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레벨리오의 잔당 (1)
엠페리움의 회의가 또 열렸다. 원래 엠페리움의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데, 최근에는 계속 일이 터지고 있어 자주 열렸다.
오늘도 불과 열흘 만에 열린 회의였다.
그리고 오늘은 깁스 남작이 참석하지 않았다.
"전쟁 준비가 거의 끝나 가고 있소."
"자금도 준비가 끝났소."
"그럼 이제 피를 볼 일만 남았군. 시기는 언제쯤으로 잡고 있소?"
"한 달 안에 시작할 계획이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은 누군가의 한숨으로 인해 깨졌다.
"후우."
엠페리움이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엠페리움이 뭔가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전 대륙을 좌지우지했다.
한데 이제는 엠페리움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에어스트 왕국과 레벨리오 때문이었다.
최근 레벨리오의 본거지를 털어 버리긴 했지만, 그간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레벨리오의 잔당은 어떻게 되었소? 그놈들 그냥 내버려 둬선 안 될 것 같은데……."
"본거지를 털렸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소? 그때 수장으로 보이는 놈을 죽였으니 아마 앞으로는 괜찮을 거요. 실제로 최근에는 전혀 활동이 없지 않소."
"그건 그렇지만……."
"지금은 그쪽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오. 모든 정보력을 전쟁에 집중해야만 하오. 우리가 이 전쟁을 왜 일으켰는지 잊었소?"
그렇게까지 말하지 더 주장을 펼칠 수가 없었다.
"알겠소. 전쟁에 집중합시다."
"참, 그건 그렇고 드로센 자작의 후임은 결정했소?"
"카체 백작으로 결정했소. 그가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이 될 거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카체 백작은 우리에게도 제법 중요한 요인이니 호위를 제대로 붙이는 게 좋겠소."
"안 그래도 소드 마스터를 셋이나 붙였소. 아마 그 누구보다 안전할 거요."
이들이 말하는 소드 마스터는 고대 기준의 소드 마스터였다. 잘못된 기준으로 인해 소드 마스터가 된 익스퍼트가 아니었다.
카체 백작은 향후 주변 왕국들을 식민지로 만들면 그곳의 총독이 될 사람이었다.
당연히 엠페리움의 수뇌부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엠페리움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향후 엠페리움이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내세운 자였다.
"피도 중요하지만 타 왕국의 유적도 중요하오."
레벨리오의 활동 때문에 수많은 시설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 그곳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시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에너지원이 필요했다. 이번 전쟁에는 그 에너지원을 충당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아티팩트가 없더라도 에너지원을 쉽게 찾아내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유적이었다.
고대유적은 반드시 에너지원 위에 존재했다. 그 에너지를 이용해 모든 시설과 장비를 돌렸으니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니 유적을 장악하면 새로운 에너지원을 아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성체를 옮길 준비를 미리 해 둬야 하지 않겠소?"
"그건 식민지가 된 이후에 해도 충분하오."
"전쟁 중에 하는 편이 관심을 덜 받으니 훨씬 쉽지 않겠소? 아무리 식민지라도 계속 노예로 사람을 잡아가 죽이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소."
"하긴……."
"그럼 그렇게 합시다. 역시 전쟁 중에 하는 편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포획할 수 있으니 훨씬 편할 거라 생각하오."
"하면 성체는?"
"오늘 꺼내서 이송 준비를 하는 게 어떻소?"
"오늘 당장 말이오?"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소. 미리 적당한 장소를 만들어 둬야 일이 편해진다는 걸 생각해 보시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모두의 동의가 이어졌고, 다들 사이하게 빛나는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빛에 기대감이 한껏 일렁였다.
