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7/217)

Chapter 5 함정 (2)

모든 계획을 확인한 제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계획은 너무 단순한데? 마나폭탄을 아무리 퍼부어 봐야 제대로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성공을 경험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거야 적이 제대로 방비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고."

그동안은 아무리 엠페리움이라도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여력이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를 레벨리오의 습격을 대비해 모든 시설에 전력을 확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저 예상되는 몇 군데를 찍어서 함정을 파는 정도였는데, 그것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레벨리오도 기본적인 정보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제론이 문두스의 정보를 제공하니 더더욱 그런 함정에 당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완전히 상황이 달랐다.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함정 안에 넣어 둔 격이었다. 아마 지독한 함정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하면…… 어찌할까요?"

슈틀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론이 도와주기로 한 상황이었다. 제론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제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기도 했다.

제론은 슈틀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혹시 기간트 라이더를 보유하고 있나?"

슈틀러는 기대에 찬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물론입니다. 레벨리오의 조직원이 되려면 기간트에 대한 소양 교육을 기본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기본적이라면 어느 정도지?"

"최소한 기간트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정도는 됩니다."

"전투는?"

"현 인원 중 능숙하게 전투가 가능한 자는 300명 정도입니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목표로 하는 시설 근처에서 일제히 기간트를 소환해 공격하는 작전은 어떤가?"

"예? 그,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

슈틀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펠츠 성이 비록 크고 보유한 군사의 규모도 상당했지만 그래도 수백 기의 기간트가 도시 중심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그걸 막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기간트의 기종은 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괜찮은가?"

"무, 물론입니다!"

슈틀러의 머릿속에 수십 가지 작전이 휘몰아쳤다. 기간트를 쓰면 펼칠 수 있는 작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단 마나폭탄과 병행하는 방법에서부터 마나폭탄을 미끼로 던지고 적이 함정을 열면 기간트로 그 함정의 빈틈을 찌르는 수도 있었다.

"아, 몇 기의 기간트를 주실 수 있습니까?"

슈틀러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몇 기의 기간트를 움직일 수 있느냐에 따라 작전의 양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제론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전투 가능한 라이더가 300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300기의 카타락타를 지급해 주겠다."

슈틀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300기의 기간트를 내줄 줄은 몰랐다. 대체 이 사람은 자신들에게 뭘 원하기에 이리도 큰 것을 내준단 말인가.

"그렇게 알고 작전을 짜도록. 기간트 300기와 마나폭탄, 그리고 스크롤을 지급해 주면 굳이 내가 없어도 되겠지?"

"그, 그렇습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기간트 장비를 공수해 올 차례였다. 물론 그 장비에 담긴 아공간은 기존의 기간트 장비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아공간 간섭 마법진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아공간일 테니까.'

제론은 에어스트 왕국의 모든 기간트 장비를 교체했다. 이제 에어스트 왕국의 기간트는 더는 아공간에 관한 마법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장비를 레벨리오에 나눠 줄 생각이었다.

제론이 굳이 기간트까지 주면서 몸을 빼려는 이유는 유적 때문이었다.

최근 이상하게 유적 클리어에 대한 욕심이 부쩍 늘었다. 이렇게 레벨리오를 도와 엠페리움을 방해하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제론은 일단 유적을 모두 클리어하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사실 크란 제국의 전쟁에 좀 더 깊이 개입할 수도 있는데 굳이 발을 뺀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게 그저 욕심인가?'

제론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봤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유적을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조만간 기간트를 가지고 올 테니 그동안 차분히 계획을 세우고 있도록."

제론은 그 말을 남기고 중앙 유적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기간트를 조달해 유적 간 텔레포트로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이후, 레벨리오가 작전 준비를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제론은 유적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엠페리움의 수뇌부는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 덜덜 떨었다. 그들의 왕이 갑자기 나타나 온몸으로 공포스러운 기운을 줄기줄기 뿌려 대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안다는 말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왕의 얼굴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왕의 분노가 시작된 것이다.

"레벨리오라는 놈들에 대해 상세히 보고해라."

신하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적대하는 조직입니다."

"그딴 놈들을 아직도 내버려 뒀다고?"

"그, 그게 지금까지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는지라……."

레벨리오의 뒤를 캐서 그들을 분쇄하는 데 들어가는 힘과 돈이 차라리 그들의 습격으로 말미암은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기에 내버려 뒀다.

또한, 습격 때마다 레벨리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에 그냥 내버려 두면 지리멸렬하겠거니, 쉽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어쨌든 레벨리오는 미미한 조직이었고, 굳이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의 습격 규모가 이렇게 갑자기 커지기 시작한 건 최근부터였다.

