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엠페리움 (1)
드로센 자작은 두려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설마 이렇게 사로잡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동안은 엠페리움에 대항하는 결사대를 개미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사로잡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의자에 칭칭 감겨 있었다. 아예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윗부분뿐이었다.
"애쓸 필요 없다. 설사 네가 소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드로센 자작이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드로센 자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혹시 고문이라도 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아마 채 고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서워서 아는 모든 걸 얘기할 것이다.
"일단 손가락부터 하나 자르고 시작하는 게 좋겠군."
"말하겠다! 뭐든 다 말하겠다!"
드로센 자작이 그렇게 외쳤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큭큭큭. 좋아, 잘 생각했어. 거짓을 말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도 나름대로 아는 것이 있고, 잘 섞어서 질문할 테니까."
"자, 그럼 먼저 조직의 이름부터 얘기해 보는 게 좋겠지?"
레벨리오는 아직 상대하는 조직의 명칭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부 조직원들은 자신이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대부분은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요인을 사로잡은 것은 레벨리오에서도 처음인지라 물어볼 것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에, 엠페리움."
드로센 자작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작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쿠웨엑!"
드로센 자작의 입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어둠 속에 숨어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피를 쏟아 내는 드로센 자작의 몸이 점점 미라처럼 말라갔다. 몸 안에 있던 모든 피가 입을 통해 쏟아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니, 모든 체액이 싹 빠져나가는 듯했다.
결국 드로센 자작은 손쓸 틈도 없이 죽어 버렸다. 온몸의 체액을 바닥에 쏟은 채로 말이다.
"지독하군."
어둠 속에서 몇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드로센 자작의 끔찍한 몰골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알아낸 건 적 조직의 이름이 엠페리움이라는 것뿐이군."
"보고는 올렸나?"
"이곳의 심문을 처음부터 지켜보셨을 테니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네."
"그렇군."
사내들은 말라비틀어진 드로센 자작의 시체를 잠시 살펴봤다.
"별로 알아낼 만한 점은 없는 것 같군. 일단 시체부터 치워야겠는데?"
"그냥 갖다 버리면 곤란하니 태우는 게 낫겠군."
그렇게 시체의 처리를 의논하고 있을 때, 사내 중 하나가 크게 놀라며 드로센 자작의 시체를 가리켰다.
"저걸 보게!"
모두의 시선이 시체로 향했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니,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끈적끈적하면서도 불길한 마나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피해!"
사내 중 하나가 위험을 직감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번쩍!
강렬한 핏빛 섬광이 시체로부터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방 안 모든 것을 휘감았다.
그리고 폭발했다.
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건물 자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아니, 주변 건물까지 다 휘감아 버릴 정도였다.
폭발이 주로 위로 솟구치는 방향으로 일어나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근방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크란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붉은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다행스럽게도 폭발이 옆으로 일어나지 않고 위로만 치솟았기에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저기로군. 출동시켜."
테라스에 앉아 폭발을 지켜보던 노인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주변이 살짝 부산스러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폭발 지점을 향해 수천의 병사와 기사가 움직였다. 한동안 크란 제국 수도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폭발로 인해 솟구친 불기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위치를 알려 주는 이정표 역할이라도 하려는 듯 사라지지 않고 사방에 빛과 열기를 뿌려 댔다.
노인의 눈에 수천의 병사들이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드로센 자작이 죽은 건 좀 아쉽지만, 그 하나의 희생으로 저 정도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장사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와 기사들이 폭발이 일어난 곳 주변을 완전히 장악했다.
"대담한 놈들이군. 설마 수도에 본거지를 만들었을 줄이야."
수도는 엠페리움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한 곳이었다. 한데 거기에 결사대의 본거지가 있다니 완전히 허를 찔린 셈 아닌가.
엠페리움은 대부분의 도시를 장악했다. 각 도시에 특별한 힘이 잠들어 있고, 그 힘 자체가 엠페리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 힘을 자유롭게 이용하려면 도시를 장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시를 장악했다는 것이 그 도시를 다스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시의 정보와 돈, 그리고 무력을 장악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도시 중에서도 수도는 특별했다.
수도에는 정말로 거대한 에너지가 잠들어 있었다. 또한 그 에너지 위에 세워진 고대유적의 규모도 엄청났다.
그것은 고대의 성이 분명했다. 모양도 시설도 그러했으니 거의 확실했다.
그 유적을 살짝 개조해서 왕궁으로 쓰고 있었다. 왕궁은 정확히 수도의 중심에 있었다.
엠페리움은 수도에서 상당히 많은 제작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분수대도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총 4개나 만들어 뒀다.
수도의 에너지원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그렇게 많은 제작소와 분수대를 세웠는데도 에너지가 남아 일부를 엠페리움의 간부들이 소유한 저택에 공급하고 있었다.
그 저택을 짓고 위치를 결정할 때도 상당히 다양한 점을 고려했다. 그렇게 해서 저택의 위치와 공급되는 에너지의 흐름을 이용해 거대한 마법진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했기에 수도에 결사대의 본거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결사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어. 분명히 뒤에 제법 먹음직스러운 놈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노인의 눈빛이 잠시 살기로 번득였다. 하지만 그 살기는 이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표정 가득 인자함이 깃들었다.
"허허허. 자, 그럼 난 앙칼진 고양이나 달래 주러 가 볼까."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 밖으로 나갔다. 어린 황제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아니, 그 황제 뒤에 서 있는 황후를 농락할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