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1/217)

Chapter 6 섬광의 창 (2)

"저게…… 뭐지?"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판단하면 왕궁 정도는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유적의 에너지를 이용해 각종 방어 마법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한 힘이 느껴졌다.

제론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태블릿을 꺼냈다. 저게 뭔지 알아내야만 했다. 정말로 불길했다.

태블릿을 통해 하늘 높이 떠 있는 빛무리를 분석했다. 그리고 놀라운 결론을 얻어 냈다.

"저게…… 여기를 공격하려는 거라고?"

빛무리의 이동 궤적을 모두 추적해 냈다. 저것은 크란 제국에서 쏘아 보낸 것이었다. 출발 위치가 공교롭게도 슈틀러가 작전을 펼치겠다고 했던 그곳이었다.

제론의 표정이 굳었다. 예상이 맞는다면 엠페리움은 이번 함정에 상당히 많은 걸 걸었다. 저 정도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날려 버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너지를 저렇게 한데 모아 날리기 위해선 저것보다 훨씬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추가로 필요했다.

태블릿의 분석을 통해 저 빛무리가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 덩어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고도로 압축된 에너지였다.

만일 저것이 이 왕궁 위로 떨어진다면 왕궁은 물론이고 수도 자체가 싹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였다.

"일단 나가야겠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저 에너지 덩어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더 큰 에너지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예상컨대, 2분 안에 낙하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낙하하면 저걸 막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리라.

제론은 서둘러 유적에서 나갔다. 그리고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땅에서 저걸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설사 막아 낸다 하더라도 그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공중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제론은 마나링을 가속하며 하늘로 쭉쭉 날아올랐다. 원래는 빛무리 가까이 다가갈 생각이었지만, 절반도 가지 못해 멈추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압력이로군."

에너지로부터 쏟아지는 압력이 너무 거대해서 더는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무리하면 올라갈 수야 있겠지만 그럼 오히려 몸이 상하게 된다. 그래서는 올라가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저걸 대체 어떻게 처리하지?"

빛무리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저기에는 마법도 소용이 없다. 아마 마법을 쓰면 그 마법의 에너지까지 남김없이 빨아들일 것이다.

방법은 하나였다. 더 큰 힘,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제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제론은 문득 테오스가 떠올랐다.

'테오스라면 가능할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테오스의 능력은 제론의 힘에 비례한다. 기본적으로 제론이 가진 힘을 증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서 지금의 힘으로는 결코 저 에너지 덩어리를 압도할 정도의 파괴력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로군.'

유일한 방법은 저 빛무리가 에너지 흡수를 멈추고 떨어질 때,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것이었다.

아마 제론의 힘으로는 안 되고 테오스를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었다. 압도적으로 밀어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과연 막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제론은 빛무리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장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처럼 압박해 오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조건 해내야만 한다. 아니면 다 죽을 테니까.

에어스트 왕궁에는 지금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제론의 사람이었다. 제론은 단 한 명도 이번 일로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지켜 내고 말 것이다. 제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테오스."

순식간에 제론이 떠 있던 자리에 테오스가 나타났다. 테오스의 거대한 마나링도 맹렬히 가속 중이었다.

놀랍게도 테오스 역시 마법을 통해 허공에 떠 있었다.

테오스가 가진 마나링의 힘이 워낙 큰 데다가 테오스의 몸에 깃든 마나가 무게 자체를 줄여 버린 결과였다.

위이이이잉!

테오스의 마나링이 맹렬히 회전했다. 제론은 그 마나링을 이용해 주변 마나를 마구 빨아들였다.

빛무리가 더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도록 그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순간적으로 공백 상태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제론의 시도는 상당히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테오스의 마나링도 제론의 것과 마찬가지로 9개였다. 9개의 마나링이 빨아들일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마나를 흡수하는 주체가 테오스이니 훨씬 더 막대한 양의 마나가 몰려들었다.

테오스는 빛무리보다 훨씬 세심하고 복잡한 마나의 운용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빛무리 주변으로 9개의 손을 뻗어 그 근방의 마나를 우선적으로 빨아들였다.

빛무리에 흡수되는 마나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워낙 단순했기에 근방의 마나가 희박해지니 아래로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제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상황이 더 커지는 걸 막아 냈다. 이젠 눈앞에 있는 저 우환덩어리만 막아 내면 된다.

고오오오오오!

빛무리가 더욱 환해졌다. 지금까지 빨아들이던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론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은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펼쳤다.

위이이이이잉!

마나링이 더욱 맹렬히 가속하면서 미리 모아 둔 마나를 복잡하게 움직였다.

테오스의 몸이 거대한 빛으로 휩싸였다. 그 빛은 서서히 소용돌이쳤다.

