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6/217)

Chapter 5 헥서 왕국의 공격 (3)

슈피겔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앞에 벌어진 참상을 바라봤다.

"이럴 수가……."

토사물에 쓸려 내려간 기간트가 수십 기에 달했다. 게다가 거의 1천 명에 가까운 병사를 잃었다.

물론 전체 규모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손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기였다. 이번 산사태로 인해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슈피겔은 옆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부관을 향해 힘없이 말했다.

"정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서둘러 명령을 정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꾸역꾸역 움직여 부상자를 수습했다. 그리고 기간트들이 나서서 주변을 정리했다.

일단 오늘은 더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하루를 쉬면서 제대로 정비를 해야만 했다.

슈피겔은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방비를 해야만 했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 기간트를 꿰뚫는 빛줄기를 말이다.

그것은 빛의 화살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저격을 한 것이다. 믿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일단 그걸 막아야만 했다.

"부관! 기사단장들을 몽땅 데려와!"

기사단장은 라이더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수십 명의 기사단장이 각각의 기사들을 맡고 있었다. 그들을 몽땅 모은다는 건 뭔가 특별한 지시를 내리겠다는 뜻이었다.

부관이 서둘러 움직였다. 슈피겔에게는 10명의 부관이 있었는데, 각각 슈피겔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게 안 되면 언제든 부관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기사단장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슈피겔에게 명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당시 그 모든 광경을 멀리서 확실히 지켜본 사람은 슈피겔뿐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간트를 꿰뚫을 정도로 강력한 빛의 화살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어쩌면 누군가 고대유적에서 아티팩트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걸 빼앗아야 하지 않을까?

기사단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모든 라이더에게 경계를 하라고 지시 내렸다. 기간트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기간트를 꿰뚫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라면 절대 맨몸으로 받아 낼 수 없었다.

일단 경계를 통해 적의 위치를 특정해야만 했다.

기간트들이 사방에 자리를 잡고 경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하늘을 통해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제론은 기간트의 경계 상황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몇 번만 더 흔들어 주면 되겠군."

굳이 여기서 모든 싸움을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건 견습 라이더에게도 좋은 기회였지만, 제론에게도 제법 매력적인 기회였다.

현재 헥서 왕국군이 동원한 기간트의 수는 500기가 넘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에어스트 왕국은 전력을 이번 전쟁에 투입했다.

왕궁을 지키는 기간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해도 500기의 기간트면 넘칠 정도로 과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번에 제론이 동원한 견습 라이더의 수가 무려 200명이었다.

그들에게 몰레스라는 동일 기체를 지급할 정도로 풍부한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에어스트 왕국의 저력이었다.

제론은 혼자서 500기에 달하는 기간트와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혼자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타히티와 이스히스, 그리고 마크리아도 동원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미리 짜 맞춘 진형을 테스트해 보고, 또 테오스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었다.

그 와중에 제론의 손이 미처 닿지 않은 적들은 제론이 함께 데려온 견습 라이더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적이 길목을 뚫지 못하도록 굳건히 막는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적의 수가 상당히 많았으니까. 어쩌면 거의 비슷한 수의 적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제론이 최대한 애쓸 테지만 말이다.

만일 뚫렸을 경우의 대비도 어느 정도 해 뒀다.

현재 여기서 갈 수 있는 영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 영지의 방어를 보강했다. 상당한 수의 기간트를 투입했다. 물론 견습 라이더도 함께 투입했기에 웬만한 공격은 방어가 가능했다.

허무하게 뚫려서 대부분의 병력을 고스란히 보낸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제론은 테오스에 탄 채로 적의 방어 상황을 계속해서 살폈다.

"타히티를 이용하는 게 제일 좋겠군."

제론은 테오스로 기습하되 타히티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타히티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을 저격하면 아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제론은 타히티를 이끌고 자리를 이동했다.

타히티의 배치가 중요했다. 평지였다면 거리가 별 상관 없었겠지만, 하이쓰 산맥은 나무와 바위가 엄청나게 많고 험했다.

그러니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빈틈을 통해 저격이 가능한 장소를 선점해야만 했다.

산사태가 벌어질 때는 가까이서 저격을 했기에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니 자리를 잘 잡아야만 했다.

일단 산 정상으로 간 다음 천천히 내려오면서 시야를 확인했다. 그렇게 절반쯤 내려왔을 때,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였는데, 나무로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다면, 즉,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습이 가능한 자리였다.

그리고 타히티는 그 정도 빈틈을 찌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타이티를 그곳에 배치시킨 제론은 테오스를 타고 조용히 이동했다.

