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50/217)

Chapter 10 마나폭탄과 스크롤 (2)

제론은 슈틀러와 브릭이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 레벨리오가 알아서 초고대유적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건물을 박살 내 주고 다닐 테니, 제론은 그저 폐허가 된 건물에 들어가 유적만 차지하면 된다.

물론 따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유적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거점이 늘어나고 수집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제론이 서둘러서 먼저 차지해야 하는 유적을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

제론은 일단 크란 제국의 테페룸 광산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크란 제국에는 2개의 테페룸 광산이 있는데, 그곳만 장악하고 나면 나머지 유적은 조금 여유를 가지고 등록할 계획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볼 때였다.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진다. 에어스트 왕국도 그 전쟁에 무관할 수 없었다.

미테 왕국와 레늄 왕국의 전쟁은 분명히 향후 에어스트 왕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전쟁에 개입해야 하나?"

제론은 그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일단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 얻는 이득은 많아지겠지만 에어스트 왕국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아마 상당히 많은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제론은 냉정하게 현재 에어스트 왕국이 가진 힘을 계산해 봤다. 일단 정보력은 최고였다. 그 어떤 왕국보다 뛰어났다. 또한 크란 제국보다도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기간트 전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물량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무리 제론이 테오스를 타고 싸운다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적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근방의 왕국들은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아니, 압도할 수 있었다.

크란 제국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 제론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크란 제국은 정말로 대단했다. 아직까지는 그들과 정면으로 붙으면 위험했다.

하지만 크란 제국은 당장은 움직일 수 없었다. 레벨리오의 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레벨리오는 제론이 공급한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이용해 엄청난 작전을 동시에 수행했다. 제론은 그것을 잘 관찰하다가 타이밍에 맞춰 브릭을 찾아가 미리 준비한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넘겼다.

레벨리오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스크롤을 분석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지만 제론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제론이 제작한 스크롤은 분석이 불가능했다.

스크롤은 아주 얇은 2겹의 종이를 붙여서 만드는데, 그 2장의 종이 사이에 특별한 마법진이 들어간다. 완벽하게 마나만으로 만든 마법진이 말이다.

스크롤의 겉에 그려진 마법진은 종이 사이에 만들어진 마나의 마법진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스크롤 제작 기법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었다. 분석을 시작하면 내부의 마나가 즉시 날아가 버릴 텐데 무슨 수로 분석을 하겠는가.

어쨌든 제론이 공급한 물건 덕분에 레벨리오의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크란 제국에서도 크게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러니 크란 제국이 다른 왕국의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겠는가. 그들이 신경을 쓸 때쯤이면 이미 에어스트 왕국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현재 세나는 아모르 양산 공장을 완성한 다음, 지휘관형 기간트의 설계에 들어갔다.

제론이 기간트 설계에 관한 지식을 한 보따리 풀었기 때문에 그걸 공부하고 분석해서 새로운 기간트를 설계할 준비를 대부분 마쳤다.

또한 바이스도 제론에게 새로운 마법 지식을 잔뜩 받아서 그걸 연구 중이었다. 아마 조만간 에어스트 왕국 마탑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한 아티팩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페쿠니아 상단은 지금도 꾸준히 성장 중이었다. 나중에 바이스의 마탑과 연계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폭풍이 되어 대륙 상계를 덮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태블릿을 가만히 지켜보던 제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음?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제론은 다급히 태블릿을 조작해 마티로 근방의 모습을 비췄다.

빈민가로 수많은 병력이 들어서고 있었다.

"크란 제국 정규군은 아닌 것 같은데?"

병사의 복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사병이 분명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제론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정보가 샜군."

제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으로 짜증 나는 일이었다. 이제 간신히 관계를 구축해 놨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니 말이다.

"아니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일단 저들은 살리고 보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슈틀러와 브릭은 살려 두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편했다. 그리고 지금 살려 주면 이들에게 빚을 하나 더 지워 두는 셈이니 언제고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계산한 제론은 마티를 사방에 풀어 빈민가의 상황은 물론이고 근방의 상황까지 싹 허공에 띄웠다.

유적 로비에 수십 개의 화면이 둥둥 떠서 각각 제론이 선택한 모습을 비췄다.

"많이도 데려갔군."

병사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명에 달했다. 빈민가에 있는 레벨리오의 조직원이 몇이나 있는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제론이 파악하기로 빈민가에는 레벨리오의 조직원이 2백 명쯤 있었다.

그중 일반 병사들이 아무리 많이 덤벼도 상대가 불가능한 강자는 10명 정도였다.

