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회: 1장.도퍼 테스트 -- >
1.도퍼테스트(5)
강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하1층 쇼핑몰 매장에서 포장알바를 하는 중이었다. 근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나타난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이런 말을 던졌으니까.
“유강현씨, 국가에서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여자는 FBI의 요원이나 VIP의 보디가드를 연상케 하는 남자 정장을 빼입고, 옆으로 길죽해 날카로워 보이는 안경을 썼다.
거기다가 국가에서 필요로 한다니, 설마 군대에 재입대라도 하라는 건가? 제대한 예비군이라면 제일 불안해하면서 악몽을 꾸는 상황을 상상해버렸다.
“저기...무슨 일인가요? 혹시 영장 나온 건 아니죠?”
강현의 말을 이해 못 했는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뒤쪽에서 선배알바가 더 이상 포장된 박스가 넘어오질 않자 소리를 질렀다.
“얌마, 손이 놀고있잖아. 얼른 포장안해? 오늘안에 100박스는 더 나가야된다고.”
“네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요.”
하지만. 여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도 신성한 공무를 수행 중입니다. 유강현씨. 생업에 종사하는 것도 중요한 국민의 의무지만. 그대는 국가를 위해서 더욱 중요한 할 일이 있습니다.”
“야. 신입!”
“죄송합니다.”
뒤쪽에서 보이지도 않을 텐데 강현은 고개까지 꾸벅 숙여가면서 사과하고 다시 박스테이프를 손에 들었다.
“어쨌든, 무슨 일인지 확실히 이야기하던가 아니면 가주세요. 괜히 어영부영하다가 첫날부터 잘리긴 싫으니까요. 알바사이트에서 평점이라도 낮아지면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유강현씨. 다시 한 번 도퍼 테스트를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도퍼 테스트라는 말에 강현은 들고 있던 박스 테이프를 떨어트렸다. 그제야 여자를 유심히 들여다본 강현은 어렴풋이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어제 본 몬스터 레이드 담당자분?”
“네, 몬스터 레이드 서울지국 제 3 담당자 권채영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워낙 주눅이 들어있었기에 미처 누가 누구였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어제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해본 결과. 강현씨에게 10급이나 그 이하의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금은 [ 예거 ]의 효력이 떨어져서 측정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투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정부에서 지원하는 테스트는 1인당 한 번으로 제한되어있습니다만. 사안의 중요성을 검토한 결과 특례로... 재검사를 시행할 방침입니다.”
폭풍같이 말을 쏟아내던 채영이. 후반부에 와서 말끝이 흐려졌다.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규정 외의 일을 집행하는데 살짝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듣고 있던 강현의 표정도 안 좋았다.
10급 이하라면 도퍼 라고 해도 일반인보다 신체적으로 조금 강한 정도. 레이드에 참여하기에는 무리였다. 겨우 그것 때문에 비싼 [ 예거 ]를 복용하는 사람은 없다. 강현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테스트다.
“그런 특례라면. 괜찮거든요. 어차피 그런다고 도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이 국가에 밀알 같은 보탬이 된다면 기쁘지 않습니까?”
“전혀요?”
“그, 그런...”
단호한 강현의 말에 채영은 예상 못 한 반응이었다는 듯이 당황했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굴었다.
“요즘 생동성 알바해도 돈 주잖아요. 그럼 뭔가 없나요? 왔다 갔다 할 차비도 없고...”
“관련 예산은 없습니다만.”
표정을 굳힌 채연이 입술을 깨물면서 대답했다. 그걸 보고 강현은 손을 내저었다.
“그럼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 주세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생업에 열심히 일할 테니까.”
그 말에 채영이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짜리를 있는 데로 꺼내서 강현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이 누나 부자네...’
얼핏 봐도 50만 원은 넘어 보였다. 이곳에서의 일당이 5만 원 조금 안되니까. 대충 헤아려도 열흘 치 알바비였다. 강현은 “이 정도면.” 이라고 말하면서 채영이 내민 돈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자 채영이 돈을 쥔 손을 재빨리 뒤로 뺐다.
“그럼 내일 오전 5시까지 나와주세요.”
“그렇게 일찍?”
“싫다고 하면 이 보수는 없던 걸로 하죠.”
채영이 돈을 다시 집어넣으려고 하는 걸 강현이 달려들어서 낚아챘다.
“흠흠, 그거라면 여기 일에도 지장 없을 테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부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모습을 본 뒤에 채영은 내일 꼭 나오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야! 신입.”
