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6/217)

Chapter 2 엠페리움 (3)

제론은 재빨리 옥상의 마법진을 분석했다. 제론의 마법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빠르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제론이 원한 것은 마법진의 완벽한 분석이 아니었다. 그저 마법의 흐름만 파악하면 충분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마법진은 방어에 관한 것이다. 그 맥만 짚으면 충분했다. 그렇게 제론은 마법진의 약점을 찾았다.

수많은 마법이 겹쳐 있었기 때문에 마법진과 마법진 사이에 빈틈이 있었다. 제론이 원한 것은 바로 그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옥상에는 총 4개의 빈틈이 있었다. 제론은 즉시 손바닥의 아공간에서 검을 뽑았다.

촤아아악!

은빛 검신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제론은 망설이지 않고 빈틈에 검을 찔러 넣었다.

콰득!

마법진의 빈틈을 파고 들어간 제론의 검이 옥상을 마치 두부 으깨듯 부숴 버렸다.

마법진 일부가 뭉개지며 주변 마법이 작동을 멈췄다.

제론은 나머지 빈틈에도 똑같이 검을 찔러 넣었다.

콰득! 콰득! 콰득!

옥상의 마법진 중 절반 이상이 기능을 멈췄다. 그때부터 제론은 옥상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꽈과과과과광!

옥상 곳곳이 부서져 나갔다. 일단 방어 마법이 깨진 이상, 그저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돌가루가 풀풀 날리며 바닥이 뭉개졌다.

그렇게 뭉개지는 부분이 넓어질수록 마법진의 기능도 점차 죽어 나갔다.

이 탑의 마법진은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손상을 입으면 다른 부분의 마법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제론은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그 순간 탑의 벽에 설치해 뒀던 마나폭탄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꽈과과과과과과광!

처음 터트린 마나폭탄보다 훨씬 파괴력이 강력한 폭탄이었다. 일부러 이중으로 마나폭탄을 설치했고, 두 번째는 제론이 마법을 통해 발동시키지 않으면 폭발하지 않도록 장치해 두었다.

그 폭발로 인해 탑에 새겨진 마법진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일단 마법진이 정지된 이상, 제론은 거칠 것이 없었다. 먼저 검을 크게 휘둘러 옥상에 구멍을 냈다.

꽈드드득!

옥상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을 통해 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놀랍게도 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따로 층이 있거나 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통짜로 된 하나의 공간만 있었다. 탑의 규모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심지어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탑 내부는 제론이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지?'

제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여기서 뭘 했단 말인가. 곳곳에 늘어져 있는 시체를 보면 좋은 일로 만든 장소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저런 식으로 시체가 생길 만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시체를 살펴보니 노인과 아이뿐이었다. 노동력이 낮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내부에도 온통 마법진으로 가득했다. 바닥이고 벽이고 가릴 것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분석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제론은 일단 태블릿의 기능을 이용해 마법진을 싹 복사했다.

그리고 보는 눈이 없는 순간을 이용해 유적으로 들어갔다.

유적에서 제론은 한동안 탑에 새겨진 마법진을 분석했다. 태블릿과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았기에 예상보다 금방 분석이 끝났다.

"에너지를 강제로 주입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군."

노인과 아이의 시체만 가득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강제 에너지 주입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강제로 몸에 스며드는 에너지를 버티려면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러니 그 두 가지가 모두 모자란 아이와 노인은 죽는 게 당연했다.

개중에도 성공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들은 따로 이송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었다. 여기서 토대가 만들어진 사람들을 분수대 쪽으로 보내 소드 마스터를 양성하는 시스템이었다.

"가만, 로스는 힘도 분수대에서 받았다고 했는데……."

분수대의 역할은 아주 명확했다. 어떤 기능을 담고 있는지, 또 어떻게 힘을 처리하는지 낱낱이 파헤친 상태였다.

그렇기에 제론은 지금 당장 분수대를 하나 만들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분수대가 가지는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서도 비교적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제론은 분수대와 이곳 탑을 가만히 비교해 봤다. 분수대에 비해 탑의 효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더 안전했다.

"방식을 바꿨군."

그리고 바뀐 방식을 제대로 활용하기도 전에 제론이 탑을 만신창이로 만든 것이다.

이미 제론이 유적에서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의 흐름을 바꿨으니 더 이상 탑을 이용해 뭔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엠페리움 입장에서는 악재가 겹친 셈이었다.

제론은 유적에서 마티를 통해 엠페리움의 탑을 자세히 살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탑을 빠르게 복구해 나가고 있었다.

제론은 그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평범한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의 복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엠페리움의 조직원일 것이다.

"말단 조직원이겠지?"

수많은 말단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에게 각각 하나씩 마티가 따라붙었다.

