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유적 클리어 (4)
"시작한다."
카타그의 몸이 눈부신 빛이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제론에게 스며들었다.
1만 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모인 에너지의 정화는 카타그의 몸을 통해 제론에게 이어졌다.
"크으윽!"
고통이라면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온몸의 모공을 통해 빨려 들어오는 에너지의 흐름이 생생히 느껴졌다. 정말로 끝없이 에너지가 흘러 들어왔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걸 이대로 둬선 안 된다. 뭔가를 시도해야만 했다.
제론은 본능적으로 마나호흡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들어오는 에너지의 양이 너무 많았다.
내부를 가득 채운 에너지를 조금도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제론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받아들인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터지려는 것이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추가되었다. 제론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모든 걸 잃는다. 제론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모든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마티를 받아들이며 제론은 순식간에 대륙 전역을 한 번 훑었다. 그리고 엠페리움의 왕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건 뇌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엠페리움의 왕을 그냥 내버려 두면 대륙의 모든 사람이 도탄에 빠질 것이다. 공포에 허우적거릴 것이다.
제론이 의지를 강하게 다진 순간, 몸에 들어온 에너지 일부가 머리로 흘러갔다. 전체 에너지에 비하면 티끌이나 다름없는 양이었지만 머리 입장에서는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가 몰려온 꼴이었다.
만일 제론의 두뇌가 발달하기 전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두뇌는 그 에너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여력이 있었다.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두뇌가 또 한 번 변화를 시작했다. 끊임없이 에너지가 두뇌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제론의 두뇌는 점점 변해 갔다.
두뇌가 변해 감에 따라 제론의 정신력이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 그 말은 의지력이 훨씬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몸에 꽉 찬 에너지 일부가 제론의 의지하에 놓였다.
제론은 억지로 그것을 움직였다. 이걸 회전하거나 압축하지 않으면 몸이 터져 버릴 것이다. 아니, 그 두 가지 모두 성공해야만 했다.
후우우웅!
제론의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오리가 쳤다. 제론에게 흘러 들어가는 에너지는 곧 극도로 순수한 마나였다.
마나는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었다. 그리고 초고대유적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모은 마나의 양은 현재 전 대륙에 퍼져 있는 마나를 다 합한 것보다 많았다.
즉, 제론은 온몸에 세상을 담는 중이었다.
제론의 의지가 에너지에 개입한 순간부터 제론의 몸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갈라졌다. 그리고 근육이 끊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새로 얻은 육체도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론은 의지를 놓지 않았다.
우드드드득!
제론의 몸이 또 부서지고 새로 만들어졌다. 두 번째 재구성이었다.
그렇게 몸이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와중에 제론의 두뇌도 계속 변해 갔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였다. 한계의 한계에 도달했지만, 아직 절반도 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한계의 막바지에 이른 순간, 제론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가 눈을 떴다.
테오스였다.
남아 있던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테오스에게 흘러갔다. 테오스는 제론이 스스로 에너지를 다룰 수 있도록 넘치는 에너지를 가져갔다. 그리고 모자라면 다시 내줬다.
그런 식으로 테오스와 제론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위기를 모면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테오스 덕분에 해결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위험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차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갔다. 그와 함께 유적의 에너지도 흐르고 또 흘렀다.
결국, 제론은 그 많은 에너지를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테오스와 나눠 가졌다.
제론이 눈을 떴다.
번쩍!
엄청난 섬광이 일어나며 제론이 있던 공간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제론이 튀어나가려던 에너지를 제어한 것이다.
"후우. 끝났군."
제론은 주위를 둘러봤다.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왠지 카타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느낌이 정확했다. 카타그는 없었다. 에너지로 변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제론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제론은 카타그를 흡수하면서 유적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솔직히 카타그를 흡수할 필요도 없었다. 제론이 얻은 힘과 능력이라면 강제로 유적을 취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제 제론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대륙 전역에 퍼진 마티를 통해 현재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바인보다 더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을 가졌기에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돌아가야겠군."
그 중얼거림과 함께 제론의 모습이 사라졌다. 유적을 떠난 것이다.
제론이 사라진 자리에 희미하게 카타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카타그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내 카타그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