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10/217)

Chapter 9 초전 (2)

크란 제국군의 마법사들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일단 마법진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굉장한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더구나 이곳에 설치할 마법진의 경우 규모가 너무 커서 마나를 컨트롤할 사람이 따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마나 사이로 압축된 마법진이 파고들었다. 투명했기에 누구도 마법진이 파고드는 걸 보지 못했다. 또한, 워낙 많은 마나가 움직이고 있었기에 마법진의 존재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샤아아아아아.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지며 투명한 마나가 크란 제국 마법진에 스며들었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마법진이 진동하며 이상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거칠게 날뛰었고,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법사들이 당황하며 어떻게든 마나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기울여도 마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피해! 마법진이 작동한다!"

수많은 마법진이 동시에 빛을 뿜으며 마나를 빨아들였다. 본래라면 다가오는 적을 향해 쏟아져야 할 마법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후아앙!

마법진에서 거대한 불꽃의 창이 튀어나왔다. 요격 시스템으로 설치한 화염의 창이었다.

화염의 창은 가장 먼저 마법사들이 모인 곳을 노리고 날아갔다. 원래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따라가도록 설계했다. 그러니 근처에서 마나를 다루던 마법사를 노리는 게 당연했다.

화르르륵!

화염의 창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원래 설계했던 마법진의 마법보다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다.

화염의 창은 마법사들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앙!

화염의 창 한 방에 백 명이 넘는 마법사가 잿더미로 변했다.

후우웅!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법진이 빛나며 새로운 화염의 창을 토해 냈다.

우우우우웅!

다른 마법진도 모두 작동하며 근처에 있는 사람과 기간트를 노렸다.

꽈앙! 꽈앙!

빠지지지직!

화염과 전격이 마구 쏟아져 나갔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날아오는 마법에 크란 제국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피해! 또 온다!"

"사령관 각하께 보고해! 어서!"

제국군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법은 일단 적중하면 근방을 초토화하니 흩어지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마법진부터 부수지 않고!"

언제 나타났는지 사령관이 기간트를 탄 채 나타나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간트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연이어 쏟아지는 마법을 몸으로 막으면서 다가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는 사이 피해가 속출했다.

사람만 죽고 다친 게 아니었다. 기간트의 피해도 그리 가볍지 않았다. 마법진의 위력이 설치한 것보다 훨씬 강해지는 바람에 아무리 기간트라도 정면으로 맞으면 멀쩡하게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간트의 수가 워낙 많으니 마법진에 다가가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근처에 도착한 기간트가 검을 뽑아 마법진을 찔렀다.

쩌어어어엉!

투명한 막이 마법진을 보호하고 있었다. 방어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파지지지직!

충격을 전격으로 바꿔 방출하는 마법진이 작동하며 검으로 찌른 기간트를 덮쳤다.

쿵쿵쿵!

기간트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령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쉽지 않겠군."

마법진을 부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마법진을 부순 다음에는 그걸 다시 설치해야만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지를 구축하고 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

지금 설치한 마법진에 들어간 돈도 어마어마했는데, 저걸 또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골머리가 지끈거렸다.

쩌엉! 쩌엉! 쩌엉!

파지지지직!

쿵쿵쿵쿵!

더 많은 기간트가 도착하며 방어막을 공격했다. 기간트의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대로라면 곧 마법진을 부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란 제국군에는 불행하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큐웅! 큐웅! 큐웅! 큐웅!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어디선가 날아온 빛의 화살이 마법진을 때리던 기간트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당연히 기간트는 움직임을 멈췄고, 그 기간트를 마법진의 마법이 덮쳤다.

파지지지직!

쿠웅! 쿠웅!

기간트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기습이다! 다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어떻게든 잡아내!"

아직 전쟁을 사직하지도 않았는데, 사고가 나고 기습을 당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쿵쿵쿵쿵쿵쿵!

"저쪽이다!"

기간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지금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모양의 기간트 부대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빛의 화살이 날아왔다.

큐웅! 큐웅! 큐웅!

콰직! 콰직! 콰직!

빛의 화살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리고 기간트의 가슴을 단번에 꿰뚫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부대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마법진이 날뛰고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화살에 아군이 쓰러지는데, 정면으로는 듣도 보도 못한 기간트 부대가 달려오고 있으니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뭣들 하느냐! 일단 달려오는 놈들부터 막아!"

크란 제국군이 보유한 기간트의 수는 1만 기가 훌쩍 넘을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많은 기간트가 고작 10여 기의 기간트에 당황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신 차려! 적은 고작 10여 기에 불과하다! 차분하게 대응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사령관의 명령이 재차 쏟아지자, 크란 제국군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 순간, 사방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꾸아아아아아앙!

"적이다!"

"기습이다!"

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천 기의 기간트가 혼란으로 정신없는 크란 제국군 진영을 기습한 것이다.

사령관은 멀리서 날뛰는 기간트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아모르……!"

수천 기의 기간트가 몽땅 아모르였다. 에어스트 왕국이 작정을 하고 기습을 건 것이다.

만일 정면으로 붙었다면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해도 충분히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아모르가 아무리 뛰어난 기간트라 하더라도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고 나가면 결국은 많은 쪽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기간트 전투였다.

