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2화 (2/113)

< -- 2 회: 1장.도퍼 테스트 -- >

1장. 도퍼 테스트(2)

“유강현씨.”

“네,넵!”

국가안전관리국 1층 로비.

의자에 앉아있던 강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게 큰 소리로 대답하며 일어났다. 주위에 앉아있던 몇 명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긴장한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거 받으시고. 3호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게스트용 ID카드를 받은 강현은 긴 복도를 지나서 도퍼 테스트 3호실이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두 명의 의사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에는 첨단의료장비로 짐작 가는 듯한 커다란 기계장치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의사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으니까 다른 의사가 투명한 컵과 알약 하나를 내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캡슐형 알약과 다름없는 그것은 강현이 몇 년 동안이나 기다린 것이었다.

바로 선택받은 자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몬스터와 대항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신비의 약 [ 예거 ]였다.

‘이게 1억짜리...’

약을 주시하고 있던 강현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로 도퍼 테스트 중 지급되는 이 고가의 약을 먹은 척하고 외부로 빼돌리려고 했다가 체포되는 뉴스도 종종 본 적 있었다.

하지만.

강현의 목적은 하나.

도퍼가 되는 것.

망설임을 지우고 [ 예거 ]를 삼켰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별다른 맛은 느껴지질 않았다.

불같이 맵다던가, 뱃속에서부터 신비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거 같다던가 하는 인터넷에서 찾은 경험담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데에 작은 배신감을 느꼈다.

혹시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게 도퍼가 아니기 때문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같이 느꼈다.

“자, 드셨죠?”

“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도퍼 능력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자리에 일어선 강현은 의사의 손에 이끌려 캡슐에 들어갔다. 문을 걸어잠그자마자 푸른 빛의 무리가 나타나 강현의 전신을 훑듯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몇 번이나 교차했다.

잠깐 시간이 흐른 뒤 캡슐 밖으로 나온 경헌에게 의사가 검사결과가 나온 종이를 건네줬다.

보고서의 항목으로는,

손에 든 무기를 강화하는 에너지 부여 능력.

무기에서 에너지를 쏟아내는 에너지 발사 능력.

에너지를 육체에 가득 채워내는 체내 에너지 활성화 능력.

타인의 에너지를 활성화하는 에너지 전달 능력.

각각의 능력은 순서대로 원거리 딜러, 근거리 딜러, 탱커, 힐러등 포지션과 관계된 능력이다. 그 능력도 1에서 10까지. 강함까지 측정되어 기록된다.

대부분의 경우 네 가지 능력 중 하나만 활성화된다.

간혹 복수의 능력이 동시에 발현되는 특이케이스도 보고되고 있다. 다만, 그 경우 다양한 능력을 쓸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능력의 등급이 최하인 10등급이라서 실제로는 레이드에 참가 못 하는 등급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화려하다고 여겨지는 에너지 발사 능력을 갖추기를 원한다.

그러나 강현이 원하는 능력은 에너지 부여능력. 즉 근접 딜러가 되기를 원했다. 몬스터를 직접 때려눕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현의 손에 들린 결과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잉크를 낭비할 것 없다는 듯이 여러 항목이 기재되어 있는 표에는 어떠한 수치도 적혀있지 않았다. 단지 맨 마지막에 붉은 글씨로 [ 반응 없음 ]이라고 크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무능력.

대부분의 경우가 이렇다. 전체 인구의 99% 가 이런 판정을 받는다. 거기다 검사대상자가 비용을 내는 것도 아니었기에 대부분 실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나간다.

하지만 강현은 크게 낙담했다.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고 나오는데, 옆의 1호실에서 “으쌰!”라며 기쁨의 함성이 들린다. 흥분한 의사 목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자신을 거쳐 간 인원 중에 이 정도의 능력자는 처음 본다고.

‘그 정도라면... 6등급? 아니면 그 이상? 아냐 괜한 호들갑일지도 몰라. 겨우 평균을 넘어선 7등급일지도.’

보통 레이드가 가능한 도퍼의 등급은 8등급부터. 우수한 대접을 받는 도퍼는 6등급이라고 되어있다.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정보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던 강현은 부질없음을 깨닫고 쓴웃음을 흘렸다.

몇 등급이든 무능력자인 자신과 비교하면 몇십, 몇백 배나 대단한 거다. 아무리 낮은 수라도 0에 비교하면 무한히 높은 수인 것처럼.

