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8/217)

Chapter 5 함정 (3)

슈틀러는 직접 조직원을 이끌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하수도의 길을 통해 목적지로 향했다.

무려 5천 명이나 되는 조직원이 슈틀러의 뒤를 따라갔다. 한두 명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인원이 이동하는데 소리가 안 날 리 없었다.

슈틀러는 그 부분도 미리 준비했다.

"여기서 흩어진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거미줄처럼 복잡한 하수도 곳곳으로 조직원이 흩어졌다.

슈틀러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고작 300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번 작전의 핵심인 기간트 라이더였다.

"일단 슈탐 후작이 정말로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슈틀러는 스스로 암시를 걸듯 중얼거렸다.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슈탐 후작이 이곳, 펠츠 성에 머문다는 정보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루트를 통해 얻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확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안 그래도 함정에 뛰어드는 꼴인데, 거기에 목표조차 없다면 그저 바보 멍청이가 되는 셈이었다.

펠츠 성에는 레벨리오에서 오래전부터 심어 둔 비선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미리 침투시켜 요직에 앉도록 조처를 한 정보원이 제법 많았다.

펠츠 성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펠츠 성의 정보원이 슈탐 후작의 존재를 발견한 것도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걸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슈틀러는 그 정보원의 목숨을 요구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정보원도 레벨리오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레벨리오를 통해 막대한 도움을 받은 그의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슈틀러는 하수도에서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나온 300명의 라이더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펠츠 성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이며 위로 솟아올랐다.

슈틀러는 그것을 보며 눈을 빛냈다.

"작전 개시."

저 불꽃은 작전을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또한, 펠츠 성에 있는 정보원이 슈탐 후작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적이 함정을 준비했으니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도 성공할 자신은 충분했다.

'300기의 기간트를 과연 막아 낼 수 있을까?'

슈틀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못 막는다. 슈탐 후작이 아무리 뛰어난 소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인간이야 소드 마스터가 무섭겠지만, 기간트가 상대라면 얘기가 완벽히 달라진다.

게다가 이쪽은 기간트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기간트를 투입하기 전에 상대를 크게 뒤흔들 준비도 충분히 했다.

신호가 올라갔으니 이제 슬슬 그들이 움직일 것이다. 마나폭탄과 스크롤로 무장한 5천 명의 레벨리오 조직원들이 말이다.

이번에 제론이 공급한 스크롤은 두 가지였다. 또한, 마나폭탄의 위력도 예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제론이 직접 참여하지 못하니 더욱 확실한 성공을 위해 신경을 써 준 것이다.

'그나저나 도시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군.'

펠츠 성도 조용했고, 도시도 조용했다. 마치 사람들을 미리 대피라도 시킨 것 같았다.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금세 그 생각을 지웠다.

레벨리오의 조직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 있는 하수구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일제히 펠츠 성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을 제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펠츠 성은 단단히 성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긴 하지만 높고 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마치 도시와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성에 다가간 조직원들이 마나폭탄을 던졌다. 막는 사람이 없기에 모습을 감추는 스크롤은 쓸 필요도 없었다.

꽈과과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나폭탄의 위력이 올라갔기 때문에 성벽에 가해지는 충격도 엄청났다.

우우우웅!

성벽에 마법 문양이 한가득 떠올라 빛났다. 그것은 견고한 방어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나폭탄의 위력은 방어 마법에 균열을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니 결국 방어 마법도 깨질 수밖에 없었다.

꽈아아아앙!

성벽 곳곳이 무너졌다. 또한, 성문도 박살 나서 날아가 버렸다.

슈틀러는 은밀하게 이동했다. 일단 성문과 성벽이 무너졌으니,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일제히 기간트를 소환해 달려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슈탐 후작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가 만일 비밀통로라도 이용해 몰래 빠져나가 버리면 답이 없다. 그래서 슈틀러는 그 부분에 제법 신경을 썼다.

언제라도 돌격해 성에 진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은 슈틀러는 품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냈다.

이 스크롤은 다른 조직원이 가진 스크롤과 전혀 다른 종류였다. 이것은 마법을 담은 스크롤이 아니라, 마법을 발동시키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스크롤이었다.

슈틀러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찢었다.

찌이익!

우우우웅!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스크롤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펠츠 성을 중심으로 총 열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꽈과과과과과광!

폭발 위치가 마치 펠츠 성을 포위하는 듯했다.

슈틀러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의 위치에서 마나폭탄 10개를 터트렸다. 그것도 몰래 바닥에 깔린 돌을 드러내고 땅을 파서 묻은 마나폭탄이었다.

그 부분은 펠츠 성의 비밀통로가 위치한 곳이었다. 비밀통로에 숨어 들어가서 마나폭탄을 터트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기에 위에서 폭발시켜 통로를 무너뜨렸다.

성능이 강화된 마나폭탄 10개의 위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만일 그걸 다닥다닥 붙여 터트렸다면 성벽도 무너졌을 것이다.

'그래도 이럴 때는 제법 도움이 되는군.'

펠츠 성의 비밀통로에 대해 알려 준 건 당연히 레벨리오의 수뇌부, 황족이었다. 아무리 허수아비 같은 존재라 해도 황족이었다. 성의 설계도면 정도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펠츠 성 중심부의 도면은 얻지 못했지만 말이다.

펠츠 성 중심부에는 엠페리움의 시설이 있었다. 그 시설과 관계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황족이라 하더라도 결코 얻어 낼 수 없었다.

어쨌든 황족은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덕분에 비밀통로를 막아서 슈탐 후작이 도망갈 수 없도록 펠츠 성에 가뒀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작전은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슬슬 기간트를 소환해야겠군.'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은 건 성으로 들어가서 기간트를 소환하느냐, 아니면 기간트를 소환해 성으로 돌진하느냐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슈틀러는 후자를 선택했다. 성으로 들어가서 기간트를 소환하는 건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아야만 했다.

