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8/217)

Chapter 6 초고대 기간트의 위용 (1)

습격을 성공적으로 끝낸 제론은 다시 견습 라이더가 머무는 진지로 돌아왔다.

당연히 태블릿을 통해 헥서 왕국군의 상태를 꾸준히 확인했다. 그들은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제론은 그들의 피로를 가중시키기 위해 날씨 조절 아티팩트를 다시 한 번 가동시켰다.

이번에는 굳이 산사태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그저 피로를 더 가중시키고 몸 상태를 악화시키고자 했다.

습격 이전이라면 별 효과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적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헥서 왕국군은 산맥에서의 습격이 정말로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기에 행군 속도를 높였다.

그런 상황에서 쏟아지는 비는 그들의 체력과 체온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렸다.

드디어 제론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게 된 것이다.

제론은 일단 그걸로 만족했다. 남은 일은 저들과의 싸움을 확실하게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카이트는 잘하고 있으려나?"

최근 며칠 헥서 왕국군을 상대하느라 에어스트 왕국군의 싸움에 아예 신경을 쓰지 못했다.

"간만에 여유가 생겼으니 좀 살펴볼까?"

제론은 태블릿을 통해 에어스트 왕국군의 상황을 확인했다. 또한 그동안 밀렸던 바인의 보고서도 차근차근 읽었다.

"호오, 벌써 미테 왕국을 정리했군."

카이트와 바인이 힘을 모으니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카이트는 바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력군을 셋으로 나누었다.

병력을 셋으로 나누었다고 하지만, 미테 왕국에 남은 병력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전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셋으로 나누는 바람에 효율이 높아져 진군 속도에서부터 점령 속도까지 모든 것이 빨라졌다.

원래 미테 왕국은 그 크기가 슈린 왕국이나 레늄 왕국에 비해 조금 손색이 있었다. 그렇기에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도 비교적 짧았다.

전투다운 전투는 처음에 한 번 했을 뿐, 그 이후에는 큰 어려움 없이 각 영지를 복속시켜 나갔기 때문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미테 왕국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체스터 공국과 벨룸 왕국인가?"

어차피 처음 레늄 왕국을 공격했을 때부터 거기까지 염두에 두었다. 또한 헥서 왕국도 안 끼었다면 모를까 끼어든 이상 가만둘 생각은 없었다.

체스터 공국과 벨룸 왕국의 전쟁은 여전히 치열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국의 피해가 점점 극심하게 쌓여 가는 중이었다. 보유 기간트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병력도 상당히 많이 소모되었다.

전쟁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양국의 재정 상황도 점차 악화되는 중이었다.

애초에 전쟁이 금방 끝날 거라고 믿었던 체스터 공국 쪽의 타격이 훨씬 컸다.

하지만 벨룸 왕국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바인의 정보 조직인 문두스가 경제 쪽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조금씩 재정을 갉아먹고 있었다.

조만간 양국은 돌이키기 어려운 치명적인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에어스트 왕국이 진격할 시점이었다.

"체스터 공국과 밸룸 왕국을 동시에 정리해도 되겠군."

물론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적당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그동안 카이트는 에어스트 왕국군을 한데 모으기만 하면 된다. 현재 에어스트 왕국군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에어스트 왕국의 저력이 워낙 대단한지라 병합한 왕국의 안정화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도 바인의 문두스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정보 조직은 정말로 쓸모가 많았다.

제론은 모든 보고서를 읽고 카이트의 상황을 확인한 다음 태블릿을 집어넣었다.

"이제 남은 건 몰려오는 헥서 왕국군을 완벽하게 박살 내는 것뿐인가?"

제론이 씨익 웃었다. 자신 있었다. 슈피겔이 이끄는 부대는 헥서 왕국의 주력군이었다. 그것만 무너뜨려도 헥서 왕국의 전력을 절반 이상 깎은 걸로 봐도 무방했다.

"그럼 슬슬 준비를 해 볼까?"

제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견습 라이더들을 둘러봤다. 제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 미소를 확인한 견습 라이더들이 불안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날부터 견습 라이더의 지옥 훈련이 시작되었다. 조만간 생명이 오가는 전투가 시작되니 조금이라도 더 생존 확률을 높여 놔야만 했다.

그리고 나흘 후, 헥서 왕국군이 하이쓰 산맥을 벗어났다.

슈피겔은 단단한 진형을 갖춘 몰레스 군단을 보며 이를 갈았다.

"설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에어스트 왕국에 여전히 저 정도 전력이 남아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대체 변방의 작은 백작령이 언제 이 정도 힘을 키웠단 말인가.

슈피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적의 전력은 몰레스 200기. 아군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재 헥서 왕국군은 450기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지쳤고 사기도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두 배가 넘는 전력이었다. 그러니 질 리 없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는가이다. 만일 여기서 극심한 피해를 입는다면 애써서 하이쓰 산맥을 넘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작전이나 전략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친 상황에서 그런 것이 갑자기 떠오를 리 없었다.

