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Chapter 1 기간트 용병단 테오스 (1)
"저자들이 테오스 용병단인가?"
모나트 왕국군 사령관인 딘스탁은 흥미로운 눈으로 막사 앞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쉬고 있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딘스탁 옆에 선 그의 부관이 즉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전원 기간트 라이더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 개인 기간트를 보유한 용병들입니다."
"저런 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그동안은 왜 못 들었지? 저 정도라면 독보적인 용병단일 텐데."
"최근 만들어진 용병단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유명합니다."
"최근에 만들어졌는데 유명하다? 단순히 기간트 때문에 유명해진 건 아니겠지?"
"구 레늄 왕국의 라이더 출신들입니다."
딘스탁은 그제야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보통 용병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했다.
처음 흥미를 가진 이유도 그래서였다. 저들은 용병이라기보다는 군인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즉시 익숙한 진형으로 모일 것이다. 흩어져서 쉬는 자리도 다들 정해진 듯했다. 심지어는 막사의 위치도 단순하지 않았다.
"실력은 확실하겠군."
"예. 안 그래도 테스트를 좀 해 봤는데, 용병단장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호오. 자네가 대단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보통이 아닌 모양이군."
"일대일 대결에서는 그를 이길 수 있는 라이더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딘스탁이 깜짝 놀라 부관을 바라봤다.
"그 정도인가?"
"예. 그리고 집단전에도 대단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군 출신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어떤 작전이든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어쨌든 그 자신감이 정말로 실력으로 인한 거라면 우리로서야 나쁠 게 없지."
딘스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만간 크란 제국이 또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지난 전투는 기적적으로 버텨 냈지만, 그와 비슷한 공격이 또 시작되면 아마 이번에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왕실로부터 특별한 정보가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간신히 버티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달했다.
정보에 의존해 적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는 이제 더 버틸 수 없었다. 그만큼 크란 제국과의 전력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모나트 왕국은 나은 편이었다. 이렇게 기간트로 이루어진 용병단을 구했으니 말이다.
"다른 왕국의 소식은 없나?"
"보흐 왕국이 대패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크란 제국군이 무자비하게 학살을 한다고 합니다."
딘스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 전쟁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크란 제국이 갑자기 대륙을 정벌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것부터가 너무나 이상했다.
게다가 크란 제국은 이상할 정도로 피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일단 전투에서 승리해서 한 지역을 점령하면 엄청난 약탈을 자행했다.
살아남는 것이 용할 정도로 처절하고 잔인한 약탈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니 다른 왕국들이 그 소식에 덜덜 떨 지경이었다.
크란 제국은 한꺼번에 7개 왕국을 동시에 공격했다. 그중 그나마 잘 막아 내고 있는 곳은 란체 왕국뿐이었다.
나머지 왕국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나트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적의 동태는 좀 어떤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조만간 대대적으로 밀고 내려올 것 같습니다."
"그래?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음? 뭔가. 말해 보게."
"테오스 용병단을 이용해 기습하는 건 어떻습니까?"
딘스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가능할 거라 보나? 그건 그들을 그냥 죽이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네."
"그들이 먼저 제안해 왔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허어……."
"일단 기습이 성공하기만 하면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딘스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성공만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한결 여유를 가지게 되니, 향후 전쟁을 이끌어 나가기도 편해진다.
아니, 정말 제대로 습격에 성공한다면 타이밍 맞춰 공격해서 적에게 큰 타격을 안겨 줄 수도 있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모나트 왕국도 란체 왕국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란체 왕국처럼 교착 상태가 이어지면 결과적으로 모나트 왕국의 국력이 점점 쇠퇴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지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왕국과는 달리 끝까지 버틸 수는 있었다.
크란 제국도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무한정 이어 가는 건 아무리 대륙 최고의 강대국인 크란 제국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낀 딘스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것이 테오스 용병단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딘스탁은 그들이 성공할 거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타격은 분명히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제대로 빈틈을 찔러 기습한다면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그 최소한의 빈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대한 애쓰는 것뿐이었다.
"승인하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부관이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테오스 용병단을 향해 달려갔다.