물론 그편이 적의 방심을 조금이라도 더 유도해서 성공 확률을 높여 주긴 하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딱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 순간, 갑자기 도시의 도로에 빛나는 선이 나타났다.

시작은 펠츠 성이었다. 펠츠 성을 중심으로 도시의 도로를 따라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선이 죽 그어졌다.

슈틀러는 발밑을 지나가는 빛의 선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머뭇거림은 지극히 짧았다.

"기간트를 소환해!"

슈틀러의 외침에 갑자기 나타난 빛의 선에 넋을 놓고 있던 라이더들이 일제히 기간트를 불러냈다.

키이이이이잉!

301기의 기간트가 동시에 나타났다. 미리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기간트를 소환할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별다른 혼란은 없었다.

"달려!"

슈틀러는 기간트에 타자마자 명령을 외쳤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쿵쿵쿵쿵쿵쿵!

슈틀러의 명령을 받은 라이더들이 기간트를 움직였다. 301기의 기간트가 펠츠 성을 향해 달려갔다.

펠츠 성의 중심에 있는 첨탑. 그 꼭대기 방에 한 사내가 서서 도시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기간트? 아공간 간섭을 벗어나는 방법까지 가지고 있다니 정말로 놀랍군."

사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수백 기의 기간트가 성벽을 지나 달려오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그저 나른했다.

"과연 기간트를 상대로도 통할지 모르겠군."

말은 모른다고 하면서 표정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펠츠 성에 보관된 엠페리움의 시설은 다른 곳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이곳에 있는 시설은 그 자체로 공격 무기이자, 방어 도구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바닥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마법진이 가득 그려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커다란 마나스톤이 박혀 있었다.

사내는 마나스톤으로 다가가 그것을 발로 꾹 밟았다.

철컹!

마나스톤이 아래로 쑥 내려가며 어딘가에 걸렸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내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도시 전체를 감싼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 빛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대로 멈췄다.

"역시 탁월해."

무려 5천 명이나 되는 적이 이 한 방에 무력화되었다.

쿵! 쿵! 쿵!

"역시 기간트에는 안 되는 건가?"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간트가 다가오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걸로 봐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럼 안전장치를 마련해 볼까?"

사내는 다시 바닥의 마법진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 사내가 발로 박아 넣은 마나스톤 외에도 조금 떨어진 곳에 마나스톤 하나가 더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거기로 다가가 마나스톤을 발로 꾹 밟았다.

철컹!

이번에도 역시 마나스톤이 움푹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색깔이 바뀌었다.

우우우웅!

사내가 있는 첨탑이 은은히 진동했다. 그리고 마법진의 빛과 같은 색의 빛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걸로 당분간은 안전해지겠군."

사내는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사실 지금 취한 조치는 딱 첨탑만 방어하는 것이었다. 성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성 밖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또한, 기간트의 공격에 성이 부서지면 속절없이 죽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다 죽을 거라 예상한 작전이었다. 저들 역시 이번 함정의 미끼 중 하나였다. 아니, 미끼를 강화하기 위한 장식이었다.

사내의 무심한 시선이 성안으로 들어와 힘겹게 걷고 있는 기간트로 향했다.

슈틀러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 준비한 함정이 이런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기간트의 시야를 통해 성에 진입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조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남은 마나폭탄은 물론이고 스크롤까지 몽땅 빼앗기겠군.'

이건 정말로 큰일이었다. 이번 작전에 확실히 성공하기 위해 각 조직원에게 지급한 마나폭탄의 수는 무려 15개에 달했다. 개중에는 20개를 지급받은 자도 있었다.

이번 작전에만 총 10만 개의 마나폭탄을 투자했다. 게다가 스크롤도 각각 2장씩 챙겼다. 하나는 모습을 감추는 스크롤이고, 다른 하나는 용이한 탈출을 위한 스크롤이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로 변해 버렸다. 기간트에 타고서도 이렇게 몸이 무겁고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맨몸인 자들은 오죽하겠는가.

'몽땅 사로잡히겠군.'

슈틀러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펠츠 성안에서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수는 100명에 달했는데, 그들이 입은 갑옷에 그려진 마법진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 갑옷의 마법진이 도시의 마법진을 벗어날 방법인 모양이군.'

슈틀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일 슈탐 후작이 저 갑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렇게 몸이 무거운 상태로 소드 마스터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그래도 기간트에 타고 있으면 저 마법진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일단 성부터 부수는 것이 순서였다.

"당황하지 마라! 성부터 부숴!"

슈틀러의 명령에 300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꽝! 꽝! 꽝! 꽝! 꽝!

성이 워낙 컸기에 300기의 기간트가 모두 달라붙을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성은 기간트의 주먹질에 속절없이 부서져 나갔다.

아무리 마법진에 의해 움직임이 둔해진 기간트라고 하지만 그래도 기간트는 기간트였다. 고작 성 하나 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꽈르르! 꽈르르릉!

성이 우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펠츠 성은 대단히 컸다. 부수고 또 부숴도 새로운 건물이 나타났고, 벽이 나타났다. 하지만 기간트가 무려 300기였다. 누구도 펠츠 성의 규모에 감탄하지 않았다.

꽝! 꽝! 꽝! 꽝!

꽈르르! 꽈르르릉!

끊임없이 성이 무너졌다. 성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 성에 사는 사람의 대부분이 엠페리움과 관계된 자들이었다.

그렇게 성이 모두 무너지고 이제 첨탑 하나만 남았다. 그것은 성 중앙에 있던 탑이었는데, 검은 광택이 마치 물결처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슈틀러는 첨탑 창가에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슈탐 후작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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