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3화 (204/217)

Chapter 7 대륙정복전쟁 (2)

"기간트라도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나가 걱정스런 눈으로 의견을 말했다.

현재 에어스트 왕국의 기간트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아모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벌써 에어스트 왕국의 모든 라이더에게 아모르를 지급했다.

그러고도 기간트가 남아돌고 있기에 성적이 좋은 견습 라이더를 선발해 하나씩 아모르를 풀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아모르를 지원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마 제대로 다른 왕국에 아모르를 제공하게 된다면 크란 제국의 발을 어느 정도는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침음을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으음. 확실히 고려해 봐야 할 문제로군요. 일단 폐하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우리로서도 시간을 벌어야 하니 말입니다."

"예비 라이더를 더 굴려야겠군. 아무래도 더 많은 라이더가 필요하게 될 것 같으니."

"그리고 문두스에 협조를 요청해서 우리 왕국에 병합되기 전에 라이더로 활약했던 자들을 모아야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전쟁은 기간트가 가장 중요했다. 그러니 라이더를 몇 명이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강함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준 중 하나였다.

믿을 수 있는 라이더를 더 확보할 수 있다면 그만큼 에어스트 왕국이 강해진다는 뜻이니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반드시 시행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우리는 전쟁에 참여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갑시다. 동의합니까?"

바이스가 나서서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어쨌든 전쟁에 참여하는 중요한 사안을 국왕이 없이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럼 타 왕국을 지원하는 건 어쩌죠?"

세나가 차분하게 묻자, 다들 난감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문제도 국왕의 인가 없이 진행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 그 정도는 해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어차피 크란 제국은 대륙을 정벌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렇게 전쟁이 이어지면 결국은 에어스트 왕국도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물자를 지원해서 전쟁을 연합군에 유리하도록 이끌어 나가는 편이 나았다. 시간도 끌고 제국의 힘도 소진시키고 말이다.

"물자 지원은 하는 걸로 합시다. 아모르도 최대한 맞춰 봅시다. 수출용 다운그레이드형은 얼마나 있습니까?"

"아직 100기 정도밖에 없어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공장을 이원화하면 생산량을 늘릴 수는 있어요."

세나의 말에 엔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물자가 풍부하니 그걸 이용해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해질 테니까요."

현재 에어스트 왕국은 새로 병합한 왕국들 때문에 영토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또한, 그 안에 있는 유적을 통해 제론이 만들어 놓은 생산 시스템으로부터 막대한 물자를 쌓아 뒀다.

그렇기에 시간을 들여 내실을 다지면 훨씬 강해질 여지가 많았다.

다들 그걸 알기에 엔트의 말에 수긍했다.

"그나저나 폐하께서 빨리 돌아오셔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에어스트 왕국의 발전 속도는 제론이 관여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엄청났다. 제론이 나서면 유적의 힘을 이용하니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제론이 가진 유적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이들은 그래도 경험적으로 제론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폐하께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우리 능력도 보여 드려야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시작할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에서 서둘러 나갔다. 이제부터는 참으로 바쁜 나날이 계속될 것이다.

모두의 얼굴에 결연함이 깃들었다.

☆ ☆ ☆

크란 제국군은 결국 12개 왕국과 인접한 왕국들을 복속시켰다. 물론 그 와중에 어마어마한 양의 기간트가 파괴되었다.

왕국들의 기간트야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완파되었다. 그리고 크란 제국의 기간트도 상당히 많이 부서져 버렸다.

그래도 기간트의 경우 마나코어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다시 수리해서 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그렇게 수리를 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물자가 필요했다.

크란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였다. 영토의 크기는 물론이고, 그 비옥함도 최고였다. 게다가 보유한 광산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정 없이 물자를 보급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아직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얘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제국은 그들을 복속시킨 다음,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다른 왕국에서는 크란 제국이 재정비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크란 제국군은 아직도 전쟁을 곧장 이어 갈 여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을 이어 가지 않고 멈춘 것은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대륙 정벌이 아니라 제국이 아닌 다른 왕국에 있는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심각했다. 현재 엠페리움의 수뇌부는 새로 복속한 왕국에 모여 있었다. 이미 각 왕국을 샅샅이 뒤진 다음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군."

"심지어 유적조차 에너지원이 남지 않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요?"

"그러게 말이오."

정복한 모든 왕국을 뒤지느라 무려 한 달을 썼다. 한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허탈하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아무래도 그 조력자라는 놈이 의심스럽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틀림없이 에너지원에 관한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 거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왕께는 뭐라고 보고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솔직히 보고하시오. 어차피 이럴 때를 대비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겠소?"

"맞는 말씀이오."

대충 결론은 그런 식으로 났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고대유적에 에너지원이 없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고대의 번성은 모두 그 에너지원에 의해 이뤄진 일이었다. 한데 그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니, 왠지 근원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엠페리움의 수뇌부인 그들은 고대의 사람이었다.

"하면 전쟁은 언제 다시 시작하면 되겠소?"

"당장 합시다. 저놈들이 힘을 키울 시간을 줄 필요가 있겠소?"

