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베젤 평원 전투 (1)
에어스트 왕국군과 체스터 공국군은 베젤 평원에서 대치 중이었다.
카이트는 지금까지 워낙 강행군을 했기에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단 시작하면 지금까지보다 더 심하게 몰아칠 계획이었기 때문에 피로를 말끔히 없애지 않으면 곤란했다. 자칫 나중에 중요한 순간 심각한 문제가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한데 휴식을 그렇게 며칠을 쉬면서 보니 적진에 묘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더 많은 기간트 병력이 충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낀 카이트는 문두스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바인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주변국이 도와주고 있다고?"
문제는 체스터 공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벨룸 왕국과 헥서 왕국의 주변국까지 몽땅 이곳에 기간트를 지원해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까지 이용해서 빠르게 국경으로 모여들었다.
그 수가 무려 2천 기에 달했다.
"황당하군. 2천 기나 되는 기간트가 추가되다니."
물론 카이트는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이걸 빌미로 나중에 전쟁이 끝난 다음 주변국을 압박할 카드로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일단 날개를 편 이상, 그냥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생각은 없었다. 주변국이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건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격이었다.
현재 체스터 공국에는 1200기의 기간트가 있었다. 한데 주변국에서 2천 기의 기간트를 지원했으니 총 3200기가 되는 셈이었다.
카이트는 자신 있었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아모르는 뛰어난 기간트였다. 적 기간트에 비해 성능이 최소 두 배 이상 높았다.
기간트의 성능은 꼭 출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부분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 두 배로도 모자랐다.
또한 라이더의 실력도 에어스트 왕국 쪽이 훨씬 뛰어났다. 에어스트 왕국의 모든 라이더는 기간틱 마스터에 버금갈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적의 수가 늘어났다고 해도 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카이트의 생각은 차츰 바뀔 수밖에 없었다.
"또 늘어났다고?"
카이트는 무려 2천 기의 기간트가 추가되었다는 말에 기함을 했다. 문제는 그 2천 기의 기간트가 모두 크란 제국에서 생산된 기간트라는 점이었다.
"크란 제국의 모든 기간트를 모아 놓은 셈이로군."
카이트는 바인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정보를 확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적은 총 5200기의 기간트를 보유한 셈이 되었다. 이는 에어스트 왕국군의 2.5배가 넘는 수였다.
아무리 아모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 전력 차라면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다. 아니, 자칫하다가는 질 수도 있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이대로 싸워서 큰 피해를 입으면 승리해도 문제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곧장 진격해서 체스터 공국을 완전히 점령해야 하는데, 피해가 크면 그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폐하의 기간트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카이트는 제론의 기간트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제론의 기간트는 제론의 실력만큼이나 놀라운 성능을 자랑한다. 그 기간트는 다른 기간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카이트는 실바에서 시작해 히엠스까지 모든 기간트를 겪어 봤다. 또한 최근에는 아모르를 타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제론의 기간트가 가지는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카이트가 판단하기에 아모르는 오히려 히엠스보다 나았다. 출력은 히엠스가 훨씬 위였지만, 세부적인 성능이 히엠스를 능가했다.
출력이 아무리 높으면 뭐하는가, 그 출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해 어떤 힘을 이끌어 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아모르는 정말로 대단한 기간트였다.
하지만 그 아모르조차 제론의 기간트에 비하면 초라해진다.
아모르를 제론의 기간트와 비교하느니 차라리 낡은 실바를 막 발굴해서 온전한 힘을 낼 수 있는 히엠스와 비교하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제론에게는 테오스 말고도 새로운 기간트가 3기나 더 있었다. 대체 그걸 누가 타고 있는지는 카이트조차 몰랐다. 아니, 누구도 몰랐다. 심지어 세나와 바인조차도.
적이 코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함정도 준비할 수 없었다. 드넓은 평원인지라 특별한 작전을 짜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별동대를 구성해 우회해서 옆을 치는 정도인데, 그것은 오히려 이쪽에서 조심해야 할 작전이었다.
상대는 병력이 월등히 많았다. 그리고 새로 모인 기간트 중에는 크란 제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네불라가 있었다.
사실 카이트도 네불라라는 기간트는 이번에 처음 들어 봤다. 바인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소음과 기척을 극도로 줄인 기간트라니, 더 골치 아프게 되었어."
그런 기간트 부대가 밤을 틈타서 기습하면 대책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아진다. 더구나 그들은 기동력도 뛰어나다고 하니, 우회 공격도 주의해야 한다.
카이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