제론은 빈민가로 접어드는 병사들 중 실력자를 파악해 봤다. 직접 마주하고 마나를 알아보거나 느낌을 확인해야 하는데 마티로만 보려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실력자는 걸음걸이부터가 다르다. 움직임을 살피면 어느 정도까지는 구분이 가능했다.

"많기도 하군."

대충 파악해도 최소 100명 이상이 상당한 실력자였다. 즉, 기사라는 뜻이었다. 그들이라면 빈민가의 레벨리오를 완전히 몰살시킬 수도 있었다.

제론은 빈민가 전체를 확인하며 탈출로를 파악해 봤다. 일단 하수도를 통해 빠져나가는 방법을 떠올렸다. 마티를 하수도에 보냈는데, 하수도에도 병사가 잔뜩 몰려오고 있었다.

"정말 제대로 벼른 모양이군."

엄청난 조사를 토대로 작전을 세워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도 별로 없었다. 병사들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수없는 모의 훈련을 거친 것이 틀림없었다.

"누군지 정말 대단한데?"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론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폴타를 쓰면 된다. 이 도시의 유적에는 폴타가 있었다. 하지만 제론은 폴타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면 돌파였다. 제론이 앞장서서 뚫으면 분명히 돌파가 가능할 것이다.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하면 충분히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돌파하고 나면 적의 추적을 계속 받아야 한다. 아마 도시 밖으로 나가면 기간트의 추적까지 받을 것이다.

그 상태로 도망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텔레포트를 쓰는 수밖에 없나?"

제론은 9개의 마나링을 얻는 순간부터 비교적 안정적인 텔레포트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만들려면 마법진을 그리고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하지만 급할 때는 그저 약간의 시약과 마나링의 마나만으로 텔레포트를 구현할 수 있었다.

다만 위험성이 약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안할 만했다. 거의 희생 없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결정을 내린 제론은 슈틀러와 브릭의 상황을 살폈다. 그제야 보고가 들어갔는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었지만 도망칠 길이 완전히 막힌 상황이라는 사실만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 절망감이 점점 짙어졌다.

제론은 슬슬 자신이 등장할 타이밍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럼 가 볼까?"

제론은 폴타를 이용해 인적이 없는 빈민가 한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일단 시간을 좀 더 벌 필요가 있었다. 텔레포트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위이이이이잉!

마나링이 맹렬히 가속했다. 사방으로 올올이 풀려 나가는 마나의 실이 허공 가득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

어마어마한 마나의 가루가 폭풍처럼 휘날렸다. 그리고 빈민가 전역에 흩어지며 허공에 녹아들었다.

제론은 달리면서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그걸 신호로 마법이 발동되었다. 이제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방금 펼친 마법은 대규모 환상을 보여 주는 마법이었다.

아마 교묘하게 생겨난 벽과 뒤틀린 길로 인해 병사들이 제법 헤맬 것이다.

제론은 발걸음을 빨리해 슈틀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두른 덕분에 제론은 빠르게 슈틀러와 브릭을 만날 수 있었다.

브릭은 제론을 발견하자마자 구원자라도 본 표정으로 감격에 젖었다.

"은인께서 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외친 브릭은 아차하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 지금은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곤란합니다! 적이 습격했습니다. 이대로 계시면 위험합니다!"

제론은 브릭의 반응을 무시하고 슈틀러를 쳐다봤다.

"사람을 전부 모아. 도망갈 길을 열어 줄 테니까."

제론의 말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슈틀러는 서둘러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수하들의 사방으로 흩어져 적과 싸우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 동안 슈틀러는 복잡한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 주는 이유가 뭐요?"

제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기가 애매했다. 솔직히 말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둬도 상관없었다.

이들이 다 죽는다고 레벨리오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른 레벨리오의 조직원을 찾아 브릭에게 한 것과 똑같이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딱 꼬집어 이유를 얘기하라면 할 말이 없었지만 말이다.

제론은 묵묵히 시약을 꺼내 바닥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한꺼번에 200명을 옮겨야 하기에 시약을 이용해 그리는 임시 마법진이 상당히 중요했다.

제론은 집중해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은 아주 간단했다. 사실 마법진보다는 실제 마법을 펼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마법진은 그저 보조의 역할밖에 없었다. 지금 이 경우에는 말이다.

"다 모았나?"

제론의 물음에 슈틀러가 주위를 둘러봤다. 수하들이 어찌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벌써 사람을 다 모았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시작하지. 멀리 이동하는 게 아니라 도시를 벗어나는 정도니까 이동 후에도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달려야 할 거야."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마나링을 가속시켰다.

