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4/217)

Chapter 5 헥서 왕국의 공격 (1)

슈피겔이 이끄는 헥서 왕국군이 은밀히 움직였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길을 택했다.

하이쓰 산맥을 넘기로 한 것이다.

하이쓰 산맥은 험난한 길이었다. 아니, 길 자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표를 찌르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하이쓰 산맥을 넘으면 바로 에어스트 왕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하이쓰 산맥 쪽은 방비가 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헥서 왕국도 다를 게 없었다.

하이쓰 산맥은 막대한 피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을 앞둔 마당에 피해를 감수하면 향후 전쟁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슈피겔은 하이쓰 산맥의 끝자락을 이용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산맥의 다른 부분에 비해 위험도가 현저히 낮은 부분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하이쓰 산맥은 하이쓰 산맥이었기에 일반 병사만으로는 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헥서 왕국의 주력군 전체가 넘는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이쓰 산맥이 위험한 이유는 지형에도 있지만 산맥에서 살아가는 강하고 흉포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들도 생명체이기에 수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모여 있으면 절대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다.

슈피겔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거의 몬스터의 습격이나 피해 없이 하이쓰 산맥을 절반 이상 넘어갔다.

"이대로만 가면 성공적이겠군."

슈피겔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진을 치고 휴식을 취하는 병사와 기사들을 바라봤다. 이번 원정에 헥서 왕국의 전력을 이끌고 왔다.

현재 에어스트 왕국은 미테 왕국을 정벌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었다. 만일 하이쓰 산맥을 넘어서 목표로 하는 곳을 점령할 수 있다면 에어스트 왕국도 별수 없을 것이다.

"사령관 각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슈피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와."

10명의 병사가 우르르 달려와 슈피겔 앞에 식탁을 차리고 식사 준비를 했다. 슈피겔은 하이쓰 산맥을 넘는 와중에도 화려한 식사를 즐겼다.

그를 위해 전속 요리사가 무려 3명이나 동행하고 있었다.全力

느긋하게 식사를 하며 슈피겔은 부관들의 보고를 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오후까지 이동을 하면 하이쓰 산맥의 절반을 넘어가게 됩니다."

"좋군.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여유를 부려서도 안 된다."

슈피겔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웃기는 놈들이란 말이야. 이런 전시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철수시키다니, 멍청하긴."

슈피겔이 공격 시점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에어스트 왕국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일제히 철수시켰다.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말이다.

텔레포트 게이트는 유지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일정한 사용료만 물면 된다. 게다가 그 사용료 중 상당한 액수가 세금으로 되돌아온다.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한데 그걸 왜 없앤단 말인가. 슈피겔이 보기에 그건 돈을 내다 버리고 있는 거였다.

비단 에어스트 왕국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텔레포트 게이트의 철수이니, 멍청한 정도가 너무 심했다.

"게이트라도 있으면 습격에 대비해서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이젠 기습을 당해도 병력을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지."

슈피겔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부관을 힐끗 쳐다봤다.

"산맥을 넘은 다음에는 더욱 은밀히 움직여야 하니 미리 준비해 놓도록."

"준비 중입니다. 산맥을 넘어간 다음 준비를 마무리하면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슈피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아주 순조로워. 이대로라면 제대로 성공할 수 있겠어. 목표의 상황은 좀 알아봤나?"

"예. 지속적으로 정보를 입수하고 있습니다. 남은 병력이 거의 없는 게 확실합니다."

슈피겔이 씨익 웃었다.

"그렇겠지. 저렇게 큰 판을 벌이는데 안을 단속할 여유가 있겠어? 자기들은 날아오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날개가 꺾이기 일보직전이라는 걸 모르는 거지. 재미있지 않나? 으하하하핫!"

슈피겔이 즐겁게 웃었다. 부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식사는 그 뒤로도 2시간이나 이어졌다. 시간은 충분했기에 다들 여유로웠다. 병사와 기사들도 그 안에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대충 식사 자리를 정리한 다음, 다시 출발했다. 아무리 여유가 넘치고 인원이 많아 안전하다고 해도 하이쓰 산맥은 하이쓰 산맥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사람이 죽고 다치는 곳이었다.