테오스는 기본적으로 마법이 가능한 기간트였다. 제론과 똑같은 실력을 가진 기간트인 셈이었다. 게다가 마법의 위력은 훨씬 컸다.

마나링의 크기부터 다르니 동원할 수 있는 마나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마나링을 가속하며 소리와 기척을 없앤 테오스는 빠르게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지금."

제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타히티가 미리 준비한 화살을 날렸다.

큐우우웅!

빛의 화살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틈을 꿰뚫고 나아갔다. 그리고 헥서 왕국군의 기간트 중 하나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꽈앙!

화살의 위력은 엄청났다. 순수하게 에너지로만 이루어진 화살답게 충돌과 동시에 강력한 충격을 주고 사라져 버렸다.

그 충격으로 인해 기간트의 가슴이 부서졌고, 에너지가 흩어지는 여파에 의해 라이더가 절명해 버렸다.

"적이다!"

헥서 왕국군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병력을 보내는 것이 정석이었다.

큐우우웅!

"또 날아온다!"

빛의 화살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왔다. 기간트들이 분분히 흩어졌다. 하지만 화살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꽈앙!

기간트의 어깨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걸로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저쪽이다! 서둘러!"

슈피겔은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는 아주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이 죽거나 다치면 끝장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전에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나서기로 한 기간트 부대가 우르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앞을 테오스가 막아섰다.

"뭐냐!"

숨은 적을 찾아 나서려던 기간트 부대의 책임자인 기사단장이 테오스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정말로 당황했다. 정황상 적이 분명했는데, 얼른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잠시의 빈틈은 테오스에게 있어선 아주 좋은 기회였다.

테오스의 검이 눈부신 속도로 기사단장이 모는 기간트의 배를 찔렀다.

콰득!

파지직!

그 한 방에 마나코어가 박살 났다.

테오스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다가오던 기간트 무리로 슬쩍 파고들어서 풍차처럼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10기의 기간트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가슴이 갈라졌다.

테오스는 그렇게 한 다음 유유히 사라졌다.

슈피겔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며 너무 당황해서 쫓으라는 명령을 내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빛의 화살이 또 날아왔다.

큐우우우웅!

꽈득!

기간트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슈피겔은 그 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뭣들 하고 있나! 가서 잡아!"

이번에는 10기가 아니라 거의 100기에 가까운 기간트가 움직였다. 누가 움직일지 특정 지어 주지 않으니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간 것이다.

하지만 슈피겔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수가 많을수록 좋았다. 방금 본 테오스의 능력은 가공했다. 10기나 되는 기간트를 한순간에 썰어 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100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숫자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마구 달려들기만 해도 제압이 가능했다.

큐우우웅!

콰득!

빛의 화살이 또 날아왔다. 달려가는 100기의 기간트 중 하나가 그대로 쓰러져 동료의 발에 짓밟혔다.

하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일단 적을 잡는 게 먼저였다.

큐우우웅!

콰득!

또 한 기의 기간트가 무너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무려 7기의 기간트가 더 빛의 화살에 꿰뚫려 쓰러졌다.

그리고 그제야 그들은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빛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타히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큐우우웅!

빛의 화살이 날아왔다. 어찌나 빠른지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콰득!

가슴이 꿰뚫려 또 한 기의 기간트가 쓰러졌다. 하지만 다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그저 달렸다. 저놈을 잡기만 하면 팔다리를 잡아 뜯고 조종석을 뽑아내겠다고 벼르고 또 별렀다.

쿵쿵쿵쿵쿵!

기간트들이 달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타히티는 적이 지척에 이르렀는데도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눈부신 빛이 길게 늘어나 화살이 되었다.

큐우웅!

빛의 화살이 날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 막 도착한 기간트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려오던 기간트의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꽈앙!

꽈득!

두 기의 기간트가 쓰러졌다. 하지만 뒤이어 도착한 다들 기간트들이 쓰러진 동료를 밟고 몸을 던졌다. 그들의 손이 우악스럽게 타히티를 움켜쥐었다.

후웅!

꽈과광!

몇 기의 기간트가 헛손질을 하며 바닥에 넘어졌다. 커다란 바위 위였기에 일부는 바위에서 떨어져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놀랍게도 그들이 잡은 것은 타히티의 잔상이었다.

타히티는 적 기간트의 손에 닿기 직전 고속 이동을 통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찌나 빨리 이동했는지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무려 100기의 기간트가 농락당한 것이다.

타히티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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