"더 자세히 고해라."

왕의 말에 깃든 살기에 고개를 든 신하가 부르르 떨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문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걸 이겨 내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조, 조사 중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팠습니다."

신하는 더욱 자세히 함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제야 왕의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다들 공포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놈들을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왕은 신하들을 죽 둘러보며 차분히 말했다.

"레벨리오가 에너지를 없앤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어쩌면 그들이 에너지원을 탈취했을 가능성도 있다."

왕은 그 말을 하고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그걸 알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상당히 복잡하고 잔혹해진다는 것을 머리에 새겨라."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번쩍 들고 왕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 복잡해지고 잔혹해진단 말인가.

"영생을 이어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서 잠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내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생령주입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생령주가 가장 중요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왕의 부활을 기다린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생령주의 주인인 왕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생령주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영생을 이룰 수 있다. 너희가 산 증인 아니더냐. 생령주 없이 날 부활시켰지 않느냐."

"하지만……."

즉시 반박하려던 신하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왕의 말이 옳았다. 생령주가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 기능이 중요했다. 대체할 물건이 있다면 사실 없어도 그만이었다.

"하면 피와 영혼입니까?"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건 부활에 필요한 재료에 불과하다. 언제까지고 부활에 의존해서 영생 흉내만 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헉! 그, 그렇다면……!"

"그리 놀랄 것 없다. 이미 수백 년 동안이나 이어 오던 연구니까."

다들 왕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찌 그런 중요한 얘기를 이제야 해 준단 말인가.

"이제야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짜증이 나는구나."

왕의 태도에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면 대체 그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왕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에너지다."

"예?"

"육체와 정신을 유지할 에너지가 필요하단 말이다. 섭리를 거스르고 영혼을 육체에 담아 둘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 말이다."

왕을 바라보는 신하들의 목울대가 또 한 번 움직였다. 만일 그게 정말이라면 큰일이 난 셈 아닌가. 육체를 유지할 에너지가 사라지는 셈이니 말이다.

"사라진 에너지원이 너무 많다. 이래서야 우리 모두의 육체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해."

그제야 신하들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챘다. 영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일지도 몰랐다.

다들 긴장한 눈으로 왕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와서 버려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 방법이 안 된다면 생령주를 이용한 부활을 이용해서라도 영생을 이어 가면 될 것 아닌가.

"생령주를 이용한 부활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할 수 있을지 이제는 나도 장담하지 못한다."

왕의 말은 신하들의 얼굴에 절망을 드리웠다. 설마 생령주에도 그런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한계가 있다니. 그렇다면 정말로 영생을 위한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레벨리오를 생포해라. 특히 수뇌부는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에너지원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지 못하면 끝장이야."

신하 중 하나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왕에게 물었다.

"하면…… 만일 정말로 에너지원이 사라진 거라면 어찌합니까?"

왕의 얼굴에 냉막한 기운이 차르르 흘렀다. 그의 입에서 더없이 차가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때는 방법을 바꿔야지. 생령주를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면 된다."

"다, 다른 방식 말입니까?"

"그래. 인간이 가지는 에너지는 막대하지. 인간의 몸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그렇지만 정신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하지."

왕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맺혔다.

"크란 제국을 움직여 대륙을 정복해야지. 아마 그렇게 되면 전 대륙에 공포의 대왕이 강림할 것이다."

그제야 신하들의 표정에 여유가 떠올랐다. 왕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었다.

대륙을 발아래 두고 도탄에 빠뜨려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고, 비탄에 빠지고, 또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 엠페리움의 수뇌부는 미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그들의 왕이 지은 잔혹한 얼굴과 닮아 있었다.

☆ ☆ ☆

슈틀러는 레벨리오의 모든 조직원을 동원했다. 이번 작전에 조직의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생각할수록 제론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파고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호의에 감사하며 눈앞의 계획에 모든 걸 집중해야만 할 때였다.

"다들 준비되었나?"

슈틀러는 눈을 빛내며 조직원들을 둘러봤다. 이번 작전에 걸린 의미는 상당히 컸다.

슈탐 후작은 레벨리오의 조직원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었다. 또한 레벨리오 본거지를 박살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가장 선두에 서서 레벨리오를 박살 낸 사람이자, 엠페리움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슈탐 후작을 징치하는 것은 향후 레벨리오가 더 성장하는 데에도, 또 레벨리오의 활동을 이어 나가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신 있었다. 현재 레벨리오에는 아공간 간섭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300기의 기간트가 있었으니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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