"그럽시다."

그렇게 결정이 났고, 그날 오후 크란 제국이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크란 제국은 그동안과는 달리 이번에는 하나의 왕국에 힘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갔다.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야 하기에 전력을 낭비하지 않고 신중하게 전선을 유지했다. 물론 치고 나가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대륙의 모든 왕국이 크란 제국과 싸우는 나라에 지원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크란 제국은 대륙 전체와 싸우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저력이었다.

현재 크란 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나라는 메르츠 왕국이었는데, 란체 왕국과 비견될 정도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그런 메르츠 왕국도 크란 제국의 공세를 간신히 감당해 내는 게 전부였다. 물론 주변 왕국의 지원을 받았기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사라지니 타 왕국의 지원을 받는 게 힘들어졌다. 그것은 크란 제국의 공세를 막아 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시기에 에어스트 왕국의 지원 물품이 도착했다.

메르츠 왕국군 진영에 엄청난 크기의 짐을 실은 마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왕국군 사령관인 크라베는 그것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 다행이야. 조금만 더 늦었어도 돌이킬 수 없었을 텐데 말이야."

전 대륙에서 메르츠 왕국에 지원군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메르츠 왕국군의 힘으로는 그 시간 동안 크란 제국을 막아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 놀랍게도 에어스트 왕국의 지원이 도착했다.

물론 병사나 라이더를 지원해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것을 받았다. 다름 아닌 에어스트 왕국에서 새로 개발한 최신형 기간트인 아모르를 보내 준 것이다.

크란 제국과의 전쟁에서 메르츠 왕국군이 계속 밀리는 이유는 기간트의 성능 차이 때문이었다.

크란 제국의 저력은 정말로 놀라웠다. 크란 제국에서 개발한,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간트인 임베르, 누베스, 켈룸, 네불라로만 이루어진 기간트 부대가 한 번 전장을 휩쓸고 지나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성능이 모자라면 양으로라도 해결해야 하는데, 기간트의 수도 크란 제국이 월등히 많았다.

당연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그나마 크란 제국이 기존에 병합한 왕국을 추스르느라 공세를 늦췄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메르츠 왕국은 절단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크란 제국의 공세가 거세질 무렵 시기 좋게 에어스트 왕국의 지원품이 도착했다.

"저거라면 최소한 다른 왕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크라베의 표정은 희망과 우려가 뒤섞여 있었다.

일단 크란 제국을 막아 내는 건 좋은데, 전장이 메르츠 왕국이라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전쟁이 계속되면 왕국 전체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왕국의 재정도 흔들릴 것이다.

다른 왕국이 지원을 해 준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에 더 가까웠다. 왕국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지원해 줄 나라는 없었다.

그나마 에어스트 왕국의 지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크란 제국을 결국 막아 내도 문제였다.

메르츠 왕국은 국력이 크게 쇠해져서 주변 왕국이나 크란 제국에 마구 뜯어먹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쟁에 진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크라베가 염려하는 것은 그 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눈앞의 전쟁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력을 기울여 이기고 봐야 했다.

보통 전쟁에서 이기면 상호불가침 협정을 맺으며 이긴 쪽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크란 제국이 뭐가 아쉬워 그런 짓을 하겠는가. 오히려 여기서는 메르츠 왕국이 약자였다.

물론 나머지 모든 왕국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들고 일어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크라베가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마차의 행렬이 끝났다. 그리고 잠시 후, 부관이 다급히 다가와 군례를 취하고 보고를 시작했다.

"에어스트 왕국의 지원품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기간트는 몇 기나 되나?"

"아모르 300기입니다."

"아모르 300기라……."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최소한 1천 기는 필요했다.

아무리 아모르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 점은 크라베가 제대로 아모르를 타 본 적이 없어서 생겨난 착각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크란 제국에는 그들이 개발한 기간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발굴형 기간트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비록 아직은 그것이 투입되지 않았지만, 메르츠 왕국에서 아모르를 쓰기 시작하면 분명히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전황은 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무너지게 된다. 이건 굳이 겪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건?"

"어마어마한 식량을 보내왔습니다. 최소 1년은 군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말에는 크라베도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여유 식량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메르츠 왕국군을 1년 이상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니, 대체 에어스트 왕국에는 얼마나 많은 식량을 보유하고 있단 말인가.

'보통이 아니야. 대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성장한 거지?'

에어스트 왕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개 백작령이었다. 물론 그들이 새로운 농토를 개척해서 어마어마한 식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개국하고, 주변 왕국을 병합해서 제국이나 다름없는 광대한 영토를 갖게 되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물품도 상당합니다. 이대로 다른 왕국의 지원군을 받아도 당분간은 함께 유지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크라베는 조금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에어스트 왕국에서 굳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아니, 차라리 지원군보다 이런 것이 훨씬 나았다. 사람이 없어도 전쟁을 이어 가지 못하겠지만, 돈이 없는 전쟁은 더 가능성이 없었다.

"좋아. 일단 버티기로 들어간다. 적에게는 기습을 통해 지속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는 방어 체계를 더욱 굳건히 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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