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파죽지세 (3)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모르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백 기의 아모르가 여기저기서 쿵쿵거리며 포로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기간트의 잔해를 한쪽으로 치웠다.
예전 같으면 기간트의 잔해도 아주 중요한 전리품이 되었겠지만, 이제는 그저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마나코어에서 나오는 포로스의 원료는 모두 수거하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고철로 취급되어 용광로에 들어갈 것이다.
다른 왕국이라면 이 안에서 멀쩡한 부품을 뜯어내 잘 보관하겠지만, 에어스트 왕국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간트의 잔해는 한곳에 산처럼 쌓였다. 이것은 나중에 차근차근 날라 녹일 것이다.
전장의 포로도 한군데로 모았다. 사실 포로도 필요 없었다. 수뇌부만 제거하면 병사야 그냥 풀어 줘도 그만이었다.
물론 아무나 막 풀어 줘선 안 된다. 말썽의 소지가 없는 병사만 선별해서 풀어 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일이었다.
카이트가 기간트에 탄 채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카이트에게 기간트 하나가 다가왔다.
쿵! 쿵! 쿵!
같은 아모르였지만 디자인이 약간 다른 지휘관형이었다. 지휘관형 아모르에는 전투형 아모르에 없는 기능 몇 가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사령관님. 레늄 왕국 국왕과 왕족, 그리고 호위 기사들은 어떻게 할까요? 수도로 이송해야 합니까?"
카이트는 보고를 하는 부관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수도로 이송? 그런 번거로운 일을 왜 하지?"
"예? 하지만 포로를 달고 전쟁을 하는 것이 훨씬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포로를 달고 전쟁을 해? 왜?"
"예? 그, 그럼……."
"네가 짐작하는 그거대로 처리해."
부관은 잠시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쿵! 쿵! 쿵!
부관이 돌아가자, 카이트가 차갑게 웃었다. 왕족이니 귀족이니 다 쓸모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깨끗이 없애 버리는 게 향후 레늄 왕국을 영토로 병합시키기가 편했다.
원래 백성은 왕이 누구든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에 훨씬 큰 관심이 가는 법이었다.
"뭐, 나중에는 좀 달라지겠지만."
사실 카이트는 에어스트 왕국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았다. 에어스트 왕국의 백성들은 누가 시키거나 강제하지 않아도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났다.
아마 에어스트 왕국은 다른 나라에 먹히더라도 백성들이 그냥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레늄 왕국이나 미테 왕국과는 많이 달랐다.
카이트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건 꼭 빵만이 아니라는 걸 요즘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자, 그럼 오늘부터 이틀 동안 최대한 편안히 쉬라고 전해. 그다음부터 또 강행군이다."
카이트의 말에 옆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베샤이덴과 슈빅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대로 미테 왕국까지 집어삼키면 예전 레늄 왕국을 몽땅 병합하는 셈이었다.
일개 백작령에서 시작해 정말로 왕국을 먹어 버렸다. 그 역사적인 순간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가슴이 안 뛰겠는가.
"명령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베샤이덴이 서둘러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틀 동안 에어스트 왕국군은 신나게 먹고 마셨다. 그리고 그동안 참아 왔던 잠도 푹 잤다.
그렇게 충분히 쉰 다음, 곧장 미테 왕국으로 진격했다.
주력군이 완전히 박살 난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에어스트 왕국군을 제대로 막아서는 군대는 없었다.
에어스트 왕국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미테 왕국까지 차근차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