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8/217)

Chapter 1 기간트 용병단 테오스 (3)

쿵쿵쿵쿵쿵쿵쿵!

모나트 왕국군의 사령관인 딘스탁은 동원 가능한 모든 기간트를 싹 출진시켰다.

미리 계획한 대로였다.

무려 1천 기의 기간트가 굉음을 토해 내며 크란 제국군 진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도착하려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최소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다. 하지만 딘스탁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기습에 성공했다는 신호가 왔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연락이 왔다. 적의 기간트 500기를 적진에서 분리했다는 것이었다.

습격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500기나 되는 기간트를 분리했다니, 이런 상황인데도 이기지 못한다면 이건 사령관의 자질 문제였다.

하지만 진군하는 기간트 부대의 가장 후미에서 따라가는 딘스탁의 가슴은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 모험을 했다. 만일 적의 피해가 경미하다면 이번 공격은 그야말로 무모한 짓이 된다.

사실 공격을 거절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딘스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 왕실이 보내 준 정보와 명령이 너무나 정확히 적의 빈틈을 찔렀다.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아예 첫 전투 때 모나트 왕국은 끝장났을 것이다.

"속도를 높여라!"

쿵쿵쿵쿵쿵!

딘스탁의 명령에 기간트 군단이 더욱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살짝 무리할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딘스탁은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보대로라면 지금 적은 모나트 왕국군을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만일 분리된 500기의 기간트가 돌아온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그럴 때 테오스 용병단이 그들의 뒤를 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전투는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었다. 테오스 용병단의 첫 기습이 성공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저 멀리 크란 제국군 진영이 보였다. 이쪽에서 공격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듣고 싸울 준비를 마친 기간트들이 서 있었다. 한데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400기!'

딘스탁은 눈을 빛냈다. 적 기간트의 수는 400기가 채 안 되는 듯했다. 반면 모나트 왕국군은 무려 1천 기의 기간트를 끌고 왔다.

성능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다. 아무리 한 시간이나 달려와 힘든 상태라 하더라도 말이다.

"공격!"

딘스탁의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쳐라!"

모나트 왕국군의 기간트 부대가 더욱 기세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사기가 크게 올랐다.

다들 없던 기운까지 내서 방어 진형을 촘촘히 짠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부대를 그대로 덮쳤다.

꽈과과과과광!

크란 제국군의 방어는 견고했다. 하지만 모나트 왕국군의 기간트가 너무 많았다.

딘스탁은 200기의 기간트를 따로 빼서 크란 제국군의 진지를 짓밟았다.

크란 제국군은 그 부분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진지를 지키던 병사와 기사, 그리고 장교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진지의 막사와 건물이 순식간에 박살 났다.

크란 제국군은 분전했지만, 무려 두 배가 넘는 수의 기간트를 상대로는 버티는 것도 버거웠다. 결국 조금씩 밀렸고, 그것이 빈틈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작은 빈틈이었지만 그것은 견고한 방어진을 뒤트는 결과를 낳았다.

꽈과과과과과광!

빈틈이 벌어져 방어진이 흔들리자,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크란 제국군은 모나트 왕국군에 의해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고 잠시 후, 500기의 기간트가 뒤늦게 도착했다.

딘스탁은 예상한 상황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서둘러 방어진을 짰다.

기간트의 수가 많으니 견고한 방어진으로 상대를 견제하며 밀어붙이기만 해도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순간, 테오스 용병단이 다시 나타났다.

"한 놈도 남겨 두지 마라!"

제론의 명령과 함께 100기의 몰레스가 크란 제국군 기간트 부대의 뒤를 쳤다.

꽈과과과과광!

그동안 도망만 치느라 전투 욕구가 잔뜩 쌓인 테오스 용병단은 거칠게 크란 제국군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전투가 상당히 치열했다. 가끔 테오스 용병단이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론이 나서서 조금씩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웅크리고 있던 모나트 왕국군이 기지개를 켰다.

꽈과과과과광!

모나트 왕국군까지 거센 공격을 시작하니 크란 제국군은 가운데 낀 꼴이 되었다.

결국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부대는 끝까지 분전했지만 전멸하고 말았다.

"이겼다!"

딘스탁은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정말로 기뻤다.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 대단한 크란 제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겨 버렸다.

크란 제국이 여기서 끝낼 리 없으니 아마 추가 병력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모나트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들과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마 모나트 왕국에 예전처럼 강력한 기간트 군단을 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란체 왕국처럼 되겠군.'

딘스탁은 그걸 원했다. 란체 왕국처럼 전쟁이 대치 상태로 이어지기만 해도 어떻게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왕국의 전쟁 상황에 따라 크란 제국이 다시 물러갈 수도 있었다.

이제 정말로 한시름 놓은 것이다.

딘스탁은 이 말도 안 되는 승리의 주역인 테오스 용병단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지극히 용병답게 행동하고 있었다.

'전리품…….'

딘스탁은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한때는 한 나라의 군인이었던 자들이 저러고 있으니 화가 났다.

테오스 용병단은 각자 흩어져 가장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고 있었다.

딘스탁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테오스 용병단의 단장이 다가왔다.

'이름이 테오스라고 했지?'

