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9/217)

Chapter 5 함정 (4)

"슈탐 후작이다! 쉬지 말고 첨탑까지 무너뜨려!"

슈틀러의 명에 첨탑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기간트 3기가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첨탑이 그리 크지 않아 가까이 갈 수 있는 기간트의 수는 3기가 한계였다.

쩡! 쩡! 쩡!

놀랍게도 검은 광택이 흐르는 첨탑은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기간트의 주먹이 처음보다 좀 더 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을 본 슈틀러는 다급해졌다. 바닥에서 빛나는 마법진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기간트에 타고 있다 하더라도 버티기 어려웠다.

"비켜!"

슈틀러는 직접 나섰다. 생각해 보면 굳이 주먹을 쓸 이유가 없었다. 슈틀러의 기간트가 검을 뽑았다.

후웅!

슈틀러는 검을 뽑자마자 휘둘렀다. 다른 기간트와 달리 검에 실린 힘이 상당했다. 그나마 다른 조직원보다 마법진의 영향을 덜 받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쩌어어어엉!

슈틀러의 검이 첨탑에 꽂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첨탑이 움푹 들어갔다.

그것을 본 슈탐 후작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호오. 설마 이 탑의 방어 마법을 뚫을 줄이야! 생각보다 대단하군!"

슈탐 후작의 눈에 탐욕이 일어났다. 슈틀러가 타고 있는 기간트는 카타락타처럼 보였지만 결코 카타락타가 아니었다. 모양만 같은 다른 기간트가 분명했다.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슈탐 후작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알아보지도 못하는 놈이 보물을 가지고 있어 봐야 뭐하겠는가. 저런 보물의 주인은 따로 있는 법이다.

"그래…… 확실히 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의 힘이 점점 더 강력해졌다. 사실 도시 위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마법진의 진짜 효용이 아니었다.

이 마법진의 기능과 목적은 원래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심지어 첨탑에 흐르는 방어 마법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잘 맞추려면 긴장을 늦춰선 안 되지. 마법진이 완벽하게 발동하기 전에 저 보물을 들고 몸을 빼야 하니까."

마법진이 제대로 발동하면 아무리 슈탐 후작이라도 결코 멀쩡히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그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첨탑 안에 있으면 안전했다. 하지만 그건 첨탑이 멀쩡했을 때의 얘기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계속 받으면 결국 첨탑이 망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첨탑 정도야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 이 마법진이 발휘하는 힘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쩌어어어엉!

그 순간 또 기간트의 검이 첨탑을 찍었다. 첨탑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나저나 저놈은 왜 저렇게 멀쩡하지?"

슬슬 다른 기간트는 하나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라이더가 제대로 몸을 못 가누니 균형을 못 잡고 기간트의 무게에 눌린 것이다.

하지만 슈틀러의 기간트는 여전히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건 아니었다. 슈틀러도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게 가능해 보였다. 슈탐 후작은 더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쯧. 조금 귀찮아졌군."

슈탐 후작은 검을 뽑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첨탑을 부수는 걸 막고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 다시 혼자서 첨탑에 들어오면 된다.

적은 기간트를 타고 있으니 당연히 첨탑에 못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법진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에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것이다.

결정을 내린 슈탐 후작이 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마침 기간트가 첨탑을 후려치려고 검을 크게 젖힌 순간이었다.

후웅!

슈탐 후작이 떨어지면서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주변 공기가 모조리 휩쓸려 거대한 폭풍이 되었다.

슈틀러도 그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검의 궤도를 수정해 휘둘렀다. 솔직히 지금 이것은 바라 마지않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직접 슈탐 후작을 죽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쩌어어어어엉!

사람이 휘두른 검과 기간트가 휘두른 검이 부딪쳤는데, 마치 동등한 개체가 충돌한 것처럼 거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슈탐 후작은 다시 허공으로 훌쩍 떠올랐다.

슈틀러의 카타락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쿠웅!

뒷발이 땅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 정도로 충격이 컸다는 뜻이다.

슈탐 후작은 다시 떨어지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슈틀러는 슈탐 후작을 쓸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슈틀러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반면 슈탐 후작은 여유가 넘쳤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적절한 순간에 창을 통해 첨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끝이었다.

슈틀러도 슈탐 후작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점점 밝아지는 바닥의 마법진은 불길함을 더해 갔다.

쩌어어엉!

슈탐 후작이 다시 높이 떠올랐다. 슈틀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첨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꽈아아아앙!

카타락타의 어깨가 첨탑을 들이받았다.

슈탐 후작의 눈에 노기가 깃들었다. 그의 검이 카타락타의 등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슈틀러는 등 쪽으로 느껴지는 위기감을 무시하고 첨탑에 검을 찔렀다. 그곳은 그동안 몇 번이나 타격을 가해 드러난 빈틈이었다. 그리고 몸으로 검을 밀었다.

꽈아앙!

슈탐 후작의 검이 카타락타의 등에 꽂혔다.

그리고 그 순간 슈틀러는 모든 힘을 다해 검을 찔렀다. 그의 의념이 하나로 모였다. 그것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쩌저저저정!

카타락타의 검이 희미하게 마나를 머금었고, 첨탑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카타락타의 어마어마한 힘이 밀고 들어갔다.

쩌저저저정!

첨탑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갔다. 그리고 그대로 부서져 쏟아졌다.

꽈르르르르!

바닥의 마법진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슈틀러는 물론이고 슈탐 후작마저도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버렸다.

"안 돼!"

슈탐 후작의 공허한 외침이 거대한 빛무리에 묻혀 버렸다.

콰우우우우우!

도시 하나 크기의 빛기둥이 하늘을 꿰뚫고 솟아올랐다.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그곳에 있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당연했다. 빛기둥은 도시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으니까. 건물도, 성도, 사람도, 그리고 기간트까지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