강현이 함성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지체하고 있을 때, 1호실에서 문이 열리며 함성의 주인공이 나왔다. 지저분한 금발에 손등까지 문신을 생긴 그 녀석은 강현과 마주치자. 강현을 한번 훑어봤다. 늘어트린 손에 들린 서류의 붉은 표시를 보고는 이겼다.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은 잘 안되셨나 봐.”

“네에...그냥.”

금발은 강현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강현은 비슷한 또래에게 반말까지 들었지만, 맞설 엄두도 못 냈다. 저쪽은 현재 [ 예거 ]의 효과가 지속되고 있는 능력자인 것이다.

“짜식 기죽기는 내가 그쪽 몫까지 열심히 활동하면서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움츠러든 강현을 위로하듯 어깨를 툭툭 친 녀석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흘리며 강현을 지나쳐갔다.

분노. 굴욕.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누른 채 금발의 뒷모습을 강현은 씁쓸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그래. 내 주제에 무슨 도퍼야? 도퍼는 아무나 하나? 기왕 이렇게 된 거 평범하게 살면 된다. 다현이를 생각해야지. 한창 공부할 다현이도 알바 하는 데, 나도 얼른 제대로 된 일자리부터 구해야지. 그전에 사회 적응할 겸 알바부터 구하자.’

도퍼가 못 된다는 게 확정되자 강현은 되려 홀가분해졌다.

국가안전관리국에서의 우울했던 일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훌훌 털어버렸다. 어차피 앞으로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쪽에서도 무능력자인 강현 따위는 금방 잊어버릴 테니까.

집에 도착하니까. 다현은 알바 하러 가서 아직 안 왔는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일단 생각했던 데로 알바자리를 찾기 위해서 컴퓨터를 켰다.

그때 메인화면에 새로운 게임의 광고가 나타났다.

‘이게 오늘부터 오픈했었나. 도퍼테스트 때문에 잊고 있었네.’

그 게임의 이름은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예전에는 RPG게임이라고 하면 용과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게임들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판타지의 세계보다 더 판타지틱 하게 변한 세상 덕분에 몬스터 레이드의 세계를 그린 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상에서만이라도 도퍼가 되어서 몬스터와 호쾌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몬스터 레이드에 관심이 많은 강현도 당연히 이런 류의 게임에 푹 빠졌다.

게다가 이 신작게임은 체감형 인터페이스를 적용했다. 키보드와 마우스 대신 뇌파를 이용하는 컨트롤 헬멧을 통해 실감 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 저것도 사뒀으니까 오늘만 하자.’

강현의 눈에 컴퓨터 책상 한쪽에 소중하게 모셔둔 컨트롤 헬멧이 들어왔다. 이 게임을 기다리면서 미리 구매해둔 것이었다. 어느새 망설임은 사라지고 강현은 배너를 클릭해서 게임사이트에 들어가 게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설치가 끝나고, 강현은 컨트롤 헬멧을 뒤집어쓰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이라고 전면 가득 나타난 초기화면이 강현을 반겼다.

강현은 빨리 플레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캐릭터 생성화면까지 각종 설명들을 스킵했다. 캐릭터 생성화면에서도 별다른 커스텀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캐릭터의 외모에 크게 관심이 없던 강현은 어떤 게임에서나 캐릭터 이름으로 쓰는 [ 외유내강 ]을 이름으로 입력하고 외모는 기본옵션을 선택했다. 그러자 헬멧에서 강현의 마스크를 스캔해서 그대로 게임에 반영했다.

그다음은 직업선택. 원래 도퍼가 되면 하고 싶었던 포지션인 근접 딜러에 가까운 [ 어태커 ]를 골랐다. 그러자 마스코트 캐릭터가 나타나 다시 설명하려고 했지만. 바로 스킵했다.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한 강현에겐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겨우 초기마을에 들어선 강현은 자신의 캐릭터 정보를 확인했다.

[ 이름 ] 외유내강  [ 직업 ] 어태커

[ 레벨 ] 1

[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경험치 ] 10

[ 경험치 부스터 OFF ]

[ 체력 ] 100/100

[ 마력 ] 5/5

[ 근력 ] 5

[ 민첩 ] 3

[ 지능 ] 1

[ 행운 ] 2

[ 스킬 ] 없음.

[ 장비 ] 초보자의 검 (공격력+3) 초보자의 옷(방어력+1) 초보자의 신발(방어력+1)

‘시작은 이 정도인가...’

강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마을 외곽에는 [ 미니 크랩 ]이라는 1레벨 몬스터들이 잔뜩 있었다. 캐릭터의 무릎 정도의 작은 크기의 비선공 몬스터였다.