단장의 이름은 테오스로 알려져 있었다. 제론은 자신의 이름 대신 테오스라는 가명을 쓰는데도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원래 이름이 테오스라도 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오히려 당황했을 정도였다.

"무슨 일인가?"

딘스탁이 약간 퉁명스럽게 물었다. 두 사람 모두 기간트를 타고 있었기에 그 목소리가 사방에 우렁우렁 울렸다.

"계약에 따라 전리품을 인정받고자 합니다."

딘스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스 용병단은 기간트를 101기나 보유한 용병단이었다. 당연히 의뢰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그 의뢰비를 깎기 위해 모나트 왕국군에서 제안한 것이 바로 전리품에 대한 권리였다.

테오스 용병단이 직접 처리한 기간트를 전리품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지금 제론이 요구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가져가라."

딘스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테오스 용병단은 크란 제국군의 기간트 부대를 이끌고 도망 다니기만 했다. 진짜 싸움은 처음 기습과 마지막 전투에서 뒤를 친 것뿐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전리품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제론은 딘스탁의 반응에 씨익 웃었다. 이렇게 될 걸 미리 예상했다. 나중에 터질 잡음을 미리 조금이나마 제거한 셈이었다.

"얘기 들었지? 가져가라신다. 얼른 챙겨라."

제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테오스 용병단원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전원 기간트를 돌려보내고 맨몸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처음 기습을 한 장소, 바로 라이더의 막사였다.

제론도 기간트를 돌려보냈다. 이제 아공간에 기간트 장비를 챙겨 담을 시간이었다. 어림잡아 1500개는 될 것이다. 물론 망가진 것도 많겠지만 말이다.

100명의 용병이 정신없이 휘젓고 다니자, 기간트 장비를 회수하는 건 금세 끝났다.

제론은 그 모든 장비를 벨트의 아공간에 넣었다. 장비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아직 아공간이 많이 남아서 충분히 담을 수 있었다.

테오스 용병단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던 딘스탁은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한참 보고 있으니 그들이 챙기는 것이 바로 기간트 장비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멈춰라!"

딘스탁이 크게 외치며 기간트를 몰아 테오스 용병단에게 다가갔다.

쿵! 쿵! 쿵! 쿵!

딘스탁의 기간트가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테오스 용병단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테오스 용병단은 그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제론의 명령에만 따랐다. 상대가 누구든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테오스 용병단이 전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기간트 장비를 찾아 나르자, 딘스탁이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멈추라고 하지 않느냐!"

꽈앙!

딘스탁의 기간트가 세게 발을 굴렀다. 바닥이 은은히 진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테오스 용병단은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놈들이……!"

딘스탁이 다시 행동을 취하려 할 때, 그 앞에 거대한 기간트 한 기가 불쑥 나타났다. 제론의 베르였다.

갑자기 나타난 베르 때문에 딘스탁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제론이 베르의 조종석에 훌쩍 뛰어올랐다.

키이이이이잉!

베르가 가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양발을 살짝 벌려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 자세 덕분에 아주 자연스럽게 딘스탁의 기간트가 나갈 진로를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이냐!"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네 눈에는 저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누가 함부로 기간트 장비를 가져가라고 했느냐!"

"전리품에 대한 협의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누가 협의했단 말이냐! 너희 용병단이 처리한 기간트만 가져가야지 장비를 챙겨 가면 어쩌겠단 말이냐!"

"우리가 처리한 기간트입니다만……."

"웃기지 마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희는 우리가 싸울 때 뒤를 친 것 밖에 없지 않느냐!"

제론이 피식 웃었다.

"기습으로 처리한 기간트입니다. 설마 아까 전투에서 상대한 기간트가 전부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딘스탁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제론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저 많은 기간트를 그냥 내줘야 할 판이었다.

"인정할 수 없다. 당장 수거한 기간트 장비를 반납해라."

딘스탁의 어조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제론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계약을 위반할 생각입니까?"

"계약 위반이 아니다. 계약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는 건 너희들이야!"

제론은 고개를 돌려 열심히 기간트 장비를 찾아 한곳에 모으고 있는 테오스 용병단을 쳐다봤다.

초기에 가져온 기간트는 모두 아공간에 넣었고, 남은 건 500개쯤 되는 듯했다.

"다들 멈춰라."

제론의 명령에 테오스 용병단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제론에게 모여들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절도가 가득했다.

딘스탁은 모나트 왕국군보다 오히려 더 군인 같은 테오스 용병단을 보며 순간적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자들을 왕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만, 불가능할 것도 없지.'

딘스탁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미끼로 저들을 끌어들이면 당장 올 것 같았다.

"이 일은 나중에 엄중히 항의할 겁니다. 딘스탁 경."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 기간트에서 내린 다음, 기간트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가자."

제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오스 용병단이 제론의 뒤를 따랐다. 그냥 대충 쫓아가는데도 줄이 딱딱 맞았다. 지독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걸 보는 딘스탁이 입맛을 다셨다. 당장이라도 포섭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뭣들 하느냐! 저 기간트 장비를 당장 챙겨라! 그리고 아직 수거하지 않은 것들도 다 찾아내라!"

딘스탁의 명령에 모나트 왕국군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렇게 전장이 서서히 정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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