선배 알바가 어느새 다가와서 큰 소리로 불렀다. 강현은 혼나겠다 싶어서 몸을 움츠렸다. 첫날부터 갈굼 당할 생각 하니까 아득했다.
하지만.
“저 누님 누구야? 내 취향인데 소개해줘. 꼭 알았지?”
“아하하...”
채영과 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왜 채근 안 하고 조용하나 싶었더니만. 채영을 보고 홀딱 반했던 모양이었다. 뭐 소중한 여동생을 소개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굳이 뺄 건 없지.
“내일도 만날 거니까 한번 연락처라도 물어볼게요.”
“오케이. 그나저나 너 이런 일 처음 하니까 힘들지? 좀 쉬고 있어. 내가 도와줄게.”
“네네.”
*
강현은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첫날부터 알바도 편하게 하고, 공돈(?)도 생긴 덕분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치킨 한 마리를 샀다.
동생은 이틀 연속이야? 라는 작은 투정을 부렸지만, 손은 이미 치킨으로 향해 무서운 속도로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다 먹어갈 때쯤 강현은 채영에게 받은 돈 중에 치킨 한 마리를 산 돈을 제외하고는 다현이에게 남김없이 건넸다. 그동안 고생했던 걸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싶어서였다.
“이 돈은 뭐야? ”
하지만 돈을 받은 다현은 눈빛이 날카롭게 변해 강현을 추궁했다. 당황한 강현은 요 며칠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물론, 게임에 관한 건 빼고.
강현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들은 다현은 그대로 굵은 눈물을 떨어트렸다.
“왜, 왜 그래...”
“흐흑. 오빠는 죽을뻔하고도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그,그건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지. 지금은 봐봐 멀쩡하잖아.”
강현이 가슴을 치면서 건강함을 어필했지만, 다현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갑자기 울음을 멈춘 다현은 강현에게 받았던 돈을 내밀었다.
“이거 돌려줘.”
“다현아.”
“이거 내일 가서 제대로 테스트 거절하고 돈도 제대로 돌려줘. 난 오빠가 도퍼가 아니라도 괜찮아. 가난해도 괜찮아. 평생 내가 먹여 살려야 해도 괜찮으니까!”
울부짖는 것처럼 쏟아내는 다현을 보고 강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한참 동안 다현을 달래고 방으로 돌아온 강현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다현이 그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할지는 몰랐었다. 차라리 비밀로 해둘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잠깐 시간 내면 될 일이었으니.
다행히 약속했던 도퍼 테스트는 허락 맡았다. 정부 측에서 강현에게 큰 능력이 있어 조사하는 게 아니라. 기계 오류 확인을 위해 잠깐 도와주는 거라고 설명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현이 조금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단, 추가로 더 조사하자고 요구하면 거절하라 했다. 받은 돈도 제대로 돌려주라며 치킨 사느라 쓴 돈까지 다현이 메꿔줬다. 그걸 생각하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책상 위에 문화상품권이 눈에 들어왔다. 습격이 있을 때 편의점에서 샀던 거였다.
‘그냥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게임 잠깐만 할까? 어차피 일도 구했고. 원래 중독도 반동이 와서 더욱 심해지지 않으려면 천천히 끊어야지.’
속으로 노도 같은 변명을 해가면서 컨트롤 헬멧을 쓰고 게임에 접속했다. 5레벨에 멈춰있었던 어태커 캐릭터에 접속하니까. 예의 결제창이 떴다.
문화상품권 번호를 입력한 뒤에 결제버튼을 누르니까. 다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퀘스트를 진행해 나갔다. 내용은 마을 주위의 몬스터 때문에 소란스러워 곤란하니 퇴치해달라는 거였다.
‘이거 그냥 판타지 게임이나 마찬가지잖아.’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강현은 착실히 미니 크랩을 퇴치하고 골드와 경험치를 얻었다. 그 외에 몇 가지 마을 주민의 심부름을 하면서 기본적인 아이템을 갖춰나갔다. 여느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패턴의 퀘스트라 지루했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잘 흘렀다.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퀘스트를 앞두고 화면 우상단의 시계를 힐끗 보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슬슬 끄고 씻고 나갈 준비 해야겠네.’
강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스탯창을 열었다.