‘이렇게 작고 비선공인 몬스터가 있다는 건 현실과 다른 점이지.’

강현은 검을 아래쪽으로 휘두르면서 생각했다. 미니 크랩은 통상의 휘두르기 3방 정도로 해치울 수 있었다. 해치운 미니크랩이 희미해지면서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화가 나타났다. 그걸 주운 강현은 또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를 피해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그렇게 두 마리째 사냥했을 때 레벨이 올랐다. [ 스매쉬 ] 라는 타격계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시스템 창에서 알려준다.

차근차근 레벨을 올려 5레벨이 되자. 화면이 멈추면서 시스템 안내 창이 뜬다

체험레벨이 끝났다며, 이 이후로 더 플레이하기를 원하면 결제를 하라고 했다. 이어서 휴대폰 결제, 실시간 이체, 카드 결제, 문화상품권 결제 등 각종 결제수단이 뜬다.

“이런. 젠장.”

현재 집안의 돈 관리는 전부 동생인 다현이 하고 있다. 강현은 용돈 받아서 쓰는데다가, 카드도 없고, 휴대폰 소액 결제도 다현이 막아뒀었다. 주머니에 몇만 원 정도는 있어서 편의점에라도 가서 문화상품권을 구매하면 되겠지만, 한참 게임 중에 나가기는 또 귀찮았다.

“할 수 없지...”

입맛을 다시면서 초기화면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게임을 종료하지 않고, 다른 캐릭터를 생성했다. 이번에는 [ 디펜더 ]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2레벨이 되자 [ 쉴드 ] 라는 방어자세를 취했을 때 상대방의 공격을 1회 견뎌내는 스킬을 배웠다.

스킬을 배운 뒤에 미니크랩이 공격할 때 [ 쉴드 ] 스킬을 써봤지만. 미니크랩의 공격은 원래부터 강력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그다지 효율성이 없어 보였다. ‘역시 탱커는 취향에 안맞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 레벨을 올리는데 5레벨이 되자.

또 결제하라는 창이 떴다.

이렇게 된 김에 다른 직업도 하나씩 맛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하기 위해서 초기화면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추가로 캐릭터를 생성하려고 하자, 세 번째 캐릭터부터는 또 결제를 해야 한다고 떴다.

“이것들이 돈독 올라가 지고.”

강현은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종료했다. 컨트롤 헬멧을 투덜거리면서 벗었다지만, 계속해서 게임의 화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도 꽤 잘 만들었는데, 조금만 더 해볼까.’

주머니에 2만 원 정도는 들어있었다.

결국 집을 나선 강현은 문화상품권을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

강현은 여동생 다현이 알바를 하고 있는 편의점을 피하려고 한참을 걸어갔다. 겨우 눈에 띈 편의점이 보여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여자 알바생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줬다.

“어서 오세요~”

여자 알바생을 보자 편의점에서 알바처럼 손님에게 인사하고 있을 다현을 생각났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건 여알바를 힐끔 쳐다봤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되려 눈을 크게 떴다. 생전 처음 보는 미녀였기 때문이다.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청바지에 티셔츠에 편의점 알바들이 입는 조끼만을 걸친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미모를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깨끗한 피부가 마치 조명을 받은 듯 자체발광하고 있었다.

‘왜 이런 애가 이런 알바나 하고 있지...’

여알바는 감탄하던 강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쳐다봤다. 그러다 눈을 마주쳤는데,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강현은 혹시나 그녀가 불쾌한 표정을 짓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강현을 보며 알바는 시원한 미소를 보냈다. 되려 강현 쪽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건 조끼로도 가릴 수 없는 가슴에 달린 거대한 두 개의 융기였다.

“크다...”

윤곽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슴을 보면서 강현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무언가 찾는 중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알바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네? 혹시 찾으시는 거 있으신가요?”

“아,아닙니다.”

자격지심이었지만, 20대 후반의 남자가 편의점에 덜렁덜렁 문화상품권을 사러왔다고 하기에는 창피했다. 이제 와 더 멀리 돌아가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여동생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살 수도 없었다.

이럴 때는...

“저기... 동생이 사 달라고 해서 그러는데 문화상품권은 어디 있나요?”

“잠시만요. 분실이 많아서 카운터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싹싹하게 대답한 여알바생은 카운터에 있는 서랍을 열어 문화상품권을 찾기 시작했다. 강현은 한산한 편의점을 둘러보며 여기에 종종 들러서 눈도장이라도 찍어볼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밖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몬스터 출현을 알리는 경고방송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