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2화 (203/217)

Chapter 7 대륙정복전쟁 (1)

"뭐? 멀쩡해? 불꽃놀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

왕의 호통에 엠페리움의 수뇌부 전원이 고개를 바닥에 댄 채 엎드려 덜덜 떨었다. 다들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해진 왕이 또 소리 질렀다.

"똑바로 고하란 말이다! 제대로 확인은 했느냐!"

"해, 했습니다."

"설명해."

왕의 말에 담긴 압박에 신하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섬광의 창이 제대로 목표 상공에 도착한 것까지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에너지 라인을 통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으니 그 부분은 확실합니다."

섬광의 창은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마지막에 에너지 라인을 통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그걸 통해 에너지 덩어리의 위력에서부터 위치, 그리고 에너지의 성장 한계까지 모두 파악이 가능했다.

엠페리움에서는 그걸 통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에어스트 왕궁에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미리 계산을 끝냈다.

한데 그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보원을 통해 정확히 확인한 정보가 아니라, 섬광의 창이 떨어졌을 때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실패라고 가정했다는 뜻이로군. 맞느냐?"

"그, 그렇습니다."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명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확실히 그 부분은 이상했다. 하지만 정확히 확인했다고 보기에는 좀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좋아. 그 부분은 차츰 드러나겠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얘기해 보자."

섬광의 창에 사용했던 에너지는 막대했지만, 차츰차츰 원래대로 회복 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모든 시설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더 그 문제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여차하면 섬광의 창을 한 방 더 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때는 훨씬 더 무리해서 에너지를 운용해야 하지만 말이다.

"레벨리오 놈들을 심문한 결과를 보고해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바닥에 엎드린 신하들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 정도로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설마…… 아무것도 못 알아낸 건 아니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아니, 딱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허어, 이거 참 어이가 없구나."

자그마치 5천 명을 사로잡았다. 한데 알아낸 게 고작 그거 하나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래, 조력자가 누구라더냐?"

신하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걸 본 왕은 숫제 허탈했다.

"그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다만 그 조력자라는 놈의 능력이 심상치 않은 듯합니다."

"그래? 어떤 점이?"

"포로들로부터 압수한 스크롤입니다."

신하가 공손히 내미는 스크롤을 받아 든 왕이 그것을 펼쳐 확인했다. 그의 눈빛이 몇 번이나 번득였다. 왕의 눈이 놀람이 어렸다.

"이걸 대체 몇 장이나 가지고 있더냐?"

"각각 한 장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5천 명 전원이?"

"그렇습니다."

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의 지식과 능력으로도 스크롤에 담긴 마법을 온전히 파악해 내지 못했다. 아마 한동안 연구를 하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것이다.

그 정도로 복잡하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마법이었다. 게다가 스크롤로 제작하려면 그냥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나폭탄입니다."

왕은 마나폭탄도 받아 들었다.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이걸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고?"

"각각 15개씩 받았다고 합니다."

왕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이 조력자라는 놈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니,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이 마나폭탄은 자신도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만드는 법은 단순했다. 마나를 고도로 압축시켜서 용기에 담은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용기 표면에 마법적 처리를 해서 평소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왕에게만 그러했다. 보통 마법사에게 그런 걸 시키면 아마 백이면 백 제조 도중 마나폭발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걸 만든 조력자가 누구인지 어떻게든 알아내라. 그놈들을 몽땅 고문해 죽여서라도 반드시!"

"예. 알겠습니다."

왕의 태도가 어찌나 심각하고 무서웠는지 대답하는 신하의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

"그건 그렇고 에너지원을 검사하는 건 어떻게 되었느냐?"

신하 중 하나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레벨리오에 습격당하지 않은 시설의 에너지원은 그대로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말과는 달리 왕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동안 받은 피해가 너무 컸다.

'이대로라면 생명 유지 장치에 많은 힘을 쏟기 어려워지는데…….'

그냥 생명만 유지하는 거라면 사실 그 정도로 많은 에너지원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오랫동안 살아가며 대륙을 다스리려면 그에 걸맞은 힘이 있어야만 한다.

