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4/217)

Chapter 11 정복전쟁 (1)

크란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가 각국 수뇌부로 들어갔다.

그 정보의 출처는 문두스였다.

크란 제국은 전쟁 준비를 상당히 은밀히 진행시켰다. 선전포고와 동시에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래야 대비할 시간이 부족해 그대로 국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꺼번에 7개 왕국과 전쟁을 벌이려니 그런 기습이 반드시 필요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말이다.

한데 문두스 때문에 그게 불가능해졌다. 문두스는 크란 제국이 전쟁을 벌이려는 7개 왕국에 각각 얼마나 되는 병력을 준비했는지 상세히 조사해 정보로 넘겼다.

게다가 아주 은밀히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에 7개 왕국도 전쟁을 준비할 시간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7개 왕국은 정말로 파격적인 지원을 은밀히 받을 수 있었다.

에어스트 왕국이 그들에게 아모르를 지원해 주었다. 물론 다운그레이드된 판매용 아모르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아마 크란 제국이 전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워낙 은밀하게 준비했고, 또 문두스가 나서서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크란 제국도 전쟁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 선전포고를 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전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금 포기하면 손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전쟁을 반드시 일으켜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크란 제국이 7개 왕국을 향해 동시에 선전포고를 하고 진군을 시작했다.

카체 백작은 크란 제국군 총사령관이었다. 그는 7개 왕국에 각각 적당한 수의 병력을 나눠 보냈다.

엠페리움으로부터 얻은 정확한 정보에 따라 전력을 배치했기 때문에 패배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만 전투가 좀 더 치열해질 뿐이었다.

카체 백작은 총사령관 직속 부대를 이끌고 있었는데, 병력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상당한 실력의 라이더로 이루어져 있기에 크란 제국군이 보유한 부대 중 가장 강력했다.

총사령관 직속 부대는 각 왕국의 전황을 파악해 가장 취약한 곳이거나 가장 압도적인 곳에 보내기 위해 준비한 전력이었다.

취약한 곳에 보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고, 압도적인 곳에 보내 전투를 보다 빨리 끝내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왕국 하나를 짓밟고, 그곳에 투입한 병력을 근처 다른 왕국으로 돌리는 것이 카체 백작이 생각한 작전이었다.

아주 간단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이 없다면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전략이었다. 또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전쟁이었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순조롭게 상황이 풀려 가지 않았다.

카체 백작은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린 채 사령부의 귀족들을 쭉 둘러봤다.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부의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으니 당연했다.

"승리한 곳이 어디라고?"

"1군과 3군입니다."

"나머지는?"

카체 백작은 이미 보고서를 읽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령부의 귀족들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다.

"2군과 4군, 그리고 5군은 성과 없이 전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6군은 패배했습니다."

"7군은?"

보고를 하던 부관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싸한 긴장감이 장내를 한껏 짓눌렀다.

"대패했습니다."

"대패라면 어느 정도지?"

"기간트의 대부분이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카체 백작이 피식 웃었다.

"7군이라면 란체 왕국인가?"

"그렇습니다."

카체 백작이 좌중을 쓸어 봤다. 그의 눈빛에서 강렬한 섬광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렇다는군. 자, 이제 대책을 말해 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괜히 나서서 말을 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카체 백작은 그런 귀족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카체 백작은 자신이 엠페리움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엠페리움에 속하지 않은 귀족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엠페리움의 일원이 되려면 선택받아야 한다. 또한 능력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둘을 모두 갖췄으니 얼마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겠는가.

"우리 제국의 병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여전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전투는 작전의 실패였다. 크란 제국이 세운 작전의 빈틈을 적들이 너무나 정확하게 찔렀다.

하지만 압도적인 전력 덕분에 승기를 잃지는 않을 수 있었다. 1군과 3군은 상당히 큰 승리를 일궈 냈다.

아마 조만간 그 두 왕국은 깨끗이 정리가 될 것이다. 물론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엠페리움의 지시대로 한껏 피를 볼 계획이었다.

나머지 비긴 전투의 경우도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물론 전력 차이를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밀어붙였어야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패배한 전투였다.

6군의 패배는 멍청한 사령관 때문이었다. 빈틈을 찔려 당황한 나머지 최악의 선택을 해 버렸다. 무작정 후퇴를 명령한 것이다.

당연히 기세가 살아 오른 적의 추격을 받았고,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빨리 퇴각을 명령한 덕분에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거의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것 외에는 손실이 없었기에 다시 전력을 가다듬고 싸우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7군의 패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뼈아팠다.

사실 란체 왕국과의 전쟁이 가장 쉬울 거라고 예상했다. 란체 왕국에는 크란 제국과 손을 잡은 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란체 왕국의 1왕자에게 엠페리움의 손길이 닿았다. 그래서 내부에서 뒤통수를 때리기로 미리 약속을 했다.

현재 란체 왕국의 세력 구도는 쉘터 대공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1왕자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왕자는 쉘터 대공의 뒤통수를 치는 대가로 향후 란체 왕국의 왕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식민지의 총독이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그래도 1왕자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리라도 감지덕지였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걸 잃고 무너질 판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카체 백작이 입맛을 쩍 다셨다. 갑자기 짜증이 확 일었다.

"7군 사령관이 죽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잘 죽었군. 스프를 떠서 입에 넣어 줬는데도 뱉어 내는 멍청이가 사령관 자리에 어떻게 앉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카체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사령부의 귀족들을 다시 한 번 쓸어 봤다. 그의 눈빛이 더욱 섬뜩하게 빛났다.

그리고 카체 백작 뒤에 서 있던 세 호위 기사의 눈에서도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거기에 닿은 모든 사람의 몸에 오돌오돌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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