딘스탁은 그런 부관의 뒷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부관은 아연한 얼굴로 테오스 용병단의 단장을 바라봤다.
"지, 지금 그 말 정말이오?"
부관은 귀족이었지만 테오스 용병단에게는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들 중에는 몰락한 귀족가 출신의 라이더도 제법 있었다. 또한, 기사 출신의 라이더도 있었다.
용병단장은 어디 출신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놓지도 못했다. 한낱 용병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부관은 조금 전 용병단장이 한 말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소?"
거친 인상을 가진 용병단장의 말에 부관은 그걸 말이냐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저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보고 있으니 열을 내는 사람만 우스워질 것 같았다.
"그…… 차라리 야간 기습을 시도하는 건 어떻겠소?"
"야간에는 저들이 경계를 안 할 것 같소? 아마 기습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요."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낮에 기습하겠다는 건 너무 무모했다.
"그쪽은 우리가 기습에 성공하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되오."
"우리가 도와야 한단 말이오?"
"그럼 날로 먹으려고 했소? 이런 큰 전쟁을?"
이번에도 할 말이 없었다. 그야 당연히 날로 먹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함께할 생각도 없었다.
"대단한 걸 원하는 게 아니오. 그러니 그렇게 똥 씹은 표정 지을 거 없소."
부관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용병단장의 말에 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도발 준비만 해 주시오. 어차피 기습에 성공하면 공격할 생각 아니었소?"
"그야 그렇지만…… 기습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기습에 성공하면 파란 연기를 세 가닥 피우겠소. 연기가 올라가면 전군을 이끌고 돌격하시오."
그 말을 들은 부관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건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령관의 재가를 받아야만 했다.
'과연 허락하실까?'
만일 테오스 용병단이 크란 제국군과 손을 잡았다면 모나트 왕국군은 함정에 알아서 발을 디디는 꼴이었다.
사령관인 딘스탁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모험을 감행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가를 받아 내는 것도, 또 작전에 성공하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혼자 머리 굴리지 말고 보고부터 하시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 명심하시오."
용병단장의 말에 부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말을 일개 용병단장에게 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짜증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수긍이 갔다.
'뭐, 한때 보통 사람이 아니었겠지.'
라이더로서의 실력만 봐도 구 레늄 왕국에서 아무 자리나 지키고 있던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모나트 왕국과는 거리가 제법 있어서 레늄 왕국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지위였을 거라는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알았소."
부관은 순순히 대답하곤 물러났다. 그리고 사령관에게 바로 그 일을 보고했다. 뜻밖에 사령관은 흔쾌히 그 작전을 허락했다.
테오스 용병단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반응이었다.
부관은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령관인 딘스탁의 판단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판단에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분명히 부관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테오스 용병단의 기습 작전이 결정되었다.
제론은 긴장감 가득한 수하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두렵나?"
"아닙니다!"
용병들이 일제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그제야 그들의 눈빛에 자신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투기를 내뿜었다.
제론은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든든했다.
현재 제론과 함께 용병으로 온 사람들은 모두 에어스트 왕국의 견습 라이더였다.
이번에 실전을 경험하고 나면 정식 라이더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가 에어스트 왕국의 미래였고, 힘이었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작전은 사전에 몇 번이나 설명했다. 그것도 모자라 모의 훈련까지 수십 번은 했다.
사실 이 기습 작전은 용병단으로 위장해 모나트 왕국군에 지원하기 전에 이미 세워서 충분한 훈련을 마친 상태였다.
당연히 자신감만 있으면 작전은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다.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는 훈련량과 제론의 존재만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어떤 상황이 오건 작전은 성공할 것이다.
다만 피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었다.
제론의 목표는 인명 피해 없이 작전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공한 다음 다른 견습 라이더로 단원을 바꿔서 다른 왕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일단 그런 식으로 크란 제국에 크게 몇 방 먹여 전쟁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제론의 최종 목적이었다.
그게 성공하면 아무리 엠페리움이라 하더라도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재 엠페리움은 안팎으로 공격받고 있었다. 크란 제국 내에서 레벨리오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그들은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자, 그럼 가 볼까?"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었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테오스 용병단, 실제로는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들이 일제히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