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9/217)

Chapter 2 포섭 (1)

제론은 모나트 왕국군의 행동에 코웃음을 쳤다.

"막사 배정을 바꿔? 포섭을 해 보시겠다?"

모나트 왕국군은 테오스 용병단의 막사를 분리해서 배정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테오스 용병단의 막사는 모나트 왕국군 진영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원래 용병단의 막사는 하나로 모아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식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용병단 막사를 이렇게 흩어 놨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용병들을 믿기 어려워 따로 분리해서 관리할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막사 하나에 20명의 용병이 들어간다. 즉, 테오스 용병단에 배정된 막사가 모두 5개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제론에게는 따로 개인 막사를 지급했다.

결국 총 6개의 막사를 따로 흩어 놓은 것이다.

제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테오스 용병단은 에어스트 왕국의 견습 라이더였다. 이제 실전을 겪었으니 슬슬 정식 라이더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한데 그런 그들을 고작 기사 작위를 미끼로 내걸어 포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또한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는 제론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났다. 굳이 강대국이 된 에어스트 왕국과 제론을 배신하고 모나트 왕국 같은 약소국에 몸담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고작 기사로 말이다.

제론은 피식 웃으며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개인 막사를 지급하면서 침구를 비롯한 모든 물품을 최상급으로 맞춰 주었다.

"이거 하나는 조금 마음에 드는군."

생활이 편해졌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테오스 용병단은 내일 중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아직 통보 전이었지만 계약은 끝났다.

테오스 용병단의 경우 1개월 단위로 계약을 했다. 또한 전투가 승리로 끝났을 때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계약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미리 상황을 예상한 제론이 추가한 조건이었다.

다들 당연히 테오스 용병단이 재계약을 할 거라 믿었다. 이 상황에서 굳이 계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딘스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워낙 큰 승리를 거뒀기에 더 이상 테오스 용병단을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 향후 전선은 고착 상태에 빠질 확률이 컸다.

더 이상 큰 전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간트 부대로만 이루어진 용병단은 괜한 지출이었다.

딘스탁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라이더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또한 빼돌렸을 것이 분명한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장비를 회수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론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제론이 그런 생각을 하며 막사에서 쉬고 있을 때, 막사 앞을 지키던 병사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 각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병사는 제론에게 상당히 깍듯했다. 제론이 은연중 풍기는 분위기가 일반적인 용병과는 많이 달랐기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제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막사 중앙에 마련된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지켜보던 병사가 그제야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못마땅한 표정의 사령관, 딘스탁이 나타났다.

딘스탁은 자신이 왔는데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제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했는데, 더 짜증이 났다.

딘스탁은 제론 앞에 털썩 앉았다. 막사 앞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당분간 아무도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우리 모나트 왕국의 정식 기사가 되어 주게."

"죄송합니다."

제론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단호히 거절했다. 마치 칼로 잘라 내는 듯한 태도에 딘스탁의 눈썹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기분이 잔뜩 상한 것이다.

"이유가 뭔가? 어차피 용병보다는 기사가 훨씬 낫지 않은가. 돈이 문제인가? 그 부분도 해결해 주지. 전리품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겠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뭔가? 동료들이 문제인가? 다 같은 기사단에 배정해 주지. 자네는 기사단장이 되는 거고. 지금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네. 그저 배경이 생길 뿐이지. 이래도 싫은가?"

"제 대답은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죄송하다고 하지만 표정이나 태도를 보면 전혀 그런 거 같지 않았다. 딘스탁은 분노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보아하니 후일을 기약할 여지가 없군. 하면 이제부터 나도 우리 기사가 아닌 용병으로 대할 수밖에 없겠군."

딘스탁은 그렇게 말하고는 사납게 웃었다.

"빼돌린 기간트 장비를 내놓게."

제론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빼돌릴 시간이나 주셨습니까?"

"충분했지. 난 자네들이 싸워 이긴 기간트에 대한 권리만 인정했네. 라이더를 죽여 그 장비를 빼돌리는 건 계약 위반이야."

제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찾아보시죠. 제가 보기엔 빼돌려서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만."

딘스탁이 손가락을 딱 튀겼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샅샅이 뒤져라."

이미 예전에 제론이 쓰던 막사와 그 주변은 완벽하게 파헤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곳은 여기뿐이었다.

