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2/217)

Chapter 1 1 VS 50 (2)

다가오던 12기의 아우틈은 그 모습에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어이없다는 듯 진형을 넓히며 검을 뽑았다.

상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50기의 켈룸을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사 아우틈에 탄 자신이라 하더라도 50기의 켈룸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7기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했다.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아우틈이 무려 12기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함께 싸우는 것이 혼자 싸우는 것보다 훨씬 능숙했다. 그런 경험도 많았고, 훈련도 많이 쌓았다.

그렇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테오스가 갑자기 시야에서 훅 사라져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득! 콰득! 콰득! 콰드드득!

아우틈을 모는 라이더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뭔가를 꿰뚫는 소리가 연이어 울리더니 근처가 소란스러워졌다.

꽈과과과광!

그리고 옆으로 동료가 나동그라졌다. 달려가던 아우틈들이 억지로 전진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리고 경악으로 인해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곳에는 쓰러진 5기의 아우틈을 밟고 서 있는 테오스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갑자기 앞에서 사라진다 싶더니 어느새 뒤로 돌아가 있단 말인가. 시야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라이더 훈련은 물론이고 검술도 상당한 수준까지 익힌 그들이 그것도 구분하지 못할 리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정황을 보면 저 새까만 기간트가 순간적으로 그들의 뒤를 점하고 등을 찌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우틈들은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테오스에게 달려들었다. 또한 전장에서 살짝 벗어났던 켈룸들도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테오스를 잡을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물론 주도권은 테오스에게 있었다.

"바, 방금 그게 대체 뭐였습니까?"

브릭이 경악해서 물었다. 하지만 슈틀러라고 그걸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테오스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사라짐과 동시에 아우틈들의 뒤에 나타났다. 그게 순간 이동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분명히 순간 이동이었습니다. 어떻게 기간트를……."

브릭이 중얼거리다가 퍼뜩 놀았다. 기간트를 이동시켰다면 그걸 도와준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저분의 동료가 근처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슈틀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더 말이 안 된다. 누군가 지켜보다가 딱 타이밍에 맞춰 마법을 걸었다는 뜻인데, 그건 더 불가능했다.

더구나 저런 거대한 몸체를 이동시킬 정도의 마법을 썼다면 마나 유동이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슈틀러의 예리한 감각에도 마나의 움직임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슈틀러는 멍하니 테오스와 아우틈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아우틈의 라이더들은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누구보다 슈틀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본인보다 더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해 뒀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마차의 주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을 파악하는 것이 싸움의 기본이었다. 더구나 레벨리오처럼 지극히 미미한 힘으로 거대한 적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적의 실체를 훨씬 명확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슈틀러는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군의 수는 200. 그리고 적은 저 기간트와 마차.'

기간트는 테오스가 막고 있으니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즉, 남은 적은 마차 하나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마차 안에 과연 호위 기사가 타고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

드로센 자작의 호위 기사쯤 되려면 소드 마스터일 게 분명했다. 그것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수준의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 진짜 소드 마스터일 것이다.

"아무래도 쉽지 않겠군."

기간트라도 보유하고 있다면 뭔가 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아마 드로센 자작은 전황이 조금만 더 불리해지면 곧장 도망칠 것이다.

일단 살아야 나중에 보복을 하건 부귀영화를 누리건 할 것 아닌가. 드로센 자작은 누구보다 자신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또한 누구보다도 짜릿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도망가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아마 그 자극의 일환일 것이다. 도망칠 방법을 만들어 둔 것이 분명했다.

"역시 텔레포트인가?"

그럴 확률이 컸다. 텔레포트 마법이 저장된 스크롤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지만 드로센 자작 정도 되면 가지고 있다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아마 도착지는 자신의 저택 가장 깊숙한 곳이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준비해 둔 안가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슈틀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적들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당키나 한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벌써 발을 깊이 담가 버렸는데.

슈틀러는 다시 한 번 드로센 자작의 마차를 노려봤다.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 드로센 자작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다면 향후 레벨리오의 행보가 상당히 편해질 것이다.

"기간트를 준비하지 못한 게 한이로군."

아쉬운 듯 중얼거렸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크란 제국의 도시는 모두 적 조직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서 조직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당연히 기간트를 몰래 들여오는 일은 불가능했다. 기간트를 담은 아공간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대번에 알아차릴 테니 말이다.

도시 전체에 아공간 감지 마법과 아공간 교란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관리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만일 슈틀러가 기간트를 들여왔다면, 그 순간 이 도시 내의 조직은 일망타진되었을 것이다.

슈틀러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기간트 전투도 서서히 끝으로 치달아 갔다.

꽈과과과광!

마지막 남은 기간트가 조각나며 바닥에 처박혔다. 이제 서 있는 기간트는 오로지 테오스뿐이었다.

