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유적 클리어 (1)
두 번째 기습은 너무나 싱겁게 끝났다.
설마 연이어 기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크란 제국군은 에어스트 왕국군의 공격을 거의 막아 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제론이 사령관을 없애면서 전황이 거의 결정되어 버렸다.
기습이 워낙 훌륭했기에 굳이 철수하지 않고 전투를 끝까지 이어 나갔다.
그렇게 크란 제국군의 선봉이 전멸했다.
무려 1만 기가 넘는 기간트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크란 제국이라도 이건 뼈아픈 손실이었다.
제론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3천 기의 아모르를 이끌고 진군했다.
크란 제국군의 본진은 무려 10만 기의 기간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론은 거기에 싸움을 걸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제론이라도 10만이나 되는 기간트가 집중되어 있으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력을 분산시키기로 했다.
3천 기의 아모르 부대를 각각 100기씩 나눠 사방으로 흩어 버렸다. 앞으로 그들은 게릴라전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본대는 철저히 피하라고 지시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도망가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것이 이번 게릴라전의 핵심이었다.
크란 제국이 무서운 이유는 본대에 있는 10만 기의 기간트 외에도 엄청난 전력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전력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진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게릴라 부대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 기간트들이었다.
아무리 크란 제국이라도 전 대륙을 아우를 정도로 많은 기간트를 보유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흩어진 기간트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각각 수십 기에 달했기에 식민지를 힘으로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크란 제국 본진은 각종 마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곳이 털리면 완전히 끝장이었기 때문에 방비가 더없이 철저했다.
그래서 제론도 굳이 거기를 노릴 생각은 없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조만간 그들은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순간이 승부를 걸 타이밍이었다.
제론은 이미 에어스트 왕국의 본진에 명령을 내려 두었다. 진격할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누가 봐도 1만 기로 10만 기의 기간트를 상대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하지만 에어스트 왕국군은 제론의 명령에 일말의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따랐다.
☆ ☆ ☆
"골치 아프게 됐군."
"역시 제일 어려울 것 같더라니……."
"그보다 보고가 들어왔던 기간트에 대해 알아봤소?"
"예전에 몇 번 보고가 되었던 기간트인 것 같기는 한데…… 알 수 없었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마 왕이 자리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마 왕이 있었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으리라.
현재 왕은 피와 고통을 이용해 영생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었다. 그 준비에 상당한 시간과 피, 그리고 인간의 마이너스적인 감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걸 준비하느라 다들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대륙 정복이 쉬울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어렵게 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는데……."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참 잘 왔는데,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 두고 크게 휘청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에어스트 왕국 놈들은 지금 어쩌고 있소?"
"일단 병력을 분산시켜서 게릴라전을 막기는 했는데…… 그 때문에 본진에 피해가 크오."
"일단 태세를 정비할 필요가 있겠군."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깁스 남작은 요즘 뭐 하고 있소?"
"왕께서 데려가셨소."
"왕께서?"
다들 놀란 눈으로 말을 꺼낸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능력 하나는 쓸 만한 놈 아니오. 왕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데려오라 하셨소."
"허어, 이번 전쟁에 그놈을 좀 써먹어 볼까 했더니 아깝게 되었군."
"난 그보다 왕께서 그놈을 지나치게 총애하시게 될까 걱정이오."
"하긴, 그놈 성격에 왕의 총애를 받으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긴 하지."
"아무튼, 우리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 하오."
"그 전에 왕께서 모든 준비를 끝마치시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되오."
"끄응, 그게 문제요. 일단 한 달 정도 전력을 추스릅시다. 그다음 모든 전력을 박박 긁어서 단숨에 쓸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소.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합시다."
"숨겨 둔 패가 있으면 다들 꺼내 보시오. 일단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남겨 봐야 소용없지 않겠소?"
그 말에도 다들 동의했다. 왕의 눈에 들지 못하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럼 힘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수뇌부가 마지막까지 꼭꼭 숨겨 둔 패를 몽땅 꺼냈다. 그들도 나름대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모인 전력이 크란 제국을 한 번 뒤집을 정도로 컸다.
"이번에도 안 되면 섬광의 창을 한 번 더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소. 다들 동의하오?"
섬광의 창은 모든 에너지원을 한 달 동안이나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기에 쓰기 위해선 수뇌부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물론 왕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허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선조치 후보고의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면 섬광의 창이라도 써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크흐흐. 고작 시종이 된다고 하니 불만이 생기느냐?"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 그 정도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람은 깁스 남작이었다. 그는 왕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눈치챘다. 그렇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즉시 깨달았다.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깁스 남작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왕이 씨익 웃었다.
"쓸 만한 시종이 되겠구나. 앞으로 잡일은 몽땅 네게 맡기도록 하마."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깁스 남작은 희열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잡일을 맡긴다는 건 자신에게 대륙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왕이 원하는 건 크지 않았다. 그저 꾸준히 피와 인간의 마이너스 감정을 공급하면 된다. 왕은 고작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물론 필요한 양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전 대륙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면 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멍청한 것들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한다니 갑자기 짜증이 나는구나. 가서 심장을 가져오너라."
"예."
깁스 남작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동안 깁스 남작도 그리 곱게 살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깁스 남작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펄떡이는 심장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왕은 그것을 받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왕의 몸에서 불그스름한 안개가 피어났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깁스 남작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진정 마왕이 되어 가는구나.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전,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에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심장을 뽑아냈다. 그때 잠깐 들었던 생각이 그 심장을 씹어 먹는 왕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깁스 남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기 붙어 있지 않으면 엠페리움의 수뇌부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고려의 여지가 없는 지극히 뻔한 수순이었다.
왕은 마왕이 되어 가고 있었다. 깁스 남작의 뇌리에 어쩌면 자신이 좌지우지할 대륙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왕이 진짜 마왕으로 변하면, 대륙을 산산조각 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심장을 삼킨 왕이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핫!"
그의 웃음에는 기쁨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깁스 남작은 다시 납작 엎드려서 덜덜 떨었다.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