[ 이름 ] 외유내강 [ 직업 ] 어태커
[ 레벨 ] 10
[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경험치 ] 1542/5120
[ 경험치 부스터 OFF ]
[ 체력 ] 1100/1100
[ 마력 ] 15/15
[ 근력 ] 55
[ 민첩 ] 33
[ 지능 ] 11
[ 행운 ] 22
[ 스킬 ] 스매쉬, 파워차지
[ 장비 ] 강철 검 (공격력+10) 가죽 갑옷(방어력+8), 가죽 신발(방어력+6), 초보자의 머리띠 (방어력+1)
‘어느새 10레벨 찍었네. 레벨업이 좀 느린 거 같기도 하고. [ 파워 차지 ]라는 스킬은 뭐지?’
퀘스트에 치중하다 보니까 스킬을 써보지도 못했다. 대충 이름만 봐서는 육탄 돌격하는 스킬 같다고 생각하면서 강현은 게임을 종료했다.
*
“4분 27초 지각입니다.”
느긋하게 도착한 강현을 보자마자 채영이 말했다.
강현은 시계도 안 보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초까지 말하는 거야? 라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채영의 손에 끌려서 안전관리국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문을 안 열었을 정도의 이른 시간이어서 한산하다 못해 두 사람 외의 아무도 없었다. 제일 안쪽에 위치한 테스트실에 들어가니 의사가 한 명 있었다.
의사는 강현에게 준비해둔 약을 내밀었는데, 며칠 전에 본 [ 예거 ]였다. 강현은 ‘이번에도 결과가 엉망이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하면서 [ 예거 ]를 내려다봤다.
‘어차피 바닥이다. 잃을 것도 없잖아.’
결심하고는 [ 예거 ]를 삼켰다.
하지만 너무 세게 입안에 털었는지 약이 살짝 목울대를 건드려서 쿨럭거렸다. 약을 토해낼까 봐 강현은 재빨리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유강현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신경질적인 어조로 채영이 쏟아 붙였다. 강현은 겨우 진정하고는 종이컵에 담긴 물을 조금씩 마신 뒤에 약을 완전히 내려보냈다.
“이쪽으로.”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강현을 캡슐에 집어넣었다. 밖에서 문을 잠그자마자 푸른 빛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것도 두 번째쯤 되니까 익숙해지네.’
그때. 강현의 몸에 닿은 푸른빛이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 붉은빛은 어느새 강현의 전신을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몇 번이나 교차하면 훑어냈다.
‘뭔가 달라.’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됐다.
자신에게 도퍼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결과는 잘못된 거다.
라고.
단, 능력은 그렇게 높지 않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캡슐에서 나오자 의사와 채영이 종이를 두고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테스트 결과인가? 뭔데 저러니. 혹시 도퍼능력이 아니라 병이라도 걸린 걸까?’
걱정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나도 처음 봐. 초기 상태에서 이 정도 능력이라니.”
“제 데이터 안에는 활동화면서 조금씩 강화되는 도퍼들도 있지만, 이건 그들에 필적합니다. 역시 무슨 기계 오류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 지금 이 결과값 단일능력이 아니잖아요.”
“아냐 아냐. 어제 테스트 준비하라면서 단단히 점검하라고 닦달한 건 댁이잖아.”
“...저기.”
기다리다 못한 강현이 끼어들자. 의사와 채영 두 사람이 고개를 획 돌려서 강현을 쳐다봤다.
“한 번 더 캡슐에서 검사해보죠.”
“그래야겠어. 이번에는 옆방의 캡슐을 써보자고. 잠깐 기다려.”
말을 마치자마자 의사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네? 한 번 더요? 대체 결과가 어떻길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강현. 그때 채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D급 몬스터 출현? 오늘도 도심입니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담당 도퍼들에게 연락 후에 저도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네. 위치는....”
전화를 받고 있으려니, 강현이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불러서 나갔다고 판단한 채영은 도퍼들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라? 테스터는?”
“캡슐이 준비돼서 김닥터가 데려간 거 아닌가요?”
“아닌데?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했어?”
“아닙니다. 전 금방 몬스터 출현 연락을 받던 중이라... 설마?!”
출현 연락을 받은 위치는 강현의 집 근처였다. 하지만 다소 거리가 있어서 그렇게 걱정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채영은 머릿속에서 강현의 프로필을 떠올리면서 구석에 위치한 가족관계 파일을 열었다. 동생 유다현의 프로필로 넘어가면서 그녀가 현재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위치를 떠올렸다.
“어디로 갔는지 짐작되는 곳이 있습니다. 저도 그쪽으로 갑니다.”
채영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의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다 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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