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90/217)

Chapter 2 포섭 (2)

프로쉬는 동료들과 함께 막사에서 쉬다가 갑자기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마나가 그의 몸을 한 차례 휘돌았다.

에어스트 왕국의 견습 라이더인 프로쉬는 라이트닝 검술과 거기에 딸린 마나호흡법을 익혔다.

그 마나호흡법은 정말로 놀라웠다. 이렇게 불시에 마나를 움직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막사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모두 3명이었다. 프로쉬는 그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모나트 왕국군의 기사이자 라이더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프로쉬는 정중히 물었다. 일단 내일이면 본국으로 돌아가 정식 라이더가 되기 위한 마무리 훈련에 들어가겠지만, 지금은 일개 용병 신분이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 것 없네. 다들 편히 앉게."

기사들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용병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용병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사들이 그들 앞에 섰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자네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어서 왔네."

제안이라는 말에 용병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뭔가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왕국의 기사가 될 생각 없나?"

"기, 기사 말입니까?"

프로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말을 꺼낸 기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니 일이 수월하게 풀릴 듯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보아하니 다들 예전 레늄 왕국 출신이더군. 맞나?"

"맞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는 대부분 예전의 레늄 왕국 출신이었다. 물론 신분은 다양했지만 말이다.

프로쉬만 해도 그렇다.

프로쉬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 팔자였다. 하지만 라이더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라이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렇게 견습 라이더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런 위험한 용병 일을 하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차라리 우리 왕국에 뿌리를 내리게. 기사가 되면 여러 모로 좋은 일이 많을 걸세."

딘스탁은 테오스 용병단이 구 레늄 왕국의 군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용병단이라고 확신했다. 군부 출신 라이더와 기사 출신 라이더는 은연중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한데 자네가 쓰는 기간트는 용병단의 것인가, 아니면 자네 개인의 것인가?"

기사가 넌지시 물었다. 프로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용병단의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기간트는 전부 우리 단장님의 소유입니다."

기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그 많은 기간트가 한 사람의 소유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나트 왕국군에는 주인 잃은 기간트가 잔뜩 있었다. 그러니 실력이 뛰어난 라이더를 영입하면 상당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그건 몰랐군. 어쨌든 우리 왕국의 기사가 될 생각이 있나? 자네 소유의 기간트를 지급해 줄 수도 있네."

기사의 말에 좌중이 한차례 술렁였다. 개인 소유의 기간트를 지급해 준다는 것은 사실상 수만 골드를 주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면 크란 제국군으로부터 얻은 전리품을 지급할 확률이 높았다. 크란 제국의 기간트는 다른 기간트에 비해 훨씬 가격이 높았다.

동요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말을 꺼낸 기사가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아무튼 잘 생각들 해 보게. 참고로 남은 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네. 정확히는 남은 기간트가 많지 않다네. 이리저리 지급하고 나면 50기쯤 남을 것 같군."

기사는 그렇게 말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해 둬야 조급한 마음이 일어 선택을 빨리 하게 된다.

막사에 들어왔던 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치 한차례 폭풍이라도 몰아친 것 같았다.

프로쉬는 기사들이 나가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나트 왕국에 라이더가 그렇게 부족한가?"

프로쉬의 말에 옆에 있던 동료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라이더야 많겠지. 하지만 쓸 만한 놈은 별로 없을걸?"

"하긴."

그들은 이번에 전쟁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선배이자 상관인 정식 라이더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확실히 파악했다.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는 정말로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대단하다는 크란 제국의 라이더와 비교를 해도 분명한 우위에 있었다.

크란 제국 라이더의 실력은 냉정하게 평가하면 에어스트 왕국의 견습 라이더보다 약간 아래였다.

이는 에어스트 왕국의 병사만 되어도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라이트닝 검술의 힘이었다.

또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수뇌부의 철저한 훈련 덕분이었다.

"하면 우리한테만 손을 뻗은 게 아니겠군. 다른 동료들도 지금쯤 기사들의 방문을 받고 있겠어."

"당연히 그렇겠지."

"하면 폐…… 아니, 단장님께도 사람이 갔을까?"

"갔겠지. 다만 우리랑은 조금 다른 의미로 방문했을 거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가 끝나고 난 다음 전리품에 대한 의혹이 곳곳에서 불거졌다. 그 이유가 다 테오스 용병단 때문이었으니 그 화살이 제론에게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쩌지?"

용병 중 하나가 그렇게 물으며 프로쉬를 바라봤다. 프로쉬는 10명으로 이루어진 전투조의 조장이기도 했다. 모든 명령이나 지시 사항은 프로쉬를 통해 전달되었다.

