 정신을 차린 정수가 끝까지 버티는 성제를 여탕밖으로 밀어냈다.
***
다음 날 아침.
교관과 담당자 연수생들 모두 모여 뒤 숙소 반대편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어제 일때문인지 교관과 담당자가 연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외에는 서로간에 대화가 없었다.
한참을 빙 둘러서 해안가에 도착하자. 제일 눈에 들어오는 건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여기는?”
“연수장입니다. 통제 가능한 몬스터가 주기적으로 이쪽에서 발생하는 걸 확인한 뒤에 가둬 놓기 위해 만들어둔 곳입니다.”
강현은 티비쇼에 나오는 몬스터 레이드도 대부분 이렇게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찍는다는 소문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준비됐다네요. 들어갑시다.”
채영이 어디론가 전화를 마친 다음.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보라색 문어 모양의 몬스터 한 마리가 중앙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 몬스터를 본 채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
“와 그라노?”
담당자에게 확인을 받고 레이드를 시작하려고 했던 교관 태훈은 보기 드문 채영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채영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몬스터의 정보를 알려줬다.
“아닙니다. E급 몬스터. 미니크라켄입니다.”
“좋아 다들 [ 예거 ] 먹고, 준비해.”
“네.”
태훈의 말에 다들 예거를 삼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힐로인 정수는 별달리 준비할 게 없었다. 원딜인 성제는 불길을 내지를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강현은 출발할 때 무기가 없다는 말에 채영이 빌려준 목검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은영은 준비는커녕 예거를 꺼내 들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까이 있던 정수가 물었다.
“은영씨 왜 그러세요?”
“저기 탱커를 다른 분이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그게...남자분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는 은영을 보고 강현은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상황이 지연되자 채연이 나섰다.
“은영씨 연수는 받으셔야죠.”
“원래 연수도 여자끼리 한다고 들었는데...”
“인원이 많으면 성별로 나눠서 편성하긴 합니다만.”
“그럼 전 다음에 받을게요.”
딱 잘라서 말하는 은영을 보고, 다들 난감해했다. 이미 다들 예거까지 먹은 다음이었다. 눈앞의 몬스터를 못 잡을 경우에는 1억을 날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니 지금 장난치나. 탱커가 몬스터 앞에두고 도망친다꼬? 탱커이름에 먹칠할끼가? 니 레이드앞으로 안할끼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태훈이 못 참겠다는 듯 화를 냈다. 그 말에 은영이 움찔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들 딴청을 피웠다. 은영이 탱커를 안 한다면 교관으로 온 태훈이나 정 안될 경우 강현이 해야 할 판이었다. 강현은 자신이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태훈이 저렇게 화내고 있는데 눈치 없이 끼어서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나설 분위기도 아니었다.
결국, 태훈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은영이 한숨을 길게 내쉰 후 [ 예거 ]를 삼켰다.
꿀꺽하는 소리가 들렸다.
10초가 지났을까?
은영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헐크처럼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옷 아래에 선명한 근육 모습을 드러냈다. 꽉 끼는 티셔츠를 입은 남자 헬스선수처럼 보였다.
‘이것 때문에 여자 탱커의 경우. 도퍼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
그 모습을 보고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외모의 신경 많이 쓰는 여자의 경우 고려할만한 중요한 요소긴 했다. 강현이 탱커를 안 하려고 했던 것도 다현이가 [ 몬스터 레이드 ] 쇼를 얼핏 보더니만 최상급의 탱커중에 한 사람인 배민상 탱커를 보고 “저런 근육 징그러워서 싫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레이드 자체는 싱겁게 끝났다.
태훈의 지시에 따라 은영이 미니 크랑켄의 주의를 끌면서 공격을 버티고, 성제가 뒤에서 끊임없이 화염을 쏘아댔다. 그 와중에 강현은 목도로 성제 쪽으로 향하는 크랑켄의 다리를 공격해서 은영이 지친 기색을 보이기만 하면 정수의 힐이 날아가 은영을 치료했다. 이렇게 30분가량의 전투 뒤. 머리가 시커멓게 그을린 미니크랑켄은 쓰러졌다.
코어와 사체는 잠시 뒤 정부 인원이 와서 회수한다고 한다. 채영이 체크해 알려준 정산액은 대략 1인당 1억 5천만 원이었다.
금액을 듣고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미니크랑켄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머리며 옷이 엉망이 된 은영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정수가 자신의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서 은영의 어깨에 올려줬다. 강현은 범생처럼 보이던 정수가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과감한 짓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더러워질 텐데...”
“아니에요. 은영씨가 제일 고생하신걸요.”
“정수씨도요.. 그나저나 얼른 샤워하고 싶네요...”
은영이 얼굴을 붉히면서 정수의 체온이 느껴지는 상의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때 성제가 훈훈한 분위기를 깨는 말을 툭 던졌다.
“어휴. 비위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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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원고료쿠폰을 난생처음 받았습니다.
조아라 초보라서 원고료쿠폰이랑 후원쿠폰 차이도 몰라서
누가 주셨는지 후원회원목록에서 찾다가 아무것도 없길래 오류 난 줄 알았어요.^^;
어느 독자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