헥서 왕국군은 차근차근 하이쓰 산맥을 넘어 진군해 나갔다.

제론은 들판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다. 새까만 하늘에 점점이 박혀 반짝이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아름답군."

초고대문명에는 놀랍게도 저 반짝이는 별을 직접 찾아가려는 시도가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을 시도했는지 자세히 기록된 문서도 존재했다.

제론은 그 문서를 읽으며 상당히 감탄했다. 문서의 내용은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들이었다.

"저 반짝이는 별 하나하나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비슷한 곳이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지? 정말로 믿기 어려워."

하지만 이제는 믿는다. 초고대문명의 마법 아티팩트를 통해 별 하나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가까운 별이었기에 멀리 볼 수 있는 아티팩트를 통해 확인이 가능했다. 지금 이곳에서 확인 가능한 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초고대문명은 멸망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살아갈 다른 세상을 원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별에서 찾았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초고대문명의 힘으로도 다른 별로 이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그 일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살아갈 만한 환경을 갖춘 별을 찾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초고대문명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멸망을 맞이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제론도 알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 남아 있는 기록이 없었으니까.

제론은 한참 동안 별을 보다가 태블릿을 꺼냈다.

헥서 왕국군은 하이쓰 산맥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쓰 산맥에는 특별한 유적이 있었다.

제론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밤중이라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제론에게는 아무 상관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아티팩트는 대단히 특별했다.

"아주 편안히 쉬고 있군. 그건 좀 곤란하지. 이쪽은 병력이 좀 모자라거든."

제론은 미리 저들이 이동할 경로 중 싸우기 좋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헥서 왕국이 먼저 시작했으니 거리낌 없이 그들을 칠 수 있었다.

제론은 태블릿을 조작했다. 헥서 왕국군의 규모가 너무 컸다. 저들을 상대하려면 제법 피해가 클 것이다. 더구나 제론이 데려온 병력은 정규군이 아니었다.

"과연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제론은 몸을 일으켜 들판에 쫙 펼쳐져 있는 막사들을 쳐다봤다. 막사의 수는 수십 개나 되었다. 그곳에서 에어스트 왕국의 기간트 라이더가 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식 라이더가 아니라 견습 라이더였다. 정규군에 편성되기 전에 혹독한 훈련을 쌓는 과정에 있는 자들이었다.

실력은 정규군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지 않지만, 실전 경험이 좀 모자랐다. 최소한 오우거라도 상대해 봐야 하는데, 그런 경험도 없었다.

물론 다른 왕국의 라이더와 비교하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 다만, 실전 경험이 모자랄 수는 있었다.

제론은 그런 견습 라이더를 무려 200명이나 데려왔다. 그들에게 지급한 기간트는 몰레스였다.

에어스트 왕국은 정규 라이더의 기간트를 전부 아모르로 교체했기 때문에 원래 쓰던 기간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견습 라이더의 몫이 되었다.

사실 더 좋은 기간트를 지급할 수도 있었지만, 기종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몰레스를 지급했다. 200명이나 되는 라이더에게 지급하기에는 몰레스보다 더 뛰어난 기체의 수가 많이 모자랐다.

제론은 저들로 방어망을 구성하고 혼자서 나가 싸울 작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테오스와 그의 기사들, 이스히스, 타히티, 마크리아와 함께 싸워 볼 생각이었다.

솔직히 타히티의 지원만 받아도 상당할 것이다. 테오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타히티가 적을 견제해 준다면 무서울 게 뭐 있겠는가.

한데 이스히스와 마크리아까지 있다.

제론은 솔직히 어떤 적이 몰려오든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도 적의 힘을 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지.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

그런 걸 방심이라고 한다. 사실 아직 에어스트 왕국은 많은 부분이 모자랐다. 왕국의 규모도 모자랐고, 내부적으로 완벽히 안정되지도 않았다.

더구나 한창 영토를 늘려 나가는 입장이라서 혼란이 더 심했다. 물론 미리 준비한 인재 덕분에 혼란을 최소로 막아 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니 여유를 부리고 있을 입장이 아니었다. 어떤 싸움이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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