지금까지 거쳐 온 모든 도시에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마티를 붙이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조직원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아주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 마티를 회수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엠페리움에 대한 정보망을 넓혀 갔다. 바인이 그동안 찾아낸 엠페리움의 독특하고 은밀한 정보 전달 방식만 해도 7가지가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방법이 무수히 많았다. 그걸 다 파악하기 전에는 엠페리움의 실체를 완전히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다.

제론은 내친김에 유적에서 오랫동안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지금은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탑을 복구하는 작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워낙 많은 병사와 기사가 있었기에 무턱대고 나갔다가는 대번에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제론은 유적에서 쉬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바인과 연락을 하며 에어스트 왕국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벨룸 왕국과 체스터 공국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국지전이 몇 번 벌어지긴 했지만 분위기만 흉흉하게 만들었을 뿐, 진짜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반면 레늄 왕국과 미테 왕국의 경우는 훨씬 빨랐다. 벌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양측이 아직 전력을 다하지는 않고 있지만 제법 전쟁이 커지고 있었다.

"이걸 빨리 마무리하고 싹 흡수하는 편이 더 낫겠지?"

전쟁을 하면 백성만 힘들어진다. 또 전쟁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백성의 삶은 피폐해진다. 그러다가 결국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된다.

예전이라면 이런 상황을 반겼을 것이다. 난민을 흡수해서 모자라는 인구를 보충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직 인구가 충분한 건 아니었지만, 인구를 확실히 늘릴 수 있는 훨씬 좋은 방법이 있었다.

에어스트 왕국이 나서서 싹 쓸어버리면 된다.

예전의 레늄 왕국 영토를 모조리 얻어 에어스트 왕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외부의 시선이 문제인데, 이제 슬슬 그것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모르의 양산은 어떻게 되었지?"

제론은 태블릿을 슥슥 조작해 에어스트 왕국의 상황을 살폈다.

아모르의 생산은 폭발적이었다. 무한정 공급되는 강철과 테페룸, 그리고 포로스 덕분에 공장이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와 마법사는 죽어 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슬슬 모든 라이더에게 아모르를 지급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에어스트 왕국이 보유한 라이더는 2천 명에 달한다.

슈린 왕국을 흡수하면서 엄청난 숫자의 라이더가 생긴 것이다. 바인의 정보력을 통해 철저한 뒷조사를 했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라이더만 뽑았는데도 그 정도였다.

2천 명에 달하는 라이더 전원을 아모르로 무장시키면 크란 제국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두려울 게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에어스트 왕국의 라이더 훈련은 지독하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다른 어떤 왕국의 라이더보다 평균적인 실력이 뛰어났다.

중요한 점은 그 모든 라이더가 왕국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모두 제론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다른 영주나 귀족의 기사가 아니었다.

에어스트 왕국은 귀족의 힘이 상당히 약했다. 영지를 인정하지 않고, 관리를 파견해 영토를 다스렸다.

다른 왕국처럼 나중에 귀족들이 나서서 전쟁의 판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집중된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최고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가만있자…… 그래도 아직 전쟁 초반이라서 피해가 크지는 않군."

전쟁 준비에 백성을 쥐어짰기에 다들 궁핍한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 상태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전쟁이 더 길어져 추가 물자를 징발하고 새로운 병력을 모집하기 전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제론은 최적의 타이밍에 나서서 그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그 타이밍을 재는 것은 바인이 할 일이었다.

"물자의 흐름이 나쁘군."

제론은 바인의 보고 중 물자의 흐름에 관한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인위적인 개입이 느껴졌다. 바인도 비슷한 의견을 첨언했다.

"이 정도로 은밀하게 물자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지."

엠페리움이 드디어 에어스트 왕국에 마수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제론은 간단히 거기에서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흐름을 역으로 추적해 그들의 손발을 꺾어 놓을 생각이었다.

"좋은 기회로군."

제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앞으로 정말 재미있어질 것이다.

☆ ☆ ☆

"또 작동하지 않는다고?"

깁스 남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었다. 최근 습격을 받아 부서진 곳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젠장, 에너지 감지 시스템을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군."

엠페리움에서 쓰던 에너지 감지 시스템은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 아니, 비용만으로 만들 수 있는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에너지 감지 시스템은 아주 오래전에 쓰임을 다하고 수명이 끝났다.

하지만 그것을 쓴 덕분에 엠페리움은 크란 제국에 세워지는 도시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은 크란 제국이 채 세워지기도 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물론 깁스 남작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서 보고 알았지 실제로 겪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깁스 남작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최근 지나칠 정도로 많은 에너지원이 사라졌다. 깁스 남작은 다시 한 번 자료를 뒤적였다.

"역시!"

에너지원이 사라진 도시를 보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레벨리오의 습격을 받은 곳은 반드시 에너지원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즉, 레벨리오가 에너지원에 간섭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저 우연만으로 이뤄진 타이밍이라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절묘했다.

레벨리오의 습격을 받지 않고 저절로 에너지원이 사라진 곳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깁스 남작은 그곳 역시 레벨리오가 어떻게든 관여했을 거라고 믿었다.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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