드로센 자작은 한없이 굳은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단 한 기의 기간트가 12기의 아우틈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조직에서 상급의 능력을 인정받은 라이더가 타고 있는데 말이다.

테오스가 고개를 돌려 드로센 자작이 탄 마차를 쳐다봤다. 드로센 자작은 마치 기간트와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섬뜩하군."

"어찌할까요?"

자작 앞에 앉은 부관이 물었다. 마차 벽에 붙은 석판을 부수면 마법이 발동되어 단숨에 저택의 비밀스런 장소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일종의 스크롤이나 다름없었다.

부관은 그 석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마나를 손에 집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힘만 주면 석판이 부서지고, 그들은 저택으로 이동할 것이다.

"기다려 봐라. 대화라도 나눠 봐야 하지 않겠느냐?"

"위험합니다."

부관도 전투를 지켜봤다. 저 기간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쩌면 이 정도 거리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한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드로센 자작은 그렇게 말하며 반지를 쓰다듬었다. 반지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마차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설사 아우틈이라 하더라도 흠집조차 내지 못할 테니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

방금 전 건 강화 마법은 상당히 강력했다. 일정 이상의 물리력을 가하지 않으면 깨지지도 않는다. 또한 엄청나게 강한 충격을 받더라도 그 충격을 흡수, 분산시키기 때문에 마법은 깨지더라도 마차 자체는 보호가 된다.

게다가 마차도 보통 재질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 방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부관이 석판을 깨 텔레포트로 이동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쿵! 쿵! 쿵!

테오스가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드로센 자작은 그것을 보면서도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처음 보는 디자인이었다.

"가만있자…… 발굴형 기간트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발굴형 기간트는 히엠스, 아우틈, 에스타스, 베르 이렇게 네 종류뿐이었다.

사실 아우틈이라고 해서 다 같은 아우틈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상당한 성능 차이가 존재했다. 또한 많은 부분이 달랐다.

고대에는 기간트를 라이더의 취향이나 습관에 맞춰서 각각 따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는 마법까지 다 달랐다.

그러니 저렇게 색다른 모양의 기간트라면 발굴형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 어디에선가 새로 만든 기간트가 분명했다.

"성능이 상당한 것 같았는데, 저걸 새로 만들었다고? 그게 가능한가?"

드로센 자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현재 가장 뛰어난 기간트 제작 기술을 보유한 곳이 바로 그가 속한 조직, 엠페리움이었다.

한데 얼핏 보기에도 저 기간트는 그들이 만든 기간트보다 훨씬 뛰어나 보였다. 아니, 웬만한 발굴형 기간트보다 더 좋은 듯했다.

아무리 라이더의 실력이 다르다 하더라도 저렇게 아우틈 12기를 농락할 수는 없었다. 기간트 자체의 성능이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증폭 마법을 발동시켜라."

"알겠습니다."

부관이 마차 안의 마법진을 조작해 증폭 마법을 걸었다. 마나의 바람이 마차 안을 한바탕 휘젓고 사라졌다.

"거기 검은 기간트, 들리나?"

드로센 자작의 말이 증폭 마법을 거쳐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제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그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다. 잡고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저자가 아직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숨겨 둔 수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뻔했다. 제론은 드로센 자작이 어떤 수를 쓸 건지 몇 가지를 예상한 다음 각각에 대한 대비책을 싹 세웠다.

테오스가 성큼성큼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쿵! 쿵! 쿵!

드로센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뭔가를 캐내려면 대화를 이어 나갈 거라 여겼다.

"설마 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드로센 자작의 말에 테오스가 걸음을 멈췄다. 드로센 자작은 그제야 자신의 말이 통했다고 여겨 빙긋 웃었다.

일단 주도권을 잡고 의도대로 끌고 들어오면 나머지는 아주 간단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발라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테오스가 몸을 살짝 웅크렸다. 마치 점프하기 전의 자세 같았다.

그걸 본 부관이 깜짝 놀라 외쳤다.

"한 번에 달려들 모양입니다!"

그냥 단순한 주먹질이나 발길질이라면 방어 마법이 막아 주겠지만 저런 식으로 점프해서 때리면 자칫 방어막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드로센 자작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무래도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돌아가야겠어."

드로센 자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관이 석판을 깨뜨렸다.

콰드득!

석판이 깨지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마나는 마차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빛이 어찌나 강했는지 마차 안에 탄 사람들도 눈을 질끈 감았을 정도였다.

드로센 자작은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독하군."

하지만 이 정도 빛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하지 않았는가.

빛이 사라지고 시야가 돌아오자 드로센 자작은 피식 웃으며 마차에서 나가려 했다.

"기다리십시오!"

드로센 자작은 부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부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러는가?"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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