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7/217)

Chapter 1 기간트 용병단 테오스 (2)

멀리서 테오스 용병단이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딘스탁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습하겠다는 자들이 저렇게 소란스럽게 달려가다니. 제대로 일을 해낼지 걱정이 되는군."

뒤에서 그 말을 들은 부관이 깜짝 놀라 딘스탁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딱히 테오스 용병단을 신뢰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왜 저런 임무를 맡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내가 저들의 말을 따르는 게 이상한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상할 거 없다. 왕실에서 내려온 명령이니까."

"예? 왕실이요?"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왕실에서 계속 정보를 보내오는 것 알고 있으면서."

"하면……."

딘스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왕실에서 따로 명령서가 내려왔다. 저들에게 기습을 시키고 타이밍에 맞춰 크란 제국을 공격하라더군."

부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져 가는 테오스 용병단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왕실에 계속 정보를 주는 자들이 누구일까 하고 말이다.

☆ ☆ ☆

크란 제국군은 공격 준비에 한창이었다. 내일 오전부터 대대적인 공세로 들어가서 모나트 왕국군을 완전히 밀어 버릴 계획이었다.

그를 위해 전력도 상당히 보충했다.

모나트 왕국군의 전력은 뻔했다. 지원군까지 도착한 크란 제국군을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했다.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있는 것은 야간 기습 정도였다.

크란 제국군은 그에 대한 대비를 아주 확실히 했다.

야간 기습에 대비해 상당수의 병력으로 불침번과 경계를 섰다.

야간 경계가 철저하니 상대적으로 낮에는 경계가 살짝 소홀했다. 대신 정보원을 색출하는 작업은 정말로 철저했다.

크란 제국군은 정보만 외부로 유출하지 않으면 된다고 판단했다. 철저히 정보를 차단하면 그들의 힘을 모나트 왕국이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론은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사실 제론은 크란 제국군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현재 크란 제국군이 진을 친 장소는 마티의 정보 수집 영역이었다.

당연히 경계의 빈틈부터 그들의 작전까지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가공해서 조금씩 모나트 왕실에 흘렸다. 그들은 그걸 이용해 크란 제국의 공세를 근근이 버텨 왔다.

제론이 이끄는 100명의 라이더는 기간트를 소환하지 않은 채로 은밀히 이동했다.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는 기본적으로 라이트닝 검술을 익히게 되어 있었다.

라이트닝 검술은 총 3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에어스트 왕국의 모든 병사에게 1단계를 공개했고, 라이더에게는 2단계까지 공개했다.

그것만으로도 익스퍼트, 즉 현재의 기준으로 소드 마스터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수뇌부에게 제공되는 3단계의 검술을 익히면 초고대의 기준으로 소드 마스터에 이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운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견습 라이더도 라이더는 라이더였다. 그들은 라이트닝 검술 2단계를 상당히 숙련시켰다. 물론 아직 익스퍼트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기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100명의 견습 라이더는 제론의 속도에 맞춰 기척을 죽이고 이동하는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었다.

현재 제론이 이끄는 100명의 라이더가 견습 중에서는 상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하지만, 나머지 이곳에 오지 않고 대기 중인 라이더들 역시 상당한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실전에 투입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실력을 더 키우려 무진 애를 쓰는 중이었다. 다음 임무에 투입할 때가 되면 지금 이곳에 있는 라이더의 현재 실력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두터운 라이더 층은 에어스트 왕국의 숨은 저력 중 하나였다.

제론이 이동하다가 손을 슬쩍 들었다.

그것을 본 라이더들이 움직임을 서서히 멈췄다.

제론도 조금 더 이동하다가 멈추고 몸을 숙였다. 그러자 나머지 라이더들도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쿵! 쿵! 쿵!

기간트 한 기가 언덕 너머로 이동 중이었다. 크란 제국의 경계 부대였다. 기간트 뒤로 일단의 병사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신호를 보내거나 혹은 적 정찰병을 사로잡았을 때 압송하는 임무를 가진 자들이었다.

제론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굳이 충돌할 필요가 없었다. 경계병과 충돌하는 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다음이었다.

쿵! 쿵! 쿵!

정찰 부대가 멀어져 갔다.

제론은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이동했다.

이곳이 경계의 빈틈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적 진지의 중심부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기간트 라이더가 있을 것이다. 제론의 목표는 그들이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으니 기간트를 소환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론은 라이더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장소를 미리 파악해 뒀다.

크란 제국이 모나트 왕국에 보낸 기간트의 수는 2500기였다. 모나트 왕국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그 정도면 왕국을 쓸어버리고도 남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문두스 때문에 결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제론은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긴 채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일단 언덕만 넘으면 적 진지였다. 그곳에 라이더가 머무는 막사가 모여 있었다.

기간트를 소환해 일제히 달려가 짓밟으면 단숨에 적 기간트 전력을 반토막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론은 서두르지 않았다. 뭐든 확실한 게 좋았다. 또한 안전이 최고였다. 기습도 중요하지만 퇴로를 확보하는 건 더 중요했다.

감각을 최대한 넓게 퍼트린 제론의 머릿속으로 기습 경로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수십 개의 막사가 모여 있었고, 막사마다 라이더들이 십여 명씩 쉬는 중이었다. 기간트를 소환해 단숨에 덮치면 대부분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기간트는 총 350기. 기간트가 오기 전에 막사를 끝장내고 도망치면 돼.'