위이이이이잉!

세차게 돌아가는 마나링의 힘찬 마나를 느끼며 제론이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가리켰다.

"다들 올라가."

슈틀러와 브릭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마법진에 올라섰다. 200명이나 되는 수가 다 올라가기에는 마법진이 살짝 비좁았다.

하지만 그들은 바짝바짝 붙고 서로를 안아 올리는 방식으로 결국 200명 모두가 마법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제론은 마나링을 조절해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200명의 사람들 머리 위에 만들어진 마법진이 차츰차츰 아래로 자라나 입체적인 마법진을 구성했다.

이내 원통 모양의 마법진이 사람들을 온통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부서졌다.

샤아아아아아!

빛가루와 함께 200명의 레벨리오 조직원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제론은 씨익 웃었다. 성공했다.

도시 밖에 빛가루와 함께 나타난 조직원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도시 밖으로 이동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조금 전 그 마법이 바로 텔레포트였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브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존재한단 말인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생각해 보면 스크롤도 그렇다. 현시대에 스크롤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건 크란 제국 마탑도 못 하는 일이었다.

한데 그는 그걸 척척 해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서둘러야 해! 출발한다!"

슈틀러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슈틀러의 말이 옳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때였다.

거점이 사라졌으니 새로운 거점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거점을 들켜선 안 된다.

슈틀러는 서둘러 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크게 걱정을 했다.

적이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 습격했다는 사실은 조직 내 누군가가 배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과연 제대로 도망갈 수 있을까? 그리고 거점으로 그냥 가도 되는 걸까?'

슈틀러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결국 슈틀러는 다른 거점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장소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슈틀러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자 뒤를 따르는 조직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다른 비밀 거점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슈틀러의 능력은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 중간에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없었다.

"혹시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슈틀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면서 예리하게 날 선 감각을 이용해 조직원들의 동태를 살폈다.

순간적으로 멈칫한 조직원이 있었다. 그가 배신자일 확률이 컸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실이 되어 나타났다.

조직원 중 하나가 갑자기 원통 하나를 꺼내더니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피유우우우웅!

날카로운 소리까지 났다. 그걸 쏜 조직원이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것을 본 슈틀러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도망치기 위해 속도가 빨라지는 아티팩트까지 챙긴 모양이었다. 아니, 적 조직이 제공했을 것이다.

슈틀러는 검을 꺼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을 포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슈틀러는 검에 막대한 마나를 밀어 넣었다. 얼굴이 창백해질 지경이 되었다. 그 순간 검을 던졌다.

쌔애애애애애액!

바람을 찢으며 검이 날아갔다. 도망치던 조직원이 그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퍼억!

그 조직원은 경악한 표정 그대로 절명했다.

마나를 머금은 검은 끝없이 날아갔다. 다시 찾을 수 없을 때까지.

"후우, 끝났군."

이제 끝났다. 정말로. 도시에서 거대한 기간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죽었다 깨나도 도망가는 게 불가능해졌다.

쿵쿵쿵쿵쿵!

슈틀러와 브릭이 암담한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기간트를 바라봤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브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은인이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브릭의 말을 들은 슈틀러가 피식 웃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대단해도 도시에서 나오는 50기의 기간트를 상대로 뭘 어쩌겠는가.

그것도 50기 모두가 켈룸이었다. 출력이 2.3이나 되는 양산형의 끝에 서 있다고 알려진 기간트였다. 그런 켈룸이 무려 50기나 달려오는데 무슨 수로 저걸 막는단 말인가.

"은인이 나타나 저걸 막아 주면 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지."

슈틀러가 그렇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말을 하다 보니 진심이 되었다. 그만큼 지금은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슈틀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믿어도 되나?"

슈틀러와 브릭이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그곳에는 제론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대체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해야 정상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슈틀러와 브릭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제론은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을 지나쳐 걸어갔다.

"간만에 한번 즐겨 볼까?"

그렇게 중얼거린 제론이 다가오는 기간트들을 향해 그대로 내달렸다.

다들 앗 소리도 못 내고 당황해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갑자기 제론이 달려가는 그대로 기간트로 변했다.

테오스였다.

새까만 기간트가 50기나 되는 켈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쿵쿵쿵쿵쿵쿵!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돌진이었다. 누가 봐도 기간트 하나가 50기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왠지 그 광경을 지켜보는 슈틀러와 브릭은, 아니, 200명의 조직원들은 가슴이 뛰었다.

50기의 켈룸보다 저 한 기의 새까만 기간트가 훨씬 더 거대해 보였다.

그렇게 1대 50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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