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 (214/217)

Chapter 10 유적 클리어 (3)

카타그의 말에 제론은 빙긋 웃었다. 혹시나 하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진짜라고 들으니 정말로 기뻤다. 하지만 왠지 이게 끝이 아닌 것 같아서 대놓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역시 최초로 클리어한 사람답군. 예상한 대로라네. 이건 끝이 아니야."

"하면 아직 층이 남은 것입니까?"

카타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남았지. 그나저나 1만 년 이상이라……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겠군. 원래 예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카타그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제론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취를 이룬 건 맞는데…… 그래도 자신할 수가 없으니……."

카타그가 계속 혼자 중얼거리자, 제론이 슬쩍 끼어들었다.

"저도 알 수 있게 말씀해 주십시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에너지가 너무 많이 모였다. 네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단 이 시설을 왜 만들었는지부터 설명해야겠군."

카타그의 말에 제론이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사실 초고대유적은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도 그 의문을 속 시원히 해결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설은 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너무나도 뜬금없고 황당한 말에 제론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신을 만들기 위한 거라니,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 너무 거창하게 갔군. 신에 근접한 존재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뜻이야.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해 뭘 얼마나 알겠나. 그저 더 강력한 힘을 얻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한 것뿐이야."

"그, 그렇군요."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제론은 카타그를 비롯한 이 유적을 만든 자들의 생각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하러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당시 우리가 판단한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여야만 했지. 그래서 마티를 대륙 전역에 뿌렸다."

제론의 표정이 멍해졌다. 설마 마티를 그런 이유로 만들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론은 크란 제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있는 유적을 등록했다. 한데 대륙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왜 그러나? 설마 마티로 대륙 전역을 커버하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대륙 전역을 커버하기엔 마티의 활동 범위가 많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카타그가 빙긋 웃었다.

"그건 아직 마티의 진짜 성능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야."

"진짜 성능?"

"각각의 마티를 10개로 분리할 수 있지."

제론은 입을 다물었다. 마티를 10개로 분리할 수 있다니. 그럼 마티의 수가 10배로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와 범위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분리를 하면 떨어져 나온 마티는 주변 지역으로 이동해. 자신의 활동 범위를 그쪽으로 한정하는 거지. 그 정도면 대륙 전역을 커버한다는 내 말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겠지?"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카타그의 말대로 대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인지하는 전지의 능력이었다. 물론 물리적인 인지의 영역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혼자서 그 모든 걸 제대로 다룰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카타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가능하다. 여기까지 클리어했으면 두뇌 변환과 활성화를 이용해서 모든 마티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판단할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일이야."

정말로 놀라웠다. 역시 초고대문명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떻게 인간의 뇌를 그렇게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여기까지 클리어하지 못했을 때는 쓸 수 없는 방법이라는 뜻입니까?"

카타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나 마나가 완성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제대로 육체만 만들어져도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위험하지 않다는 말에 제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1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일하게 유적을 클리어한 존재가 바로 제론이었다. 카타그가 그런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늦었다. 신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세상을 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강한 호기심이 제론을 자극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뤄 낸 문명이 그렇게 쉽게 사라졌다니 믿기 어렵습니다."

"병이다."

너무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라 제론은 그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카타그를 보기만 했다.

"누구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병이었다. 발병하면 온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병이었지."

제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이 만들고자 한 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힘만으로 과연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한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원했던 건 신으로 가는 다리였다. 육체와 정신이 높은 경지에 이르면 상차원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세상의 비밀이자 신의 비밀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작 비밀을 조금 엿보는 정도로는 부족했지. 그래서 전 대륙을 아우르는 거창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카타그는 잠시 회한에 잠겼다. 그는 만들어진 존재지만, 기억은 당시의 사람에게서 고스란히 가져왔다. 당연히 당시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로 필사적이었지. 시스템을 만들면서 당시의 시설을 하나하나 이전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서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기반을 마련해 두었다."

제론은 그 말을 들으며 그제야 각각의 유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초고대유적은 고대유적과는 그 근본부터 전혀 달랐다. 이곳은 과거의 문명을 보존하기 위한 금고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한 주춧돌이었다.

제론은 문득 벽을 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언뜻 보이던 것들이 상차원의 비밀인 모양이었다. 물론 너무나 희미해서 뭐가 뭔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1만 년이나 지났다니 너무 늦었다. 우리는 멸망했고, 새로운 문명이 열렸구나."

제론은 그 부분을 정정해 주었다.

"새로 열린 문명도 끝났습니다. 지금은 그 뒤의 문명입니다."

카타그가 탄식을 토해 냈다.

"허어, 그럼 아예 새로운 세상이 된 거나 다름없구나."

사실 이렇게 된 이상 카타그의 존재 의의가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카타그는 이 시스템을 그렇게 그냥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시스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일 제론이 조금만 더 늦게 클리어했다면 카타그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맡은 임무를 수행해야겠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구나."

카타그는 부드러운 눈으로 제론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이리 오너라."

제론은 망설이지 않고 카타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았다.

빛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분명한데 놀랍게도 손이 만져졌다. 물론 사람의 손을 만지는 것과는 촉감이 전혀 달랐다. 뜨거울 정도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시작하겠다."

카타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 경관이 바뀌었다. 어느새 그곳은 새까만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넓은 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벽에 새하얀 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얗게 빛나는 선이 벽을 기이한 문양으로 채워 나갔다.

이내 모든 벽과 천장이 문양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붉은색 선이 벽 바로 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려진 붉은 문양이 벽의 하얀 문양과 이어졌다.

