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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4화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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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퍼 테스트(4)

강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퍼질러 누웠다. 문화상품권을 사왔지만, 게임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소유를 만났던 일.

그리고 몬스터와 마주쳐서 죽을 뻔 했던 일.

도퍼 테스트에 떨어져서 나올 때, 만난 금발양아치와 재회한 일.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사건을 겪은 덕분인지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오빠. 어디있어? 치킨 사왔으니까 얼른 먹자.”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알바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은 치킨이라는 말에 반응해 벌떡 일어났다.

“아, 지금 나갈게.”

몬스터의 등장 이후, 도퍼들이 몬스터를 퇴치하고 있지만, 뿌리 뽑진 못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꾸준히 발생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대형물류의 이동 시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방어를 위해 도퍼들을 고용했다. 이는 자연스레 물류비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물가가 많이 올라버렸다.

치킨의 경우에는 한 마리당 10만원 전후. 강현의 형편상 손이 안 닿을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그래도 생활비를 저금과 동생의 알바비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쉽게 사 먹긴 부담스러웠다.

‘돈 없다고 하더니만 웬일로 사왔지? 설마...’

거실에서 작은 상을 펴서 두 남매는 앉았다. 오랜만에 치킨 냄새를 맡으니까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강현은 쉽사리 치킨에 손을 데지 못했다.

“왜 안 먹어? 기껏 사왔더니.”

“...그게.”

“어서 먹어~ 아님, 내가 다 먹는다?”

자신의 도발에도 강현이 반응이 없자. 다현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강현은 겨우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다현아...나 도퍼가 못 된데...”

말을 마치고, 강현은 고개를 푸욱 숙였다.

도퍼가 된다.

그동안 폐인 생활 중 유일하게 자신을 합리화했던 이유였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낮은 확률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확실히 동생에게 알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다현은 그 말에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도퍼가 되든 안 되든, 오빠는 나한테는 하나뿐인 오빠잖아. 유일한 가족이고...”

“...그래도.”

“무서운 몬스터들과 싸우다 죽는 도퍼들도 종종 있다던데 차라리 괜히 위험한 일 하는 것보다는 곁에 있어 주는 게 좋아.”

다현이 걱정할까 봐 숨기고 있지만, 강현은 아까 몬스터에게 살해당할 뻔한 경험을 했다. 자신은 운이 좋아서 도퍼가 제때 도착했기에 살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

“그러니까. 이거 먹고 기운 내는 거다? 자, 앙~해봐.”

다현은 닭 다리를 집어서 강현에게 내밀었다.

동생의 애교에 더 거절하기도 힘들어 닭 다리를 받아 베어 물었다. 우물거릴 때마다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살코기가 입안에서 넘실거렸다. 꿀꺽 삼키자 가슴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맛있어....”

“그렇지? 엄마가 그랬잖아. 좋은 일이던, 슬픈 일이던. 소중한 사람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나누는 게 최고라고.”

동생은 기운 없어 할 오빠를 위해서 무리해서 치킨을 사왔던 거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강현은 감격해 목이 메였다.

보란 듯이 치킨을 맛있게 먹는 동생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현은 체면 차릴 필요 없이 어느새 양손에 치킨을 쥐고 뜯어 물고 있었다.

‘어? 양손? 거기다가 먹는 속도 너무 빠르지 않아?’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강현이 상을 쳐다보니까. 어느새 치킨의 절반가량이 뼈로 변해있었다.

“이 가게 되게 유명하다더라고. 언제 한번 사 먹어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에 베인 양념을 쪽쪽 빨고 있는 다현을 보면서 강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자 다현이 얼굴을 붉히면서 쏘아붙였다.

“앗, 왜 웃어?”

“앞으로 정신 차리고 일해서 우리 다현이 치킨 자주 사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다현이 눈을 크게 떴다. 더욱 얼굴을 붉히고는 이쪽으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치킨을 힘껏 내밀었다.

“간지러운 소리 말고 어서 오빠도 먹어!”

*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낸 다음.

방으로 돌아온 강현은 알바 자리를 찾기 위해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화면 구석에 바탕화면에 [ 몬스터 레이드 ] 화면이 눈에 밟혔다. 애써 무시하며 인터넷 창을 여니 메인에 도퍼들이 세계 곳곳에서 몬스터를 퇴치하고 있다는 뉴스가 떠 있었다.

‘아까 내가 휘말린 사건도 기사화됐을까?’

검색해봤으나 그 사건으로 추정되는 기사가 짧게 몇 줄 실려있을 뿐.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진 거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 정도면 꽤나 소형인 편에 속하니까.’

그렇게 납득한 강현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래도 그때, 죽는 줄만 알았지.’

커다란 집게발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순간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어느새 등에 식은땀이 차오르는 거 같았다. 제일 이해 안 가는 건. 오늘 처음 보는 편의점 알바생을 구하겠다면서 무턱대고 몬스터와 사이에 끼어들어 간 자신이었다.

‘이쁘긴 했지만...’

더더욱 이해 안 가는 건. 몬스터의 일격을 버텼을 때의 느낌이었다.

‘쉴드 기술이었지?’

게임화면을 떠올렸다가 강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게임기술이 먹힌다니 말도 안 된다. 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무언가 힘이 빠졌거나 우연이었을 거라고 보는 게 맞다. 그 우연 덕분에 소유를 구할 수 있었던 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단, 소유가 다른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말은 해주지 않았으면 했다. 담당자까지 관심을 보였을 때 강현 자신도 순간 기대했지만, 결국에는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았으니.