물론 그 와중에 푸른 연기 세 가닥을 피우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아마 크란 제국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모나트 왕국은 아직 출진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기간트 부대로 돌격할 수 있게 라이더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 두었다.

푸른 연기 세 가닥이 보이면 즉시 모든 라이더가 기간트를 소환해 적진을 향해 달려가도록 사전에 미리 지시해 놓은 것이다.

달려가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겠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리 모나트 왕국군을 막을 준비를 서둘러 마친다 하더라도 제론의 기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뒤이고, 제론의 기간트 부대를 쫓기 위해 병력이 나뉘게 될 테니까.

"준비."

제론의 말에 견습 라이더들이 다들 긴장했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제론의 입으로 향해 있었다.

그들은 기간트를 소환할 때 방해가 되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있었는데 그 자체로 진형을 이룰 수 있도록 위치를 절묘하게 잡았다.

"소환!"

제론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100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나타났다.

기종은 모두 몰레스였다.

아모르로 하지 않은 것은 에어스트 왕국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감추기 위함이었다. 나중에야 드러나더라도 당장은 감추는 편이 좋았다.

제론도 이번에는 베르를 가져왔다. 사실 제론은 테오스를 타지 않는 한, 어떤 기종의 기간트를 타건 큰 상관이 없었다.

그 정도로 제론의 실력은 다른 라이더와 차원을 달리했다.

101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언덕을 넘었다.

쿵쿵쿵쿵쿵!

언덕을 넘어서 내리막길을 달려가는데도 진형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혹독한 훈련의 결과였다.

"적이다!"

"습격이다!"

"막아!"

"뭐 해! 기간트를 소환해! 빨리!"

막사 근방은 난리가 났다. 서둘러 기간트를 소환하려는 라이더들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어렸다.

테오스 용병단이 달려드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들은 채 기간트를 소환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짓밟혀야만 했다.

쿵쿵쿵쿵!

꽈득! 꽈득!

"크아악!"

"피해!"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100기의 기간트가 짓밟고 지나간 막사의 잔해는 그저 처참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막사 주변으로 피가 흥건했다. 막사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라이더들이 짓눌려 터지는 바람에 흐른 피였다.

키이이이잉!

그 와중에 테오스 용병단의 기간트를 피해 도망친 라이더들이 저마다 기간트를 소환했다.

곳곳에서 기간트가 솟아났다. 그리고 라이더들이 거기에 올라타려고 했다.

하지만 제론은 결코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목표 변경!"

제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몰레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막 소환된 기간트에 달려들었다.

꽈과과광!

미처 라이더가 타지 못한 기간트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라이더가 자신의 기간트에 깔려 죽어 버렸다.

꽈광! 꽈광! 꽈과과광!

100기의 몰레스가 날뛰니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크란 제국이 보유한 기간트와 라이더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모든 라이더를 없앨 수는 없었다.

곳곳에서 솟아난 기간트에 라이더가 탑승했고, 마나코어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이잉!

500기가 넘는 기간트가 움직였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사방에서 날뛰는 몰레스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시기적절한 제론의 명령이 떨어졌다.

"후퇴!"

쿵쿵쿵쿵쿵!

제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말의 망설임이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모든 몰레스가 미리 정해 둔 도주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덤벼들려던 크란 제국 기간트들이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그 짧은 멈춤이 테오스 용병단에게 도망칠 틈을 주었다.

적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기간트도 있었는데, 그들조차 다들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론의 베르가 그 뒤를 따랐다. 제론이 가장 뒤에 선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적의 추격을 효과적으로 방해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아직 피우지 않은 푸른 연기도 피워야 했다.

쿵쿵쿵쿵쿵!

테오스 용병단이 썰물 빠지듯 멀어져 가자, 크란 제국 기간트들이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뭣들 하나!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싹 잡아!"

만일 이번 습격에 성공한 저들을 놓치면 그야말로 위신이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저들이 무사히 도망가 이곳에서 있었던 참상을 모나트 왕국군에 알리면 전쟁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현재 크란 제국군은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부서진 기간트를 수습하고, 죽은 라이더를 대신할 자들을 뽑아야만 했다.

쿵쿵쿵쿵!

500기가 넘는 기간트가 테오스 용병단의 뒤를 따랐다.

제론이 탄 베르가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이제 슬슬 불을 피울 시간이 되었다.

베르의 오른쪽 허벅지에 넓적한 철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워낙 잘 붙어 있었기에 얼핏 보면 베르의 강판 중 하나로 착각할 만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것이 베르의 부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제론의 베르가 그 철판을 뗐다.

꽈득!

철판이 너무나 간단히 떨어져 나왔다. 그 철판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그 철판을 뒤에서 쫓아오는 크란 제국 기간트들을 향해 던졌다.

콰우우우!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는 철판의 위력에 가장 앞에서 쫓아가던 기간트들이 기겁하며 몸을 낮췄다.

꽈드드득!

2열에서 쫓아가던 기간트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철판은 기간트의 얼굴에 틀어박혀 그대로 기간트를 뒤로 넘겨 버렸다.

꽈앙!

바닥에 뻗은 기간트의 얼굴에 철판이 박혀 있었는데, 그 철판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났다.

푸른 연기였다. 그것도 세 가닥이 동시에 올라갔다. 연기는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갔다. 세 가닥의 연기는 바람이 불어도 잘 흩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연기를 신호로 모나트 왕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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