'대체 이 많은 기간트를 왜 발견하지 못한 거지?'

슈피겔은 짜증이 나면서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확 트인 광활한 벌판이었다. 한데 이렇게 많은 기간트가 보이지 않았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몰레스만 200기라……."

헥서 왕국군의 기간트는 다양한 기종이 섞여 있었다. 대부분이 카타락타였고, 그다음으로 많은 기종이 크라테르였다. 물론 몰레스도 어느 정도 있었다.

기사단장 중에는 발굴형 기간트를 보유한 자도 있었지만, 그건 극히 드물었다.

전체적인 기간트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슈피겔은 질서정연하게 진형을 갖춘 적의 모습을 보고는 수준 차이를 직감했다.

슈피겔이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급조해서라도 그럴듯한 작전을 만들어야만 했다. 아니면 저런 형태의 진형을 파괴할 방법이라도 제시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에어스트 왕국군 앞으로 새까만 기간트 한 기가 걸어 나왔다.

쿵! 쿵! 쿵!

슈피겔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어찌 저 모습을 잊을 수 있겠는가. 헥서 왕국군을 습격한 바로 그 기간트 아닌가.

테오스가 앞으로 나서자, 그 뒤로 이스히스와 마크리아가 따라나섰다.

그들의 모습도 위풍당당했다. 또한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그 기세는 헥서 왕국군을 압도했다.

슈피겔은 눈살을 찌푸렸다. 테오스는 봐서 안다. 한데 뒤따라오는 저 2기의 기간트는 대체 무언가. 손에 든 무기를 보니 하나는 도끼를 쓰는 듯했고, 다른 하나는 창을 쓰는 기간트였다.

'그럼 화살을 쏘던 그 기간트는?'

강렬한 경고가 슈피겔의 뇌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큐우우웅!

빛의 화살이 날아올 때 났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슈피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꽈앙!

헥서 왕국군의 기간트 한 기가 완전히 박살 났다. 화살이 가슴에 틀어박힌 순간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테오스가 달려들었다.

쿵쿵쿵쿵!

테오스와 동시에 이스히스와 마크리아도 함께 달렸다.

쿵쿵쿵쿵!

3기의 기간트가 순식간에 450기나 되는 기간트 군단을 덮쳤다.

꽈아아아앙!

테오스도 테오스지만 이스히스와 마크리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스히스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거기에 맞은 기간트가 허공을 훌훌 날아 동료를 덮쳤다.

마크리아는 마치 수십 개의 창을 동시에 다루는 것 같았다. 마크리아 근처에 있던 기간트는 어김없이 가슴이 꿰뚫려 정지했다.

그리고 테오스는 그 둘을 합한 것보다 더욱 대단한 신위를 보였다.

테오스의 검은 눈부시게 빛났다. 그 빛이 검을 온통 휘감은 채 길게 뻗어 나갔다. 그 빛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싹둑싹둑 잘렸다.

테오스를 중심으로 수십 기의 기간트가 고철이 되어 쓰러졌다.

슈피겔은 일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거칠게 외쳤다.

"다들 뭐 하고 있나!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동안 수도 없이 연습한 합공은 뒀다 뭐 하나! 어서 움직여!"

슈피겔의 외침은 적절했다. 헥서 왕국의 기간트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테오스에게 대항했다.

꽈과과광!

테오스에게 동시에 10기의 기간트가 달려들었다. 공간의 제약이 있어 동시에 공격하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려는 건 테오스를 그저 덮치는 것뿐이었다.

일단 덮쳐서 움직임을 봉쇄한 다음 처리하는 작전이었다. 기간틱 마스터를 상대할 때 쓰려고 만든 전투법이었다.

테오스뿐 아니라 이스히스와 마크리아에게도 각각 10기씩의 기간트가 달려들었다.

일단 멀리서 포위한 다음, 급격히 거리를 줄이며 도망갈 방향을 차단하며 덮치는 방식이었다.

10기의 기간트가 동시에 달려들면 그 뒤에 20기의 기간트가 뒤를 받쳤다. 혹시라도 빈틈으로 빠져나갈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30기의 기간트가 하나를 위해 동원된 셈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기간틱 마스터라면 그 정도 희생은 충분히 고려할 만했다.

사실 아무리 기간틱 마스터라 할지라도 10기의 기간트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막무가내로 덮쳐서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경우는 더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이 작전은 실제로 붉은 학살자를 겨냥해서 만들어졌다. 슈피겔이 생각해 낸 전투법이기도 했다.

슈피겔은 이 방법을 쓰면 아무리 붉은 학살자라도 피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점프를 통해 빠져나가도 뒤에서 대기하는 다른 기간트에 의해 움직임이 제한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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