"후우. 전쟁을 일으켜라. 대륙을 정복한다."

왕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륙정복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최소한 이 자리에 있는 신하들은 왕이 말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다른 왕국의 에너지원까지 싹 훑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각각 나라 하나씩 맡아서 다스려야겠다."

그제야 모든 신하가 고개를 들고 자신들의 왕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 감격이 어렸다. 역시 왕은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쿵!

10명의 신하가 한몸이 되어 일제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왕은 그런 신하들을 흡족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슬슬 황족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싹 갈아치우는 걸로 하자. 쓸데없는 조직을 통해 골치가 아프게 만들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

그 말은 레벨리오의 뒤에 황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왕의 말에도 신하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또한,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번에 사로잡은 5천 명의 포로는 전혀 그 부분에 대해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건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엠페리움의 존재를 아는 건 오로지 황족과 같은 조직원뿐인데, 엠페리움에 대항하는 조직이 있다면 황족이 뒤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쨌든 엠페리움은 황족의 정리를 결정했다. 물론 그것은 크란 제국이 대륙을 정복한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 ☆ ☆

레벨리오를 완벽히 정리한 엠페리움이 크란 제국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저력은 엄청났다. 그동안 엠페리움에 선을 대고 있던 모든 귀족이 움직였고, 또 엠페리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황실도 함께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대군이 조성되었고, 크란 제국은 본격적으로 대륙정복전쟁을 시작했다.

에어스트 왕국의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그 회의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인물 하나가 없었다. 바로 국왕이었다.

"이럴 때 폐하가 안 계시니……."

"대체 왜 안 돌아오시는 걸까요?"

수뇌부 회의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사람은 단연 바이스와 카이트, 그리고 세나였다.

"어쨌든 폐하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 왕국의 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그래야만 할 때였다.

"폐하도 계시지 않은 마당인데, 참전은 당연히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현재의 대륙은 혼란의 극치였다. 이 모든 것이 크란 제국 때문이었다.

크란 제국은 제국 내의 모든 전력을 모아서 대륙 정복을 선포했다. 크란 제국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불과 얼마 전에 7개 왕국을 동시에 공격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전력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도 엄청났다.

7개 왕국에 인접한 12개 왕국이 단숨에 크란 제국의 군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 싸워 볼 여력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패배였다.

크란 제국은 12개 왕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작업을 하며 계속 진군했다.

그 탓에 대륙 전체가 술렁였다.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크란 제국의 어마어마한 전력은 대륙의 나머지 왕국까지 몽땅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크란 제국이 불과 얼마 전 일으켰던 12개 왕국과의 전쟁에서 보여 준 잔인함이 모두의 마음을 다급하게 하였다. 크란 제국은 당시 점령했던 왕국의 왕국민 수십만을 학살했다. 당시의 전쟁은 정복전이라기보다는 섬멸전에 가까웠다.

그런 일이 자신의 왕국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정석에 가까운 방법으로 식민지를 만들고 있지만, 나중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전 대륙이 힘을 모아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수많은 왕국이 하나로 모이는 일이었다. 당연히 의견 수렴이 힘들었고, 그것도 하나의 혼란이 되었다.

크란 제국이 전쟁을 일으킴으로 인해서 발생한 혼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 대륙의 텔레포트 게이트는 크란 제국 마탑의 것이었다. 게이트를 설치할 때 돈을 들인 것은 엄연히 게이트가 위치한 영지였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크란 제국 마탑이 맡았으니 그들이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이럴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전 대륙의 텔레포트 게이트가 멈춰 버렸다. 게이트가 움직이는 곳은 크란 제국과 크란 제국이 집어삼켜 이미 식민지가 된 영토뿐이었다.

그 때문에 기간트 이동에 큰 문제가 생겼다. 빠르게 다른 왕국으로 지원을 나가기 위해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한 이동이 필수였다.

한데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반면 크란 제국은 자국의 게이트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병사들도 게이트를 이용했기에 그 기동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당연히 그 차이는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제국군의 공세에 나머지 왕국은 변변한 힘도 못 쓰고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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