"우리야 당연히 예정대로 하는 거지. 내일 여길 뜬다. 혹시라도 남고 싶은 사람은 남아도 된다고 하셨으니 잘 생각해."

프로쉬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이곳에 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렇게 농담처럼 말을 덧붙일 수 있었다.

아무리 크란 제국의 기간트를 지급해 준다고 해도 그 기간트가 에어스트 왕국의 아모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제 곧 정식 라이더가 된다. 에어스트 왕국의 정식 라이더가 된다는 말은 곧 아모르의 주인이 된다는 말과 같았다.

비록 개인 소유는 아니었지만, 다른 기간트를 탐낼 필요가 없었다.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에게 지급되는 급료는 딴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족했다.

게다가 라이더는 기간트를 타고 싸워야 한다. 성능이 좋은 기간트를 타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건 상식이었다.

아무리 개인 기간트를 지급받아 봐야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개인 기간트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었다. 개인 소유이니만큼 거기에 들어가는 유지비도 개인이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만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러니 누가 모나트 왕국에 남겠는가.

"그나저나 우리가 무사히 여길 나갈 수 있을까?"

용병 중 하나가 살짝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프로쉬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아직 에어스트 왕국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아마 자신도 몇 가지 일을 겪지 않았다면 저런 걱정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제론의 힘만으로도 모나트 왕국군을 유린할 수 있었다.

프로쉬는 제론의 진짜 기간트인 테오스의 위용을 확인했기에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일이 잘못돼도 제론이 혼자 나서서 다 박살을 내 버리면 그만 아닌가. 물론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도록 다 준비를 하겠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충분히 쉬어 둬. 정작 필요할 때 힘들어서 못 따라가면 손해니까."

프로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저마다 야전 침대에 누웠다. 약간의 취침을 통해 피로를 풀고, 그다음 적당히 몸을 풀어 놔야 했다.

그래야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이 전장 아니던가.

이내 막사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프로쉬는 자신의 말에 따라 잠을 청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확신컨대, 저들도 모두 자신과 같은 마음이리라.

프로쉬도 침대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내 고요한 숨소리가 막사 안을 가득 채웠다.

아침햇살이 막사 안으로 스며들었다.

딘스탁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번쩍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사를 기다리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거의 몸을 다 풀었을 때, 부관이 헐레벌떡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딘스탁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 묘한 불안감이 피어나는 걸 억지로 가라앉혔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인가!"

딘스탁이 나직이 호통을 쳤다. 부관은 딘스탁의 호통에도 다급히 다가와 보고를 했다.

"테오스 용병단이 사라졌습니다!"

딘스탁의 눈이 커다래졌다.

"사라져? 그게 무슨 말이냐!"

"밤사이 모두 진지를 빠져나간 모양입니다!"

"감시하던 놈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부관은 식은땀을 흘렸다. 감시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가자."

딘스탁은 서둘러 막사를 나섰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막 막사를 나선 딘스탁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가만. 우리가 그놈들에게 의뢰비를 지급했던가?"

"절반만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부관의 대답에 딘스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용병이 돈을 포기하고 도망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용병단장도 사라졌느냐?"

"그 부분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딘스탁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방향을 돌려 제론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앞은 병사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령관이 다가오자 바짝 얼어 군례를 취했다.

"충!"

"비켜라!"

딘스탁은 병사들을 옆으로 밀치고 막사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막사 안에는 제론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지금 막 일어난 모양이었다.

"다들 어디로 빼돌렸느냐?"

딘스탁의 말에 제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아, 마침 찾아오셨으니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뢰가 끝났으니 나머지 의뢰비를 지급해 주십시오. 오늘 중으로 떠나겠습니다."

딘스탁이 이를 갈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웃기지 마라! 날 이렇게 농락하고 그냥 떠나겠다고? 넌 그 어디도 갈 수 없다!"

제론이 씨익 웃었다.

"모나트 왕국의 공식적인 입장입니까?"

딘스탁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왕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자신이 어떻게 결정한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가 일개 용병단장임을 깨닫고 인상을 썼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어쨌든 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딘스탁은 그렇게 억지를 부리고는 막사에서 나갔다. 부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제론의 막사에서 나간 딘스탁은 씩씩대며 사령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며 상황을 차분히 되새겼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테오스 용병단에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도 그들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딘스탁의 고민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부관이 또 다급히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사령관 각하! 크란 제국군이 움직였습니다!"

부관의 외침이 딘스탁의 모든 상념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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