☆ ☆ ☆
제론은 하수도를 느긋하게 걸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일단 그들에게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잔뜩 전해 주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사람을 지원해 줄 수 없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그건 레벨리오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제론의 감각이 하수도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어디쯤 있는지 위치를 알고 있긴 하지만 혹시 누군가 다가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레벨리오의 은신처 쪽에서 왔기에 그가 레벨리오의 일원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제론은 기척을 죽였다. 그리고 마법을 펼쳤다. 사실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드러내면 은밀하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법을 자주 써 줘야 실력이 줄지 않을 테니까.
제론의 몸을 마나가 휘감았다. 강제로 사각을 만들어 내 몸을 숨기는 마법이었다.
기척까지 죽였으니 누구도 제론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같은 소드 마스터가 오더라도 말이다.
제론은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그러자 잠시 후 앞에서 다가오는 사내가 보였다.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자였다. 지난번 브릭과 슈틀러 일행을 도와줄 때 본 기억이 났다.
물론 그에게 굳이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제론은 서둘러 레벨리오의 은신처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수도의 물이 쏟아지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벨리오의 은신처는 물이 쏟아지는 자리 뒤에 있었다.
어두운 데다가 물이 쏟아지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저 뒤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 물을 다 맞고 지나갈 수는 없지. 네로."
제론은 물의 정령인 네로를 불렀다. 하수도 물이 쭉 솟아올랐다.
쏴아아아아.
썩은 내가 나는 하수도의 물이 마치 정화라도 된 듯 깨끗한 물줄기만 남았다.
"저 물을 좀 치워 줘."
제론의 명령에 네로가 쏟아지는 하숫물로 다가갔다.
쏴아아아!
하숫물이 둘로 갈라졌다. 그 틈으로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다시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네로가 아래로 푹 꺼지며 돌아갔다.
제론은 몸에서 열기를 뿜어내 근처의 눅눅한 공기를 건조하게 말려 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직각으로 꺾이는 부분이 세 군데나 있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 보니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마티를 통해 미리 확인했기에 규모가 크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는 무려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지내고 있었다.
제론은 그곳에 들어가 일단 슈틀러와 브릭을 찾았다. 괜히 모습을 드러내서 소란을 일으키기는 싫었다. 최대한 조용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사람이 많으니 물건을 더 많이 줘도 되겠어.'
이곳에 모인 사람이 전부일 리 없었다. 아마 이와 비슷한 은신처가 최소 다섯 곳은 더 있을 것이다.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안쪽 가장 깊은 곳에 슈틀러와 브릭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곳 은신처의 책임자가 슈틀러인 듯했다. 그리고 브릭은 이제 슈틀러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앉은 듯했다.
제론은 그들 앞에서 마법을 풀었다.
"헉!"
"당신은!"
두 사람은 갑자기 제론이 눈앞에서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론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레벨리오의 조직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슈틀러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지금 제론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소."
슈틀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론에게 정중히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번에 감사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는데 잘 찾아오셨소. 정말 감사드리오."
슈틀러는 갑자기 나타난 제론에 대해서 일말의 의구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 은신처를 찾았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그 부분에 관해서는 조금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원래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브릭은 내심 감탄했다. 익히 제론이 어떤 방식으로 찾아오는지 잘 아는 자신도 지금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저리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만이군. 레벨리오는 요즘 좀 괜찮은가?"
슈틀러가 쓴웃음을 지었다.
"수도에 있던 본거지가 괴멸되면서 크게 위축되었소."
"다시 일어날 자신은 있고?"
"물론이오. 여기서 끝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요."
"그렇겠지. 내가 찾아온 이유는 짐작하겠지?"
"기다리던 바요."
제론은 아공간에서 100개의 상자를 꺼내 차곡차곡 쌓았다. 상자가 나타날 때마다 슈틀러와 브릭의 눈에 깃든 놀람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마나폭탄의 위력을 조금 더 강하게 조절했다. 그러니 쓰기 전에 몇 번 테스트를 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슈틀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이, 이렇게 많이 줘도 괜찮소?"
제론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도 있나?"
슈틀러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확실히 지금 레벨리오에는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