테오스가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손바닥 앞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새하얗게 빛나는 마법진이었는데, 나타남과 동시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거대한 빛기둥이 거기에서 시작해 하늘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이 현재 남은 시간 동안 펼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위력이 강력한 것이었다. 단순히 위력만으로는 이 마법을 따라갈 만한 것이 드물 정도로 강했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빛무리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쩌어어어어어엉!

빛무리와 빛기둥이 충돌하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나마 하늘에서 부딪친 것이 다행이었다. 근방의 모든 공기를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만일 지상에서 이런 충격파가 발생했다면 에어스트 왕궁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가 그대로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제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충격파만으로 이 정도 위력이었다. 그러니 저 빛무리가 진짜 땅에 처박히면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왕국이 완전히 박살 날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저 에너지 덩어리가 땅속 깊은 곳으로 파고든 다음 폭발하면 아마 에어스트 왕국 전역에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마법이 끝났다.

제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당연히 빛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도 이 정도 마법을 퍼부었으면 그 위력이 많이 깎여 나갔으리라 예상했다. 한데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조금 전 테오스의 마법이 이뤄 낸 일은 떨어지는 빛무리의 속도를 떨어뜨린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속도가 줄어들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저 정도 속도로 떨어지면 땅속 깊이 파고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단순한 폭발만 일어난다는 뜻이다. 물론 그래도 에어스트 왕국의 수도는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아니, 수도뿐이 아니다. 수도 옆에 조성된 거대한 농지도 함께 날아갈 것이다. 또한 수도 근방의 영지들도 몽땅 사라져 버릴 것이다.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빠드득!

제론의 이가 조금씩 부서졌다. 상상만 해도 분노가 치밀었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우우웅!

제론의 아랫배에 머물고 있는 마나가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테오스의 아랫배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깨어났다.

테오스의 아랫배에는 거대한 마나홀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마나코어가 움직일 때 약간씩 도움을 주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마치 제론과 한몸인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테오스의 온몸이 마나로 충만해졌다. 아랫배의 마나뿐 아니라 주변의 마나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서 빨아들였다.

제론은 떨어지는 빛무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제론의 집중력이 점점 고조되었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마치 테오스와 한몸이 된 듯한 느낌이 깊어졌다.

아니, 실제로 테오스와 일체화되고 있었다. 마치 테오스의 몸 구석구석이 자신의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 몸의 내부 구조가 파악된다는 것이 아니라, 테오스가 마치 자신의 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테오스가 검을 뽑았다.

샤아아아아!

유적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받은 특별한 검이었다. 검을 꽉 쥐자, 마치 검 역시 한몸인 것처럼 손에 착 감겼다.

고오오오오.

검에 마나가 집중되었다. 아니, 힘이 집중되었다. 검에 모여든 것은 마나뿐만이 아니었다. 제론의 마음이 함께 깃들었다.

그 순간 제론은 자신이 벽 하나를 더 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만끽할 여유도 없었다. 빛무리는 지금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었다.

'일검에 박살 낸다!'

현재의 실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실력을 뛰어넘어서라도 해내야만 했다. 모든 걸 던져서라도 이뤄 내야만 했다.

그래야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모두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제론의 마음이 점점 더 많이 검에 실렸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점차 단단해졌다.

빛무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아아아아아압!"

제론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테오스도 함께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제론과 테오스는 그 순간 완벽히 하나가 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

빛무리가 테오스를 덮쳤다. 둘은 한몸이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로 떨어지는 빛무리에서 긴 빛줄기가 꼬리처럼 빠져나갔다. 빛의 꼬리는 점점 두꺼워지고 거대해졌다.

그와 비례해 빛무리의 크기가 점차 작아졌다.

꼬리의 두께가 빛무리와 정확히 일치했을 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앙!

강렬한 섬광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빛과 열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행인 점은 폭발이 허공에서 일어나 지상에 미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테오스가 아래에서 위로 타격을 했기에, 떨어지는 에너지 파편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 피해를 크게 줄였다.

물론 그럼에도 에어스트 왕궁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수천 개의 에너지 파편이 비 오듯 쏟아졌다.

쩡! 쩡! 쩡!

왕궁 수십 미터 위에서 연달아 에너지 파편이 수도를 보호하는 방어 시스템과 충돌해 섬광과 열기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 소란에 수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봤다.

위를 확인한 사람들은 멍하니 그 화려한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환한 대낮인데도 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똑똑히 보였다.

도시 방어 시스템에 에너지 파편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으로 빛이 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순식간에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서 더없이 아름다웠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불꽃놀이도 결국 끝났다. 그리고 하늘에는 힘없이 떨어지는 기간트 한 대만 남아 있었다.

쿠웅!

땅이 크게 흔들렸다. 기간트가 떨어지면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즉, 떨어지는 기간트를 도시 방어 시스템이 막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걸 눈치챈 사람들이 의아한 마음을 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잠깐의 흥미로운 일탈로 여기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에어스트 왕국은 여전히 대륙에서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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