붉은 문양이 사방을 가득 채우자, 이번에는 주황색 선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그 앞을 메웠다.

그다음에는 노란색 문양이, 또 그다음에는 초록색 문양이 나타났다.

그렇게 무지개색으로 그려진 입체적 문양이 사방을 꽉 채웠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선으로 이루어진 선명한 문양이 나타났다.

다른 문양과 달리 상당히 성글었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건 제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검은 문양이 완성되자, 그 문양들이 소용돌이치며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이 바로 제론의 머리였다.

휘이이이잉!

제론은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입을 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강하게 들었다. 제론의 시선이 카타그에게로 향했다. 카타그의 긴장 어린 눈빛을 보니 오히려 거짓말처럼 긴장감이 사라지고 고통만 남았다.

하지만 고통은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었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벽면의 모든 문양이 사라졌다. 그리고 제론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제론의 머리가 마치 호흡이라도 하듯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약동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빠르게 두근거렸지만 차츰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리고 이내 원래의 머리로 돌아왔다.

제론이 눈을 떴다.

번쩍!

제론의 눈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후우우."

제론은 세상이 전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달라진 건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대륙 모든 마티가 머릿속에 있었다. 한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인지 범위와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다. 이것이 바로 전지의 영역이었다.

"어때? 세상이 좀 달라 보이나?"

"그렇습니다."

제론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타그를 쳐다봤다. 카타그는 이런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만들어진 존재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바인이 더 대단한가?'

제론은 어쩌면 바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보다야 못하겠지만 말이다.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놀라면 안 되지."

카타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튀겼다.

딱!

그 순간 마티가 분열했다. 각각의 마티가 10개로 늘어나더니 자신의 영역을 찾아갔다. 이제 마티는 대륙 모든 곳에 존재했다.

심지어 제론이 아직 등록하지 않은 유적의 마티까지 몽땅 나타나 자리를 잡았다.

"마티를 얻었다고 해서 개별 시스템 등록을 잊으면 안 된다. 모든 시스템은 등록이 필요해. 아마 등록을 마치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일 거야."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생각이었다. 아직도 유적에는 제론이 얻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자, 이제 하나는 끝났고……."

카타그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원래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답게 결정이 빨랐다.

"남은 건 하나다. 이 유적의 진정한 힘을 얻는 것."

"이보다 대단한 힘이 남았습니까?"

제론은 마티를 얻으며 유적이 그동안 시킨 훈련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만일 그 훈련이 없었다면 아무리 벽을 넘었다 해도 마티를 제대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얻은 마티의 힘은 굉장했다. 아니, 마티도 대단했지만 그걸 모두 조망할 수 있게 된 두뇌의 능력이 더욱 대단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초고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한데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이 남았다니 이젠 오히려 두려워질 정도였다.

"강제로 경지를 높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강제로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이다."

제론의 표정이 굳었다. 얼핏 생각해도 그것이 과히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보통은 악영향을 미치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걸 대부분 해결했다. 극도로 순수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지."

카타그는 그렇게 말하며 제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뇌를 발달시켰으니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올라갔을 테고. 참고로 순수한 에너지로 정제하면 원래 에너지의 0.0001%밖에 남지 않는다."

그 말은 100만이라는 에너지를 얻으면 1밖에 안 남는다는 뜻이었다.

"한데……."

카타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게 문제다. 1만 년이 넘었으니 모인 에너지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걸 모두 받아들이면 아무리 이 시스템을 클리어하면서 육체가 바뀌었다고 해도 견딜 수 없지."

카타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한데 넌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희망적이다. 네 육체나 정신은 솔직히 말해서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클리어한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수준이다. 아니,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야."

카타그는 정말로 신기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하지만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목적을 잃은 일이었다. 여기서 강제로 시스템을 진행하는 건 의미 없는 강요에 불과했다.

"선택권은 네게 주겠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불이익도 없다. 하지만 내 수명이 다했으니 이 시스템은 사라지겠지."

"대륙의 모든 유적이 사라진다는 뜻입니까?"

카타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이 시스템과 나만 특별하다. 이 시스템은 엄밀히 따지면 내 것이다. 즉, 내가 사라지면 시스템도 주인을 잃고 사라진다는 뜻이지. 양도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얻기 위해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 중앙 유적만 특별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제론은 카타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유적 사이를 오가는 텔레포트의 경우 모든 유적에서 일단 이곳 중앙 유적에 오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중앙 유적이 사라지면 유적 간 텔레포트를 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한데 과연 텔레포트만 못 쓰게 되는 걸까?'

제론은 카타그의 눈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카타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모든 걸 없애고자 하는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한 제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제론의 말에 카타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인가? 후회하지 않겠나?"

"반대로 선택했다면 후회했겠지요."

제론의 말에 카타그가 빙긋 웃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로군. 알았다. 그럼 진행하자. 미리 얘기해 두지만 아마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한,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크다. 그래도 하겠느냐?"

"하겠습니다."

제론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카타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자애로운 표정이었다. 그는 제론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고맙구나. 이리 오너라."

제론은 그것이 다음 단계의 시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머뭇거림은 없었다. 단호한 표정과 걸음으로 카타그에게 다가가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지금까지 1만 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온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이제 곧 사라질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함께 담긴 포옹이었다.

카타그 역시 마찬가지 감정을 담아 포옹했다. 시스템이 정한 한계를 넘어선 제론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죽을지도 모를 길을 선택한 용기와 안타까움을 담아 힘껏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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