‘거기다 이왕이면 공격기술이 더 좋았을 것을.’

강현은 책상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집어다가 게임의 스매시 기술을 쓰듯 휘둘렀다. 목표는 가득 차 있는 2L짜리 플라스틱 생수병이었다. 이내 펑하는 소리와 함께 볼펜의 궤적에 따라서 생수통이 갈라졌다. 쏟아진 물 때문에 책상 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으악. 키보드에 물이.”

“지금 이거 무슨 소리야?”

다현이 놀라서 달려왔다. 강현도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오빠 뭐하는 짓이야.”

멍하게 있는 강현을 밀어내고 어느 틈에 마른걸레를 가져온 다현이 물을 닦아냈다. 밀쳐진 시선은 생수통을 향해 있었다. 가볍게 휘두른 것뿐이었는데. 박살이 난 것도 아니라. 플라스틱을 베어버렸다. 볼펜의 강도와 자신의 힘을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 혹시 뭔가 능력을 가지게 된 거야?’

뒤처리한 다음, 다현에게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근처 공터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술은커녕 스포츠도 즐기지 않은 강현이었기에 짐작 가는 쪽은 역시 게임밖에 없었다. 게임의 스킬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능력이 발휘되는 걸까? 어쨌든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더는 피해를 확대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럼 시작해볼까.’

강현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팔뚝만 한 나무 앞에 섰다. 자의식 과잉답게, 혹시 허공에 삽질하는 모습이 들켜서 주위에 웃음거리가 될까 봐. 몇 번을 두리번거렸다. 늦은 시간이라 간간이 멀리 귀가하는 사람의 그림자 빼고는 보이질 않았다.

안심한 강현은 숨을 깊게 한번 내쉰 다음, 눈을 크게 뜨고, 나무를 후려쳤다. 강도를 생각했을 때,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과는?

팔뚝만 한 굵기의 나무가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생수통을 가를 때처럼 분명 근접딜러들이 이야기하는 강화능력이 부여된 게 틀림없었다.

“좋아 한 번 더.”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자신감이 생긴 강현은 좀 더 큰 나무를 향해 다시 휘둘렀다.

하지만.

꽈직!

“으악!”

강현은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나무에 부딪힌 나뭇가지가 힘없이 꺾여 강현의 손등을 때린 것이다.

“왜 이런 거지? 아차.”

고통보다도 실패에 대한 의문이 더 컸다. 하지만 곧 그 답을 도출해내자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니까 어느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안전관리국에서 도퍼 테스트를 위해서 복용한 [ 예거 ]의 효능지속 시간은 12시간.

즉, 약효가 떨어진 거였다.

그것 때문에 강현은 자신이 [ 예거 ]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도퍼라는 걸 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사받을 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나왔는데, 인제 와서 도퍼라고 해도 누가 믿어줄까?.’

[ 예거 ]는 무척 고가다.

그래서 처음 검사결과가 무능력자로 나온 사람을 보통은 다시 검사하지 않는다. 애당초 복용 후의 검사도 수십억대의 장비를 들여서 꼼꼼하게 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을 못 받으면, 사비로 구매해야 한다. 그건 강현의 사정상 어림도 없는 큰돈이었다.

희망을 보기 전에 다시 닥쳐온 난관을 생각하자. 강현은 다시 우울해졌다.

*

“아직도 퇴근 안 해? 그러다 언제 시집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채영은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경비원 아저씨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외근일 때 빼고는 늘 일하고 있는 채영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하고 갔다. 경비원도 자신이 오전에 출근해 심야 반과 교대할 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는 걸 보고 측은했으리라. 그것도 매일 똑같이 그랬으니.

채영의 머릿속으로 경비원 아저씨의 프로파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비슷한 연배의 딸이 있는 가족사항을 체크하고는 채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쓸데없는 참견입니다만.’

신원을 확인한 다음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에 집중하자. 얼굴이 굳은 경비원 아저씨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구시렁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채영이 보던 것은 오늘 현장에 나가서 바로 입수한 CCTV 화면이었다. 화면 안에는 갑각류 몬스터의 공격을 어떤 남자가 막고 있었다. 그 남자의 손에는 편의점 앞의 광고판이 들려있었다.

‘겨우 간판 따위로... 막을 수 있나?’

도퍼라면 가능하다.

매개체 본연의 강도보다는 도퍼의 능력에 따라서 강도의 증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일반인. 그것도 도퍼의 능력을 활성화 시켜주는 [ 예거 ]를 먹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무능력자였다.

‘이름이 유강현. 7월 12일. 도퍼테스트 실시. 결과. 에너지 부여능력, 발사능력, 활성화 능력, 전달능력 모두 0.’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정보들은 유강현이 도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화면.

몇 시간 전부터 수십 번 돌려본 CCTV 영상은 어떻게 분석해도 도퍼 능력자로밖에 안 보였다.

물론, 최하급의 몬스터의 공격을 막았기 때문에 도퍼 능력자라고 해도 그 능력은 보잘것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도퍼측정 기계의 신뢰도. 도퍼 테스트에 사용되는 기계는 [ 예거 ]를 개발한 미국의 연구소로부터 들여온다.

그 가격은 몇백억이다.

비싼 국가의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기계 오류로 도퍼 능력자를 못 찾는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테스트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엄청난 국가적 혼란이 생길 것이다.

사명감 하나로 도퍼들의 담당자 역할을 지원했던 채영으로서는 그 생각하는 하나만으로 안색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다시 테스트해보는 수밖에 없겠지.’

채영은 화면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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