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8/217)

Chapter 3 혼란의 시작 (1)

제론은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수뇌부를 모두 회의장으로 불러 모았다.

드디어 에어스트 왕국이 날아오른다고 생각한 주요 인물들이 다급히 회의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회의장 상석에 앉아 있는 제론을 발견하고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동안 긴장감 넘치는 침묵이 흘렀다. 다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써야만 했다.

제론은 분위기가 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제론의 시선이 세나와 바이스 쪽에 잠시 머물렀다.

"말레피 가문과 벨루스 가문은 제대로 자리를 잡았나?"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인으로부터 이미 보고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말로 확인을 해 주는 것도 필요했다.

바이스와 세나는 제론에게 상당히 고마워했다. 만일 제론이 미리 일을 추진해서 두 가문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아마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테 왕국이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레늄 왕국에 누군가가 은밀히 기간트를 지원해 주는 바람에 힘의 축이 급격히 기울어 버렸다.

"다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겠지?"

제론의 물음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에어스트 왕국의 수뇌부에게는 상당한 정보가 제공된다. 아니, 정보 열람실이 따로 있어서 신분에 맞는 정보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자리에 참석하는 자들은 현재 미테 왕국과 레늄 왕국의 전쟁 상황이나, 체스터 공국과 벨룸 왕국이 언제쯤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할 것인지까지 모두 확인한 상태였다.

"딱 좋은 타이밍이 왔다."

제론의 말에 다들 눈을 빛냈다. 간신히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미칠 둣이 뛰었다.

"레늄 왕국을 친다."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튀겼다.

딱!

탁자에 빛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빛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색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거대한 지도로 변했다.

앞으로 전장이 될 왕국의 지도였다. 에어스트 왕국에서부터 레늄 왕국, 미테 왕국은 물론이고, 벨룸 왕국과 체스터 공국, 심지어는 헥서 왕국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제론은 손가락으로 먼저 레늄 왕국을 짚었다. 그다음 미테 왕국으로 선을 쭉 그었다. 제론의 손가락을 따라 붉은 선이 나타났다.

"다음 미테 왕국을 삼킨다."

거기까지 말한 제론은 좌중을 둘러봤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보였다. 제법 기분이 달아올랐다.

"우리가 전쟁을 시작하면 체스터 공국도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대부분 읽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라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제론은 그들의 생각을 아득히 먼 곳으로 날려 버렸다.

제론의 손가락이 헥서 왕국을 짚었다.

"헥서 왕국이 끼어들 것이다."

"예?"

누군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나머지도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심정은 그와 똑같았다.

헥서 왕국이 뭐 아쉬울 게 있다고 이런 진흙탕 같은 전쟁에 끼어든단 말인가.

"헥서 왕국의 목표는 레늄 왕국과 미테 왕국이다."

다들 긴장감 가득한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힘이 약해진 모든 왕국을 체스터 공국이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제론의 말에 다들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체스터 공국이 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약소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강국도 아니었다. 공국이라는 건 공왕이 다스린다는 뜻이었다. 체스터 공국의 공왕은 사실 벨룸 왕국에서 떨어져 나온 공작이었다.

즉, 일개 공작령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그들이 몇 개의 왕국을 몽땅 집어삼킬 만한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제론은 그들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원래는 그렇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원래는."

그제야 다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론에게 집중했다. 지금은 미래를 위한 회의 중이었다.

"체스터 공국은 그렇게 모든 왕국을 아우른 다음 내실을 다지고 차근차근 우리 왕국을 병합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다들 이를 악물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다 박살을 내 버릴 것이다. 에어스트 왕국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모든 왕국을 차근차근 병합할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람들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다들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나 보군."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왕국들을 탁탁탁탁 짚었다.

"이것들, 우리가 다 먹는다."

지도를 바라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그리고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두근 뛰었다.

☆ ☆ ☆

"폐하! 큰일 났습니다! 폐하!"

레늄 왕국의 국왕은 거의 구르듯이 달려오는 시종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데 그리 경박하게 구는 게냐!"

하지만 시종장은 국왕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폐하! 선전포고입니다!"

"선전포고?"

국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시종장이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에어스트 왕국에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에어스트 왕국? 그놈들이 대체 왜!"

국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어스트 왕국의 저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물론 정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전력을 가졌든 간에 지금 이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다가는 완전히 끝장이었다.

"대체 무슨 명분으로!"

시종장은 입을 다물었다. 명분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애초에 레늄 왕국은 슈린 왕국을 도와서 에어스트 왕국에 전쟁을 걸었다.

솔직히 에어스트 왕국이 슈린 왕국만 먹고 전쟁을 멈췄을 뿐이지 사실 아직까지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건 레늄 왕국의 국왕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종장의 답을 바라지도 않았다.

"젠장! 그래서 지금 다들 어쩌고 있느냐!"

"그, 그게……."

"똑바로 말해라!"

"벌써 국경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뭐? 그럴 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솔직히 레늄 왕국이 미테 왕국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건 뒤에서 도움을 준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당한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존한 전력은 당연히 에어스트 왕국과의 국경에 모아 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벌써 국경이 뚫렸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대, 대체, 대체 왜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공격을 한단 말이냐! 이 무도한 놈들 같으니!"

시종장은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 에어스트 왕국은 선전포고를 하고 이틀 후에 공격을 시작했다. 문제는 레늄 왕국에 있었다. 제대로 보고가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대책! 대책 회의를 소집해야겠다! 어서 대신들을 모아라!"

시종장은 국왕의 명령을 받아 서둘러 움직였다. 그날부터 왕궁에서는 매일 회의가 벌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회의가 길어져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에어스트 왕국의 군대는 차근차근 레늄 왕국을 정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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