한데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이제는 숫자만으로 전투를 논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크윽!"

사령관이 침음을 삼켰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대로 넋 놓고 당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여전히 우리가 많다! 당황할 것 없다! 일부는 기습을 막고 일부는 정면을 막아! 마법진은 포기한다! 다들 마법진에서 떨어져!"

사령관은 단호히 마법진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싸우면 마법진은 아모르건 크란 제국군이건 가리지 않고 공격할 것이다.

당연히 수가 더 많은 크란 제국군이 피해를 받겠지만, 그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다. 코앞의 전투에 집중해서 적을 빨리 물리치는 편이 나았다. 마법진은 그다음에 차근차근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크란 제국군 사령관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10여 기의 기간트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100기나 되는 기간트가 달려갔으니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전투 진형을 막 바꾸기 시작했을 때, 100기의 기간트 부대와 10여 기의 선두에 있던 테오스가 부딪쳤다.

꽈과과광!

테오스의 위력은 엄청났다. 가장 앞에 있는 기간트 10여 기가 단번에 뭉개지며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테오스의 기사들이 덮쳤다.

꽈과과과과과광!

기사들의 위력도 엄청났다. 물론 테오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테오스는 제론의 실력에 비례해서 강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제론 혼자서 그의 기사 모두를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제론이 벽을 넘으면서 엄청나게 강해지는 바람에 테오스도 덩달아 강해졌다.

어쨌든 크란 제국군에서 달려온 100기의 기간트 부대가 뭉개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기간트 부대를 박살 내고 크란 제국 본진에 들이닥쳤다.

꽈과과과광!

테오스와 기사들은 파죽지세로 크란 제국군 본진을 유린했다. 워낙 강력한 데다가 크란 제국군 전체가 테오스보다는 기습을 가한 3천 기의 아모르 부대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더욱 피해가 막심했다.

테오스를 중심으로 기사들이 사방으로 거리를 벌렸다. 점점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크란 제국군에 더욱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크란 제국군 사령관은 다급해졌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이!"

사령관은 서둘러 전황을 살폈다. 그리고 이를 바득 갈았다. 기습을 가했던 3천 기의 아모르 부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크란 제국군 기간트 부대가 본격적으로 태세를 정비해 전투에 임하려는 순간 귀신같이 그걸 알아차리고 물러난 것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들부터 없애지 않고!"

사령관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그렇게 빠르게 공격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지금 공격하고 있는 저 괴물 같은 기간트 부대라도 잡지 않으면 앞으로의 전쟁 자체가 괴로워질 테니까 말이다.

쿵쿵쿵쿵쿵!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부대가 다급히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각각의 기간트들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초고대문명의 기간트인 이스히스나 마크리아가 빠르고 강하다고 해도, 이렇게 수로 밀어붙이면 답이 없었다. 그들의 몸체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다치면서도 착실히 적의 수를 줄여 나갔다. 크란 제국군은 정말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다.

제론은 테오스와 거의 한몸이 되어서 움직였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에 조금도 괴리감이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소드 마스터를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강해졌는데, 움직임도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니 아무도 테오스를 당해 내지 못했다.

그나마 수백 기에 달하는 발굴형 기간트가 몽땅 몰려와서 견제한 덕분에 테오스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제지할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제론은 공격을 하면서도 냉정하게 전황을 살폈다. 3천 기의 에어스트 왕국군은 몸을 빼는 데 완벽히 성공했다.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고 적에게 피해만 강요하고 물러난 것이다.

'작전 성공이로군.'

작전에 성공했으니 이제 슬슬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 기사들의 피해가 점점 누적되고 있었다. 어차피 아공간에 들어가 있으면 차츰 회복되니 걱정할 건 없었지만, 너무 많이 부서지면 회복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니 곤란했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기사들을 돌려보냈다.

순식간에 사라진 적을 보며 크란 제국 기간트 라이더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기간트가 갑자기 사라졌으면 라이더라도 남아야 하는데,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으니 당황스러웠다.

"남은 한 놈이라도 철저히 부숴!"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으로 제론이 탄 테오스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예전의 테오스라면 모를까, 지금은 절대 잡을 수 없었다.

꽈과과광!

테오스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빠르고 강했지만, 순간적으로 몇 배나 더 빨라진 것이다.

그 빠른 속도와 힘에 테오스를 포위했던 기간트들이 단숨에 나가떨어졌다. 그것도 허공에 붕 뜬 채로 날아가 동료를 덮쳤다.

꽝! 꽝! 꽝! 꽝!

테오스 주변에 공간이 생겼다. 테오스가 그 공간 안에서 두 발을 뛰었다.

쿵! 쿵!

그리고 점프했다.

꽈앙!

테오스의 몸이 하늘에 떠올랐다. 보통의 점프로는 절대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었다.

다들 멍하니 고개를 들고 테오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테오스는 그렇게 허공에 뜬 상태로 휙 날아갔다.

후웅!

테오스는 가볍게 크란 제국군 진영을 넘어갔고, 그 뒤로 빠르게 달려서 사라졌다.

다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경으로 테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크란 제국군 진영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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