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9/217)

Chapter 9 초전 (1)

크란 제국군은 3개 왕국을 순식간에 정벌하고 에어스트 왕국의 국경에 진을 쳤다.

에어스트 왕국군은 이미 그 전에 크란 제국군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3천 기의 아모르가 언제든 돌격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었고, 또 7천 기의 기간트 라이더가 텔레포트 게이트 근처에 병영을 만들어 훈련 중이었다.

또한, 수만 명의 예비 라이더가 피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텔레포트 게이트 근처에서 훈련했기에 언제든 전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에어스트 왕국의 텔레포트 게이트 시스템은 제론이 다시 등장함과 동시에 제작이 재개되었고, 주요 위치에 설치되었다.

제론의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났기에, 예전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 만에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사람을 언제든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제론의 게이트는 그저 미리 만들어진 포탈을 통과하기만 하면 마치 길이 이어진 듯 곧장 원하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동의 후유증도 없었고, 거리의 제약도 없었다. 이대로 모든 왕국에 설치되면 물류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쟁에 정말로 큰 힘이 될 것이다. 병력 보충이 크란 제국보다 훨씬 빠를 테니 그만큼 더 유리해지지 않겠는가.

제론은 최전방에서 다른 라이더와 함께 대기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돌격대장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제론은 선봉 라이더 부대의 천인장들을 모아서 작전 회의를 했다.

3천 라이더의 천인장답게 다들 완숙한 익스퍼트의 경지였다. 현재의 기준으로는 강력한 소드 마스터인 셈이었다.

세 천인장은 각자 제론이 나눠 준 서류를 한 장씩 들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 바인으로부터 받은 보고서 중, 크란 제국군의 동태를 정리한 내용이었다.

"그걸 보면 알겠지만 크란 제국은 오늘 국경에 도착했다. 지금 한창 진을 치는 중이지."

천인장들이 눈을 빛냈다. 그들의 눈빛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동안 훈련만 쌓았기에 실전에 목이 마른 상황이었다. 드디어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방비가 상당히 튼튼하지만 난 지금이 기습의 적기라고 판단한다."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인장들을 둘러봤다. 다들 명령만 내리면 당장에라도 돌격하겠다는 듯 뜨거운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이 지도를 보도록."

제론은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근방의 지형이 아주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크란 제국군의 현재 위치를 입체적으로 표시한 지도였다.

작은 사람과 마차, 막사가 반투명하게 떠올라 있었는데, 그 신비로운 모습을 보고도 천인장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이미 이런 아티팩트를 자주 접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지도 위의 크란 제국군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론은 그것을 보며 세 군데를 짚었다.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가 취약점이다. 아마 크란 제국 놈들에게도 그리 중요치 않은 지점이겠지."

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제론이 짚은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솔직히 기습의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기습 부대의 규모가 크면 어떻게 될까?"

제론의 말에 천인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제론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이 번득였다.

"각자 거느린 부대를 몽땅 이끌고 그곳을 기습한다. 최대한 빠르게 파고들 수 있을 만큼 파고든 다음, 곧장 후퇴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말 그대로 허를 찌르는 기습 작전이었다. 크란 제국군도 설마 선봉으로 나온 모든 기간트를 이끌고 기습 작전을 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작전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난 따로 움직일 것이다.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참고 대기하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제론은 세부적인 작전을 지시하고는 천인장들을 돌려보냈다. 시간이 촉박했다. 적이 태세를 정비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기습을 해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제론은 잠시 머릿속으로 작전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첫 전투는 전쟁에서 아주 중요했다. 모든 싸움은 기세와 흐름이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간다. 초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건 기세와 흐름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그냥 승리여서는 안 돼. 아주 통쾌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 해."

제론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눈앞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벌어지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제론이 상처를 회복하고 깨달음을 얻는 두 달 동안 바인은 크란 제국 내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래서 에어스트 왕궁을 노렸던 것이 섬광의 창이라는 엠페리움의 비밀병기란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유사시 그걸 또 쓸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냈다.

섬광의 창을 막으려면 크란 제국 내의 유적을 더 등록해야만 했다. 그래야 그것을 만들 에너지가 모자라 다시는 그런 위험한 무기를 쓰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제론은 결연한 표정으로 막사를 나섰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었다. 제론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무조건 해낼 것이다. 무조건.

크란 제국군은 아직 진지를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모든 기간트를 꺼내 놓고 철저히 방비했다. 진지를 구축하고 마법진을 깔아 방어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는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제론은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한 채 제국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들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에어스트 왕국의 저력을 알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에어스트 왕국이 다른 나라에 아모르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대륙정벌은 훨씬 빨리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방심하겠는가.

제론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그저 담담했다. 이미 새로운 경지에 오른 그의 눈에는 진지에 구축하는 마법진의 흐름이 훤히 보였다.

크란 제국군이 구축하는 방어 시스템은 그저 적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각종 공격 마법을 통해 적의 공세를 늦추거나, 기간트가 기습했을 때, 한두 기의 기간트 정도는 기동 불능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갖춘 마법진도 준비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혼란을 줄 수 있겠군."

아직 마법진이 완전히 설치되지 않았다. 그저 기본적인 부분만 설치되었고, 보안에 관계된 부분은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만일 다른 마법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달랐다.

제론의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휘몰아쳤다. 철저하게 마나의 움직임을 통제해 이곳에서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이 절대 멀리 퍼지지 않게 조절했다.

아무리 제론이라도 이번에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마나 컨트롤이었다.

하지만 제론은 여전히 담담했다. 벽을 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일단 넘은 이상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론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제론 앞에 투명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마나 컨트롤 능력이 극에 이르면 이렇게 마법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제론이 손을 휘젓자, 투명한 마법진이 작게 압축되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 크란 제국의 마법진에 스며들었다.

"됐군."

제론은 눈을 빛내며 언제든 테오스를 부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혼란이 시작되면 테오스를 타고 곧장 돌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17기의 기간트 기사가 지원할 것이다.

그렇게 크란 제국군을 엄청난 혼란에 몰아넣은 다음, 이제나저제나 제론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는 기간트 부대가 기습하면 작전이 완성된다.

아마 에어스트 왕국군의 기간트 부대는 제법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서 상당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으리라.

제론은 조용히 심호흡하며 열심히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크란 제국군 진영을 쳐다봤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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