기사들이 막사를 이 잡듯 뒤집었다. 하지만 기간트 장비는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아공간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딘스탁이 제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론은 잠시 고민했다. 이 멍청한 놈들을 싹 죽여 버리고 그냥 이곳을 뜰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향후 크란 제국과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딘스탁에게 좋은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유능한 사령관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분간은 그가 필요했다.

"아공간 감지 아티팩트를 가져와라."

딘스탁의 명령에 기사 하나가 작은 스틱형 아티팩트를 가져왔다. 국소 범위에 한해 아공간의 유무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이었다.

우우우웅.

딘스탁은 즉시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당장 제론의 몸 근처에서 아공간 반응이 나타났다.

"역시. 그걸 넘겨라."

제론은 어이없는 눈으로 아티팩트가 가리키는 물건을 쳐다봤다. 그것은 제론의 기간트 장비였다.

"이건 내 베르의 장비입니다만."

딘스탁은 제론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기사에게 명령했다.

"저 장비를 가져가서 확인해라."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제론의 기간트 장비를 가져갔다. 제론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광경을 그냥 지켜봤다.

솔직히 베르 한 기 정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참으로 괘씸했다.

'뭐, 어쩔 수 없나?'

이번 전투에서 모나트 왕국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물론 크란 제국군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간트가 필요했다. 전투로 얻은 기간트는 상당한 수리가 필요하기에 당장 전력으로 써먹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더의 막사를 덮쳐서 얻은 기간트는 달랐다. 직접적인 전투를 치르지 않은 기간트인 데다가 평소에 워낙 정비를 잘해 두어서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테오스 용병단을 몰아낸 뒤 라이더의 막사를 뒤졌지만, 모나트 왕국군이 확보한 기간트 장비의 수는 500개도 되지 않았다.

정보를 통해 파악한 크란 제국군 기간트의 수를 생각하면 거의 1천 개 이상이 모자란 셈이었다.

딘스탁은 그것을 제론이 빼돌렸다고 확신했다.

제론은 딘스탁을 가만히 노려봤다. 자신의 기간트 장비를 기사들이 가져가는데도 거기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음대로 용병의 기간트 장비를 빼앗아 가도 되는 겁니까?"

"저 기간트의 아공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사과하지."

제론이 피식 웃었다.

"아공간에 아공간 장비를 넣는 것이 과연 가능할 거라고 봅니까?"

그 말에 딘스탁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그 부분은 아예 생각도 못 했다. 그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과연 아공간에 또 다른 아공간을 넣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딘스탁이 불안해할 때, 옆에 있던 기사 하나가 말했다.

"통상적으로는 아공간에 다른 아공간을 넣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고대 유물의 경우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기사의 말에 딘스탁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기사도 확신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말했을 뿐이었다. 사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와는 아무 상관 없었다. 그저 빨리 베르의 아공간을 확인한 다음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나가서 확인해라."

기사가 베르의 장비를 들고 나가려 하자, 제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게."

딘스탁이 나직하지만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제론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 장비를 가져가는데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최소한 참관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제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딘스탁은 얼굴을 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들 막사에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강제로 베르를 소환했다.

베르의 아공간을 쓰려면 베르를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공간 장비는 기간트의 마나코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아공간은 기간트만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기간트의 아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간트가 직접 물건을 들게 해서 아공간에 넣어야만 했다. 그나마도 용적량이 그리 크지 않았다.

막사와 막사 사이에 마련된 공터에 베르가 나타났다. 당연히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몸이었다.

대번에 딘스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기에도 없다면 대체 그 많은 기간트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제론은 팔짱을 낀 채 딘스탁을 쳐다봤다. 이제 어쩔 거냐는 눈초리였다. 딘스탁은 그 눈빛에 굴욕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어쩔까요?"

부관이 다가와 딘스탁에게 물었다. 딘스탁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됐다. 다들 철수해. 그리고 이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고 확인해라. 적진을 다시 한 번 파헤쳐. 거기에 감춰 뒀을 수도 있으니까."

딘스탁의 명령에 부관이 즉시 대답하고 물러갔다. 기사들도 새로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우르르 이동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예전 크란 제국군이 자리를 잡고 있던 진지였다.

제론은 베르를 다시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장비를 챙겼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앞으로 더 이상 모나트 왕국에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모나트 왕국군이 크란 제국의 저력을 끝까지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거기까지는 알 바 아니었다.

제론은 냉정하게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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